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15
달의 여신이 가진 권능이라는 뜻이다. 상대의 공격은 무시하고 자신의 공격은 적중하는 불합리한 힘. 하여간 초월자의 권능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쉬이익-
인벤토리에서 빠져나온 창 수십 개가 동시에 회전하며 셀룬을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도 무시하면 어쩌나 생각했더니 칼을 휘둘러 튕겨 냈다. 아마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쉽게 남발할 수 있었다면 악신 헤르샤스와 싸울 때 이미 썼겠지.
쾅!
아이반이 쏘아 보낸 창이 한 번에 폭발했다.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쩍 갈라졌다. 달의 여신 셀룬은 여전히 상처 하나 없었다.
쉬이익!
아이반은 예상했다는 듯 창을 찔러 넣었다. 공간을 찢고 법칙을 뒤흔드는 힘이 미약하게 창끝에 담겨 있었다. 아이반의 힘이 필멸자를 넘어 초월자를 넘보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그러나 창이 미처 셀룬에게 닿기도 전에 아이반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또 한 방을 못 맞혔군.”
달빛이 칼날이 되어 아이반의 전신을 노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칼을 들이미는 듯 조금만 움직여도 베일 것 같았다.
정신세계이며 가상 공간이었다. 이곳의 모든 것은 실제가 아니었으나, 생각하는 그대로 이루어지기에 현실보다 더욱 선명했다.
스윽-
아이반이 창을 거두자 셀룬도 검을 거뒀다. 그제야 사방에서 압박하던 날카로운 기운이 사라졌다.
패배. 아이반이 모든 것을 꺼낸 것은 아니었으나, 닫힌 세계를 찢고 스스로 신성을 쟁취한 옛 용사에겐 닿을 수가 없었다.
무표정하게 검을 회수한 셀룬이 아이반에게 말했다.
“아마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결과는 다를 것이다. 내가 반드시 이긴다고 확신할 수는 없겠지. 그러나 그것은 그대의 힘이 아니라 그대의 뒤에 있는 아스가르드의 힘 때문이다.”
필멸자와 초월자의 차이는 터무니없이 커다란 것이었으나, 아이반은 그를 상쇄할 만큼의 지원이 있었다. 한때 세상을 만들고 지배했던 위대한 자들이 그를 돕고 있으니 신격이 상대라고 해도 쉽게 밀릴 리가 없었다.
“그대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길을 정한다면 초월자가 될 수 있을 것인데…….”
초월자가 되려면 하나의 영역이라도 세계의 법칙을 넘어서야만 했다. 자신의 영역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스페셜리스트란 뜻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골고루 잘하는 다재다능한 자는 초월자가 되기 어려웠다. 하나의 것만 갈고닦기도 버거운데 어찌 많은 것을 익힌단 말인가.
“그대의 재능이라면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초월을 이룰 것이다. 이쯤에서 선택하는 것이 어떠한가?”
그 말에 아이반은 피식 웃어 버렸다.
재능? 어떤 재능이란 말인가?
아이반은 재능이 넘쳐서 다재다능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재능이 없기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익혀야만 했다. 그가 경지에 오른 것은 순전히 가능성을 개화하는 시스템의 위대한 힘 덕분이고, 아스가르드 신들의 관심과 축복 때문이었다.
“나는 그대의 생각만큼 그리 재능이 넘치지 않소.”
“그렇다면 더더욱 하나의 길을 택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건 불가능하오. 원하지는 않았으나 나의 길은 이미 옛날 옛적에 정해진 상태이니.”
아이반은 흐릿하게 사라지는 가상 세계를 바라보다 툭 내뱉었다.
“내가 왜 아스가르드의 화신이라 불리겠소?”
오딘의 화신, 토르의 화신, 로키나 헤임달, 프레이의 화신이 아니라 아스가르드의 화신인 이유.
“아스가르드 신들을 소환하면 될 것을 굳이 당신을 이 땅에 불러온 이유가 무엇이겠소?”
싸움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망치를 들어 뚝배기를 후려칠 토르가 아니라 달의 여신을, 옛 용사를 불러온 이유.
“내가 바로 아스가르드요. 오딘이 이 땅에 새롭게 심은 세계수 위그드라실이며, 불타서 사라져 버린 아홉 세계의 씨앗이지. 세계의 그릇이 어찌 하나의 길을 선택하겠소?”
226화 육지와 바다의 싸움
바다는 고요했다. 그러나 평온하진 않았다. 언제나 모든 것을 내주던 평화로운 바다가 아니라, 언제든 이빨을 들이밀고 씹어 삼킬 괴물의 바다였다.
거대한 해일이 해안을 쓸고 지나간 이후 한참이나 침묵하고 있었으나, 수많은 생명을 삼키고도 허기를 달래지 못했는지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비바람이었다. 시기상 아직 그리 비가 많을 때가 아님에도 며칠째 비가 그치지 않았다. 육지는 그저 맑기만 하건만, 바다는 굵은 빗줄기가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툭, 투둑.
쏴아아-
멀리 있던 비구름이 조금씩 밀려들며 해안가를 적셨다. 폐허가 되어 버린 도시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빗속에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무너진 해안 도시에 비를 피할 곳은 많지 않았다. 짬 좀 있고 능력 좋은 병사는 어디선가 기름 먹인 외투를 둘렀으나, 대부분 비옷은 꿈도 못 꾸고 그저 축축하게 젖었다.
