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22
사나운 이빨의 눈으로 그것을 보고 있던 뱀신 모르나 역시 헛웃음을 흘릴 정도였다.
– 이런 존재를 대뜸 소환한다고? 이계의 신계는 참으로 놀랍구나. 이래서야 뱀신이라는 신명이 민망할 지경이야.
뱀신 모르나는 이 땅에 있는 모든 뱀의 어미이며 지배자이고, 신이었다. 그런 존재가 인정할 정도로 세계 뱀 요르문간드의 위엄이 대단했다.
그 육신은 분명 뱀신 모르나가 전해준 신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나, 아스가르드의 기운과 터무니없이 강대한 영혼이 합쳐져 존재감만은 대신격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조차 본래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그 누구라도 경악할 터였다.
푸슉!
바닷물이 요르문간드를 붙잡고, 해신의 역겨운 촉수가 날아들어 두꺼운 가죽을 찢었다. 그리하여 세계 뱀이 피를 흘릴수록 오히려 깊은 바다의 폭군이 내뿜는 힘이 약해지는 것만 같았다. 바다가 죽어가며 해신의 권능 역시 흐려지는 것이다.
바다라면 어디든 그의 육신이었고, 분신이었으며, 화신이었다. 그러나 지독한 독기는 그 연결마저 끊어 해신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도록 했다.
스걱!
달의 여신 셀룬이 바다 위를 달리며 검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바다가 쪼개지는 듯하더니 깊은 바다의 폭군이 비틀거렸다. 그 틈으로 요르문간드가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독니를 박아 넣었다.
수천이 넘는 촉수가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요르문간드를 때리다가 뻣뻣하게 굳고, 이내 바닷물이 되어 쏟아졌다.
이전에는 이 상태에서 몇 번이고 부활했으나,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바다가 죽어 버려 힘을 쓸 수 없는 것인지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깊은 바다의 폭군은 사라졌으나 지독한 독성이 사방에 가득했다. 용언으로 보호하고 멀찍이 떨어진 아군과 달리 요르문간드의 머리 위에 붙어 있는 아이반과 사나운 이빨은 머리가 핑하고 어지러웠다. 속이 녹아내리고 피부가 온통 뭉개져 진물이 흘러나왔다.
“퉤!”
아이반은 속을 태우는 독기를 그러모아 검은 핏물로 뱉어 냈다. 예전에 경험한 용의 핏물이 가장 강한 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건 그냥 좀 씁쓸한 약이었다.
화염 드래곤의 심장 덕분에 온갖 독을 그대로 불태워 정화할 수 있는 사나운 이빨도 곧 눈을 까뒤집을 것만 같았다.
온갖 내성을 갖춘 아이반과 사나운 이빨이 옆으로 슬쩍 새어 나오는 독기를 못 견디고 괴로워할 정도니 다른 자들이었다면 잠깐도 버틸 수 없었을 거다.
스으읍-
다행히 요르문간드가 숨을 들이켜 마시니 사방에 가득하던 독기가 그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바다에 퍼져 있던 독기도 단번에 사라졌다.
그러나 이미 바다는 물론이고 공기마저 죽어 버려 삭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아이반과 사나운 이빨이 독기를 모두 몰아내고 편히 호흡할 수 있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바다가 마치 호수라도 된 것처럼 파도 하나 없이 투명하기만 했다.
그 모든 곳에 죽음이 가득했다. 싸우다 죽은 아군과 해적의 시체, 온갖 물고기의 사체가 수면을 메웠다. 침몰의 배의 파편이 그사이를 떠돌고 있었다.
저 멀리 물러났던 아군의 선단이 다시 돌아왔다. 하늘을 날다가 다시 바다로 내려와 죽음 가득한 바다를 가로질러 가까이 다가왔다.
툭, 투둑!
고요한 가운데 한때 살아 있었던 것들이 뱃전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그야말로 초월적인 싸움이었다. 끔찍한 풍경을 본 사람들이 할 말을 잃고 그저 멍하니 주변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신을 죽일 각오를 하고 나선 이들이었지만 막상 초월적인 전투를 보고 나니 여기서 자신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것이다.
