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4
망을 보고 있는 녀석이 있었지만 형식적일뿐 전혀 의욕이 없었기에 몸을 숨기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읍!”
중간에 재수 없게 마주친 녀석의 목을 따고 안으로 들어간 아이반은 미간을 찌푸렸다.
화덕의 크기, 장작이 타고 남은 재의 양, 그 외 자잘한 주변 흔적들까지.
오십여 명이 생활하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영 부족한 점이 많았다. 기껏해야 열댓 명이나 머무르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할까.
‘은신처가 하나가 아닌가? 주로 생활하는 곳이 따로 있나?’ 그렇게 고민하던 아이반이 문득 표정을 굳혔다. 어느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명백히 그의 침입을 깨달은 움직임이다.
‘벌써 들켰다고? 이렇게나 빨리?’ 아이반은 얼른 마력을 끌어올려 사방으로 퍼트렸다.
그러자 무언가 얇은 실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이반의 마력이 그것에 닿자 마치 유리가 깨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사라졌다.
“마법사! 마법으로 감시를 하고 있었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 아이반은 그대로 눈에 보이는 녀석의 머리를 때려 부쉈다.
단단한 도끼가 연약한 인간의 머리를 가르고 피와 뇌수를 흩뿌린다.
그것을 시작으로 아이반이 날뛰기 시작했다.
잘려나가는 팔, 다리, 목. 그렇게 순식간에 일곱 명이 쓰러지자 녀석들이 주춤거리며 한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간부, 혹은 대장. 그런 놈들.
“네 녀석은 뭐하는 놈이기에 여기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그러게 사람을 보면서 산적질을 했어야지.”
“뭐? 젠장! 일을 나간 녀석들이 잘못 건드렸군. 그렇게 상대를 봐가면서 움직이라고 해도 .”
“산적 놈들 주제에 예절 교육도 했나보군. 안타깝게도 학습태도가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아이반은 아무렇게나 대꾸하면서 주변을 힐끗힐끗 살폈다. 마법사, 마법사를 찾아야했다.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살려 보낼 수는 없 .”
휘리릭! 말을 하던 녀석의 입에 도끼를 날려 보냈다. 선빵필승.
언제나 반 박자 빨리 움직이면 그 만큼 우선권을 얻는다. 입을 나불거리던 녀석의 머리가 터져나가자 그 옆에 있던 녀석이 무척이나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녀석을 죽여라!”
그 녀석이 소리치자마자 모두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놈이 산적두목인 모양이었다.
“안타깝군, 시작부터 두목을 처리하고 들어가나 했는데.”
스걱! 창을 들이미는 산적 똘마니의 목을 벤 아이반은 문득 음습한 마력이 달라붙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을 둔하게 붙잡고 쇠약하게 만드는 저주. 물론 그 저주는 아이반의 몸에 달라붙는 것과 동시에 불타 사라졌다.
얼마 전에 공략했던 던전, 버려진 수도원에서 상대한 저주받은 수도자와 썩어가는 손아귀와 비교하면 지금의 저주는 하찮은 수준이었다. ‘이쪽!’ 저주와 이어진 마력통로를 역으로 훑어 방향을 알아낸 아이반이 몸을 던지려는 순간, 산적 간부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캉! 다소 귀찮은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던 아이반은 문득 그들이 자신의 검을 막아낸 것을 보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별것 없던 놈들이었는데 갑자기 힘과 속력이 증가했다.
완전히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으드득! 앞을 막아선 녀석들의 눈이 시뻘겋게 변하고 몸이 커진다. 근육이 비대하게 부풀어 오르고 체온이 상승했다.
보통사람의 몇 배로 강해진 근력과 반응 속도로 아이반의 몸을 후려쳤다.
쾅! 놈들의 공격을 받아낸 아이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꽤나 묵직했다.
기술은 형편없었으나 육체적 성능만은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듯 했다.
그 정도로 아이반을 위협할 수는 없겠지만. 치직! 치지직! 아이반의 몸에서 뻗어 나온 번개가 녀석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 커다란 근육과 덩치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바닥에 쓰러진다.
근력과 속도가 강해진 것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나약한 마력저항력이었다. 화르륵! 그때 아이반을 노리고 화염구가 쏘아졌다.
주변에 있는 다른 녀석들이 다칠 수 있음에도 상관없이 날려버린 마법.
아이반은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내들고 속삭이듯 외쳤다.
“오딘.”
그 이름을 머금은 창이 화염구를 꿰뚫고 쏘아진다.
상대의 마법을 깨부수고 날아가 마법사의 머리 옆에 박혀들었다. 우웅- 아이반은 천천히 걸어갔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몇몇 도망가려던 녀석은 있었으나 머리가 사라지고도 그러지는 못했다. 아이반은 여유롭게 창을 회수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마법사를 내려다보았다.
자존심 강한 마법사는 이런 상황에서도 두려움보다 분노를 느끼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넌 뭐냐!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 우리 일을 방해하는 !”
푹!
“으악!”
