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50
그래야 내 발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테니.
256화 그 힘을 안다면
토르가 묠니르를 꺼내 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니 모든 요툰이 움찔 몸을 떨었다. 무심코 뒷걸음질을 쳤다. 수십의 초월자, 수만의 병사가 그 기세에 밀리고 있었다.
토르가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처리하기 위해 모였건만, 실제로 마주하니 자신감과 분노는 사그라지고 두려움이 차올랐다.
토르가 돌아왔다. 마침내 토르가 돌아왔다. 결국은 돌아오고 말았다.
천둥신 토르가 앞에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수문장 헤임달이 있었고, 멸망의 순간 수르트와 싸운 프레이가 있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돌아온 것을 후회하라!”
요툰 중에서도 특히 거대한 덩치를 가진 녀석이 두려움을 떨치듯 그리 소리쳤다. 가장 거대한 기둥보다 더욱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토르를 노려보았다.
“패배자가 돌아온다고 뭐가 달라……!”
쾅!
호기롭게 소리치던 녀석의 상반신이 사라졌다. 터져 나간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핏물은 비가 되어 쏟아졌다. 산산이 부서져 날카로운 뼛조각이 다른 녀석들의 피부를 찢었다.
탁!
요툰 초월자 하나를 터트려 버린 묠니르가 토르의 손으로 돌아왔다. 묠니르가 뜨겁게 달아올라 거기에 묻은 핏물이 부글부글 끓다가 증발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손맛이 너무나 즐거워 토르가 껄껄 웃었다.
“나는 입으로 싸우는 법은 알지 못한다.”
우르르, 쾅!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천둥이 몰아쳤다.
천둥신 토르가 다시 움직였다. 천둥에 몸을 맡기고 앞으로 나아갔다. 무언가 번쩍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수백 명의 요툰이 피 묻은 고깃덩이가 되어 쓰러졌다.
“죽여라! 토르를 죽여라!”
요툰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각자 품고 있는 마력을 내뿜고, 숨겨진 권능을 토해 내며 토르를 공격했다.
우웅-
공간이 일렁이며 수백 가지 마력이 뒤섞여 날아왔다. 지독하게 날카로운 얼음 칼날과 시선을 가리는 환영, 산을 능히 부술 수 있는 도끼질이었다.
토르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위험한 마력을 향해 달려들며 망치를 휘둘렀다.
“묠니르!”
아스가르드 최강의 투신이 최강의 무기를 들고 싸움을 시작했다. 수십의 초월자, 수만의 병사. 그 모두가 요툰이었으니 실로 막강한 병력이었지만 천둥신 토르는 망설이지 않았다.
치지직!
쾅!
묠니르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백의 적이 쓰러졌다. 초월자조차 피를 뿜으며 저 멀리 날아갔다.
토르는 대신격 중의 대신격이었다. 단순히 힘만 놓고 본다면 그와 비견될 자는 아홉 세계를 통틀어도 셋이 넘지 않으리라.
라그나로크의 끝에 모든 것을 불태웠던 엘드요트나르(eldjötnar: 불의 거인) 수르트조차 토르와 직접 맞붙었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다.
비록 요르문간드의 독에 목숨을 잃었으나, 그건 상성의 문제일 뿐 토르의 강함을 깎아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요르문간드를 찢어 버리고서야 숨을 거뒀으니 토르는 그 길고 긴 삶을 통틀어서 단 한 번도 진정으로 패배한 적이 없었다.
아스가르드 최강의 투신, 아홉 세계 최강의 전사.
그리 불리는 것은 직접 세상을 만든 오딘이 아니라, 전쟁과 전투의 신인 티르가 아니라 천둥신 토르였다.
전투의 신격을 지니지 않았음에도 가장 뛰어난 전사이며, 전쟁의 신격을 지니지 않았음에도 가장 빛나는 자였다. 그건 오로지 강인한 육신과 튼튼한 망치 하나로 이룬 업적이었다.
“내가 바로 토르다!”
쾅!
하늘에서 큼지막한 번개가 수십 개나 뻗어 나와 땅을 후려쳤다. 마치 빛의 기둥이 떨어진 듯 온 사방을 환하게 비추고 사악한 자들을 불태웠다.
요툰은 감히 버틸 수가 없었다. 태산을 부술 힘을 가지고 있든, 초월자의 격이 있든 상관없이 천둥은 공평하게 휩쓸고 지나갔다.
꽈아악!
토르가 날뛰는 와중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요툰 하나가 그의 발을 붙잡았다. 반쯤 짓뭉개진 육신으로 겨우 기어와 떨리는 손으로 토르를 막아섰다.
그 모습을 본 토르가 껄껄 웃었다. 진정으로 용맹한 전사를 치하했다.
“이것이 전투다! 이것이 전쟁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싸워라! 투지를 불태워라!”
그리고 자신의 열 배는 족히 될 법한 덩치의 요툰을 발로 차서 저 멀리 날렸다. 잠시나마 발을 붙잡은 그 투지에 감격하여 더욱 뜨겁게 묠니르를 휘둘렀다.
초월자 요툰 열둘이 다 같이 덤벼들어 토르를 공격했으나 밀려나는 것은 요툰이었다. 요툰이 큼지막한 주먹을 휘둘러 찍어 눌러도 토르는 한 손으로 가볍게 그걸 막았다. 덩치 차이가 무색하게 토르의 힘이 훨씬 강했다.
