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46
왜 현신하려는 것을 막느냐며 토르가 투덜거렸지만, 아이반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이면 아스가르드 신들이 아직 허신 상태로 있을 리가 없지.
온전히 신성을 보호하며 지상에 남았던 뱀신 모르나조차 스스로 포기했던 육신을 되찾기 위해 대악마의 핵을 비롯해 온갖 재료가 필요했다. 순수하게 신력만으로 신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은 원래라면 불가능하단 뜻이다.
천상의 아홉 신격처럼 멀쩡한 상태라면 화신을 부르거나 아예 차원 문을 열어 강림시킬 수도 있겠지만, 허신의 육신을 만드는 것은 난이도가 달랐다. 아이반이 워낙 특별한 경우라 가능할 뿐이지, 함부로 시도할 수도 없었다.
‘얼마 전에 제멋대로 튀어나와서 바깥 공기 쐬었으면 좀 가만히 계시오. 개지랄 떨어서 기운 다 쪽 빨아먹지 말고.’
요툰의 반응을 보고 토르의 위대함을 깨달을 것 같다가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망치로 대가리 깨는 것밖에 모르는 떼쟁이 애새끼 같으니라고.
치지직!
아이반이 불순한 생각을 하는 것을 눈치챈 토르가 불쾌한 듯 번개를 내뿜으며 항의했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곳에서는 소환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아이반이 그리 되물으니 옛 세계로 넘어온 이후 계속 조용히 있던 오딘이 속삭였다.
– 왜 이곳에 헬헤임이 있고, 죽은 자들이 모이며, 너는 산 자의 몸으로 저승을 가려 하느냐? 니플헤임은 그저 춥기만 한 세계가 아니다. 태초부터 존재한 땅이니 삶과 죽음의 개념보다 앞선 곳이지.
생사가 분명히 나뉘지 않았기에 산 자가 들어올 수 있었고, 망자가 모이는 헬헤임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이곳은 이승이자 저승이니 비록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허신이라도 이 땅에서 만큼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죽은 자가 저승에 있을 뿐이니까.
그러면서도 오딘은 덧붙였다.
– 새로운 아스가르드를 벗어나 완전히 이 땅에 붙잡히면 곤란하니 토르를 막은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러니 조심하라. 진정한 망자의 땅, 헬헤임에 갔을 때는 더욱 조심하라.
오딘은 그런 말을 남기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침묵한 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어쩌면 이 서리 거인들은 라그나로크의 생존자가 아니라 그때 죽은 놈들일 수도 있겠어.’
정말 그렇다면 라그나로크에 목숨을 잃은 그 수많은 서리 거인이 이곳에 가득하다는 뜻인가?
아이반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싶어서 질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쨌든 강을 찾았으니 이걸 따라서 움직여 봅시다. 내 느낌이지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소.”
니플헤임을 가로질러 흐르는 열하나의 강줄기를 엘리바가르(Élivágar: 얼음 파도)라고 불렀다. 그 말대로 얼음보다 더욱 차가운 물결이 세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투명하고 맑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피던 셀룬은 미간을 찌푸리며 훌쩍 뒤로 물러났다. 강물이 지독한 독기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강조차 평범하지 않군.”
“아마 니플헤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흐베르겔미르(Hvergelmir: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샘)에서 흘러나온 강일 거요. 세상 모든 물의 시작되는 곳이지만, 동시에 아주 끔찍한 곳이기도 하지.”
“도대체 어떠하기에…….”
“엄청난 수의 독사가 들끓고, 이쪽 세계의 가장 위험한 드래곤이 살고 있소.”
드래곤이라는 소리에 사브리나가 관심을 보였다. 다른 세계이니 동족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드래곤이 아닌가.
“드래곤이라고?”
“그렇소.”
니드호그(Níðhǫggr), 죽은 자의 육신과 위그드라실의 뿌리를 갉아먹고 산다는 용.
“라그나로크, 종말의 시기에 시체를 등에 지고 날아오른다는 멸망의 용이지. 수많은 독사와 니드호그가 흘리는 독이 강물에 섞여 흐르는 것이오.”
하지만 이미 라그나로크가 끝났으니 어쩌면 지금은 그곳에 없을지도 몰랐다. 예언대로 시체를 싣고 날아올랐다면 어디론가 가 버렸겠지.
“어쨌든 강에 독기가 진하단 것은 그리 나쁜 신호는 아니오. 내가 찾던 강이 바로 이거거든. 바로 찾다니 운이 좋군.”
그리스 신화에 스틱스가 있다면 불교에는 삼도천이 있었고, 노르드 신화에는 굘(Gjǫll: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는)이 있었다. 흐베르겔미르에서 시작되어 니플헤임을 가로질러 헬헤임을 지나가는 강.
일행은 강을 따라 헬헤임으로 향했다. 그사이 토르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누군가는 헛소문이라 일축했으나, 무시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니플헤임이 떠들썩해졌다.
마침내 라그나로크 이후 침묵하던 거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53화 죽음을 바꾸는 대가
굘강을 따라 움직인 일행은 점차 죽음의 땅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망자의 기운이 너무나 짙어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미처 헬헤임에 들어가지 못한 망자들이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헬헤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은 자가 많다는 의미였다.
