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33
아이반이 창을 비틀면서 찔렸다. 맹렬한 바람이 휘감겨 쏘아졌다. 바위는커녕 절벽이라도 무너트릴 공격이었다.
스윽-
마치 예상했다는 것처럼 바르투이가 움직였다.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것으로 창을 피하고 거리를 좁혔다. 그의 오른쪽 손이 벼락처럼 아이반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쾅!
아이반 역시 언제 창을 내밀었느냐는 듯 회수해서 바르투이의 주먹을 막아 냈다. 창이 부르르 떨리고 묵직한 충격이 밀려왔으나 아이반은 빙글 돌리는 것으로 힘을 털어 내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르투이가 재차 달려들었다. 단단히 땅을 딛고서 주먹을 휘둘렀다.
훅, 후욱!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을 치더니 또 왼쪽을 노렸다.
처음에는 봄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나뭇잎처럼 가볍고 부드러웠지만, 이내 한겨울에 몰아치는 폭풍처럼 매서워졌다. 빠르고, 강하고, 날카로웠다.
아이반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주먹질을 막아 냈으나,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나왔다. 거인보다 튼튼한 육신을 가진 아이반이 주먹질의 여파만으로 상처를 입은 것이다.
슈우욱!
바르투이의 주먹을 막아 내는 동시에 궁니르의 권능으로 뒤를 노렸다. 눈앞에 있는 창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나, 섬뜩한 공격이 바르투이를 찔렀다.
이제 아이반이 사용하는 궁니르의 권능은 예비 동작이 거의 없어서 알아차리기 힘들 텐데, 바르투이는 자연스럽게 몸을 비틀어 그걸 흘렸다.
지극히 날카로운 전투 본능은 가까운 미래마저 읽었다. 얕은수로는 기습이 될 수 없었다.
“스바프니르(Sváfnir:잠을 가져오는 자)!”
아이반이 옛 노르드 주문을 읊으며 마력을 내뿜자 바르투이의 눈이 슬쩍 흐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고, 그리 흐려진 상태로도 바르투이는 주먹을 휘둘렀다.
강력한 수면 주문이었으나 초월자를 잠재울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권왕 바르투이는 자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주먹을 내지를 수 있는 자였기에 의미가 없었다.
“펭그(Fengr:사로잡는 자)!”
바닥에서 마력으로 된 밧줄이 솟아나 바르투이를 붙잡았다. 거인조차 잡아당길 수 있을 정도로 질긴 밧줄이 권왕의 주먹은 붙잡지 못했다.
권왕의 주먹이 코앞까지 왔을 때, 아이반은 천둥신의 망치를 불렀다.
“묠니르.”
치지직!
쾅!
갑자기 튀어나온 묠니르가 바르투이를 후려쳤다. 천둥소리와 함께 바르투이가 뒤로 튕겨 나가자, 후속타를 날리려던 아이반은 짧은 신음과 함께 움직임을 멈췄다. 바르투이가 묠니르에 맞아 날아가면서도 아이반을 공격한 것이다.
탁!
아이반이 손을 뻗자 날아갔던 묠니르가 돌아와 잡혔다. 그사이 바르투이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묵직하고 짜릿하군. 훌륭한 공격이었소.”
바르투이의 오른쪽 손이 붉게 물들었지만 빠르게 진정되었다. 코앞에서 덮치는 묠니르를 흘려보낸 흔적이었다.
서로 가볍게 주고받으며 탐색을 끝낸 둘은 진지한 표정으로 힘을 끌어 올렸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탁!
바르투이가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 몰아치는 바람처럼 빠르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아이반을 덮쳤다.
그에 대항해 아이반은 번개처럼 움직였다. 천둥 걸음으로 하늘로 솟아올라 창을 집어 던졌다.
슈우욱!
아이반의 손을 떠난 창이 공간을 넘어 바르투이를 찔렀다. 그러나 바르투이는 흩날리는 꽃잎처럼 가볍게 피하고 주먹을 내밀었다.
휘이잉!
바람처럼 자유로운 주먹이 쏟아졌다. 막히면 피해 가고, 부서지면 흩어지면서 또 더없이 경쾌하고 날카롭게 휘둘렀다.
타다다다닥!
아이반은 인벤토리에서 방패를 꺼내 막았으나, 가벼워 보이는 주먹은 드워프가 만든 명품 방패를 찰흙처럼 짓눌렀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모를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며 아이반을 스치고 지나갔다.
쾅!
주먹이 무척이나 묵직했다. 과연 무파 강철 바람. 바람처럼 가볍고 빨랐다. 또한 강철처럼 무겁고 단단했다.
휘이익!
바르투이는 덩치가 상당히 큰 편이었지만 놀랄 만큼 유연했다. 그 어느 자세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이 움직였다.
아이반의 공격을 바람처럼 부드럽게 타고 들어와 봉인하고 강철처럼 무겁게 후려쳤다.
