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16
“얼마 전부터 비구름이 더 가까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놈들이 활동 영역을 넓힐지도 모르니 일단 뒤로 물러나 대기하라는 명을 들었습니다.”
기사는 그렇게 보고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해안선에서 경비를 맡던 자들이 희생하며 번 시간으로 병력을 정비하고 뒤로 물러날 시간은 벌었으나, 그게 너무나 치욕적인 모양이다.
거대한 해일로 해안선이 파괴되고, 바다 괴물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너무 무력하게 당하기만 했다. 자괴감과 분노가 뒤섞여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이제 뒤를 따라 진입하면 되겠습니까?”
기사가 그렇게 물었지만, 아이반은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서부 연합 왕국의 병사를 지휘할 권한은 없었다.
“괜찮소. 그냥 대기하고 계시오. 비는 맞지 말고.”
아이반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있는 것은 평범한 비구름이었으나, 저 멀리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병사를 뒤로 물린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소.”
그렇게 말을 정리한 아이반은 그대로 창을 꺼내 집어 던졌다. 마력을 듬뿍 머금은 창이 순식간에 비를 가르고 저 멀리 날아가 박혔다.
쾅!
공간을 내리누르는 폭발음이 들렸다. 인간과는 다른 체액과 살점이 흩어졌다. 평범하게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였으나, 아이반은 후긴과 무닌을 날려 보내 선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었다.
“강하지는 않아. 하지만 까다롭겠어.”
몸이 터져 나가 흩어진 살점이 꿈틀거렸다. 움찔움찔 몸을 떨고 이리저리 기어가다 힘을 잃었다. 몸이 박살이 나고도 반응할 정도로 생명력이 질기단 뜻이다.
불길한 구름과 괴물의 질긴 생명력. 일행은 머릿속에 그걸 새기고 왕국의 방어선을 넘어 안쪽으로 향했다.
한번 해일이 휩쓸고 간 뒤로 제대로 복구하지 못했기에 해안 도시는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들로 엉망이었다. 제대로 된 길은 사라졌다고 해도 좋으니 말을 타고 싸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말에서 내린 그들은 조심스럽게 폐허가 된 도시로 들어갔다. 굵은 빗줄기와 거친 바람, 때때로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들로 그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피우웅-
이레인이 화살을 쏘아 날렸다. 건물 잔해 사이로 파고들어 그곳에 숨어 있던 괴물을 꿰뚫었다.
쉬이익!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빨판이 달린 촉수가 뻗어 나왔다. 빨판 사이에 날카로운 이빨 같은 것이 달려있어서 더욱 위험하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오던 촉수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레인이 화살에 담은 정령의 힘이 녀석을 동상으로 만들었다.
캉!
성기사가 철퇴를 휘둘러 후려치니 얼어붙은 촉수가 잘게 부서졌다. 그 파편들이 작게 꿈틀거리다가 신성력을 얻어맞고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치이익-
비를 뚫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아이반은 그게 저주의 흔적임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
“구름이 저주를 흡수했습니다. 이게 비구름을 키우는 힘인 모양이군요.”
델피노가 불편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길한 구름이 영 껄끄러웠다. 이대로 저주를 흡수한 구름이 빗물에 사악한 힘을 담아 뿌릴 것만 같았다.
“저건 테잔에게 맡기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지. 무엇 때문에 바다에 있을 놈들이 여기까지 기어 나왔는지 알아봐야 하니까 말이오.”
첨벙첨벙.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고인 웅덩이를 지나가던 아이반이 힐끔 눈을 돌려 창을 내리찍었다. 땅을 파고 숨어 있던 녀석의 머리가 꿰뚫리고 초록색 핏물이 올라왔다.
폐허가 된 도시는 숨을 곳이 너무나 많아서 모두가 함정이나 다름없었다. 감각으로 그 모든 것을 걸러 낼 수 있는 일행은 상관없었지만, 뒤따르고 있는 사제와 성기사들은 스트레스가 장난 아닐 터였다.
“한번 정리하고 지나가야겠는데.”
아이반이 힐끔 사브리나와 셀룬을 보았으나 참았다. 그들은 지금 악신과 깊은 바다의 폭군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힘을 억누르고 있었다. 귀찮은 놈들을 치우기 위해 힘을 써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곤들리르(Gǫndlir: 마법 지팡이를 든 자).”
아이반이 낮게 읊조리자 그를 중심으로 마력이 요동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세계를 비틀어 기적을 불러왔다.
팟!
바닥이 요동치고 흙으로 빚은 창이 솟구쳤다. 어두운 틈새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괴물들의 육신을 꿰뚫었다.
사방에서 비릿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여기저기서 고통에 울부짖고 날뛰는 소리가 가득했다.
더는 숨지 못하고 놈들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몇몇은 일행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기도 했다.
아홉 교단의 성기사단이 일제히 무기를 들고 나섰다. 방패로 괴물을 밀어내고 검과 철퇴, 도끼와 창으로 찢어 놓았다.
우웅-
아홉 신격의 신성력이 흘러나와 괴물들을 휩쓸었다. 녀석들의 몸이 녹아내리고 하늘로 올라가던 저주의 기운마저 깨끗이 정화되었다.
