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34
길게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가 아스가르드에서 뻗어 이곳에 닿고, 완전 무장한 전사들이 발할라의 문을 박차고 달려 나왔다.
발할라의 문은 모두 오백하고도 사십이오, 그 문은 각각 팔백의 전사가 드나드는 곳이니 옛 라그나로크 당시에도 발할라를 모두 채울 수 없었다. 지금도 열린 문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나 그 기세만큼은 하늘을 찔렀다.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해 매일 죽고 살아나며 스스로 단련한 자들이니, 그 어떤 고행자보다 더한 길을 행복으로 여기며 걷고 있는 위대한 전사들이었다.
-아스가르드를 위해! 아홉 세계를 위해!
-아이반! 우리의 신을 위하여!
소리치는 에인헤랴르 중에는 얼마 전 깊은 바다의 폭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고 발할라로 들어온 신참 전사들이 제법 있었다. 아이반은 그들을 바라보다 황금 옥좌에 앉았다.
오래도록 오딘의 것이었으나, 아이반을 위해 비워 준 그 위대하고 고고한 자리에 앉아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그람 흘리드스캴파르(Gramr Hliðskjálfar), 흘리드스캴프의 왕이 말했다.
“그대는 두 주먹으로 어디까지 올 수 있겠소?”
그 말에 바르투이, 맨손으로 초월자가 된 위대한 무투가가 대답했다.
“갈 수 있는 곳까지.”
권왕이 앞으로 나아갔다. 수천의 전사를 향해 몸을 던졌다.
242화 투신
바람처럼 날아와 강철처럼 두드렸다. 바르투이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에인헤랴르가 쓰러졌다.
날아오는 창을 손등으로 쳐내고, 휘두르는 칼을 손바닥으로 밀어낸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걸음이 틈을 만들고 강철처럼 단단한 정신이 길을 열었다.
쿵!
권왕이 주먹을 뻗으니 에인헤랴르의 몸이 터져 나갔다. 수천의 전사가 그를 막아서고 있음에도 오히려 압박하는 것은 바르투이였다.
하긴 에인헤랴르가 수천이라 해도 그를 둘러싸고 한 번에 공격할 수 있는 수는 기껏해야 수십 명에 불과했다. 겨우 그 정도로는 초월자를 막을 수가 없었다.
주르륵!
붉은 핏물이 마치 융단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가 움직이는 길을 따라 바닥을 적셨다.
겨우 이 정도냐는 듯 권왕 바르투이가 아이반을 올려다보았다.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에 앉아 있던 아이반은 그런 그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에인헤랴르는 평범한 전사들이 아니었다. 지상에서 이름난 전사를 고르고 골라 영입했고, 그런 전사들이 길게는 수백 년도 더 오랜 세월을 서로 죽고 죽이며 단련했다. 그런 자들이 과연 평범하겠나.
에인헤랴르에게 죽음은 벌꿀술보다 독하지 않고, 싸움은 고기를 뜯는 것보다 익숙했다.
그들은 그저 누군가에 발걸음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월자를 사냥하기 위해 준비된 존재였다. 평범하게 쓰러뜨려서는 진정으로 이길 수 없었다. 그걸 바르투이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우웅-
아이반이 마력을 내뿜었다. 생명과 죽음을 주무르는 위대한 오딘의 신력이 에인헤랴르에게 깃들었다.
심장이 터지고 머리가 사라졌던, 팔다리가 잘리고 한 줌 핏물이 되었던 자들이 멀쩡히 몸을 일으켰다. 죽음조차 즐기는 신의 전사들이 껄껄 웃으며 무기를 들었다.
– 우리의 신을 위하여!
– 아홉 세계를 위하여!
– 오딘과 아이반을 위하여!
바르투이가 숨을 끊어 놓았던 수백의 전사가 다시 나타났다. 에인헤랴르는 여전히 수천에서 줄지 않았으니 바닥에 가득한 살점과 핏물조차 이곳에선 그저 전장을 꾸미는 장식에 불과했다.
치지직!
화르륵!
휘이잉!
에인헤랴르가 각자 믿는 신의 권능을 내뿜었다. 어느 곳은 벼락이 내리치고, 어느 곳은 폭풍이 몰아치며, 어느 곳은 차갑게 얼어붙고, 어느 곳은 뜨겁게 타올랐다. 티르의 전사들이 거칠게 달려들고, 우르의 전사들이 멀리서 저격했다. 헤임달의 전사들이 틈을 노렸다.
쿵!
강하게 발을 구른 권왕 바르투이가 앞으로 나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한 번 거둔 목숨을 다시 챙기고 사방에서 덮치는 무수한 권능을 떨쳐 냈다.
바르투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단단한 마력이 에인헤랴르를 밀어내고 또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휘이잉!
오른쪽 주먹, 잡아당긴 손에 모인 막대한 힘이 단번에 쏟아졌다. 굶주린 늑대처럼, 사나운 사자처럼, 분노한 용처럼 앞을 할퀴고 지나갔다.
에인헤랴르가 단번에 쓸려나갔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고, 머리와 몸이 사라졌다. 무수한 신의 전사가 그렇게 목숨이 끊어졌다.
탁!