빗물이 흐르는 소리, 질척한 바닥을 밟고 움직이는 소리, 바람에 밀려온 파도의 소리.
기름 먹인 외투마저 비가 새어 들고, 가죽 신발에 찰방찰방 물이 차올라 발이 쭈글쭈글해졌을 때, 무언가 꾸물거리며 바다에서 기어 나왔다. 축축한 바다를 지나 축축한 육지로 넘어왔다.
때로는 갑각류와 닮은 피부를, 때로는 두족류와 닮은 얼굴을, 때로는 생선의 비린내와 상어의 이빨을.
바다 생물과 인간을 제멋대로 섞어 놓은 것 같은 괴물들이 천천히 걸어왔다. 누가 보더라도 사악한 바다의 신이 보낸 놈들이었다. 어설프게 인간을 닮은 모습과 꿈틀거리는 촉수가 무척이나 역겨웠다.
땡땡땡땡!
“비상! 비상!”
병사들은 종을 울리고 소리를 질렀다.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창칼을 들고 싸움을 준비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온몸이 떨리는 건 빗물에 젖어 몸이 차가워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망할 놈들, 바다에서 기어 나온 걸 후회할 거다!”
“맛있게 생겼는데! 오늘 술안주는 넘쳐나겠어!”
누군가는 분노를 터트리며 두려움을 몰아냈고, 누군가는 짐짓 호탕한 웃음과 농담으로 공포를 떨쳐 냈다.
병사들은 열심히 싸웠다. 오래 버티진 못했다.
* * *
일행이 소식을 들은 것은 한밤중이었다. 늦은 시간에 갑자기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물으니 몇몇 해안이 깊은 바다의 폭군이 보낸 괴물들에게 점령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빠르게 해안을 점령한 후 진격을 멈췄습니다. 무슨 이유로 멈춘 것인지는 현재 분석 중입니다.”
서부 연합 왕국의 기사 하나가 보고했다. 무언가를 확신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이제 습격이 일어난 지 겨우 몇 시간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비가 내리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바다에서 온 놈들이라 피부가 마르면 안 된다거나.”
아이반이 그리 중얼거리자 테잔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네. 저 비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니까.”
“그러면 일단 비를 밀어내야겠군. 가능하겠소?”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전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 해 봐야지.”
광범위한 영역의 날씨를 조정하는 것은 고위 술사가 몇이나 붙어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신격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비를 몰아낸다니, 보통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테잔은 대주술사였다. 모든 대주술사는 자연의 화신이니, 조건만 갖춰진다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순도 높은 마력석, 정령 가루, 신목의 가지, 경계의 쐐기돌이 필요해. 다른 것도 있으면 좋고. 최대한 빨리 그것들을 가져오게.”
테잔은 펜을 꺼내 즉석에서 필요한 재료를 적어 나갔다. 몇몇은 흔한 것이었으나, 몇몇은 이름조차 생소했다. 틀림없이 귀중한 것들이겠지만, 그래도 나라에서 구하고자 하면 어렵지는 않으리라.
날씨를 조정하기 위해 테잔이 영맥으로 떠날 때, 다른 일행들은 해안으로 향했다. 바다 괴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처리할 생각이었다.
예전에 이미 깊은 바다의 폭군이 저주한 자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설명을 들으면 그때 그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싸울 준비를 마치고 막 떠나려는데, 누군가 바쁘게 달려와 그들을 붙잡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쿤다라 교단의 서부 연합 왕국 지역 대교구 대주교, 로메른 추기경이었다.
“지금 바로 떠나시렵니까?”
신분이 달라진 만큼 로메른 대주교의 말투도 공손하게 바뀌었다. 추기경은 격으로 따지면 웬만한 나라의 공작과 비슷했으나, 델피노는 성자였고 아이반은 왕이었다. 그는 셀룬과 사브리나의 정체도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었으니 스스로 낮추는 것이 당연했다.
“성황청의 병력이 가까이 왔다고 합니다. 조금 기다렸다가 움직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델피노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체할 수 없습니다.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 그리로 오라 하십시오.”
“그러면 이곳에 모인 자들만이라도 함께하시지요.”
소식이 들어오는 순간 성기사와 사제를 소집했는지 밖에 이미 성기사단과 전투 사제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쿤다라 교단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는 아홉 교단의 모든 전력을 긁어모은 모양이다.
그들의 표정은 단단했다. 언제든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의 얼굴이었다. 그들의 신앙만큼이나 깊은 신성력이 청명하게 흘러나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할 테니 따라오십시오.”
일행이 일제히 말을 타고 달렸다. 맑고 상쾌하던 공기가 점점 축축해지고, 마른 땅을 달리다가 어느새 질척거리는 진창을 지나갔다.
이쯤이면 해가 떠서 밝아져야만 했으나,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두꺼운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계속해서 비를 뿌렸기 때문이다.
서부 연합 왕국의 병사들은 경계에 서서 안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괴물을 몰아내는 것보다 방어선을 만들고 버티기를 선택한 모양이다.
하긴, 어차피 폐허가 된 곳이라 지금 당장은 병력을 더 투입해 확보할 이유가 없었다. 성황청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상황은 어떻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