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25
아무리 요르문간드가 뿜어 낸 독기가 희석된 상태라고 해도 이렇게나 빨리 내성을 쌓다니, 놀랍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요르문간드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다.
– 이것도 버틸 수 있겠나!
천둥신 토르조차 견디지 못한 독을 갓 태어난 괴물 놈들이 견딘다는 것은 치욕이었다. 요르문간드는 한층 더 짙어진 독기를 내뿜었다.
세상을 무채색으로 칠한 것만 같았다. 바다는 물론이고 공기와 땅, 세계 그 자체가 독에 물들어 죽어 갔다. 끊임없이 강해지던 괴물들도 더는 버틸 수가 없는지 단번에 핏물이 되어 녹아내렸다.
탁!
그 지독한 독기를 연료로 불의 신 쿤다라가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신력으로 만들어진 불꽃마저 지독한 독기에 밀려 꺼졌는데, 쿤다라가 횃불을 휘두르자 독기를 잡아먹은 불꽃이 순식간에 번졌다.
쾅!
태양이 지상에 나타난 것만 같았다. 솟구치는 화염이 하늘에 닿고, 거대한 폭발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234화 아홉 세계의 후계자
섬이 지워진다. 바다가 밀려났다가 한때 섬이었던 구멍을 채웠다. 해적 군도의 절반이 단번에 날아갔다.
요르문간드의 독기, 그것을 연료로 삼아 타오른 쿤다라의 화염은 초월자들조차 황급히 피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지독한 것이었다.
타오르는 잿불은 온몸으로 그 불길을 맞이하고도 멀쩡했으나, 미처 다른 이를 지켜 줄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깊은 바다의 폭군이 만들어 낸 바다의 장벽은 우습게 사라졌다. 바닥에 뿌리를 박고 힘을 흡수하며 역겨운 생명을 토해 내던 악신 뮤트는 육신의 절반이 터져 나갔다.
본디 그 어떤 지독한 상처라도 단번에 지울 수가 있는 생명의 신이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회복하기는 했으나 그 속도가 느렸고 그 과정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그만큼 요르문간드의 독이 지독했고 쿤다라의 불은 뜨거웠다.
자칫 임시로 만들어진 세상을 무너뜨리고 현실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다행히 거세게 출렁일 뿐 무너지지는 않았다. 아홉 신격의 의지로 만들어진 곳이라 견뎌 냈지, 보통의 신격이 만든 영역이라면 진작 불타서 사라졌을 거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도 아니었건만, 아이반은 섬뜩하기만 했다. 저만한 공격에 당하고 멀쩡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 화끈한 불길이구나. 불의 신이라면 응당 그러해야지.
전신이 불타오르면서도 타오르는 잿불이 끌끌 웃었다. 흩어진 불길을 흡수하며 뜨거운 몸을 한껏 부풀렸다.
그러나 강한 척 나서는 그와 달리 미쳐 버린 생명의 신, 악신 뮤트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뒤에서 힘을 불어넣던 악신 뮤트가 그 모양이니 전성기를 되찾은 듯 싸우던 타오르는 잿불도 그 기세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터였다.
저들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균형이 맞지 않았다. 저들은 셋이고 이쪽은 다섯에 하나가 더 붙었다는 숫자 놀음만이 아니라, 상성이 그러했고, 격이 그러했다.
타오르는 잿불이 한때 세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불의 신이라 해도 지금은 쿤다라에 미치지 못하고, 절반의 권능을 뺏어간 깊은 바다의 폭군이라 해도 물의 신 뤼안을 단번에 찍어 누를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에 달의 여신 셀룬은 대신격에 한참이나 모자라지만 가장 전투적인 신격이었고,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는 온전한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어쨌든 세계 주권을 지닌 창조주의 화신이었다.
세계 뱀 요르문간드는 비록 본래의 육신이 아니라 뱀신의 신력을 재료로 잠시 소환되었을 뿐이나, 어쨌든 하나의 세계를 부수고 그 세계에서 가장 강한 신격을 죽인 존재였다.
미쳐 버린 생명의 신 뮤트는 보조에 특화되어 있을 뿐 순수하게 전투력이 강한 자는 아니니 기울어진 균형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파바밧!
셀룬이 검을 휘두르자 달빛이 뭉쳐 적을 꿰뚫었다. 다시금 바닷물을 끌어모아 나타난 깊은 바다의 폭군이 그걸 막아 내면 사브리나가 한 호흡에 수십이 넘는 대마법을 엮어서 쏟아 냈다.
