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
“으으,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머리가 어지러워 죽겠 .”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곳답게 1층은 벌써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 어제 안면을 터 익숙해진 여급을 발견한 아이반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방이 깔끔하고 좋더군. 음식도 괜찮았고. 장기 숙박을 하고 싶소.”
“헤헤, 우리 여관이 괜찮기는 하죠. 얼마나 머무르실 생각이세요?”
“일단은 한 달 정도. 연장은 그때 되어서 결정하겠소.”
“장기 숙박 고객은 할인이 되니까 5실버만 주시면 돼요.”
아이반은 품에서 은화 다섯 개를 꺼내 내밀었다.
반짝이는 은화를 받아든 여급은 한층 친절해진 미소로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
아침 식사메뉴는 따로 주문할 수가 없고 하나로 통일되어있었다. 호밀빵 한 덩어리에 걸쭉한 스튜가 한 그릇, 약간의 버터와 필요하다면 샐러드 조금.
호밀빵은 딱딱해서 그냥 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따뜻한 스튜 속에 집어넣으면 부드러워지겠지.
여기 호밀빵이 특별히 더 오래되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원래 호밀빵은 따끈따끈하게 굽고 난 뒤에 몇 십분만 식으면 이렇게 딱딱하고 질기게 변했다.
‘오늘 저녁에는 하얀 밀빵을 먹을까?’ 딱딱한 호밀빵에 비해 부드러운 밀빵은 조금 더 가격이 비쌌다. 한국이랑은 반대였다. 한국은 호밀 수입이 극히 적어서 호밀빵의 가격이 오히려 비쌌으니까. 영양식이나 건강식, 다이어트 음식.
뭐, 그런 이름을 달면 다 그렇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반은 스튜를 씹어 삼켰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요리 실력은 있는 곳이다. 식사를 마친 아이반은 느긋하게 상점가로 향했다. 메인 거리에서 약간 들어가야 나오는 무기점. 아이반은 배낭에서 꺼내는 척을 하며 인벤토리를 열어 부러진 검 몇 개를 늘어놓았다. 모두 어제 강도를 제압하며 습득한 물건이었다.
“이것들을 팔고 싶소.”
“죄다 엉망이군. 부러진 것은 그렇다 치고 멀쩡한 놈도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있어.”
검을 들어서 살펴보던 주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것들은 고철 값 정도밖에는 챙겨줄 수가 없겠군. 제대로 쓰려면 전부 녹여서 다시 만들어야만해.”
그럴 거라 생각했던 아이반은 별말 하지 않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대단한 장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나름 괜찮은 물건들이었다.
게임이던 시절의 아이템과 비교를 하면 안 된다.
그때 아이반이 들고 다니던 물건은 어디 신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것들이니까. ‘그 아이템 하나만 가지고 있었으면 팔자가 바뀌는 건데 .’ 풀강화 신화급 아이템은 무슨, 처음 이 망할 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는 빵 한 조각이 없어서 굶어죽을 뻔했다. 안쪽을 돌아다니면서 꼼꼼히 무기를 살펴보던 아이반은 화살 한 통과 도끼 하나를 골랐다. 도끼는 모양새가 토마호크와 프랑시스카 사이쯤으로 보였는데, 이런저런 용도로 쓰기 좋아보였다. 물론 집어던져서 누군가의 대가리에 박아 넣기도 좋았고.
“이 두 개의 값은 얼마요?”
“들고 온 고철이랑 대충 값이 비슷해 보이는데 그냥 들고 가게.”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아쉬운 것이 사람 마음이었다. 아이반은 기어이 싸구려 나이프 하나를 더 챙겨서야 가게를 벗어났다.
이번에 아이반은 용병길드로 향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 법. 아침마다 의뢰가 갱신되니 빠르게 움직일수록 좋은 일거리를 잡았다. 나름 빠르게 움직였지만 무기점을 들렀다가 와서 그런지 용병길드는 사람이 북적북적했다.