아이반이 헬헤임을 바라보고 있으니 근처에 앉아 있던 여인이 말을 걸었다.
“낯선 손님들이 찾아왔군요.”
이미 그녀의 존재를 알았기에 아이반은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들은 항상 낯선 법이지. 두 번 죽는 자가 어디에 있겠소?”
“살아 있는 몸으로 죽은 자의 땅을 찾아온 자는 드물지요.”
“하지만 처음은 아니겠지.”
“그렇기도 합니다.”
안색이 창백한 여인의 이름은 모드구드(Móðguðr)였다. 죽은 자들이 헬헤임을 빠져나오는 것을 막는 존재이기도 했다.
“망자가 빠져나오는 것을 막을 의무는 있으나 산 자가 자기 발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의무는 없을 텐데. 혹시 막을 생각이오?”
그 말에 모드구드가 쓴웃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한 번 그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는데 어찌 책임과 의무를 입에 올리겠어요? 이제는 의미도 없이 그저 이곳에 앉아 지켜볼 뿐입니다.”
“그러면 다른 일을 찾아야겠어.”
아이반이 단호하게 말하자 모드구드는 싱긋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공허하기만 했다.
“예전에 누군가 비슷한 이유로 찾아왔으나 결국에는 실패했지요. 하나를 살리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습니다.”
라그나로크의 시작이라는 광명신 발드르의 죽음. 오딘은 아들 헤르모드를 헬헤임으로 보내 발드르를 되살리려 했다. 모드구드는 그걸 말하는 것이다.
“가능할까요?”
“그때 헤르모드는 발드르를 데려가지 못했소. 헬라는 그를 되살리지 않았지. 그래서 발드르는 여전히 헬헤임에 있나?”
아이반이야말로 발드르였다. 그가 바로 종말의 시작이며 창세의 시작이었다. 세상 모든 것의 눈물 없이도 멀쩡히 부활한 발드르가 마침내 세계를 되살리려고 하니 불가능할 리가 없었다.
“부디 뜻을 이루시길 빌겠어요.”
“그리될 거요. 내가 그리 정했으니까.”
아이반은 굘강을 가로질러 헬헤임에 닿은 다리, 걀라르브루(Gjallarbrú)를 건넜다. 그리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휘이잉-
어마어마한 죽음의 기운이 몰아쳤다. 그야말로 세상 모든 죽음이었다. 헬헤임이 바로 앞에 보이건만 쉽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너무나 죽음의 기운이 강해서 살아 있는 몸으로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차갑고, 날카롭고, 무거운 죽음이 그들을 거부했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순식간에 죽음에 물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이반은 허리를 곧게 펴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헬헤임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우웅-
아이반이 신성을 내뿜었다. 등에 새겨진 위그드라실의 문양을 당당히 드러내고, 아스가르드 신들의 힘을 빌렸다.
‘다들 힘 좀 쓰시오. 시작부터 굽힐 수는 없으니.’
그 말에 동의하듯 아스가르드 신들은 기꺼이 힘을 전해 주었다. 다시 돌아온 땅에 창피하지 않도록 위엄을 떨쳤다.
화아아-
아이반의 등 뒤에 거대한 위그드라실이 나타났다.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하늘 끝까지 가지를 펼쳤다. 언제나 춥고 어두운 땅에 빛이 내려왔다. 위그드라실의 잎사귀 사이로 햇볕이 쏟아졌다. 죽음만이 가득한 땅에 온기가 돌았다.
탁!
아이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아스가르드 그 자체가 움직였다. 위대한 신이 돌아왔음을 알리고 세상의 모든 죽음을 마주했다.
오딘, 토르, 프레이, 헤임달, 로키. 수많은 신이 아이반의 뒤에 서서 그를 지지했다. 다른 곳이었다면 단 하나도 온전히 소환할 수 없었겠지만, 이곳이 죽음의 세계이기에 아스가르드 신들의 존재감이 더욱 선명했다.
자아를 잃어버리고 정신이 나간 상태로 그저 헬헤임의 주위를 돌던 망자들이 몸을 떨었다. 눈빛이 돌아왔다. 그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위그드라실을 보면서 소리쳤다.
– 위그드라실이다!
– 오딘께서 돌아오셨다!
– 토르의 천둥이 함께한다!
이성과 감정을 잊고 멍하니 방황하던 망자가 눈물을 흘렸다. 불타버린 위그드라실을 다시 봤기에 감격했고, 사라졌던 신들이 돌아온 것을 환호했다.
세상 모든 죽음이 길을 열었다. 너무나 거칠고 무거워서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이 무너졌다.
아이반은 짐짓 오만한 표정으로 걸었다. 그가 당당한 태도를 보일수록 주변에 가득한 죽음이 고개를 숙였다.
아홉 세계의 후계자이자 아스가르드의 화신이었다. 한때 오딘이 앉았던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의 주인이었다.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 무거운 죽음의 무게를 견디고 아이반이 헬헤임의 문을 넘었다. 그러자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깔끔한 차림의 하인과 하녀였다. 그러나 아주 창백하고 초췌해서 산 자의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