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10
두두두-
어른 몸통보다 커다란 얼음덩이가 쏟아졌다. 우박이라기에는 너무나 크고 파괴적이었다.
화아아-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에게 닿기도 전에 얼음덩이가 증발했다. 뱀신 모르나는 커다란 뱀을 발판 삼아서 악신 헤르샤스에게 달려들었다. 세계수의 잎이 흔들리며 요동치는 세상을 붙잡았다.
쩌저적!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진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이 되었다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차가운 겨울이 되었다. 매초 오르내리는 기온에 눈을 뜰 수조차 없는 폭풍이 몰아쳤다.
초월자 셋과 하나가 붙었는데 결과를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치열했다. 끓어오르는 연기 같은 악신 헤르샤스의 몸이 몇 번이나 무너지고 터져 나갔지만, 그때마다 멀쩡한 듯 부활하니 몰아치는 셋이 오히려 지쳐가는 것 같았다.
쾅!
땅이 내려앉을 만큼 강한 충격파가 퍼졌다. 아이반은 그 충격을 뒤로하고 창을 내밀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핵의 위치를 발견한 것이다.
슈우욱-
어두운 용의 발톱이 찢고 지나가자 타락한 정령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게 몸을 숨기고 있던 다른 녀석들도 화들짝 놀라서 자리를 피했다.
우웅-
영역 가장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핵을 조정하고 있던 마녀들이 마력을 내뿜어 결계를 만들었다. 동시에 수많은 사역마가 나타나 아이반을 공격했다.
휘이잉-
칼날 같은 바람을 휘감고 창을 휘두르니 사역마들의 몸이 몇 조각으로 갈라졌다. 온갖 생물을 온갖 방법으로 뒤섞은 것 같은 사역마가 고깃덩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짧은 사이. 이미 핵은 움직이고 수많은 키메라 리자드맨이 멍청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다 담지 못할 만큼 거대한 술식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구속구가 되어 사브리나, 세계수, 뱀신 모르나를 붙잡았다.
휘리릭!
악신 헤르샤스를 공격하던 셋은 자신을 붙잡은 술식을 떨쳐 내려 힘을 뿌렸으나 오히려 술식이 그 힘을 흡수해 더욱 단단한 사슬이 되었다.
아무리 마녀와 악신이 준비를 잘했다고는 해도 초월자 셋을 동시에 봉인할 수는 없겠지만 술식이 빨아들이는 힘이 심상치 않았다.
세 초월자의 기운이 깎여 나가자 한동안 방어만 하고 있던 악신 헤르샤스가 혹한의 냉기를 휘두르며 공격을 시작했다. 아주 약간의 차이로 악신 헤르샤스가 세 초월자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 너희의 신성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새로운 세상의 토양으로 삼아 주마.
거대한 술식이 움직이며 본격적으로 신격을 봉인하려 했다. 사브리나와 세계수는 자유를 되찾았으나, 뱀신 모르나의 움직임이 극도로 둔해졌다.
악신 헤르샤스는 불완전한 사브리나나 완전히 강림하지 않은 세계수 대신 뱀신 모르나를 봉인하기로 한 모양이다. 예상한 바였다.
수많은 사슬이 뱀신 모르나를 붙잡고 신성을 억눌렀다. 이대로 십만 키메라 리자드맨의 정신에 스며들 것 같았다.
그때 뱀신 모르나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계획대로 되었구나. 어디 한번 결과를 보자꾸나.”
사슬에 묶여 있던 뱀신 모르나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를 벗어났다. 온몸을 감싸던 술식의 봉인을 무시하고 똑바로 섰다.
대신 술식의 봉인에 끌려간 것은 뱀신 모르나의 몸에 스며들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달의 여신 셀룬이었다.
– 어둠을 멸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어둠으로 걸어가겠노라.
악신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했다. 아주 작은 신성의 파편이었다. 그렇기에 달의 여신 셀룬은 순식간에 봉인되었다.
계획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셀룬의 신성이 뿌리내렸으니 신성을 빨아들이는 봉인의 힘을 이용해 천상에 있는 달의 여신을 그대로 지상으로 소환한다.
“테잔!”
아이반이 소리치자 자연의 구도자 테잔이 지팡이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바닥에서 무수히 많은 분신이 나타나 주문을 읊었다.
악신과 마녀가 고안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술식을 순식간에 고쳐 셀룬을 데려와야만 했다. 술식의 주도권을 뺏어 봉인을 풀어야만 했다.
“아무도 못 지나간다!”
사나운 이빨이 크게 소리치며 당당히 적을 가로막았다. 아이반과 테잔이 술식을 해석하고 조정하는 순간,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게 하기 위해 그가 나섰다.
화르륵!
그의 몸에서 용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화염 드래곤의 심장이 토해 내는 뜨거운 용의 힘이 전신에 가득했다. 그러다 마침내 알을 깨고 나가듯 사나운 이빨의 등으로 뿜어졌다. 불길이 마치 날개 같았다.
펄럭!
불꽃으로 만들어진 날개를 활짝 펼치고 사나운 이빨이 무기를 휘둘렀다. 수많은 적이 그대로 불타올랐다.
그것을 바라보던 아이반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외부의 일을 온전히 맡기고 집중하여 주문을 읊었다.
파드 갈드(Faðr galdr), 뜻은 마법노래의 아버지.
