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20
육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싸울 힘이 남아 있다고 해도 결국 아군의 배가 모두 부서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때 델피노가 앞에 나섰다. 그는 왼손에 생명의 한 조각, 오른손에 신성의 증명을 들고 나타나 소리쳤다.
“빛이 이곳에 있으라! 천상의 의지가 이곳에 함께하니 모든 사악한 어둠을 밀어내리라!”
펄럭!
지상의 가장 신성한 깃발, 신성의 증명이 스스로 펼쳐져 흔들렸다. 성황청의 가장 비밀스러운 곳에서 옛 성자가 수백 년간 기도하여 완성한 성물이 천상의 권능을 불러왔다.
화아아-
하늘이 갈라진다. 먹구름이 사라지고 빛이 내려와 아군을 감싸 안았다. 지친 자들에게 활력이 솟고 다친 자들의 상처가 아물었다. 유령선이 그대로 빛이 되어 사라지고, 깊은 바다의 폭군이 붙잡았던 영혼들이 해방되어 날아올랐다.
천상의 문이 열리고 아홉 신격의 존재감이 사방에 들어찼다. 아홉 신격을 모시는 사제들은 밀려드는 신성력에 몸을 떨었다.
“천상의 군대가 이곳에 강림하리라! 위대한 주께서 우리를 살피리라!”
아홉 신격의 사제들이 한 마음으로 외치자 해신의 권능을 밀어내고 천상의 기운이 쏟아졌다. 아홉 신격의 신성한 힘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뚫고 천상의 군대를 내려보냈다.
신성한 기운이 하늘에 가득하고 후광이 세상을 비췄다. 천상의 위엄이 삿된 존재를 억누르고 지상에 닿았다.
아홉 신격을 가까이서 모시는 천사들이 나타났다. 신성한 힘으로 무장한 천상의 군대가 깊은 바다의 폭군, 나아가 그와 함께하고 있는 악신을 노려보았다.
– 세상의 적을 심판하라. 천상의 의지를 집행하라.
가장 환하게 빛나는 천사의 선언과 함께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닷속에 있는 괴물들을 꿰뚫고, 깊은 바다의 폭군을 공격했다.
바다에서 바다의 신이 뿌린 권능을 밀어내고 천상의 힘을 새겨 넣었다. 물의 신 뤼안의 권능을 절반이나 집어삼키고, 다시금 서쪽 바다의 지배권을 되찾은 깊은 바다의 폭군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받은 셈이었다.
우르르르-
그에 반응하듯 바다가 떨렸다. 주변 환경을 억누르고 폭풍과 파도를 진정시키던 테잔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피를 내뿜으며 물러났다.
“해신이 다가온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시게!”
요동치던 바다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여파만으로 수십 척의 해적선이 뒤집혀 침몰할 정도였다. 간신히 살아남은 해적들이 그대로 바다에 잠겼다.
아홉 신격의 천사들이 아군을 보호했으나 완전하지 못했다. 이미 심하게 부서져 있던 몇 척이 바다로 빨려 들어가고, 그중 절반의 인원만 구조할 수 있었다.
“…이제 겨우 시작이군.”
아이반이 창을 들고 앞을 노려보았다. 브리카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음에도 올려다봐야만 할 만큼 거대했다.
깊은 바다의 폭군.
지상의 그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은 바다의 신이 공격을 시작했다.
쾅!
230화 세계를 휘감는 자
깊은 바다의 폭군이 모습을 드러내자 격이 다른 존재감이 사방을 짓눌렀다. 초월적인 존재가 내뿜는 압박감에 가장 신실한 자들조차 흔들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기사들도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병사들이 부지기수였다. 기절하지 않았더라도 바다가 일어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공포감에 질려 온몸이 굳어 버렸다.
스스로 격을 쌓은 자들만이 위대한 신격 앞에서 자유로웠다. 수천이 넘는 사람 중에서 그럴 수 있는 자들은 겨우 한 줌에 불과했다.
쾅!
깊은 바다의 폭군이 움직이자 바다에서 물기둥이 솟구쳤다. 그리고 채찍처럼 휘어져 그대로 배를 후려쳤다.
아홉 신격의 천사들이 방어막을 만들어 막았으나, 그 충격에 배가 흔들리고 병사 몇이 바다로 떨어졌다.
바다로 사라진 병사들이 다시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그저 붉은 핏물만 옅게 올라올 뿐이었다.
“배를 지켜야만 하오!”
아이반이 소리치자 성황청의 사제들이 기도하며 신성력을 내뿜었다. 아홉 신격이 얽히며 성지를 선포하고 해신의 권능을 밀어냈다. 그러나 단단하지 못하고 요동치는 것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자연히 천상에서 내려온 전투 천사들이 싸우지 못하고 방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효율적이진 않았으나, 절대로 배를 잃어선 안 되는 아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깊은 바다의 폭군이 벌써 나타나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저들도 이쪽에 초월자가 몇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러니 깊은 바다의 폭군 혼자서 나서지는 않으리라 여겼는데, 혹시 바다 위라는 사실이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던 걸까?
쉬이익-
브리카를 탄 아이반은 해신을 향해 날아가며 창을 휘둘렀다. 공간을 넘은 공격이 해신의 육신을 후려쳤으나 쩍 갈라진 바닷물이 다시금 합쳐지니 상처랄 것 하나 없었다.
그야말로 칼로 물 베기였다. 아무런 이득이 없는 공격이다.
스걱!