강철처럼 단단하니 강철의 태세, 바람처럼 자유로우니 바람의 태세.
무파 썬더울프, 천둥 늑대의 핵심이 천둥 걸음이라면 무파 강철 바람의 모든 것은 태세 전환이었다.
전혀 다른 방식을 자유롭게 오가며 몰아치니 빈틈이랄 것이 전혀 없었다. 약한 듯 보이는 부분은 함정이었으며, 강한 듯 보이는 부분은 생각보다 더욱 강했다.
쾅!
주먹질 한 번에 봉우리 하나가 무너진다. 그런 공격이 비처럼 쏟아지니 아이반이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컥!”
어느새 따라붙은 바르투이가 아이반의 목을 붙잡아 바닥에 내리찍었다. 세상의 그 어떤 단단한 금속도 우습게 잡아 찢을 악력으로 목을 조이고 다른 손으로 아이반의 머리를 후려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쉬이익!
뒤에서 아이반이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피의 검 브리카가 섬뜩하게 번뜩이며 그를 내려찍었다. 바르투이는 그것을 느끼고 몸을 뒤집었다. 그대로 발로 아이반을 후려쳐 멀리 밀어냈다.
탁!
멀찍이 밀려난 아이반이 바르투이를 노려보았다. 바르투이 발치에 목이 부러진 아이반의 모습은 환영이 되어 흩어졌다.
“단순한 환영은 분명 아니었는데…….”
바르투이가 손을 쥐었다 펴며 중얼거리자 아이반이 대꾸했다.
“보이는 것이 진실은 아니고, 느끼는 것이 사실은 아니오.”
로키의 환영은 세상을 속일 정도였다. 대신격조차 단번에 알아볼 수 없으니 이미 실상과 허상의 경계가 무의미했다.
“그래, 확실히 그동안 보았던 수준 낮은 환영과는 다르군. 이게 초월자의 싸움인가.”
그 말에 아이반이 피식 웃었다.
“초월자의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소. 그동안 당신이 경험했던 것과는 많이 다를 거요.”
권왕 바르투이가 전투 경험이 적다면 웃긴 일이지만, 수많은 초월자와 싸워 온 아이반과 달리 그는 초월자 간의 전투는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초월자가 되었음에도 이전의 싸움 방식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권왕 바르투이가 평생 싸워 온 방식이니 그게 틀렸다고는 할 수 없으나, 다른 것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대단하군.’
반응이 무척이나 빨랐고, 움직임에 빈틈이 없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주먹질이 사실 극도로 계산된 공격이었으니, 대충 보이는 것만 막다 보면 바르투이의 노림수를 피할 수가 없었다.
권능과 신성을 무시하고 무술만 놓고 보면 그는 몇 수나 앞서 있었다. 아이반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읽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게 필멸자의 싸움이라면 아이반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순수한 싸움 기술로는 그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초월자의 싸움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가 경험할 전장은 필멸자의 싸움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제 당신이 진정으로 싸워야 할 자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려 주겠소.”
초월자의 싸움은 이렇게 서로 몸과 몸이 부딪치는 극단적인 근접전이 오히려 드물었다. 대부분은 권능과 권능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인간형의 존재라는 보장이 없었다. 관절기와 타격기도 평소와 같지는 않으리라. 권왕 바르투이는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당신의 방식으로 어디 한번 넘어 보시오.”
우웅-
아이반의 등에서 커다란 문양이 피어났다. 뿌리는 땅을 파고들어 대지의 가장 깊은 곳에 닿았고, 가지는 하늘을 넘고, 잎은 세상을 뒤덮었다.
아직 세계를 지탱하기엔 너무나 작고 연약했으나, 분명 아홉 세계의 씨앗이 자라고 있으니 위그드라실이 아닐 수 없었다.
아스가르드의 수많은 신이 이곳을 지켜보았다. 초월적인 존재가 내뿜는 존재감이 가득하여 격을 이룬 자들조차 압도당할 정도였다.
끼이익!
세상의 법칙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위그드라실이 나타났으니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곳이 아홉 세계의 영역이었다.
스으윽-
아이반의 손에서 겨우살이 가지 하나가 나타났다. 어두운 용의 발톱과 묠니르, 피의 검 브리카가 그를 휘감아 돌았다.
휘익!
아이반이 겨우살이 가지를 움직일 때마다 세상의 운명이 요동쳤다. 마법사, 정령사, 무투가, 주술사, 기사, 궁수, 도적, 왕과 거지, 현자와 바보, 가장 용맹한 전사와 가장 비열한 겁쟁이에 이르기까지 그가 가질 수 있었던 온갖 종류의 미래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종말의 시작이며 창세의 시작이었다. 종말의 모든 가능성과 창세의 모든 가능성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자이니 아무것도 될 수 없으며, 동시에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발드르. 아홉 세계의 후계자이며, 아스가르드의 화신이로다.”
뿌우우, 뿌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