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2
아마 레벨로만 따지면 서로 비슷하겠지.
한쪽으로만 우직하게 성장한 발크룬과 이런저런 스킬트리를 동시에 올리고 있는 아이반의 차이였다. 그렇다면 아이반의 장점, 외력을 빌린다.
“토르!”
아이반이 크게 소리치자 몸속 깊은 곳에서 찌릿찌릿 힘이 솟아올랐다. 모처럼 볼만한 전사들의 싸움에 흥이 난 것인지 아이반의 몸에 내려앉은 그의 힘이 꽤나 강렬했다.
치이익! 아이반의 창이 녀석의 몸을 스친다. 단단해진 가죽을 뚫고 피를 보았지만 이내 연기와 함께 상처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광폭화 시간동안은 계속해서 상처가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병신, 조루 소리를 듣던 광전사가 현실이 되니 실로 무시무시했다.
“더! 더! 더! 그거로는 부족하다!”
광폭화라는 말 그대로 이성을 잃어가는 것인지 녀석의 움직임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녀석의 공격이 더욱 거세게 변해서 쉽게 파고들 수가 없었다.
“너의 목을 타르칸께 바치겠다!”
파바바박! 오크투신 타르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휘두르는 도끼에서 붉은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주변을 쓸어버리듯 훑고 지나가는 녀석의 공격에 병사들이 피해를 입고 쓰러졌다.
이제 더 이상 외부의 개입을 막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토르, 천둥이 치는 날에도 이렇게 비실비실하오?’ 정말로 오크투신 타르칸의 이름으로 투잡이라도 뛰는 건가.
그래서 지금 내가 밀리고 있는 건가.
아이반이 속으로 그렇게 놀리듯 말하자 하늘에서 커다란 번개가 내리꽂혔다. 마치 헛소리 하지 말라고 화를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번쩍! 우르르, 쾅! 번개가 발크룬의 몸을 내리쳤다.
과연 그것은 버틸 수가 없는지 녀석의 몸이 비틀거렸다. 푸슉! 그 틈을 노리고 아이반이 한방 제대로 먹였다. 창이 녀석의 아랫배를 꿰뚫고 그대로 박혀 들어갔다.
치지직! 하얀 번개가 아이반의 창을 타고 녀석의 내장을 지져버렸다.
아무리 저항력이 높아져도 내장에 직접 때려 박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
“으으윽!”
내장이 엉망으로 변하는 그 지독한 고통을 씹어 삼킨 발크룬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위대한 오크로드, 카르타크의 아들! 발크룬이다!”
배를 꿰뚫은 창을 한손으로 쥐고 도끼를 내려찍었다. 미처 창을 회수하지 못한 아이반의 머리를 쪼개버릴 듯 떨어져 내렸다. 그때 허공이 쩍 갈라지며 무언가 아이반의 손에 나타났다.
전투용 마법 스크롤. 청색 마탑에서 눈물을 머금고 구입했던, 더럽게 비싼 그것.
아이반은 단숨에 스크롤을 두 개나 찢었다. 그러자 그 안에 담겨진 마법이 즉시 발동되었다. 화아악! 은은한 빛이 보호막이 되어 아이반의 몸을 감싸 안았다. 비록 그것은 발크룬의 도끼질에 단숨에 박살이 났으나, 잠깐이나마 틈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아이반이 뒤로 몸을 빼기는 충분했다.
그리고 두 번째 마법.
근거리에서 터져나가는 화염구, 강력한 충격파. 화르륵!쾅! 발크룬의 몸이 단숨에 불타오른다. 내리던 비가 뜨거운 열기에 증발되었다 식기를 반복해 시야를 가렸다.
마력을 매개로 타오르는 불꽃은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스윽! 아이반이 손을 뻗자 공간을 뛰어넘어 창이 다시 손에 잡혔다. 그 짧은 시간 달아오른 창대가 꽤나 뜨거웠다.
치이익! 달아오른 장대를 붙잡고 아이반이 자세를 잡았다. 목표는 발크룬의 심장.
단숨에 녀석의 목숨을 가져갈 바로 그곳.
[천둥걸음!] [관천(貫天)!] 슈우욱! 푸슉! 창이 쏘아지고 불타고 있는 녀석의 가슴을 꿰뚫었다.심장을 찌르는 감각이 손끝에 분명히 느껴진다.
주르륵 창날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생명이 쏟아지고 죽음이 흘러들어갔다.
녀석의 몸이 비명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토르, 돼지 한 마리 올려 보냈소. 마음껏 뜯어 드시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니 나름의 별미겠지.
아이반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튀어 올랐다.띠링! [퀘스트: 우두머리 사냥(완료)] [보상: 대량의 경험치, 천둥신의 만족감, 13골드 83실버]
“만족했다니 다행이군.”
솔직히 무척이나 피곤했다.
금방이라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아이반은 창을 지팡이 삼아 버티고 섰다.
그렇게 가만히 서있음에도 적들은 아무도 덤비지 못했다. 그만큼 아이반의 기세가 거칠었기 때문이다.