토르의 강함에 질린 요툰이 그를 피해 일행을 노렸다. 세상을 조각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도끼를 들어 내리쳤다.
“죽어라!”
그러나 그 도끼는 허무하게 가로막혔다. 스스로 움직여 거인을 쓰러뜨리는 프레이의 검이 녀석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핏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주변을 적셨다.
프레이는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고 있었으나 그의 검은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덤벼드는 요툰을 베었다. 두꺼운 거인의 가죽을 종잇장처럼 가르고, 단단한 뼈를 풀잎보다 쉽게 꺾었다.
그사이 헤임달도 움직였다. 저 멀리 자라나는 봄의 새싹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예민한 청각과, 세상의 끝에서 끝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시각을 피할 수 있는 적은 아무도 없었다.
비프로스트 다리 앞에서 아스가르드를 수호하는 헤임달은 지키는 것이라면 그 모든 아스가르드 신 중에서 최고였다. 그가 바닥에 선을 긋고 그 앞에 서 있으니 어떤 요툰도 그를 넘을 수 없었다.
토르, 프레이, 헤임달. 단 셋이서 그 많은 적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마지막을 예상하던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 오롯한 정신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이게 뭐지? 이리도 강했단 말이냐?”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시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자신의 세계를 말아먹고 허신의 상태로 겨우 도망친 자들이니 대단하다고 해 봐야 얼마나 대단할까 속으로 생각한 것이다.
천상의 아홉 신격과 오크 투신 타르칸이 이끄는 녹색 만신전, 세상을 노리는 악신들과 마계의 악마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훌륭한 변수는 될 수 있어도 핵심적인 역할은 하지 못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 같았다.
입을 다물고 한참이나 세 신격의 싸움을 지켜보던 달의 여신 셀룬이 툭 내뱉었다.
“우리 세계가 운이 좋았구나.”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아홉 세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곳이었다. 만약 이들과 정면으로 싸우려면 세계의 모든 힘이 온전히 모여야만 했다.
이들이 허신이라서 다행이었다. 아이반이 제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세상의 적에 맞서 함께 싸우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들은 어쩌면 세상을 노리는 악신들보다, 마계의 악마들보다 더욱 위험한 적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과 다른 관계로 만났다면 틀림없이 그러했다.
“헛된 가정이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만약 그 세계를 침공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세계가 받아들이지 않았을 테니까.”
아홉 세계의 후계자, 아스가르드의 화신, 새로운 위그드라실.
아이반은 이제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어떻게 저쪽 세계로 도망칠 수 있었는지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어째서 이리도 강한 힘을 지닌 자들을 세계가 받아들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결코 저쪽 세상을 지배하지 못한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저 세계를 노린다면 지키기 위해 도움을 줘야만 했다. 애초에 그런 계약이 있었다.
아마도 세계의 의지와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천상의 아홉 신격, 아스가르드 신들이 맺은 약속이겠지.
‘왜 말하지 않았소?’
아이반이 발할라를 바라보며 물으니 오딘이 낮게 대답했다.
– 중요하지 않다 여겼다. 그 계약 또한 너에겐 의미가 없으니.
아이반은 특이점이었다. 모든 운명의 영향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 그거 아스가르드의 대표가 되었으니 옛 계약조차 무시하려면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 저들은 설마 한낱 필멸자에게 모든 운명을 맡길 줄은 몰랐으리라. 내가 너를 후계로 삼으리란 것은 알지 못했으리라.
아무리 운명에서 자유로운 특이점이라 해도 설마 한낱 필멸자에게, 장난감처럼 다루던 자에게 아스가르드가 모든 것을 넘길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아이반이 각성하여 황금 옥좌에 앉으니 천상도 제법 난감한 일이었겠지. 혹시나 그가 돌아서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상이 최근에 은밀히 거리를 두는 것이 그런 이유였군. 예전처럼 살갑지는 않더라니.’
– 그래서 정녕 관심이 없느냐? 진실로 지배하고자 하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을.
‘개소리하지 마시오. 그러려고 지금껏 개고생하지는 않았으니. 아홉 세계가 부활하면 그걸로 충분한데 무엇을 또 욕심낸단 말이오?’
– 그리 결정했다면 그리 행동하라. 이제 아홉 세계는 너의 것이니.
오딘은 그리 마무리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폐허가 된 세계를 어찌 되돌릴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이미 요툰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탁!
아이반은 피 냄새 가득한 나스트론드를 건너 앞으로 향했다. 그 많은 요툰이 모두 죽거나 쓰러졌고, 헤임달과 프레이, 토르가 몇몇 우두머리를 붙잡아 무릎 꿇렸다.
작은 동산만 한 크기의 요툰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상태로도 기세가 죽지 않았다. 분노에 몸을 떨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이반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녀석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는 것조차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요트나르도, 애시르도, 바니르도 아니군. 인간 하나와 이계의 신, 드래곤이라. 허, 천하의 토르가 이런 놈들을 섬기나? 이계로 다급히 도망가더니 이런 꼴이 되었어?”
요툰이 그리 비아냥거리자 토르가 피식 웃더니 묠니르를 녀석의 머리 위에 얹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