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40
247화 모두의 승리
그런 소문이 들렸다. 어느 지역에서 공간이 비틀리는 것이 보였노라, 놀라울 정도로 강한 힘이 흘러나왔노라, 옛 전설에 오래된 존재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과 유사하노라.
뜬금없는 소문이었으나,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무척이나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었으나 점차 살을 불려 그곳에 잠든 존재의 구체적인 정체까지 떠돌았다.
아마도 악마가 은밀히 흘린 소문이었으리라. 일행을 잡아먹을 함정을 파두고 기다리는 것이리라.
그걸 알면서도 일행은 모른 척 그곳으로 향했다. 다섯 번째 괴물을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숲속 가장 깊은 곳, 절벽 끝에 일렁이는 게이트를 넘자마자 사방에서 느껴지는 존재감.
한때는 초월자에 닿았던 영락한 자들, 비록 타락했으나 천상에 가까웠던 자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감히 초월자를 죽이겠다고 파놓은 함정을 음미하듯 아이반이 하늘로 뛰어올랐다.
“게이롤니르(Geirǫlnir:창을 든 돌격자)!”
아이반이 소리치자 강대한 마력이 움직였다. 스스로 축복하여 창을 더 강하고 날카롭게 했다. 몸놀림이 더욱 가볍고 빨라졌다.
쉬이익!
어두운 용의 발톱이 마력을 머금고 쭉 길어졌다. 거의 20m가 넘게 길어졌다가 덤벼드는 거인의 머리를 후려치고 원래대로 돌아왔다.
쿵!
아이반이 한 걸음 강하게 앞으로 나가며 창을 찔렀다. 짧아진 창의 방향을 의식하며 다가오던 자들이 갑자기 등 뒤에서 파고드는 창날에 당황해서 몸을 비틀었다.
공간을 넘어서 반드시 명중하는 궁니르의 권능이었다. 그러니 사실 아이반에게 창의 길이나 적과의 거리, 휘두르는 방향은 의미가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이게 바푸드 궁그니스(Váfuðr Gungnis), 궁니르를 휘두르는 자의 싸움법이다.
휘릭!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아이반이 빙그르 몸을 돌리며 창을 내리쳤다. 무언가 반투명한 몸을 하늘거리며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다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치지직!
아이반의 몸에서 뻗어 나간 번개가 그 잔해를 지졌다. 신성을 머금은 번개가 물질과 허상의 경계에 있는 육신을 불태웠다.
그러는 사이 커다란 그림자가 하늘을 뒤덮었다. 번쩍이는 갑주를 챙겨 입은 거대한 고릴라 괴물이 훌쩍 뛰어올라 무식한 몽둥이를 내리찍고 있었다. 돌산의 군주였다.
– 죽어라!
돌산의 군주가 눈이 벌겋게 변해서 소리쳤다. 아무리 봐도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이반이 짐짓 표정을 굳히고 노려보자 그가 움찔 몸을 떨었다. 몽둥이를 내리치는 힘이 약해지고 슬쩍 몸을 빼려고 했다.
우르릉!
쾅!
아이반은 다른 자들이 이상함을 느끼기 전에 얼른 묠니르를 불러서 던졌다. 우렁찬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거대한 돌산의 군주가 한참이나 뒤로 날아갔다.
뒤이어 옆에 있던 거대한 악어, 짙은 숲의 왕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쓰러뜨려서 멀찍이 치워 버렸다.
스스슥!
바닥에서 올라온 굵은 나무뿌리들이 아이반의 발을 붙잡았다. 단번에 화염을 내뿜어 불태웠으나 기어이 그를 붙잡겠다는 듯 땅이 솟구쳤다.
쿠구궁!
주변 벽은 막히고, 하늘만 뚫려 있는데, 그곳에서 웬 커다란 새가 나타나 불을 내뿜었다. 흙이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서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불길이었다.
그때 아이반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짧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높고 낮은 기묘한 소리가 낮게 흘러나와 마력을 움직여 그를 감싸 안았다.
파드 갈드(Faðr galdr), 곧 마법 노래의 아버지.
마법의 신 오딘이 함께하는 아이반은 짧게 흥얼거리는 소리만으로 필멸자가 오랫동안 준비하고 한참을 끙끙거려야 가능한 대마법을 몇 겹이나 펼칠 수가 있었다.
우웅-
투명한 벽이 불길을 막아낸다. 흙을 용암으로 만드는 화염이라 해도 아이반을 불태울 수는 없었다.
스걱!
아이반이 창을 붙잡고 괴물 새를 향해 날리려는 순간, 녀석의 목이 잘리고 아이반을 가두고 있던 거대한 흙벽이 무너졌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달빛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미 적은 절반쯤 쓰러져 있었다. 초월자 셋, 필멸자의 끝에 도달한 둘을 막기엔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날 리가 없었다. 악마가 파놓은 함정은 이게 시작이었고, 아이반의 계획도 이제 본편이었다.
쿵!