각오는 드높으나 이런 초월적인 전장에서 제 역할을 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저 허무하기만 했다.
언제나 전투 의지를 불태우던 노르드 전사들마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요르문간드의 존재도 물론이고.
탁!
아이반과 사나운 이빨이 겨우 해독을 마치고 요르문간드에서 배로 넘어오자 셀룬이 가장 먼저 반겼다.
“제법 훌륭했노라. 이 정도를 바라지는 않았는데, 참으로 놀라운 존재를 불러왔구나.”
달의 여신 셀룬은 요르문간드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육신이 완전하지는 않으나 그 안에 품은 영혼이 너무나 강렬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요르문간드가 그리 선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악신조차 아래로 볼 만큼 어둡고 불길한 기운을 가진 자를 앞에 두고 어찌 긴장을 풀겠나.
“너무 경계하지 마시오. 친절한 자는 아니지만, 우리와 함께 싸울 존재이니.”
아이반이 그리 말하며 올려다보자 커다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요르문간드가 휙 고개를 돌렸다.
제 입으로 도와주겠다거나, 적의가 없다, 같이 싸우자 같은 낯간지러운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호의를 받는 것도, 내미는 것도 낯설었다.
요르문간드가 물밑으로 사라지니 그에 압도되어 있던 사람들이 긴 한숨을 내뱉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테잔은 힐끗 아래쪽을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터무니없이 위험하고 강한 존재로군. 그런데 얼마나 유지할 수 있나? 쉽지는 않을 텐데.”
그 말에 아이반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한 번의 전투는 가능할 것이오.”
뱀신 모르나의 신력이 재료가 되기는 했으나 지금 요르문간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결국 아스가르드의 힘이었고, 아이반의 그릇이었다. 지금도 막대한 힘이 빠져나가고 있으니 무한정 소환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제대로 육신을 가지고 강림한다면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스가르드는 물론이고 옛 세계의 존재들은 모두 육신을 잃어버린 허신의 상태였다.
아이반이 완전히 성장해 새로운 위그드라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정도가 아니라면 그들은 이 땅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한 번의 전투라,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구먼.”
아이반을 따르기로 했지만, 그 불길한 존재와 함께한다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과연 정말로 이 땅의 미래를 위한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테잔은 애써 그런 마음을 억눌렀다. 예전에 결심했던 대로 그저 아이반에게 맡기면 된다. 세상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길이니 낯설 수도 있겠지. 아이반에 대한 믿음이 이젠 그만큼 강력했다.
오십 척에 가까웠던 배는 해적과 싸우며 나포한 것을 포함해도 겨우 서른 척이 되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의 수는 절반도 되지 못했다.
바다에서 바다의 신과 싸우고 절반이나 살아남았다고 기뻐해야 할지, 아직 전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절반도 안 된다고 절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복잡한 마음으로 죽음 가득한 바다를 빠져나왔다. 벌써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을 떠나서 또 다른 죽음으로 향했다.
목표는 해적 군도.
깊은 바다의 폭군과 악신이 기다리고 있는 곳.
232화 격돌
쏴아아-
아군 선단이 바다를 가르고 움직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저 멀리 해적 군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한두 번쯤은 더 공격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깊은 바다의 폭군은 아군이 해적 군도에 닿을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가볍게 찌르는 것으로 초월자를 쓰러뜨릴 수는 없으니 힘을 아끼기로 한 모양이다.
수천이 죽든, 수만이 죽든, 위대한 신격의 시선으로 보면 필멸자는 크게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초월자를 쓰러뜨리지 못하고 물러났으니 깊은 바다의 폭군은 괜히 손해만 보았다고 여길 터였다.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와 달의 여신 셀룬이 함께 움직이며, 수많은 사제가 천상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바다의 신이라고 해도 다시금 홀로 나서기는 부담스럽겠지.
“아주 위험한 냄새가 진동하는군.”