귀찮고 까다로운 녀석들이었으나, 위험하지는 않았다. 사실 일행의 전력을 생각하면 초월자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위험할 일이 없긴 했다.
앞을 막아서는 괴물들이 점차 많아졌지만, 그들을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그들을 굳이 빙빙 돌아가지 않고 가장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온갖 바다 생물을 닮은 괴물들이 해안에 가득했다. 그 중심에 산호로 된 왕관을 쓴 자들이 있었다. 주변의 다른 괴물과 비슷했으나, 조금 더 인간에 가까운 외형이었다. 그렇기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깊은 바다의 폭군을 섬기는 사교도로군요. 한 번 죽은 자들을 다시 볼 줄은 몰랐습니다.”
예전 칼리 호킨스의 보물섬에서 목숨을 잃었던 자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델피노가 씁쓸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깊은 바다의 폭군이 저주를 내려 영원히 바다를 떠돌던 유령 해적들도 있었지. 저들도 그와 비슷한 상태요. 자신들은 축복이라 부르겠지만, 정말이지 끔찍하군.”
힘은 무척이나 강해졌으나, 영혼이 썩어 가는 냄새가 났다. 끝없는 고통과 채울 수 없는 갈망으로 이미 미쳐 버렸으리라.
자신의 신도를 저리 만들다니, 깊은 바다의 폭군이 악신과 손을 잡은 것도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면 여기 있는 놈들부터 정리하…….”
말을 하던 아이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느껴졌다. 수평선 너머에서 그들이 오고 있었다.
쾅!
폭약이 터지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바다 위로 몸을 내밀고 배를 으스러뜨리려던 크라켄이 휘청 뒤로 물러났다. 커다란 촉수가 가닥가닥 끊어져 바다로 가라앉았다.
쾅!
대포가 쉴 새 없이 불을 뿜었다. 포탄이 날아와 해안에 가득한 괴물들을 쓸어버렸다. 그대로 해안가로 배를 밀고 들어와 놈들을 짓눌러 버렸다.
배에서 뛰어내린 전사들이 무기를 휘둘렀다. 날카로운 바람이 괴물의 몸을 찢고 번개가 불태웠다.
“발할라! 우리가 왔노라!”
227화 모순된 영광
노르드 전사들이 커다란 배를 이끌고 나타났다. 서른 척이 훌쩍 넘는 선단이 바다에 빼곡한 괴물들을 청소했다.
키에에엑!
바다 괴물로 부활한 사교도들이 인간의 귀로는 구별할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힘을 토해 냈다. 주변에 있던 괴물들이 한층 빨라지고 강해졌다.
그러나 아이반이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재빨리 창을 던져 녀석을 꿰뚫고 번개를 불러와 땅을 두드렸다.
치지직!
쾅!
그걸 신호로 사제와 성기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이 신성력을 뿌릴 때마다 바다 괴물이 녹아내렸다.
바다에서 노르드 전사가 밀어붙이고, 땅에서 성황청 사제들이 날뛰었다. 바다 괴물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러나 놈들은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안을 따라 넘쳐났고, 폐허가 된 도시 곳곳에 숨어 있었다.
모두가 숙련된 전사들이라 수월하게 베어 넘겼지만,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쓸어버리는 만큼 새로운 놈들이 어디선가 기어 왔다.
저주를 머금은 구름이 악의 가득한 비를 뿌리고, 어딘가에서 또 새로운 괴물을 토해 냈다. 해일에 휩쓸려 죽은 자의 육신이 변이되어 바다 괴물로 다시 태어났다. 흙더미에 깔려 미처 수습하지 못한 그들이 땅을 파고 올라왔다.
도시 하나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광범위한 영역, 비가 내리는 모든 바닷가의 일이었다.
그때 달의 여신 셀룬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빠르게 검을 휘둘러 무언가를 베어 버렸다.
인간의 핏물이 아닌 푸른 진액을 뿌리고, 꿈틀거리는 촉수와 네 개나 달린 팔이 역겨운 외형이었으나, 품고 있는 기운은 익숙한 것이었다.
“마녀의 분신이다. 옛 해신의 권속을 분신으로 쓰는 걸 보면 악신과 해신의 사이가 생각보다 더 긴밀한 모양이로다.”
만물을 꿰뚫어 보는 용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사브리나가 낮게 말했다.
“단순한 분신이 아니구나. 술식의 축이야. 저런 것이 곳곳에 있으려면 제법 준비가 필요하다.”
그 말에 델피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요. 외면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셀룬이 마녀의 분신을 하나 더 쓰러뜨렸다. 그러자 두꺼운 비구름이 흔들렸다. 축이 무너지자 술식이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크기로 보면 숨어 있는 마녀의 분신이 적지 않은 모양인데, 다 찾아서 처리해야 할까?”
피우웅-
멀리 화살을 날려 바다 괴물을 터트리던 이레인이 물었지만 아이반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거요. 테잔이 슬슬 힘을 발휘하는 모양이니.”
휘이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