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45
치지직!
쾅!
신성한 번개가 원한을 정화했다.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고 떠돌던 원한이 빠르게 무너졌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았다.
끼야아아악!
귀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몸이 떨리고 정신이 흔들리는 강렬한 정신파가 할퀴고 지나갔다.
바닥에서 진득하게 검은 액체나 솟아나 전사의 모습이 되었다. 때로는 어부였으며, 때로는 상인이었고, 때로는 거지나 왕이기도 했다. 한때 이 땅에 살았던 자들이었다. 이곳에 가득한 원한이 너무 깊어서 생전의 모습을 만든 것이다.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핵심이 되는 영혼은 상당수 비어 있고, 실체를 가질 정도로 짙은 감정과 기억으로 흉내만 낸 것이다.
이성은 없었다. 그저 이곳에 남은 가장 짙은 감정, 원망과 분노, 절망을 가득 담아서 날뛸 뿐이었다.
휘이익!
어디서 창이 날아왔다. 화살이 쏟아졌다. 웬 괴물이 나타나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스걱!
달의 여신 셀룬이 검을 휘두르니 길이 열렸다. 이 땅에서 사라졌던 달빛이 나타나 원한을 밀어냈다.
화르륵!
사브리나가 손을 휘저으니 무수히 많은 화염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본신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몇 개나 되는 대마법을 숨 쉬듯이 펼쳐서 하늘을 뒤덮었다.
쾅!
날아드는 원한의 괴물들을 불태우며 앞으로 달렸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원한의 괴물들이 사브리나의 손짓에 따라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발포드(Valfǫðr:살해당한 자의 아버지)!”
아이반이 옛 노르드의 언어로 된 주문을 읊으니 미친 듯이 달려들던 원한의 괴물들이 움찔 뒤로 물러났다. 한때 이 땅의 가장 영광스럽고 위대한 자였던 오딘의 기운이 그것들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한때는 죽음조차 오딘의 권능에 불과했으니 생각 없이 날뛰던 원한의 괴물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렇게 원한의 괴물을 밀어낸 아이반은 길게 갈라진 얼음 틈새를 가리켰다. 푸르고 검은빛이 도는 크레바스였다.
“저기가 니플헤임의 입구요! 뛰어내리면 되오!”
그러자 검을 크게 휘둘러 원한의 괴물을 수백이나 조각낸 달의 여신 셀룬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깊고 깊은 얼음의 틈새로 끊임없이 떨어져 내렸다.
사브리나도 아이반을 힐끔 보더니 그리로 향했다. 아이반은 그들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자마자 폭풍을 불러 다른 이의 접근을 막고는 따라갔다.
휘이익!
참으로 길고 긴 틈이었다. 체감상 몇 시간쯤은 떨어져 내려서야 끝이 보였다. 미드가르드를 넘어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니플헤임(Niflheimr), 안개의 세계.
그 이름에 어울리는 차갑고 짙은 안개가 그들을 반겼다.
252화 서리 거인
더없이 차갑고 시린 곳이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폐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아이반과 셀룬, 사브리나는 모두 초월자이기에 아무리 추워도 영향을 받을 리가 없건만, 그런 일행들조차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에 몸을 떨었다.
평범한 추위가 아니었다. 태초부터 존재했다는 얼어붙은 땅의 냉기는 그 자체로 법칙이나 다름없어서 초월자조차 피할 수가 없었다.
“마력이 얼어붙고 신력이 둔해진다. 마치 헤르샤스의 얼어붙은 세계를 보는 듯하구나.”
달의 여신 셀룬이 새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말하자 아이반이 동의했다.
“얼추 비슷하군.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는데.”
미쳐 버린 겨울의 신, 악신 헤르샤스가 자신의 신성을 박제하면서 만든 세계가 딱 이러했다. 혹한의 마신과 싸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절로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그나저나 다들 상태는 괜찮소?”
달의 여신 셀룬은 이 땅의 신격이 아니었고,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가진 세계 주권은 이곳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아이반이야 아스가르드의 화신이자 아홉 세계의 후계자이니 니플헤임에서도 그리 꿇릴 것은 없으나, 셀룬과 사브리나는 이계로 넘어온 셈이니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미드가르드에서는 원한의 괴물을 빼면 적이랄 것을 만난 적이 없으니 괜찮았다. 그러나 니플헤임은 그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었다. 초월자라고 마냥 여유로운 땅이 아니었다.
“그럭저럭. 다소 몸이 무겁기는 하나, 아직은 괜찮다. 나도 필멸자부터 격을 쌓은 몸이니 신성의 흐름이 끊어졌다고 해도 아주 나약하지는 않다.”
“드래곤은 어느 세계에서나 가장 강한 생명체다. 문제없노라.”
그 말에 아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당부했다.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위험한 곳이니 절대 방심하지 마시오.”
온 사방이 안개로 가득해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땅이었으나, 길을 찾는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니플헤임에는 열하나의 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헬헤임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꽝이 열 개나 된다는 뜻이지만, 그건 초월자의 감을 믿어 볼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열하나의 강은 모두 하나에서 갈라진 줄기이니 최악의 경우라도 아주 헛걸음은 아니었다. 재수가 더러워도 시간이 걸릴 뿐 어쨌든 찾을 수는 있다는 뜻이다.
“…만만치 않은 기운인데, 저들은 모두 적이겠지?”
