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0
“충성! 모셔왔습니다!”
“어서 오시오, 아이반 에시르손. 그대의 이야기는 이미 보고서로 들어 알고 있소. 여기 이 분이 알려주기도 했고.”
꽤 계급이 있어 보이는 지휘관이 그리 말하며 옆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어색하게 웃고 있는 빌리가 앉아있었다. 빌리 안게이트, 얼마 전에 봤었던 용병 길드의 지부장 비슷한 위치의 사내.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얼굴이군.”
“흐, 나도 그렇소.”
“어찌된 일이오? 용병길드 지부장 비슷한 위치라더니. 단단히 무장까지 완료하고.”
그 말에 빌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지부장 비슷한 위치에서 잘렸거든. 그 망할 년놈들 때문에 말이오.”
그 망할 년놈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백했다.
율리아와 스벤이겠지.
그가 추천해서 청색 마탑의 의뢰에 들어왔다가 배신을 했던 자들.
아무래도 빌리는 그때 사람을 잘못 추천한 죄로 징계를 받아서 다시 현장을 뛰게 된 모양이었다.
“젠장, 내 나이에 다시 현장을 뛰게 될 줄이야. 사무실에서 놀고먹는 게 내 꿈이었는데.”
그렇게 투덜거리는 것 치고는 빌리의 몸이 무척이나 탄탄했다.
현장에서 뛰지 않으면서도 단련은 멈추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미 그가 한가락 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아이반은 놀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지휘관을 제외하고 빌리를 포함해 일곱 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하나같이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용병이 둘에 하나는 마법사, 나머지는 모두 기사인가?’ 그들의 정체를 조용히 짐작해보던 아이반이 쓴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더럽게 위험한 일인가 보군. 나는 뭘 해야 되오?”
해야 한다면 피하지 않겠다는 당당한 말. 그런 아이반의 태도가 마음에 든 듯 지휘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린스킨들이 미쳐버렸는지 아주 거세게 밀려오고 있소. 어찌어찌 잘 막아내고는 있지만 병사들의 피해가 아주 심각하오.”
지도를 꺼내놓고 이런저런 나무 모형을 옮기며 전황을 설명하던 지휘관은 주변 사람들이 슬쩍 지루한 눈빛을 하기 시작하자 얼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흠흠, 앞으로 2주면 중앙에서 대규모 지원 병력이 올 거요. 문제는 그 정도 시간이면 사실 두 번쯤 점령당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지. 그 시간을 벌어야만 하오.”
전장에서 2주면 몇 번이나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정도면 들판에다 없던 성도 짓겠는데 그걸 버티라고?
“그건 우리들에게 말할 게 아닌 것 같은데. 병력 지휘는 군의 소관이잖소?”
누군가 그렇게 묻자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니 당신들이 할 것은 수성이 아니라 공격이오.”
그는 적 진형의 제일 앞에 서있는 커다란 나무 인형을 들어올렸다.
“오크들은 전투를 할 때 가장 강한 전사가 선두에 서서 전투를 알리는 것이 전통이오. 그걸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당신들이 할 것은 그놈을 잡는 것이오. 녀석의 목을 치면 버티는 것이 한 결 수월할 테니.”
적의 우두머리를 죽여 선봉을 꺾는다. 말하자면 네임드 사냥.
“실패하면 요새가 넘어가고 이 근처는 다 날아가는 거요. 망할 그린스킨 놈들이 우리 땅에 자리를 잡겠지. 가장 강한 녀석을 상대하는 일이니 무척이나 위험하오. 어때, 그래도 하시겠소?”
그 물음에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 정도 위험이 두려웠다면 애초에 이곳에 앉아있지 않았을 것이다.다들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말 위험하다면 제 한 몸 빠져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대신 성공하면 우리는 영웅이 되겠지. 부와 명예가 있을 테고.”
다음 번 공격에 반드시 녀석의 목을 딴다.
그것을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해가 뜨기도 전, 아이반은 자연스럽게 깨어났다.
꽤나 훌륭한 방에 고급스러운 침대라 편안하게 잘 자고 일어나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는 길바닥에서도 잘만 자기는 했다.
그걸 위해서 수면 스킬을 익혔으니까. 그래도 역시 실내에서, 그것도 고급스러운 침대에서 깨어나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달그락, 척! 가볍게 세안을 마치고 장비를 꺼내 하나씩 착용한다.
면으로 된 셔츠 위에 히드라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바깥에 방수처리 된 망토를 걸친다. 그다음 손에 익은 장검을 허리춤에 걸고, 반대쪽에는 투척용 단검 두 개, 도끼 하나.
등에는 활과 화살을. 그 모든 장비들이 덜렁거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킨 후에야 아이반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
면, 가죽, 금속.
