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21
그의 등 뒤에서 환히 빛나고 있는 위그드라실의 문양에서 폭풍신의 권능이 밀려왔다. 아스가르드의 화신이 그것을 한 손에 쥐고 깊은 바다의 폭군에게 집어 던졌다.
강력한 용오름이 깊은 바다의 폭군에게 닿았다. 해신의 몸을 찢어 버리고 하늘로 날려 보냈다. 바닷물이 하늘을 적시고 먹구름이 되어 다시 쏟아졌다. 천둥이 울려 퍼졌다.
치지직!
쾅!
“묠니르!”
아이반이 소리치자 하늘에서 번쩍이던 번개가 그의 손에 나타났다. 그리고 곧 망치에 휘감겨 날아갔다. 해신의 끔찍한 머리가 단번에 터져 나가며 번개가 바다를 때렸다.
사아아앗!
흩어진 바닷물이 쏟아지며 아이반을 덮쳤다. 마력을 내뿜으며 그를 막아 내려 했지만, 해신의 권능이 담긴 바닷물은 기어이 아이반을 붙잡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아이반!”
이레인이 소리쳐 불렀으나 아이반은 그 소리가 닿기 전에 바다에 삼켜졌다.
바다는 생각보다 딱딱했다. 워낙 높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내팽개쳤기 때문에 온몸을 뒤흔드는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차가운 바닷물이 아이반의 팔다리를 붙잡고 계속해서 아래로 잡아끌었다.
호흡할 수 없는 답답함과 사방에서 짓누르는 압박감, 빛이 멀어지며 점점 어두운 곳으로 향해 가는 두려움.
어디가 위아래인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육지와 달리 육신이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너무나 굼뜨기만 했다.
몹시 괴로웠다. 무쇠도 찌그러뜨릴 압력이 고통스러워 아이반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깊은 바다의 폭군, 서쪽 바다의 신의 시선이 느껴진다. 무겁고, 축축하며, 어두운 눈빛이 아이반을 꿰뚫었다.
으드득!
아이반은 그 초월적인 존재감에 오히려 이를 갈며 정신을 다잡았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속삭였다. 달의 여신 셀룬이 바다 위에서 자세를 잡고는 아이반에게 말했다.
“붙잡고 올라오너라.”
그리고 달빛이 바다를 꿰뚫고 아이반에게 닿았다. 어두운 바닷속에 은은한 달빛이 선이 되어 나타났다.
쿠구궁!
여린 달빛이 점차 선명해지더니 바다를 갈랐다. 바다에 상처라도 난 듯이 쩍 갈라졌다. 바닷물을 밀어내고 길을 열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을 붙잡는 압력이 약해진 것을 깨달은 아이반은 그대로 마력을 내뿜으며 위로 솟구쳤다. 갈라진 곳을 메우는 바닷물보다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러나 아이반이 있던 곳은 너무나 깊었고, 바닷물은 너무 빠르게 차올랐다. 미처 벗어나기 전에 다시 붙잡힐 것만 같았다.
“내가 간다!”
아이반이 실패를 떠올렸을 때, 사나운 이빨이 배에서 뛰어내렸다. 용의 심장으로 만든 화염 날개를 한껏 펼치고, 그대로 아이반을 향해 나아가 손을 뻗었다.
탁!
아이반이 그의 손을 붙잡으니 뱀신 모르나가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악신 헤르샤스를 쓰러뜨린 이후 그녀는 자신의 영역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곳에 남아 있었는데, 사나운 이빨을 통해 힘을 전해 준 것이다.
– 여전히 어리석고 용맹한 자로다. 하지만 그렇기에 질리지 않는구나.
우우웅-
사나운 이빨의 몸에서 흘러나온 뱀신 모르나의 신격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거대한 뱀의 형상이 되었다. 악신 헤르샤스와 싸울 때 모르나가 몇 번이나 보여 준 권능이었다.
그때 아이반의 등에서 위그드라실의 문양이 밝게 빛났다. 그 틈으로 로키의 불꽃이 살랑이며 나타났다가 거대한 뱀의 모습을 빤히 지켜보았다.
바다와 뱀. 그것을 로키는 잊을 수 없었다.
– 세상을 파괴하는 것은 한 번이면 되었지. 그런 장난은 충분히 즐겼다.
로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조차 얽매는 운명에 묶여 정해진 결말로 달릴 수밖에 없었던 그가 장난기를 빼고 한탄처럼 읊조렸다.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미래를 위해 다짐하듯 말했다.
–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그리 만들어라.
로키의 말이 끝나자 새로운 기운이 위그드라실의 문양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게 뱀신 모르나의 신력과 얽히며 변화를 시작했다.
뱀신 모르나도 이유를 몰라 당황한 것 같았으나, 그녀는 언제나 흥미가 우선이었기에 기꺼이 호응했다. 이런 돌발 상황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스스슥-
거대한 뱀을 만드는 뱀신 모르나의 권능이 새로운 기운과 합쳐져 더욱 커다랗게 변했다. 지금껏 뱀신 모르나가 소환한 거대 뱀보다 수배는 더욱 커다란 덩치가 바다를 뚫고 나타났다.
요르문간드(Jǫrmungandr).
옛 세계의 파멸을 가져온 로키의 세 아이 중 하나.
세계를 휘감을 만큼 커서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어야만 했다는 거대한 뱀이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육신으로 나타났다.
231화 독을 마시는 뱀
바다에서 거대한 뱀이 나타나자 깊은 바다의 폭군이 새로운 권속을 불러온 줄 알고 사람들이 기겁했다. 바다가 그대로 육신이 된 해신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크기인데, 새로 나타난 뱀은 그것을 칭칭 휘감고도 남을 만하니 얼마나 놀랍겠나.
