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51
치이익!
조금 전까지 요툰을 때려죽이느라 붉게 달아오른 묠니르가 녀석의 살을 태웠다. 게다가 토르의 묠니르는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힘이 센 그조차 힘의 허리띠 메긴기요르드가 없이는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으니 단지 올려놓는 것만으로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아아악!”
요툰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자 토르가 묠니르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헛소리하지 말고 물음에 답하라. 나는 인내심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렇게 요툰의 기를 꺾어 놓은 토르가 바라보자 아이반이 나섰다.
“너희는 뭐하는 놈들이지? 이렇게 쉽게 모일 놈들이 아닌데.”
아이반은 그동안 요툰에 관해서 들은 것이 많았다. 그래서 이들이 쉽게 무리 지어 움직이는 자들이 아님을 알았다. 하물며 수십이나 되는 초월자, 수만이나 되는 병사는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것이다.
라그나로크 때조차 이런 병력을 다루기는 쉽지 않았다. 그저 돌아온 토르를 죽이기 위해서 모였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수가 많았고, 또 체계적이었다.
“누구의 명이냐? 누가 너희를 보냈나?”
“흐, 이 내가 누군가의 명을 받을 것 같으냐? 증오스러운 놈들을 죽이기 위해 모였을 뿐이다!”
아이반은 그리 소리치는 요툰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사능게탈(Sanngetall: 진실을 찾는 자).”
아이반의 황금 눈이 요툰의 눈을 통해 영혼을 바라보았다. 그의 옛 기억을 더듬었다. 초월자의 정신에 간섭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으나, 토르와 프레이, 헤임달이 요툰을 짓누르니 정신의 틈이 보였다.
한참이나 녀석의 머릿속을 뒤적거리던 아이반이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음습한 모략, 이 빌어먹을 새끼.”
257화 빛의 인도자
아이반이 노르드 출신이라는 건 예전부터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아스가르드의 화신이며 아홉 세계의 후계자, 오딘의 뒤를 이어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 역시 비밀은 아니었다.
그동안 아이반이 사사건건 방해를 했으니 대악마 음습한 모략이 아홉 세계에 관심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모략이야말로 녀석의 정체성이니 당연히 손을 뻗었을 것이다.
“요툰을 이용해 아스가르드를 견제하려는 거요. 예상치 못한 일격을 얻어맞은 셈이군.”
아이반이 뱀신 모르나와 투신 바르투이, 동물신들을 심었다면, 음습한 모략은 요툰을 회유했다. 서로 보이지 않는 무기를 은밀하게 상대의 목에 밀어 넣고 있었다.
“역시 만만한 놈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녀석만 후려치고 있었다면 어느새 뒤통수가 깨졌겠지. 모략 하나로 대악마가 된 녀석의 솜씨답구나.”
달의 여신 셀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 역시 용사로 한창 활동하던 때에 온갖 음모와 비열한 수작을 경험했지만 이처럼 치열하고 섬뜩한 수 싸움은 아니었다.
잠깐 방심하면 어디서 튀어나오는 것인지도 모를 칼날이 등을 쑤실 것처럼 섬뜩했다. 한발 앞서가는 것 같았는데, 그런 것이 또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파각!
붙잡힌 요툰의 머리를 깨 버린 토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덤벼드는 놈은 때려죽이면 된다. 숨어 있는 녀석은 밟아 죽이면 된다. 무엇을 그리 고민하느냐?”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면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아이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인제 그만 돌아가시오. 밖에 오래 나와 있으면 이 땅에 사로잡힐 수가 있으니.”
“이깟 땅이 나를 붙잡을 수 있으리라 여기느냐?”
“아마 요르문간드를 때려죽일 때도 이깟 독에 쓰러지겠느냐고 소리쳤겠지. 그래서 멀쩡했소?”
그 말에 토르의 기분이 확 나빠진 모양이다. 근육이 꿈틀거리고 손에 든 묠니르가 움찔거렸다. 금방이라도 난리 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반이 빤히 바라보니 토르가 묠니르를 집어넣었다. 아직 그의 눈에 영 부족하기만 했지만 어쨌든 아이반은 아홉 세계의 후계자이며 아스가르드의 화신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니 마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쯧, 어서 빨리 전쟁이 시작되었으면 좋겠군. 영 감질나서 못 견디겠어.”
토르가 짐짓 아쉬운 마음을 털어 내며 아스가르드로 돌아갔다. 그러자 혹시나 그가 날뛰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반의 곁에 붙어 있던 헤임달이 긴장을 풀었다.
“예전 토르라면 참지 않았을 텐데, 그도 많이 변했구려.”
토르가 술 먹고 깽판 치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오딘이 말려도 안 듣는 것이 토르였는데, 라그나로크를 겪고 시간이 흐르니 그 더러운 성질머리도 조금은 줄어든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나 토르가 날뛰었으면 어쩌려고 했소?”
그 말에 아이반이 담담하게 답했다.
“이제 나는 토르의 전사가 아니라 흘리드스캴프의 주인이오. 힘이 강하고 성질이 더럽다고 내가 함부로 굽힐 수는 없지.”
옳은 말이었다. 그러라고 아스가르드 신들이 아이반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니까. 아홉 세계의 후계자라면, 아스가르드의 화신이라면 능히 그런 배짱이 필요했다.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은 헤임달이 아이반에게 말했다.
“힘은 부족해도 자격은 충분하니 오딘께서 어찌하여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있겠소. 과연 발드르, 세상 모든 이들이 사랑하는 신이군.”