푹! 휙! 까맣게 불타서 쓰러진 발크룬의 시체를 창을 찔러 놈들에게 보내주자 녀석들은 공포와 분노로 눈을 붉게 물들이면서도 덤벼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짧게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더니 발크룬의 시체를 둘러매고 사라졌다.
뿌우! 뿌우우우! 이내 뿔피리 소리가 들리고 오크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적들의 군세는 강력했으나 가장 강력한 전사이자 오크로드 카르타크의 아들의 목숨이 사라졌으니 순순히 물러가기로 한 모양이다.
“그, 저놈의 시체는 왜 돌려주었습니까?”
분노와 복수심으로 눈이 불타오르는 병사 하나가 그리 물었다. 그는 발크룬을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한 병사였고, 동시에 적들의 지원을 막아서기 위한 병사였다. 저 녀석 하나 때문에 수많은 동료를 잃었으니 분이 풀리지 않았겠지.
“저 새끼의 사지를 찢어버리고 목을 장대에 매달아 성문에 달아놓았어야 했습니다!”
한이 서린 병사의 외침에 아이반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도 있었지.”
하지만 그랬다가는 복수심에 눈이 돌아간 오크들이 끝까지 밀고 들어왔을 거다.
그러면 더 많은 병사가 죽었겠지.
요새를 지키는 것도 힘들 테고.
차라리 시신을 수습하게해서 돌려보낸 것이 최선이었다. 적어도 아이반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오크로드가 열 받아서 밀고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씨부럴, 그건 다른 이들이 알아서 하겠지.
아이반이 맡은 임무는 발크룬을 죽이는 것이고, 그를 통해 추가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
그 뒤의 일이야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아이반은 부서진 성벽 조각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있으니 속에서 충만한 기운이 솟아나 그의 몸을 진정시켰다. 간당간당하던 경험치가 채워져 레벨이 하나 오른 것이다. 아주 약간이지만 힘이 강해지고 마력이 깊어졌다.
레벨업의 영향으로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빌리가 씨발 씨발 욕을 내뱉으며 옆에 나타났다.
“안 죽었소?”
“거의 죽을 뻔하기는 했지.”
그는 힐링포션을 마치 물처럼 들이켰다.
인상이 잔뜩 찌푸려진 것이 내상도 만만치 않게 입은 모양이었다. 빌리는 엉망으로 부러져버린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젠장, 하마터면 팔 병신이 될 뻔했어.”
“여기서 할 만한 소리는 아닌데.”
아이반이 힐끔 뒤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전투에서 팔이 잘려나간 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 뭐. 그 양반이야 돈 많은 귀족이니 알아서 할 텐데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있소? 지금쯤 사제가 옆에서 잘린 팔 갖다 붙이고 있을 텐데. 아니면 씨부럴, 기계 팔이라도 하나 달고 다니던가 하겠지.”
“다른 이들은?”
“처음에 녀석에게 걷어차인 용병은 이미 죽었고, 나머지는 어찌어찌 살아남았소. 팔 잘린 양반이야 저기 있고, 마법사는 내상이 심해서 후송되었지. 골반이 으스러진 기사가 하나 있는데, 뭐. 그거야 어쩔 수 없는 피해 아니겠소?”
“오크 새끼 하나 잡으려고 제대로 피똥 쌌군, 망할.”
발크룬은 분명히 네임드 중에서는 약한 편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 엑스트라.
그럼에도 이런 피해를 입었으니 질릴 정도였다. ‘더 강해져야해. 살아남으려면.’ 아이반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쓰러져있는 병사, 놈들의 시체.
피와 죽음.
” 갈 길이 멀군.”
전투가 끝났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발크룬이 죽고 놈들이 조용해졌다. 그 후로도 공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뭔가 힘이 빠진 듯 대충 공격하는 시늉만 하다가 돌아섰다.
덕분에 요새는 평화로웠다. 비록 그것이 영원한 평화가 아니라 곧 깨어질 살얼음 같은 것이라고 해도.
폭풍전야.
지금의 고요함에서 그런 싸늘함이 느껴졌다.
아이반은 성벽위에 서서 놈들이 숨어있는 숲 너머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다그닥다그닥 말발굽소리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2주가 지나고 중앙에서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얼핏 수를 확인해보니 지금 요새에 남은 병사들을 모두 물갈이 하고도 남을 만한 수준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병사들을 그냥 놀게 두지는 않겠지만.
“지원군이 오면 달라질 거라더니 헛소리가 아니라 꽤 수가 많군.”
옆에서 지루한 표정으로 하품을 쩍 내뱉던 빌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제야 끝이 났다는 얼굴이었다.
“흐, 이제 길드에나 돌아가 봐야겠어. 하여간 나는 현장이 체질에 안 맞아. 당신도 떠날 생각인가?”
그는 친근한 말투로 아이반에게 말을 걸었다. 지난 2주간의 의뢰, 꽤나 강렬했던 전투를 함께했다는 이유로 조금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전쟁용병도 아니고, 이런 장기의뢰는 영 내 취향에 안 맞소.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어디로 떠나려고? 별것 없으면 나와 함께 가지. 우리 쪽에는 아직 괜찮은 의뢰가 많이 있다고.”
“나를 그대의 성과로 삼으려는 것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