한산하던 어제 저녁과는 달랐다. 날이 좋으니 다들 일하러 일찍 나온 것이다. ‘장거리 호위는 좀 별로고, 고블린 사냥? 이건 좀 끌리는군.’ 새로운 의뢰가 뭐가 있는지 게시판을 살피고 있으니 누군가 아이반에게 말을 걸어왔다.
“허, 어제 강도 대가리가 든 주머니를 가져오더니 바로 일을 하려고 그러시오?”
고개를 돌려보니 어제 대화를 했던 접수원이었다.
그는 꽤 고참인 모양인지 다른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 홀로 유유자적 여유로웠다.
“지금 의뢰를 가져간다고 오늘 바로 출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좋은 의뢰가 있는지 확인하러 왔소.”
“흐흐, 꿀 같은 의뢰는 사람들이 귀신같이 채서 가져가지.”
낄낄 웃어대던 접수원은 주변을 힐끗 돌아보더니 말했다.
“어제 들고 온 목은 확인했소. 칼질이 제법 날카로우시던데? 다섯 모두 절단면이 매끄러운 것이 한 번에 잘랐더군.”
사람의 머리는 생각보다 질겼다. 그걸 단번에 잘라내었으니 보통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칼밥 먹고 돌아다니는 녀석이면 그 정도는 해야지. 무슨 드래곤의 대가리를 자른 것도 아닌데 칭찬이 과하군.”
“흐, 맞는 말이오. 하지만 요즘에는 그걸 못하는 놈들이 너무 많거든.”
그는 제대로 칼 쓰는 법도 모르면서 농사짓기 싫다는 이유로 용병질을 시작하는 놈들이 너무 많다며 투덜거렸다.
“대부분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거나 팔다리가 하나쯤 잘린 채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지. 그래, 뒤지거나 포기하는 건 괜찮다 이거야. 하지만 그런 놈들이 많으면 의뢰 성공률이 떨어지거든. 몬스터를 잡으러 가서 칼질 한 번 안 해보고 돌아오는 놈들이 부지기수라오.”
주변에 있던 용병 몇 명이 움찔하며 자리를 피했다. 저 말처럼 농사짓기 싫어서 가출한 놈들인 듯싶었다.
‘농사가 싫어서 칼질을 한다고? 삶이 심심해서 죽고 싶다는 뜻인가? 철이 없군.’ 용병은 그리 멋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로망을 찾으려면 기사가 되어야지 용병은 무슨 용병인가.
아이반이 그동안 경험한 것에 의하면 용병의 대부분은 사기꾼에 양아치였고, 사이코패스 살인마에 쓰레기였다. 진짜 제대로 된 놈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언제 뒤질지 모르는 목숨을 붙들고 있는 인생막장의 병신놈들이었다. 호위 의뢰를 받아서 강도를 막아주다가, 강도가 없으면 가끔은 스스로 강도가 되어주는 역지사지의 실천자. 물론 용병들에게 신뢰는 몹시 중요한 가치였고, 신뢰할 수 있는 몇몇 용병들은 높은 몸값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만큼 정직, 믿음, 신뢰와는 벽을 단단히 쌓은 개노답 새끼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여간 쓸모 있는 놈들이 요즘에는 너무 적단 말이지.”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다가와 이렇게나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이 남자는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친화력이 넘쳐나서 입이 근질근질한가? 아이반은 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저 잡담을 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뭘 원하시오?”
그 물음에 접수원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이반 에시르손, 북부에서 온 신비로운 모험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소. 어제 당신이 돌아가고 나서야 기억이 떠올랐지.”
“내 명성이 그리도 대단한지 몰랐군.”
“당신이 서쪽에서 히드라를 잡았다는 소문은 진짜요?”
“잡기는 잡았소. 제대로 성장한 놈은 아니었지만. 머리도 세 개밖에 없더군.”