둘이 그렇게 깊은 바다의 폭군을 붙잡고 있는 동안 물의 신 뤼안이 빼앗긴 권능을 되찾기 위해 손을 뻗었다.
맞닿은 곳으로부터 뤼안의 신력이 넘어가 깊은 바다의 폭군의 신성을 노렸다. 성황청에서 보관하고 있던 바다의 보주, 그러니까 해신의 심장을 제물로 녀석의 신성을 불러왔다.
뤼안과 깊은 바다의 폭군은 비슷한 영역을 다루는 신격이기에 서로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권능이 권능을 꺾고, 신성이 다른 신성을 억눌렀다.
한 번 이겨서 절반의 권능을 가져갔던 깊은 바다의 폭군이 유리할 것 같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권능을 다루는 수준에서 뤼안이 우위에 있었기에 깊은 바다의 폭군은 삼켰던 권능을 토해 내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셀룬과 사브리나가 외부에서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으니 집중할 수가 없어 권능의 양으로 밀어붙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뤼안의 권능을 뺏었다가 그걸 다시 당하는 셈이었다.
– 바다는, 나의 것이다!
깊은 바다의 폭군이 격렬히 반항했다. 바다가 출렁이며 분노를 토해 냈지만 그것에 겁먹을 초월자는 아무도 없었다.
초월자 셋에 둘러싸여 권능을 빼앗긴다. 신성이 갈라지고 품고 있던 막대한 신력이 새어 나갔다.
–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던 타오르는 잿불이 거칠게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아직 미쳐 버린 생명의 신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 깊은 바다의 폭군마저 당하면 너무나 불리하니 막을 수밖에 없었다.
화르륵!
타오르는 잿불은 그 누구보다 뜨겁게 불타오르던 그 시절의 힘을 한 손에 모았다. 현 시대를 대표하는 불의 신 쿤다라가 긴장할 정도로 뜨겁고 강렬한 기운이었다.
세계를 밝히는 횃불을 든 쿤다라가 타오르는 잿불의 공격을 막기 위해 힘을 끌어올렸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재만 남은 옛 시대의 불꽃에 밀리지 않을 크고 웅장한 불꽃을 준비했다.
둘이 그렇게 움직일 때 아이반과 요르문간드는 오히려 악신 뮤트를 노리고 들어갔다. 깊은 바다의 폭군이 붙잡히고, 타오르는 잿불이 그를 막기 위해 나서니 방비가 약한 틈을 찌르고 미쳐 버린 생명의 신을 공격했다.
카아악!
단번에 튀어 나간 요르문간드가 입을 쩍 벌리고 악신 뮤트를 씹어 삼키려했다. 그 어느 신조차 견디지 못할 독니를 날카롭게 번뜩였다.
악신 뮤트는 순간적으로 몇 겹이나 되는 방어막을 만들었으나 요르문간드의 이빨이 그 모든 방어막을 뚫었다. 개념적인 것마저 죽여 버리는 지독한 독성이 신력으로 만들어진 방어막을 녹였다.
요르문간드가 삼키기 전에 악신 뮤트의 육신이 흐릿해지며 저 멀리 나타났다. 주변에서 새롭게 태어난 괴물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요르문간드의 육신을 갈랐다.
그러나 요르문간드의 거대한 육신에 비하면 상처는 너무나 작았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핏물 때문에 오히려 독기가 더욱 강해지기만 했다.
저번에 그 독기 때문에 고생했던 아이반은 호흡을 참았다. 그래도 피부가 녹아내리거나 눈이 타들어가지 않는 걸 보면 조금이나마 내성이 쌓인 모양이다.
물론 요르문간드의 독은 조금 내성을 쌓았다고 괜찮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기에 아이반은 서둘러 묠니르를 집어 던지고 폭풍을 불러 몸을 휘감았다.
하늘 가득한 먹구름에서 천둥이 몰아쳤다.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악신 뮤트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번개를 머금은 묠니르가 후려쳤다.
치지직!
쾅!
자신의 머리를 터트렸던 묠니르의 존재가 영 불편한 지 요르문간드가 슬쩍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 불쾌한 기분을 털어 내듯 악신 뮤트에게 덤벼들었다.
쉬이익!