헤임달은 옛 발드르를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이들이 사랑했던 가장 아름답고 정의로웠던 신.
비록 그는 죽었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렇게 훌륭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그저 즐겁기만 했다.
헤임달은 아스가르드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조언을 남겼다.
“대악마의 수작이 아무리 간악하다 할지라도 아홉 세계를 녀석이 쥐고 흔들 수는 없소. 그러기에는 녀석이 너무 나약하니까.”
그는 초점이 흐릿하여 눈빛이 선명하지 않았는데, 그건 동시에 아홉 세계 전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그가 온전한 비프로스트 다리를 지키고 있었을 때는 아홉 세계의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비록 아홉 세계가 무너지고 갈기갈기 찢겨 온전치 못한 상태이고, 헤임달 역시 허신이 되어 예전의 힘을 발휘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보이고 들리는 것이 있었다.
“요툰이 모두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것은 아니오. 생각 있는 자들은 녀석과 손을 잡지 않았지. 악마의 수작을 털어 내려면, 그들을 찾아가시오. 방법은 로키가 알 테니 그의 도움을 받고.”
토르에 이어 헤임달과 프레이마저 아스가르드로 돌아가자 아이반의 등을 뜨겁게 달구던 위그드라실의 문양이 사라졌다. 아이반은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버려서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겨우 자세를 바로잡았다.
“후우, 일단 헬헤임으로 갑시다. 혹시 다른 요툰이 몰려들기 전에 움직여야겠소.”
수십의 초월자, 수만의 병사가 사라졌는데 금방 그들을 추격할 병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잔뜩 경계했으나 그래도 제법 안전하게 헬헤임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여신 헬의 궁전 엘류드니르에 도착하니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죽은 자의 땅이 이리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우습기까지 했다.
엘류드니르에 남아 있던 로키가 일행을 반기면서 낄낄 웃었다.
“산책치고는 제법 힘들었지? 요툰이 제법 몰려갔을 텐데.”
사실 로키도 허신이니 오랫동안 이 땅에 있으면 위험했으나, 그는 세계를 속이는 권능을 가졌기에 제법 긴 시간을 머물러도 이 땅에 사로잡힐 일이 없다고 했다. 토르가 불공평하다며 소리쳤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요툰이 움직이는 것을 알고 있었소? 그게 악마의 수작이라는 것도?”
“그게 이상한 일인가? 내가 악마라도 그렇게 했을 텐데, 뭐. 아니, 헬헤임을 아예 점령했겠지. 그러지 못한 것을 보면 대악마는 아직 멀었군. 쯧쯧, 마음이 여린가?”
빡대가리가 아니면 당연히 그 정도는 예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능글맞게 웃는 로키를 후려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아이반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음습한 모략의 수작을 털어 낼 방법도 알겠군. 헤임달이 그대의 도움을 받으라 했소.”
“으흠, 헤임달이······.”
이번에는 로키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아무리 옛 악연을 모두 잊고 새롭게 살겠다고 다짐해도 헤임달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로키와 헤임달은 아주 오래된 악연이었다. 헤임달은 로키가 처음 아스가르드에 왔을 때부터 그를 경계했고, 사고를 치고 도망가는 로키를 붙잡은 것이 여러 번이었다.
결국, 라그나로크가 일어나자 둘이 싸우다가 상대의 가슴에 머리를 처박고 동시에 숨이 끊어졌으니 참으로 질긴 악연이었다.
“그건 나보다 다른 자가 더 도움이 될 것 같군.”
“헤임달의 추천이라고 피하는 것이오?”
“설마! 나는 그저 그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뿐이야.”
그러면서 로키는 일행의 일처리가 얼마나 어설펐는지 지적했다. 아이반이 난쟁이에게 남긴 말이 새어나가 이미 헬헤임이 떠들썩하다는 것이다.
발드르가 돌아왔으니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라그나로크에 죽은 자들이 모두 되살아나 새로운 세상으로 갈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함부로 떠들 말이 아니야. 아직 헬라가 마음을 정하지 않았는데 죽은 자가 어찌 함부로 새로운 삶을 논할 수 있을까?”
로키는 일행이 떠난 사이 그 소문을 진정시켰다고 했다. 소란스러운 헬헤임을 정리했다며 혀를 찼다.
“그게 새어 나갔군. 완전히 비밀 유지가 될 것이라 여기진 않았으나 생각보다 더 커다란 일이었던 모양이야.”
“죽은 자들이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을 어찌 흘려듣겠나? 멸망한 세상이 부활한다는데 어찌 무시하겠어? 하물며 그게 발드르라면, 오래전 예언된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라면 모두가 당연한 듯 반길 수밖에.”
그래서 로키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이 헬헤임에 남아 뒤처리를 하고 혹시 헬라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정말 그 이유 때문인지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아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누굴 추천하려고 하시오? 괜찮은 자가 있소?”
“토르의 시종이 괜찮지. 라그나로크 때 죽고 어디로 갔나 했더니 이곳에 있더라고. 내가 찾았어.”
“샬피? 그가 헬헤임을 벗어나는 것을 헬라가 눈감아 주겠소?”
“이미 난쟁이들도 빼돌릴 생각이면서 뭘 새삼스레. 하나 정도야 상관없겠지.”
아이반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로키가 손을 휘저어 일행을 내쫓았다. 조금 전까지 엘류드미르 안에 있었는데 어느새 길바닥에 멀뚱히 서 있었다. 초월자가 셋이나 되는데 도대체 언제 마법을 사용했는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새로운 시대의 주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인사했다. 아이반은 그가 바로 토르의 시종, 샬피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