히드라는 성장하면서 머리가 하나씩 늘어나는 녀석들이었다. 제대로 성장을 끝내면 머리가 아홉 개가 된다고 했고, 또 누구는 백 개가 넘는다고도 했다.
그런 신화적인 괴물들에 비하면 머리 세 개 달린 히드라는 그저 좀 사나운 뱀 수준에 불과했다.
아이반은 어디서 자랑을 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머리가 세 개라고 해도 히드라는 히드라지. 평범한 전사들이라면 독기 때문에 근처에 다가가기도 힘들 텐데.”
“허약한 전사들이나 그렇겠지.”
“당신처럼 강한 전사가 보기에는 다들 허약해 보일지도 모르겠군. 허허.”
그러다 그는 진지하게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안쪽으로 들어오시오. 그대와 같은 강자에게 딱 맞는 의뢰가 있으니.”
그는 스스로를 빌리 안게이트라 소개했다.
평범한 접수원인 줄 알았건만 이곳 용병길드의 지부장쯤은 되는 위치라고 했다.
“지부장이면 지부장이지, 지부장쯤 되는 건 뭐요?”
“용병길드 내부 조직도에 대해 알고 싶으시오? 그러면 말해드리고.”
흥미 없는 이야기. 아이반은 자리에 앉아서 일이야기를 꺼냈다.
“의뢰는 무엇이오?”
“동쪽 숲의 몬스터들이 얼마 전부터 갑자기 포악해졌소. 안쪽으로 들어가 그 원인을 좀 알아봐주시오.”
“예상되는 이유라도 있소?”
“글쎄, 나는 잘 모르겠지만 동쪽 숲에서 얼마 전에 강한 마력반응이 있었다는군. 청색 마탑에서 마법사가 나올 거요. 거기에 우리 쪽 사람 몇 명까지 해서 함께 움직이면 되오.”
아이반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셈을 시작했다.
“으흠 .”
사실 썩 끌리지는 않는 의뢰였다. 척 보기에도 위험해보였으니까. 게다가 마탑의 마법사라니. ‘그 괴팍한 놈들을 상대해야한다고?’ 그동안 아이반이 봤던 마법사는 죄다 어딘가 하나쯤 나사가 빠진 놈들이었다. 마탑 소속이라면 그런 마법사들 중에서도 진짜인 녀석들이고.
“그, 마탑의 마법사는 반드시 데려가야 하오?”
아이반이 떨떠름하게 묻자 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마법사도 없이 어떻게 조사를 하시려고? 그리고 이건 애초에 청색 마탑의 의뢰요. 그들이 껄끄러운 것은 알겠지만 마법사를 빼놓고 가는 건 불가능하오.”
그러자 아이반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거절해야 되나?’ 껄끄러운 의뢰에 껄끄러운 동료.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렇게 아이반의 마음이 점점 거절로 기울어가던 그때, 빌리가 돈 주머니를 꺼내며 말했다.
“아, 내가 의뢰금에 대해 말하지 않았군. 역시 마탑의 의뢰라 금액이 화끈하지. 금화 한 개. 어떻소? 좀 끌리오?”
” 언제 출발하오?”
금화 하나, 실버로는 100실버.
몇 달간 놀고먹을 수 있는 금액.
강도 100명의 목숨 값.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사흘 후, 동쪽 성문 앞. 이곳에서 모이기로 했지만 약속시간은 정확하지 않았다. 대충 해가 뜰 때쯤 모인다는 것이 전부였다. 회중시계나 손목시계 같은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개인이 소유하기에는 너무나 비쌌다. 돈 많은 상인이나 귀족 같은 상류층이라면 모를까 인생 밑바닥이 대부분인 용병들이 들고 다닐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다행히 이번에 같이 일을 하게 될 용병들은 시궁창 같은 놈들 속에서 그나마 믿을 수가 있는 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