뱀이 움직일 때마다 바다가 흔들렸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물이 솟구쳐 하늘에 닿았다. 사브리나의 마법으로 공중에 떠 있는 수십 척의 배를 다시금 적실 정도였다.
‘끝인가?’
그런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들은 발견했다. 아이반과 사나운 이빨이 그 거대한 뱀의 머리 위에 당당히 서 있는 것을.
– 낯선 땅, 낯선 바다, 낯선 신이 보이는군.
세계 뱀, 요르문간드가 복잡한 감정을 담아 말을 내뱉었다. 낮고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정신파에 주변 모두가 움츠러들었다. 깊고 깊은 분노와 깊고 깊은 절망, 그리고 무엇보다 허무한 감정이 흘러나오니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자라면 움찔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 존재라는 예언을 받았고, 정을 알기 전에 버려져 홀로 자라야만 했다.
그 분노와 절망을 오랜 세월 되새기며 복수를 결의한 끝에 결국 세상을 멸망시켰으니, 그는 누구보다 잔혹한 괴물이며, 또한 그런 역할을 위해 내몰린 불쌍한 자였다.
모두가 예언을 피하려 했으나, 그러했기에 오히려 예언을 실현했고, 그 무엇도 바뀌지 않았으니 모두가 운명의 꼭두각시였다.
옛 세계가 무너지고, 각자 부여받은 역할을 모두 수행한 뒤에야 그를 벗어날 수 있었다. 불타서 무너지는 세계수 위그드라실과 아홉 세계를 뒤로하고 낯선 세계로 넘어오고 나서야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로키는, 아스가르드의 신이자 옛 세계를 무너뜨린 자, 또한 멸망을 부르는 세 괴물의 아버지는 평생 증오와 절망을 삼켜 온 자식이 새롭기를 원했다.
새로운 시작에서는 그들이 멸망을 부르는 불길한 괴물이 아닌 새로운 운명을 쟁취하기를 원했다.
아버지 로키의 의지가 전해졌다. 라그나로크 이후 오랫동안 죽음에 잠겨 있던 요르문간드는 그것을 읽고서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공허하게 내뱉었다.
– 나는 무엇을 위해 분노했고, 무엇 때문에 절망했나. 참으로 허무한 삶이며 운명이로다.
옛 세계가 무너지고, 쓸모를 다하고 나서야 멸망의 뱀은 온전히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도 가슴속에 분노와 절망이 들끓는데, 복수심이 꿈틀거리는데 그 모든 것이 덧없기만 했다.
세상을 창조한 신마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절대자의 장난감이 되어 이리저리 움직이다 버려졌으니 무엇을 원망하고 무엇에 복수할까.
새로운 세계에서 눈을 떴을 뿐, 결국 새로운 운명에 붙잡혀 또 다른 역할극의 배우가 될 뿐이지 않나.
그때 요르문간드는 아이반을 인식할 수가 있었다. 세상 모두가 운명에 휘둘려 움직일 때 유일하게 운명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를 발견했다.
그제야 어째서 아버지 로키가 자신을 깨웠는지 알 수 있었다. 왜 아직 초월자조차 되지 못한 자를 도우라 명령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우웅-
아이반의 몸에서 어린 위그드라실의 존재가 느껴졌다. 한때 증오스럽기만 하던 신들의 존재 역시 느껴졌다. 그들이 어째서 아이반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롭게 그들을 휘감고 있는 끈을 끊어 버리고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하여.
요르문간드의 날카로운 눈이 새로운 아스가르드를 향했다.
음흉한 오딘이 보였다. 정신 나간 프레이와 한심한 티르는 물론이고 자신의 머리를 깨부순 멍청한 토르도 보였다.
저놈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제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희망을 놓칠 수는 없었다.
사아아앗-
그때 바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깊은 바다의 폭군, 분노한 해신이 새롭게 나타난 적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요르문간드는 온 바다가 자신을 거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보다 거대한 고래가 나타나 요르문간드를 깨물었다. 수없이 많은 괴물 상어가 몰려와 거대한 뱀의 육신을 씹었다. 바다가 칼날이 되어 가죽을 찌르고, 사방에서 조였다.
왈칵 핏물이 번졌다. 세계 뱀이 상처 입고 피를 흘렸다.
“어, 어!”
아군인 것 같은 거대한 뱀이 공격받으니 사람들이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정작 요르문간드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상처는 익숙한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과 싸우고, 세상 모든 적의를 받았던 그에게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았다.
바다가 그를 적대한다고? 세상 모두가 적대하던 것에 비하면 우습기까지 했다.
쉬이익!
요르문간드가 몸을 비틀어 털자 달라붙어 있던 괴물 고래와 상어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커다란 놈들이라고 해도 요르문간드의 덩치와 비교하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새로운 세계에 나타나 예전보다 훨씬 작고 연약한 육신이라고는 해도 이깟 놈들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세계 뱀 요르문간드는 라그나로크에서 아스가르드와 아홉 세계를 통틀어 가장 강하다는 전사, 토르와 싸운 존재였다.
비록 토르의 망치를 못 견디고 머리가 터져 죽었으나, 토르 역시 요르문간드의 독을 견디지 못하고 아홉 걸음을 떼기도 전에 죽었으니 그 누가 감히 앞에서 당당할 수가 있을까.
요르문간드의 피로 붉어진 바다에서 온갖 생물이 죽어 떠올랐다. 눈에 보이는 모든 영역이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아니, 바다 자체가 죽어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독으로부터 보호하라!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서둘러 용언을 내뱉고 수십 척의 배를 멀찍이 물리지 않았다면 아군 역시 지독한 피해를 볼 뻔했다. 아마 경지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모두 죽어 버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