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26
아이반이 낮게 중얼거리며 창을 찔렀다. 그러자 가까이 다가왔던 괴물들이 뻥 구멍이 뚫린 채 숨이 끊어졌다.
강하게 내지른 창은 공간을 뛰어넘어 악신 뮤트에게 닿았다. 방어막을 뚫고 미쳐 버린 생명의 신에게 닿았다.
펑!
악신 뮤트의 육신이 터져 나갔다. 그러나 무한한 생명력은 그조차 회복하며 아무렇지 않게 공격을 계속했다. 피부 벗겨진 거대한 손이 꿈틀거리며 바닥에서 자라나 아이반을 후려쳤다.
머리가 깨지고 근육이 끊어졌다. 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터져 나갔다. 바닥에 흥건한 핏물과 형체를 알 수 없는 살점이 가득했다.
화르륵!
처참한 모습으로 죽은 흔적이 작게 피어오른 불꽃과 함께 사라졌다. 신의 감각조차 속이는 로키의 환영이 흩어지자 아이반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나타나 창을 날렸다.
쾅!
궁니르, 주신 오딘의 창.
폭풍과 죽음의 권능을 머금은 창이 아이반의 손에서 떠나는 것과 동시에 악신 뮤트의 몸에 박혔다. 중간 과정이 없이 결과만 나타난 듯했다. 보통은 어찌된 일인지 알지도 못할 거다.
그러나 시원스럽게 악신 뮤트의 몸을 꿰뚫었음에도 아이반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전투에 능한 신격이 아니라고 해도 신은 신이다, 이거지.’
아무리 그래도 신격이라면 궁니르에 반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피하거나 막고자하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이 정도는 맞아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이었다.
요르문간드 정도로 지독한 독이 아니면 악신 뮤트의 무한한 생명력을 끊어 낼 수가 없었다. 그럼 한 방에 날려야 한다는 소리인데, 한 번의 공격으로 저 질긴 신격의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같은 신격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컥!”
어느새 나타난 촉수가 아이반을 붙잡았다. 워낙 탐욕스럽게 힘을 빨아 마셔서 촉수에 닿는 순간 힘이 쭉 빠질 정도였다.
악신 뮤트의 먹잇감이 되었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던 마력이 텅 비고, 강력한 생명력이 뽑혀 나갔다.
피의 검 브리카를 불러 맞서 싸웠으나, 신의 권능을 뚫을 수가 없었다. 게걸스럽게 주변의 기운을 삼키던 피의 검이 오히려 힘을 토해 내야만 했다.
정신이 아득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강대한 육신이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세상 모든 피로가 몰려들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아이반이 드문드문 끊어지는 정신으로 그리 중얼거릴 때, 누군가 그에게 속삭였다.
– 그래서 이게 네가 증명한 것이냐? 조만간 찾아온다더니, 이렇게 발할라로 오고 싶었던 모양이군.
오딘. 옛 세계의 주신이 한껏 비웃음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민망하군.”
메말라 부서지던 아이반의 정신이 다시 힘을 얻었다. 참으로 우습지만 저 빌어먹을 오딘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죽어 가던 그를 되살렸다.
근육은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드래곤도 감탄하던 마력이 바닥났다. 감각은 맛이 가고, 남은 한 점의 기력도 없었으나 아이반은 애써 당당하게 말했다.
“이리 죽을 것이라면 그리 끈질기게 살지 않았소.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뿐이니까.”
아이반이 그리 정신을 바로 세우자 놀랍게도 제법 버틸 만했다. 금방 목숨이 끊어질 줄 알았으나 죽지 않았고, 오히려 모르던 힘이 조금씩 솟아나는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반은 새로운 위그드라실이니까. 새롭게 아홉 세계를 만들고 지탱할 존재였으니까.
미쳐 버린 생명의 신, 악신 뮤트는 한때 대신격이었으나 그렇다고 아홉 세계를 모두 삼킬 만큼 그릇이 크지는 못했다. 아스가르드와 아홉 세계가 아이반과 함께하는데 어찌 단번에 집어삼킬 수 있겠나.
그걸 자각하니 등에 새겨진 위그드라실의 문양으로부터 온몸이 타들어 갈 듯 강렬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반신을 넘어서 이제 초월자를 코앞에 두고 있는 아이반의 몸이 떨릴 만큼 강렬한 힘이었다.
언제든 하나의 길을 정한다면 초월자가 될 수 있을 거라던 셀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루는 실력이 조금 부족할 뿐, 아이반의 힘과 출력은 이미 초월자나 다름없었다.
우웅-
헤임달의 감각이 깨어났다. 토르의 힘이 스며들고 티르의 용맹함이 함께했다. 프레이의 광채가 쏟아졌으며, 로키의 음흉한 지혜가 솟아올랐다.
프레이야가 비밀스러운 지식을 속삭이고, 이둔이 끓어오르는 생명력을 전해 주었다.
프리그, 헤르모드, 우르, 시프와 시긴, 또 비다르와 회니르, 스카디, 그 외 수많은 신의 존재가 선명히 느껴졌다.
둥!
둥, 둥!
에인헤랴르가 발을 구르고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키리가 노래 부르며 그를 축복했다. 낮은 북소리와 뿔피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빛으로 만들어진 길 끝에, 그 길고 긴 통로를 지나서야 오딘이 보였다. 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그를 내려다보던 오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Hliðskjálf)가 비워졌다.
– 아직 한참이고 부족하다. 감히 아홉 세계를 말하기엔 나약하고 나약하다. 그러나 너는 마침내 자신을 증명하였노라. 네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아홉 세계를 잇지 못하리라.
그 말을 들은 아이반은 천천히 다가가 황금 옥좌에 앉았다. 흘리드스캴프의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이 그를 감싸 안았다.