한참을 수색하던 일행이 겨우 강줄기를 발견했을 때, 그 근처에 거친 기운이 가득 느껴졌다. 평범한 괴물이라면 우습게 썰어 버릴 셀룬이 미간을 찌푸리며 검을 뽑을 만큼 위험한 놈들이었다.
“이 땅에서 만나는 놈 중에 호의적인 존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오. 여긴 니플헤임이니까.”
직접 보지 않아도 놈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 라그나로크에서 살아남은 요툰의 잔당이겠지.
라그나로크는 거의 양패구상이라 할 만큼 서로 지독한 상처를 입었으나, 결과만 놓고 보면 요툰의 승리였다. 하물며 니플헤임은 위그드라실의 붕괴와 상관없는 땅이니 놈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원래부터 요툰헤임과 함께 서리 거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
예전에 비하면 그 수가 극히 줄어들었겠으나, 아무런 충돌도 없이 지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 과한 기대겠지.
“흐림수르사르(hrímþursar: 서리 거인)는 저쪽 세계의 원시 거인이나 다름없는 자들이오. 본질적으로 이 땅의 신들과 같은 핏줄이지.”
“그래서 위험하니 피해서 움직이자는 말인가?”
“서둘러 대가리를 깨 버리자는 말이었소.”
오랜만에 보는 진짜 요툰이었다. 저쪽 세계의 거인이 아니라 그토록 싸우고 싸웠던 진짜 요툰.
토르가 요툰을 발견하고 얌전히 있을 리가 없었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아이반의 등이 따끔따끔했다.
스읍-
아이반이 숨을 들이켰다. 초월자의 영혼마저 얼어붙게 하는 니플헤임의 냉기가 몰려들다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이반의 전신에 번개가 피어올라 주변을 후려쳤다.
치지직!
쾅!
갑자기 천둥이 울려 퍼지자 서리 거인들이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결코 들릴 리가 없는 소리였고, 다시 느낄 리가 없는 기운이었다.
“토르!”
아이반은 크게 소리치며 묠니르를 집어 던졌다. 천둥 신의 권능을 한껏 머금은 파괴의 망치가 서리 거인의 머리를 후려쳤다.
파각!
단번에 서리 거인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오랜만에 요툰의 대가리를 후릴 수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기쁜지 토르가 과한 힘을 전해 줬기 때문이다.
이제는 묠니르를 자연스럽게 다루는 아이반의 어깨가 뻐근하고 온몸이 저릿할 정도였다. 그 충격파만으로 주변의 안개가 밀려나고 추위조차 사라졌다.
탁!
집어 던졌던 묠니르가 서리 거인의 피를 묻힌 채 돌아와 아이반의 손에 잡혔다. 붉게 달아오른 묠니르가 내뿜는 열기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무쇠 장갑 야른그레이프와 힘의 허리띠 메긴기요르드가 달아오른 묠니르와 공명하며 몸을 떨었다.
하늘을 뒤덮는 천둥과 파괴의 망치. 서리 거인들은 단숨에 공포에 질려서 소리쳤다.
– 묠니르다! 묠니르가 나타났다!
– 토르가 돌아왔다! 천둥 신이 부활했다!
비록 토르의 힘을 쓰고 있었지만, 아이반은 토르가 아니었다. 그러나 서리 거인은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천둥과 묠니르, 그것만으로도 그 강대한 존재들이 마치 정신이 나간 듯이 몸을 떨었다. 감히 대항할 생각조차 못 하고 그저 등을 돌리고 서둘러 도망칠 뿐이었다.
“이건 뭐지?”
온몸이 뻐근할 정도의 기운을 담아 묠니르를 던진 반동으로 몸이 굳어 있던 아이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서리 거인들이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도망칠 줄은 전혀 예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정면으로 싸운다고 해도 당연히 이길 자신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서리 거인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칠 정도는 아니었다. 제법 치열한 싸움을 생각했는데 허무하기까지 했다.
‘토르의 존재가 그렇게 대단했나? 서리 거인들이 정신이 나가서 도망치는 것을 선택할 정도로?’
물론 토르가 강한 것은 알았다. 그 강대한 기운과 위대한 존재감을 항상 느끼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아홉 세계를 통틀어 가장 강한 투신이 아닌가.
그러나 요툰이 느끼는 토르는 그보다 더 대단한 모양이다. 저들은 마치 본능처럼 토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우우웅-
아이반이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으니, 뜨겁게 달아오른 묠니르가 그를 재촉했다. 도망가는 놈들을 추적해 때려죽이라고 소리쳤다.
뒤늦게 그 말을 따라서 놈들을 추격해 죽였으나, 결국 하나는 놓치고 말았다.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등을 돌리고 전속력으로 도망쳤기에 셀룬과 사브리나가 도왔음에도 붙잡을 수가 없었다.
놓친 서리 거인이 아쉬운 듯하면서도 토르는 껄껄 웃었다. 악마니 악신이니, 이상한 것만 때려잡다가 오리지널 요툰을 때려죽이니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직접 손맛을 느끼고 싶었는지 심지어 아스가르드에서 튀어나오려고까지 했으나, 그러지는 못했다. 제대로 위그드라실을 전개한 후에 흘리드스캴프에 앉은 상태가 아니라면 토르가 현신하는 걸 잠시라도 감당할 수 없어서 아이반이 적극적으로 말렸기 때문이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모두 육신을 잃은 허신 상태라서 아이반을 통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