묠니르에 얻어맞고 빈틈을 보인 악신 뮤트는 더는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삼켜졌다. 요르문간드는 몸을 빙글빙글 말고서 뱃속에 있는 악신 뮤트를 녹여버리기 위해 독을 내뿜었다.
슬쩍 흘러나오는 독기만 해도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신격이라도 살아남지 못할 만큼 끔찍했다.
그러나 정작 요르문간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 생각보다 질기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야만 하겠어.
요르문간드의 육신이 흐릿하게 변하고 있었다. 격렬한 싸움으로 모든 기운을 다 써버린 터라 더는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지려는 것이다.
사실 허신을 불러와 이만큼이나 유지한 것이 놀라웠다. 당장 뱀신 모르나만 해도 새롭게 육신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했으며, 달의 여신 셀룬을 불러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목숨이 사라졌나.
오랜 죽음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나타난 요르문간드는 돌아가야만 했다. 아마 예전과 달리 아스가르드의 일원이 되겠지만, 지상에 남아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 살아남아라. 저쪽에서 지켜보겠다.
스스슥-
요르문간드의 육신이 무너진다. 너무나 거대해서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커다란 육신이 흩어지고 그 강대한 영혼이 아스가르드로 향했다.
그리고 미처 완전히 녹이지 못한 악신 뮤트가 빠져나왔다. 온몸이 짓물러 흘러내리다가 재생하기를 반복하는 끔찍한 몰골이었으나, 악신은 죽지 않았다.
썩어 버린 핏물을 토하고 오염된 신력을 뱉어 냈으나 미쳐 버린 생명의 신은, 그 대단한 생명력으로 기어이 살아남았다.
악신 뮤트가 주변 생명력을 흡수하면서 빠르게 회복했다. 신조차 죽이는 지독한 독기의 주인이 사라지니 그 끔찍한 권능을 밀어내는 것이 한층 수월해진 모양이다.
– 죽음보다 끔찍했으나 나의 운명을 끊어 낼 만큼 강렬하진 못했다.
마치 씹어 삼키듯 말을 내뱉은 악신 뮤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이반을 노려보았다. 그 눈에 가득한 광기에 아이반이 마른 침을 삼키며 묠니르를 들어올렸다.
‘버틸 수 있을까?’
달의 여신 셀룬과 사브리나, 물의 신 뤼안은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깊은 바다의 폭군을 찢어발기기 직전이었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타오르는 잿불과 불의 신 쿤다라의 싸움은 쿤다라가 우위에 있으나, 단번에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일대일이라면 모르되, 악신 뮤트와 타오르는 잿불, 불의 신 쿤다라와 아이반이라면 아무래도 저쪽이 유리했다.
쿤다라가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해도 악신 뮤트와 타오르는 잿불도 한때는 대신격이었다. 홀로 둘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깊은 바다의 폭군이 권능을 잃어버리고 신성이 쪼그라드는 것이 먼저인지, 타오르는 잿불과 악신 뮤트가 쿤다라와 아이반을 넘어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먼저인지.
아이반은 손에 힘을 주고 묠니르를 휘둘렀다.
치지직!
쾅!
천둥신의 힘이 악신 뮤트를 후려쳤다. 그러나 미쳐 버린 생명의 신은 시커멓게 변한 육신을 끊어 내고 새롭게 몸을 만들어 아이반을 공격했다.
쉬이익!
바닥에서 촉수가 솟아올랐다. 아이반이 몸을 비틀어 피하고 바람을 흩뿌렸다.
휘이잉!
폭풍이 촉수를 밀어냈다. 그사이 아이반은 어두운 용의 발톱을 꺼내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스걱!
한 번 창을 움직일 때마다 주변에 가득한 촉수가 잘려 나갔다. 어느새 깔린 보라색 점막을 뚫고 나타난 괴물들이 쓰러졌다.
크게 휘두르지 않고 그저 창을 고쳐 잡았을 뿐인데도 날카로운 공격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공간을 넘어 반드시 명중하는 궁니르의 권능이었다. 거기에 어두운 용의 발톱이 자유자재로 길이가 변하기까지 하니 그 어떤 거리와 각도에서도 아이반의 창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가볍게 움직이던 창이 점점 무거워졌다. 한 번 베고 나면 다음은 더욱 질기고 단단해졌다. 상대에 맞춰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괴물들이 점차 가까워졌다.
“후우, 결국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