쾅!
아이반을 붙잡아 힘을 빼앗고 있던 촉수가 터져 나갔다. 그 속에서 찬란한 빛을 두른 아이반이 당당하게 나타났다.
순간 그곳에 있던 모든 초월자가 그를 보았다. 새로운 초월자의 탄생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한쪽에는 묠니르, 다른 쪽에는 궁니르, 스스로 거인을 베는 검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아이반은 홀로 연약한 겨우살이 가지 하나만을 쥐었다.
아직은 연약하지만 그 무엇보다 커다란 가능성을 가진 존재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홉 세계를 홀로 지탱할 자였다.
아이반은 자신을 휘감고 도는 수많은 신력을 느끼면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그러다 자신의 신명을 스스로 선언했다.
“나는 아스가르드의 화신이며 아홉 세계의 후계자니 칭한다면 이리 부르라.”
아이반의 말에 세상이 요동쳤다. 새로운 초월자의 탄생을 축복하고 그 존재를 세상에 선명히 새겼다.
“발드르.”
235화 쓴맛 가득한 승리
끝없는 전능감이 느껴진다. 그 무엇도 아니었으나, 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한 힘이 가득했다. 그러다가 또 그게 별것 아님을 깨달았다.
아이반은 이미 필멸자이던 시절부터 아스가르드의 수많은 신격이 권능을 빌려주었기에 힘만큼은 초월자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격을 얻어 신격이 된다고 한들 실질적인 힘의 크기가 달라졌다곤 할 수 없을진대, 그 한 꺼풀의 막이 얼마나 커다란 것이었는지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세상 모든 것이 또렷하게 들리고, 보이고, 느껴졌다. 평생을 땅만 보다가 처음으로 하늘을 발견한 짐승처럼, 두 발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누구보다 튼튼한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새처럼 감격스러웠다.
필멸자로 품고 있던 모든 생각과 기억이 부서지고, 초월자의 의지와 신념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전의 그와 지금의 그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무엇 하나도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꿈속에 있다가 깨어난 것 같았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고 정신이 번쩍 돌아온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익숙하면서, 지독하게 낯설고 고독했다. 어항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물고기가 밖으로 나와서 자신이 살던 어항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게임 속 캐릭터가 자신을 조종하던 플레이어의 자리에 앉은 것만 같았다.
이게 초월자였다. 이게 신격이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으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이반은 그저 먼 길을 돌고 돌아서 원래의 자리를 되찾았을 뿐이다.
“신이 되어 신을 돌아보니, 그 또한 별것 아니로군. 사방에 가득한 위엄은 초라함을 가리기 위함이고, 위대함도 헛된 것이라. 진정으로 위대한 자라면 증명하라. 신의 천벌 앞에 벌벌 떨던 나약한 이는 이제 없으니, 세상 그 무엇도 나의 두려움이 될 수는 없다.”
아스가르드의 화신, 아홉 세계의 후계자. 스스로 발드르라 선언하며 초월자로 각성한 아이반은 악신들마저 움찔 몸을 떨 만큼 위협적이었다. 이제 막 필멸자를 벗어난 존재라 하기에는 뿜어내는 기세가 너무나 웅장했다.
우웅-
아이반의 등 뒤에 나타난 위그드라실의 문양이 이제 하늘을 뒤덮을 만큼 커졌다. 그 너머에서 수많은 신이 존재를 드러내고 악신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아이반의 생명력을 한껏 빨아먹고 강렬한 힘을 내뿜던 악신 뮤트가 더는 덤벼들지 못하고 눈치만 보았다. 갑자기 상황이 변해서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피우웅!
아이반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어두운 용의 발톱이 궁니르의 권능을 머금고 공간을 뛰어넘어 미쳐 버린 생명의 신을 할퀴고 지나갔다.
이전에는 아무리 몸을 꿰뚫어도 상처를 금방 회복하던 악신 뮤트가 이번에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비로소 아이반의 신력이 악신 뮤트의 권능을 비집고 들어갈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악신 뮤트가 훌쩍 뒤로 물러나며 권능을 사용하자 바닥을 뒤덮은 점막이 크게 부풀어 오르다가 수천이나 되는 괴물을 동시에 뱉어 냈다.
키에엑!
미쳐 버린 생명의 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을 조합해 만든 전투용 괴물이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 모두가 약하게나마 신력을 가지고 있어서 신격조차 무시할 수 없는 놈들이었다.
스걱!
그러나 놈들은 달려들던 기세로 몸이 쪼개져 바닥을 굴렀다. 어느새 비프로스트를 건너 나타난 에인헤랴르와 발키리가 괴물들을 베었다.
– 발드르!
– 아홉 세계의 후계자!
– 우리의 새로운 왕이여!
치지직!
쾅!
아이반의 곁에 떠 있던 묠니르가 천둥을 휘감고 날아가 바닥을 때렸다. 땅을 깊이 파고 크레이터를 만든 묠니르는 그것으로 부족한지 끊임없이 번개를 토해 냈다.
악신 뮤트는 간신히 묠니르를 피했으나, 그 충격파에 중심을 잃고 몸이 흔들렸다. 그 틈을 노리고 에인헤랴르가 달려들어 도끼를 박아 넣고 창을 찔렀다.
팡!
악신 뮤트가 흘린 핏물에서 괴물이 나타나 에인헤랴르를 깨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에인헤랴르가 녀석들을 찢어 흩뿌렸다. 그 피와 살점을 밟고 뛰어올라 악신 뮤트를 노렸다가 몸이 쪼개져 발할라로 되돌아갔다.
스걱!
비틀린 용의 모습을 한 괴물이 덤벼들다 아이반의 마법으로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한 손에 든 겨우살이 가지를 흔들 때마다 몇이나 되는 아이반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