그렇게 쓰러지면서도 에인헤랴르는 창을 날렸다. 검을 휘두르고 도끼를 던졌다. 쇠사슬이 바르투이의 몸을 붙잡았다.
틈이라고는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이고 모이니 바르투이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처음에는 다섯 수는 능히 앞서 있는 것 같았다. 수백이 모이고 수천이 모여도 털끝 하나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조금이 쌓이고 쌓이니 바르투이의 몸놀림이 느려졌다. 미래를 보는 것 같던 시선이 흐려지고 닿을 수 없던 육신에 상처가 생겼다.
종말을 준비하는 전사들이 권왕의 몸을 붙잡고 창칼을 찔러 넣었다. 바르투이의 온몸이 찢어지고 갈라졌다. 초월자의 뜨거운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도 권왕 바르투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한히 살아나는 에인헤랴르의 영혼을 후려쳐 발할라로 다시 보내 버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우웅-
하늘에서 매의 날개옷을 입은 발키리들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누구보다 강인하며 잔혹한 전장의 천사들이 바르투이를 막아섰다.
스켁굘드(Skeggjöld:도끼)
게이르스코굴(Geirskǫgul:창을 휘젓는 자)
군느(Gunnr:전쟁)
힐드(Hildr:전투)
이름조차 싸움을 의미하는 발키리들이 덤벼들었다. 창과 칼, 도끼를 휘두르고 마법의 여신 프레이야에게 배운 비밀스러운 마법들을 쏟아냈다.
위대한 여성 전사들, 스캴드메르(skjaldmær:방패의 처녀)가 발키리를 따라 움직였다. 방패로 앞을 막고 창과 검을 찔렀다.
기력을 빼앗고, 눈을 가리고, 날카로운 얼음 화살이 날아오거나 질척한 땅이 발을 붙잡았다. 수십, 수백 개의 마법이 바르투이를 덮쳤으나, 그는 강철의 의지와 마력으로 그 모든 마법을 이겨 냈다.
발키리가 사용하는 마법은 하나같이 대마법에 가까웠으나 초월자의 강대한 항마력을 뚫을 수가 없었다. 이미 지치고 상처 입었으나 바르투이의 팔다리가 멀쩡하니 권왕은 약해지지 않았다.
“흐읍!”
바람처럼 움직이다 근육을 부풀렸다. 일격에 능히 산을 부순다는 강철 태세로 스캴드메르의 방패를 두드렸다.
코끼리가 달려들어도 부드럽게 흘릴 수 있는 스캴드메르가 권왕이 휘두르는 주먹을 버티지 못하고 날아갔다. 아스가르드의 장인들이 만든 방패가 단번에 쪼개지고 피를 내뿜었다.
쾅!
스캴드메르를 날려버린 바르투이가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붙잡듯 손을 비틀어 쥐니 위에서 마법을 쏟아 내고 있던 발키리들이 그에게 끌려갔다.
“후우.”
내뱉는 숨에 부풀었던 근육이 사라졌다. 몸을 더욱 유연하고 가볍게 만들어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쏟아지는 빗방울조차 피할 수 있다는 바람의 태세로 발키리를 몰아쳤다.
파바밧!
순간적으로 바르투이의 몸이 몇 개나 되는 것처럼 늘어났다. 잔상이 마치 분신처럼 발키리들을 때려눕혔다.
핏물을 뒤집어쓴 바르투이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살면서 이처럼 격렬하게 싸운 적은 없었을 것이다. 홀로 수천을 쓰러뜨리기 위해 달려든 적도 없었을 것이다.
필멸자였으면 이미 한참 전에 기력이 떨어졌겠지만 바르투이는 싸우면 싸울수록 더 힘이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자신조차 모르고 있던 기운에 솟아올랐다.
초월자가 되고도 필멸자의 감각에 갇혀 있던 그가 진정으로 초월을 깨달았다. 본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초월자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 이게 초월자의 싸움이었군.”
권왕 바르투이가 껄껄 웃었다. 분명 지쳤으나, 마치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처럼 샘솟는 활력이 그저 즐겁기만 했다. 이렇게 진정으로 싸웠던 것이 대체 언제가 마지막인지 아득하기만 했다.
꽈아악!
바르투이가 주먹을 쥐자 세계의 흐름이 요동쳤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지에 따라 법칙이 무너졌다가 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게 초월자였다. 세계의 법칙에 닿아 마침내 그것을 넘어선 자들.
쿵!
바르투이가 땅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은 것처럼 아이반의 눈앞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능히 산을 부수고 땅을 조각낼 힘이 가득했다.
수천의 에인헤랴르를 소환하고 발키리와 스캴드메르까지 불러왔다. 그 많은 자들을 유지하느라 아이반은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권왕을 벗어나 진정한 투신을 자각한 바르투이의 공격을 도무지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깨닫는 것이 조금 늦었소.”
아이반이 그리 말을 내뱉자 코앞까지 다가왔던 바르투이의 주먹이 훌쩍 멀어졌다. 흘리드스캴프를 부술 듯이 덤볐던 바르투이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치지직!
쾅!
“컥!”
등이 쪼개지는 것 같은 충격이 밀려왔다. 내장이 터지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산봉우리가 그대로 무너지고 땅이 가라앉을 정도로 강한 힘이 그를 후려쳐 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