공간을 찢고 악마가 쏟아진다. 마계에서도 꿇리지 않을 고위 악마가 몇이나 나타났다. 그중에는 거의 대악마에 가까운 놈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반은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보다 더욱 폭력적이고 강렬한 존재감이 그를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절망하고 천상에 복수를 선언한 투신, 그런 역할을 맡은 바르투이가 아이반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 되게 살벌하군.’
그 누구도 거짓이라 생각하기 힘든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보다 더욱 강한 투기가 주변을 짓눌렀다. 기세 좋게 등장한 고위 악마들조차 움찔 몸을 떨고는 그의 눈치를 볼 정도로 바르투이가 내뿜는 기운이 사나웠다.
피부에 따끔따끔 달라붙는 날카로운 살기, 심장을 조이는 살벌한 긴장감, 절로 온몸의 근육이 움직이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미 안개산에서 대련을 한 적이 있었으나, 그때와는 또 다른 기세였다. 그 짧은 시간에 성장한 것인지, 아니면 실전과 대련의 차이인지, 어쨌든 뭔가 달라도 달랐다.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았다. 악마를 속이려면 대충 싸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싸움이 될 터였다.
‘이러다 아군의 손에 맞아 죽을 수도 있겠······.’
미처 속으로 중얼거리는 말조차 마무리하지 못하고 아이반은 창을 들었다. 어느새 저 멀리 있던 바르투이가 눈앞까지 다가와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
시작부터 강철의 태세, 묵직하게 들어오는 주먹이 아이반의 창을 때렸다. 용의 뼈와 아다만트로 만들어서 세상 그 어느 무기와 비교해도 좋을 어두운 용의 발톱이 마치 부러질 듯 요동쳤다.
그 충격에 뒤로 밀려나는 것보다 빠르게 바르투이가 다가와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바람의 태세, 폭풍처럼 몰아치는 주먹질을 막아내느라 아이반은 식은땀을 흘렸다. 어찌나 빠른지 주먹질이 끝나고 나서야 뒤늦게 소리가 따라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과광!
아이반은 직접 얻어맞은 주먹이 전혀 없음에도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다. 아예 못질을 해도 뚫리지 않을 초월자의 피부가 스치기만 해도 갈라질 정도로 강렬한 공격이었다.
단순히 직선 이동이라면 따라올 자가 없다는 천둥 걸음의 궁극에 도달한 아이반이었지만 도저히 바르투이와 거리를 벌릴 수가 없었다.
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역시 근접전으로는 도저히 투신 바르투이를 이길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익혀서 신이 된 자와 오로지 자신의 몸을 단련하는 것으로 신이 된 자의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툭!
기묘하게 움직이는 발걸음, 아무렇지 않게 내뻗는 주먹 하나가 아이반의 행동을 제한했다. 마치 체스라도 두는 것처럼 아주 조금씩 구석으로 몰았다. 결국은 한 방 얻어맞을 수밖에 없도록 이끌었다.
쿵!
아이반의 창을 피하고 주먹이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코끼리가 올라가 탭댄스를 춰도 멀쩡할 아이반의 갈비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터져 나갔다.
푸와악!
무언가 거대한 것이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아이반의 옆구리에 뻥 구멍이 뚫렸다. 피가 사방으로 퍼지고 조각난 뼈와 내장이 바닥에 쏟아졌다.
그러나 바르투이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뒤쪽에서 멀쩡한 모습의 아이반이 겨우살이 가지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곧 아홉 세계의 씨앗이요, 가능성이라. 모든 미래가 하나의 몸에 있도다.”
화르륵!
마치 선언과도 같은 아이반의 말이 울려 퍼지자 배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진 아이반의 시체가 불타오르며 환상이 되어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공간을 채우듯 몇이나 되는 아이반이 나타났다.
누구는 창을 들었고, 누구는 활을 들었으며, 누구는 검, 누구는 도끼, 누구는 지팡이, 또 정령과 주술이 함께했다.
예전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바르투이가 그를 노려보며 싸움을 준비했다.
꽈아악!
두 손을 굳게 쥔 그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새겨졌다. 예전에는 결국 끝까지 닿지 못하고 쓰러졌으나 이번에는 다르리라. 투신 바르투이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둘이 아군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인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까먹은 모양이다.
‘이거 진짜 위험하겠군.’
아이반은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고 은밀히 신호를 보냈다. 아군의 손에 정말로 맞아 죽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고 알렸다.
악마의 머리를 쪼개던 사나운 이빨이 그걸 확인하고 힐끔 이레인을 보았다. 화살을 쏘고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계획된 일, 그것으로 서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쉭, 쉬이익, 쉭!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저 거친 숨소리라 생각했겠지. 그러나 그건 뱀신 모르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이제 뱀신께서 나서실 차례입니다.”
대전사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뱀신 모르나가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 그래, 시작하자꾸나. 막을 올려라!
사나운 이빨은 악마를 내리치던 칼을 비틀어 그대로 이레인에게 휘둘렀다. 정신없이 활시위를 당기던 이레인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