밑에서 시작된 얇은 선이 깊은 바다의 폭군을 가로질렀다. 바닷물로 된 육신이 기우뚱 쓰러지며 폭포처럼 흘러내리다가 시간을 되감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달의 여신 셀룬이 은은하게 달빛을 머금은 검을 들고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깊은 바다의 폭군을 자세히 살피다가 말했다.
“진체가 아니다. 혹시나 했는데 이 또한 껍질에 불과하니라.”
거리는 멀었으나 그녀의 음성은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아이반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분신이라고?”
아이반이 낮게 중얼거리자 셀룬이 대답했다.
“바다의 신이니 이곳 바다 모두가 그의 영역이다. 바다를 육신으로 삼으면 그 어느 곳에라도 존재할 수 있겠지.”
“온통 신력으로 가득하거늘 저게 분신이란 말이오? 어찌 보면 헤르샤스보다 더하군.”
“뤼안의 권능을 절반이나 집어삼켰으니, 깊은 바다의 폭군은 이미 아홉 신격과 비견해도 밀리지 않을 대신격이 되었느니라. 그런 자의 영역에서 싸우니 불리함을 감수할 수밖에.”
스걱!
다시 한 번 셀룬의 검이 움직이고 해신의 분신이 쩍 갈라졌다. 그리고 폭포처럼 흘러내리다가 다시 솟구쳤다.
그때마다 바다가 흔들려서 배가 요동쳤다. 바닥을 향해 꺾였다가 하늘을 향해 떠오르길 반복했다.
이건 이미 항해술로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홉 신격의 천사들이 보호하지 않았다면 벌써 침몰해서 물고기와 눈을 맞추고 있었으리라.
날뛰는 배의 갑판에서 버틸 자신이 없는 자들은 선실로 들어갔다. 이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배에서 바깥의 소리를 들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배에서 살아온 바닷사람조차 경험한 적 없는 배의 움직임에 모두가 핼쑥해져서 먹은 것을 뱉어 냈다. 지금껏 모르고 살았던 멀미를 한 번에 겪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성황청의 사제들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들이 기도를 멈추는 순간 천상의 천사들이 사라지고 보호막이 무너져 모두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배 하나를 뒤덮을 만한 크기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날뛰는 바다에 휩쓸려 요동치는 배를 건져내듯 붙잡아 올렸다.
우우웅-
배가 하늘로 천천히 떠오른다. 적대적인 바다를 탈출해 공중으로 올라갔다.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군이 탑승한 수십 척의 배가 모두 그러했다.
같이 출발한 수십 명의 마법사만으로 가능한 기적이 아니었다. 자원한 마법사들은 모두 나름대로 한가락 하는 자들이지만, 신격이 서로 부딪히고 마력이 요동치는 곳에서 이런 대마법을 안정적으로 펼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 하나를 하늘로 띄우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데 수십 척의 배를 모두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 누구란 말인가.
선실로 들어가라며 만류하는 자들을 뿌리치고 몸을 끈으로 묶은 채 끝까지 밖에 나와 있던 늙은 제독은 주변을 둘러보다 건너편 배에서 무시무시한 마력을 뿌리는 자를 발견했다.
그저 아이반의 동료인 줄만 알았던 사브리나가 수십 척의 배를 모조리 띄우고 있었다. 영웅의 동료이니 평범하지 않을 줄은 알았으나, 이런 수준일 줄은 몰랐던 제독이 입을 떡 벌렸다.
“저 자는 대체……?”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존재감은 주변에 가득한 신격의 위엄을 뚫을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했다. 사브리나가 인간이 아닌 초월자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화아아-
마침내 사브리나가 드래곤의 모습으로 날아올랐다. 자신의 마력으로 수십 척의 배를 하늘에 띄운 채로 그 앞을 막아섰다.
보통 마법사는 아주 복잡한 주문과 수식, 마력 흐름을 통해 세계의 법칙을 속이지만, 드래곤은 창조주가 이 땅에 남긴 화신이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용언으로 법칙을 움직일 수 있으니 평범한 마법사가 죽었다 깨어나도 힘든 대마법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었다.
– 천상의 적을 벌하라!
사브리나가 나서 배를 보호하자, 방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서지 못하던 아홉 신격의 천사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깊은 바다의 폭군을 공격했다.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다 천사들의 손짓에 막혀 사라졌다. 바다에서 솟구치던 괴물의 촉수는 잘게 끊어져 어두운 바다로 돌아갔다.
아홉 신격의 권능을 나눠 받은 전투 천사들이 깊은 바다의 폭군에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 우리가 너를 심판……!
말을 내뱉던 천사 하나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날카로운 바람을 휘감고 있던 천사가 그대로 빛으로 변해 흩어졌다.
깊은 바다의 폭군, 물의 신 뤼안과 싸워 그의 권능을 절반이나 가져간 자가 겨우 천사에게 당할 리가 없었다. 그 위대한 신력을 당당히 내뿜으며 천사를 짓눌렀다.
쿵!
날카로운 기세로 몰아치던 천사들이 바다에 처박혔다. 빛의 검을 휘두르고 불을 내뿜으며 해신의 몸을 꿰뚫었으나, 바다가 입을 쩍 벌리고 집어삼키니 막을 방도가 없었다.
스읍-
화르륵!
사브리나와 브리카가 동시에 숨결을 토해 냈다. 가장 순수한 용의 권능이 닿자 바닷물이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어마어마한 양의 수증기가 피어올라 시야가 가릴 정도였다. 거센 바람이 불었다.
휘이잉-
뜨거운 열기에 몰아치던 바람이 어느 순간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하늘로 휘감겨 올라갔다.
용의 불꽃으로 생겨난 토네이도, 그야말로 용오름이 아이반의 손짓에 따라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