곤들리르(Gǫndlir), 뜻은 마법 지팡이를 든 자.
푤니르(Fjǫlnir), 뜻은 현명한 자.
쿵!
격렬한 저항이 느껴졌다. 마녀의 반항과 악신의 분노였다.
내상을 입어 핏물이 올라왔다. 금방이라도 머리를 으깨 버릴 것 같은 힘이 아이반을 스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동료들을 믿고 계속해서 주문을 읊었다. 주변의 일은 모두 잊었다.
골룽그(Gǫllungr), 뜻은 부르짖는 자.
하프트소니르(Haptsǫnir), 뜻은 족쇄를 푸는 자.
흐니쿠드(Hnikuðr), 뜻은 뒤집어엎는 자.
옛 노르드어로 된 주문이 마치 노래처럼 흘러나오고 세상이 요동치며 움직였다. 아스가르드의 가장 높은 곳,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에 앉은 지혜와 마법의 신이 아이반의 주문에 힘을 더했다.
화아아-
마침내 주문에 응답하여 하늘이 열렸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에 달이 떠올라 밤을 훤히 밝혔다. 세상 그 무엇보다 찬란한 달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달의 여신 셀룬, 이전 시대의 용사.
그녀가 검을 들었다. 서늘한 달빛을 닮은 검으로 악신 헤르샤스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 밤하늘에 달이 있는 한, 나는 어둠 앞에 물러서지 않으리.
222화 혹한의 마신
아주 먼 옛날, 아직 인간이 대륙의 중심 종족으로 우뚝 서기 전.
신들이 지상을 거닐고 초월자가 당연한 듯 포효하던 신화시대 이후 이 땅은 필멸자의 것이 되었으나, 여전히 신화시대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위대한 자가 이 땅을 떠나 각자의 세계로 가 버렸지만, 신화시대의 물과 공기를 마시고 살던 괴물들은 남아 있었다.
한 수에 땅을 뒤집고 한마디 말로 법칙을 뒤흔들던 초월자에게는 비천한 짐승에 불과했으나, 한낱 필멸자에게는 너무나 위험한 재앙이었다.
신화시대를 끝낸 대전쟁 이후 차원 장벽이 만들어졌으나, 완벽하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이계의 존재가 침범하고 봉인된 초월자가 몸을 뒤틀었다.
필멸자들의 시대가 되었으나, 정작 필멸자가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시대였다. 한 모금 숨결을 내뱉고 들이마시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하고,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음을 기적으로 생각했다.
그때 용사가 나타났다. 혼란스러운 세상에 빛을 가져오고, 모든 필멸자의 검이자 방패가 되기 위해 누군가 분연히 일어났다.
처음에는 마을을 습격하는 핏빛 짐승이었고, 그다음은 세계 너머에서 흘러들어 온 이계의 마물이었다. 옛 시대의 유물로 음모를 꾸미던 세력과도 싸웠고, 악신의 파편과 이름조차 잃어버린 광기 어린 옛 신격과 맞서기도 했다.
작게는 본인을 지키기 위해, 크게는 모든 필멸자를 위해서.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그보다 훨씬 많은 전장을 넘어서 세상을 구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덤덤히 적을 베어 넘겼다.
마침내 신성을 잃어버리고 미쳐 버린 옛 신격을 쓰러뜨렸을 때, 그리하여 세계의 기록에 남을 위대한 업적을 세우고 자신만의 신성을 얻었을 때.
용사 셀룬은 필멸자를 벗어나 초월자가 되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자청하는 달의 여신이 되었다.
천상과 지상이 나뉘지 않은 신화시대에도 필멸자가 초월자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신화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두꺼운 차원 장벽이 생기고 승천의 기회가 줄어든 이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타고나기를 초월자의 핏줄로 나지 않은 자가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신성을 쟁취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차원 장벽으로 승천이 가로막힌 시대에 닫힌 세계를 벗어나 신격이 된 것은 그녀가 유일하다고 해도 좋았다.
용사 셀룬, 달의 여신.
옛 시대의 영웅이 어둠을 막기 위해 기꺼이 지상에 발을 디뎠다.
스걱!
악신 헤르샤스의 몸이 길게 찢어졌다. 부글거리는 연기가 쩍 갈라지고 그 뒤로 달빛이 보였다.
– 술식을 이용해 신을 소환하다니,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잘려나간 헤르샤스의 육신이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달라붙었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냉기가 달빛마저 얼려 버릴 듯 뿜어졌다.
챙!
얼어붙은 사슬이 셀룬의 몸을 붙잡았다. 여신의 힘을 봉인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억눌렀다.
신을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술식이었다. 비록 아이반과 테잔, 뱀신 모르나와 달의 여신 셀룬이 힘을 합쳐 핵을 장악하고 술식을 비틀었다고는 해도 단번에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악신 헤르샤스가 바라보자 술식이 본래의 목적대로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달의 여신 셀룬을 봉인하고 악신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달의 여신 셀룬은 자신의 신성을 붙잡는 얼어붙은 사슬을 무시하며 검을 휘둘렀다. 달빛을 불러와 어둠을 밀어냈다.
– 이깟 것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법 싶으냐? 나의 의지를 꺾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필멸자의 용사이던 시절부터 그녀를 붙잡고 억누르기 위한 수작은 많았으나 그 모든 것을 뚫고서 승리를 쟁취한 것이 셀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