아이반은 창을 마법사의 허벅지에 찔러놓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 창이 네 머리를 날려버리지 않은 것은 그저 빗나갔기 때문이 아니다.”
“으으윽!”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법사를 보면서 아이반은 코웃음을 흘렸다.
“인내심이 자존심만은 못하군.”
하여간 고통에 더럽게 약한 놈이었다.
겨우 그걸로 엄살 피우기는.
팔다리가 잘려나간 것도 아니면서.
끼익! 마법사가 있던 오두막 문을 열어보니 코를 찌르는 약초향이 느껴졌다.
아니, 독초였다. 아주 강한 중독성을 지니는 마약의 재료이기도 하고.
‘단순히 산적질만 하는 것 치고는 상태가 좋아 보인다고 했더니 약장사가 메인이었나?’ 하지만 그랬다면 죽음을 앞두고도 마법사의 존재를 숨기지는 않았을 텐데.
아이반은 급격하게 육체가 변했던 간부들의 시체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끙끙 앓고 있는 마법사를 내려다보았다.
그 속에서 아주 미약하지만 음습하고 끈적거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다.
‘ 그냥 마법사가 아니로군.’ 아이반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마약, 흑마법사, 악마숭배자. 그렇다면 그 산적 똘마니들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도 이해가 된다.
그냥 산적질을 하던 것과 악마숭배를 하는 흑마법사의 주구가 된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요즘 세상이 어수선하다더니 이런 놈들이 날뛰고 있었군.”
아니, 이 빌어먹을 세상은 원래 엉망이었다. 이제서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없었다. 툭! 아이반은 흑마법사의 옆구리를 발로 후려 찬 후 물었다.
“네놈이 섬기는 녀석은 누구냐?”
그 말에 흑마법사는 독기 가득한 눈으로 소리쳤다.
“죽음의 인도자께서 너를 지켜보고 계신다! 그분이 너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흑마법사의 눈동자 너머로 흐릿하게 무언가가 비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가 섬기고 있을 악마, 죽음의 인도자가 아이반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허접한 놈을 섬기는군. 이왕 악마의 노예가 될 거라면 파멸의 마왕 정도는 되어야지, 그 부하의 노예라니.”
“뭐, 뭣이! 죽음의 인도자께서 가만두지 .”
스걱! 데구르르 아이반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목을 베었다. 마법사란 하나같이 꼰대에 고집쟁이, 정신병자인데 악마를 숭배하는 흑마법사는 거기서 더 나아간 미친놈들이었다. 말 한마디에 간교한 술책과 사악한 저주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놈들이니 깔끔하게 죽이고 넘어가는 것이 마음 편했다. 궁금한 건 좀 참지 뭐. 애초에 흑마법사들의 영혼과 정신은 그들이 숭배하는 악마에게 저당 잡혀있어서 고문한다고 해서 쉽게 정보를 뽑아낼 수도 없었다. 지독하기가 웬만한 악마숭배자 뺨친다는 성황청의 이단심문관의 화려한 거짓말탐지기술쯤 되면 모를까 아이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반은 흑마법사의 시체에 침을 탁 뱉었다.
“그런 잡스런 악마의 저주라니, 웃기지도 않군.”
그가 평소에 외치는 이름이야말로 마신 그 자체였다. 음모와 협잡, 배신과 폭력이야말로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가져야할 기본 소양이 아닌가.
자신을 숭배하는 전사의 뒤통수만 노리다 결국 죽여서 영혼을 가져간 후 영원히 싸우게 만든다니, 이거야말로 완성형 네크로맨서에 사악한 악마가 따로 없지.
어쩌면 아이반이 악마숭배자를 싫어하는 것은 지독한 자기혐오의 다른 형태일지도 몰랐다. 치지직! 휘잉! 마치 항의라도 하듯이 따끔한 전기와 불쾌한 바람이 스쳤으나 아이반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남은 산적들을 모았다.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내라. 나에게 말하는 것이 이단심문관에게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 말에 산적들이 모두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모시는 신과 종파를 막론하고 성황청 이단심문관에 대한 소문은 그만큼 유명했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손톱 뽑기, 정의로운 물고문, 신실한 인두질. 손톱 뽑고, 발톱 뽑고, 이를 뽑고, 혀도 뽑고.
그러다 뽑을 것이 없으면 넘치는 신성력으로 멀쩡하게 치료해서 다시 뽑는다는 이단심문관.
듣기로는 고문을 한 번 할 때마다 경전 한 구절을 읊는다는데, 가장 짧은 경전조차 한 권을 모두 낭독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모두가 ‘회개’했으니까. 겁에 질린 산적들은 앞다퉈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뱉어댔고, 그것을 잘 기억한 아이반은 사이좋게 그들을 동료 곁으로 보내주었다. 마지막까지 혹시나 살려주려나 싶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산적을 베어 넘긴 아이반이 산채를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발크룬을 잡으며 큰돈을 벌기는 했지만 쓴 돈 역시 많았다. 청색 마탑에서 비싼 돈을 주고 샀던 전투용 마법 스크롤을 두 개나 써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