아이반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해적 군도를 바라보다 그리 중얼거렸다. 저 섬들이 모두 해신을 모시는 제단이 되어서 온갖 불길한 기운이 가득 흘러나왔다.
원래 해적 군도는 서쪽 바다의 수많은 해적이 오가는 곳이라 적어도 수천은 항상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크고 작은 소란이 끊이지 않는 떠들썩한 곳인데 지금은 마치 버려진 도시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항구에 정박한 배도 몇 척 없었다. 얼마 전에 백오십 척에 가까운 해적선을 갈아 버린 영향인 듯했다.
‘그래도 막상 들어가면 온갖 적이 우글거리겠지.’
예전부터 깊은 바다의 폭군을 모시던 사교도는 물론이고 해적 잔당과 역겨운 바다 괴물이 가득할 터였다. 적이 부족해 심심할 일은 없으리라.
스으윽-
아군 선단이 조심스럽게 해적 군도에 다가갔다. 섬을 감싸고 있는 불길한 기운에 닿으니 갑자기 세상이 변했다. 진정한 해신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맑은 날씨는 어디 가고 주변이 온통 짙은 해무로 가득했다. 손을 뻗으면 손끝이 흐릿할 정도로 짙은 안갯속에서 기묘한 소리만 멀리서 들려왔다.
마력 움직임이 답답하다. 기운이 제대로 흐르지 않았다. 깊은 바다의 폭군이 만든 영역이니 그가 인정한 힘이 아닌 것들은 억눌릴 수밖에 없었다.
성황청 사제들이 성지 선포를 외치며 아군을 보호했으나, 아무래도 신이 직접 만든 영역과 다툴 수는 없었다. 모든 기운이 막히고 무력해지는 최악의 경우만 막아 냈을 뿐이다.
온몸을 찌르는 살기와 정신을 압박하는 강대한 존재감, 기운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답답함은 물론이고 작은 움직임에도 숨이 차고 몸이 무거웠다.
병사들은 벌써 지친 것처럼 괴로운 표정이었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고 한 모금 숨을 들이켜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그게 신과 싸우는 일이었다. 신격 앞에서 그저 당당히 서 있는 것조차 한낱 필멸자에게는 목숨을 깎고 영혼을 불태우는 행위였다. 어느 정도 격을 이루지 못했다면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탁!
테잔이 지팡이를 내리찍고, 델피노가 신성의 증명을 펼쳤다. 둘이 힘을 보태 신의 압박을 밀어내니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던 병사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사브리나가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나 안개를 밀어냈다. 그러자 멀리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의 해적 군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꿈틀꿈틀-
해적 군도 전부를 웬 역겨운 점막이 뒤덮고 있었다. 한때 해적들이 머물렀을 건물이 촉수를 휘두르고, 해산물을 닮은 괴물들이 그에 짓눌렸다가 흡수되어 사라지고, 또 더욱 역겨운 괴물이 점막을 찢고 나타났다.
사제들은 눈을 부릅뜨며 신을 찾았고, 병사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쥐고 있던 무기를 떨어뜨렸다.
그만큼 충격적인 풍경이었다. 신을 죽일 각오를 하고 자원한 자들의 투지가 흔들릴 정도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적의가 느껴져. 비틀린 영혼과 고통받는 생명이 내지르는 비명이 귓가에 맴돌아.”
이레인이 담담하게 말하며 활시위를 당겼다. 이내 그녀의 손을 떠난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 점막 가득한 땅을 꿰뚫으니, 그에 반응하듯 수십 개의 촉수가 위로 솟구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상륙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지만, 안타깝게도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걸 내버려 두고 돌아가면 머지않아 저 역겨운 풍경이 서부 해안가에 그대로 펼쳐질 테니까.
“내리기 전에 대충 정리를 해야겠군.”
아이반이 창을 꺼내 들고 해적 군도를 노려보고 있을 때, 바닷속에서 거대한 뱀의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 기분 나쁜 것들이야.
그리고는 흘깃 아이반을 살피고는 해적 군도에 가까이 다가가 독기 가득한 숨결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