서로 다른 질감을 가진 것들이 온몸을 감싸고 있으니 다소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그것이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무기와 방어구를 몸에서 떼어놓으면 왠지 모를 불안감마저 피어올랐다. 사람을 죽이는 도구에서 안정감을 느끼다니, 그걸 좋은 변화라고 해야 할지 아이반은 알 수가 없었다. 휘이잉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이미 평범함을 한참이나 뛰어넘은 튼튼한 육체에마저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 병사들이 꽤나 고생을 할 것 같았다. 주룩주룩 아이반이 성벽에 도착할 때가 되니 하늘에서는 비까지 내렸다. 창검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성벽 위에는 이미 빌리가 도착해서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아이반을 반겼다.
“흐, 오셨소?”
“놈들의 움직임은 좀 어떻소?”
“간밤에는 별일 없었지. 오크놈들이라고 밤눈이 썩 밝은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우위에 있으니 굳이 야간 공성전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오크들은 요새 근처에 진을 치고 사나흘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쳐들어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병사들의 긴장이 풀릴 때쯤 주기를 바꿔 이틀 연속 공격하기도 했고.
그렇게 한동안 대치를 이어가다가 최근에 급격히 전투가 거칠어졌다고 했다.
인간들이 숲으로 진입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했으니 온전히 이곳에 힘을 실을 수가 있는 것이겠지.
‘테잔은 계속 숲을 지키고 있겠지.
숲에 뿌려둔 막대한 주력을 조율할 수 있는 주술사는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듣기로 지금 요새를 노리고 있는 오크 무리의 우두머리가 발크룬이라고 했다.
오크로드 카르타크의 스물세 번째 아들.
무척이나 정력적인 카르타크에게는 아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는 대단히 뛰어난 인물도 있었지만 솔직히 아이반은 발크룬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게임 속에서는 묘사되지 않았던 존재.
애초에 별 것 없는 놈이거나 메인 스토리가 진행될 시점에는 이미 죽은 녀석이라는 소리겠지.
쏴아아-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네. 이럴 때는 좀 쉬어갔으면 좋겠는데 .”
옆에서 병사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름 비를 막기 위해 두꺼운 망토를 걸치고 있었지만 방수처리가 썩 좋지 않았는지 병사의 옷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이런 와중에 전투라니, 끔찍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을 것 같군. 항상 빌어먹을 상황에서만 싸우기 마련이지.”
저 멀리 바라보던 아이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벌써 여기까지 온 것을 보니 해가 뜨기도 전에 출발을 했나보오. 더럽게 부지런한 녀석들이군. 그런 근면성실함으로 농사나 지어먹고 살 것이지, 빌어먹을 놈들.”
아이반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퍼졌다. 땡땡땡땡-
“총원! 전투준비!”
“전투준비!”
병사들은 피곤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빠르게 움직였다. 장궁수가 성벽 위에 자리를 잡고 마법사가 정신집중을 시작했다.
화아악! 후방에서 밝은 빛이 터지며 따뜻한 기운이 성벽을 스치고 지나갔다. 전투사제단의 대규모 축복이 그들 몸에 내려앉았다.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잠시나마 훈훈한 기운이 맴돌고 몸속에서 용기와 활력이 피어올랐다. 피곤하던 병사들의 눈빛이 힘을 되찾고 날카롭게 변했다.
어느새 아이반의 주변에 사람들이 모였다. 발크룬을 죽이기 위해 준비된 강자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일단 대기해주시오. 병사들이 놈으로 가는 길을 열면, 당신들이 녀석을 처리하면 되오.”
지휘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으나 몇몇은 몸이 근질거리는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들썩거렸다.
“우라아아아!”
녀석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러자 놈들의 무리가 갈라지고 남들보다 덩치가 큰 오크전사 하나가 선두에 나타났다.
“저 녀석이 발크룬이오?”
“그렇소. 아주 포악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지.”
지휘관이 잔뜩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저 녀석에게 당한 것들이 꽤나 많았으리라.
“우라아아아!”
오크들이 다시 그런 소리를 지르자 발크룬이 창을 하나 받아들고 자세를 잡았다. 마치 이곳을 노리고 있는 듯한 모습.
“설마 저기서 던진다고? 거리가 얼마인데, 거기다가 비도 이렇게 오고. 그럴 리가 없 .”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녀석이 정말로 투창을 쏘아 보냈기 때문이다.
피슈우우욱! 쾅! 녀석이 던진 창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굉음과 함께 성벽 한가운데 꽂혔다. 충격파에 빗물이 밀려나가는 모습이 충격적이라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퍼포먼스치고는 무척이나 화려했다.
“젠장,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군.”
발크룬의 투창을 전투선언으로 삼아 녀석들이 달려들었다. 장궁수들의 화살과 마법사의 마법이 놈들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지만 녀석들은 그게 두렵지도 않은지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피우웅! 피우우웅! 아이반 역시 메고 있던 활을 꺼내들고 화살을 쏘아 보냈다. 대부분 명중하였고, 몇 발은 적들의 방패에 막혔으며, 몇 발은 그것조차 꿰뚫고 들어가 녀석의 몸을 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