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54
“니드호그는 이곳을 통해 아홉 세계를 떠났다. 그러니 녀석을 불러오려면 응당 이곳으로 와야지.”
“그렇군.”
아이반은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부서진 하늘을 살폈다. 이제 저 너머에 보이는 세계가 무엇인지 알았다.
니다푤은 난쟁이들의 세계, 니다벨리르의 신드리 일족이 사는 궁전의 지하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 저 위의 세계가 바로 니다벨리르, 그러니까 스바르트알파헤임이라는 소리였다.
니드호그는 니플헤임에서 스바르트알파헤임을 거쳐 마계로 떠난 모양이다. 갈기갈기 찢긴 하늘의 풍경이 영 스산하게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던 샬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덕 있는 자들이 살 장소치고는 영 불길하군요.”
니다푤은 라그나로크가 끝난 후에 덕 있는 자들이 살 것이라 예언된 장소이기도 했다.
니플헤임의 가장 척박하고 불길한 산맥이 덕 있는 자들의 장소라니, 평생을 타인을 위해 살았으니 죽어서도 가장 힘든 곳에서 봉사하라는 뜻이었다.
역시 배신과 음모, 협잡이 미덕인 곳이었다. 이게 노르드식 배려지.
니드호그가 다른 세계를 내버려두고 마계로 향한 이유를 알았다. 아마 고향처럼 익숙하고 편안했으리라. 사방에 악마가 가득하다고 해도 이곳만 할까.
마계는 아홉 세계와 자매결연을 하고 정기적으로 악마 연수교육을 보냈어야만 했다. 그랬으면 이미 세계 정복해서 고혈을 쥐어짜고 있을 텐데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 이 멍청한 새끼는 그걸 몰랐네.
아홉 세계를 부활시키는 일에 잠시 회의감을 느낀 아이반은 애써 그 감정을 털어 버리고 우트가르다 로키를 바라보았다.
“일단 여기까지 오기는 했소만, 어떻게 니드호그를 불러온다는 말이오? 이미 아홉 세계를 떠났으니 녀석을 부르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세상이 찢어져 구멍이 생겼으니, 그 틈으로 녀석을 유혹하겠다. 아주 미약한 기운이라도 일단 녀석이 있는 세계에 닿으면, 니드호그는 외면할 수 없을 거다.”
우트가르다 로키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소리치고는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마치 기둥처럼 거대한 지팡이가 박히자 니드푤이 흔들렸다.
쿵!
굉음과 함께 공간이 쩍 갈라지며 무언가를 토해냈다. 우트가르다 로키가 말한 미끼가 니드푤에 나타났다.
아주 새하얀 수리였다. 거대한 산맥 일부분을 가릴 만큼 커다란 수리였다. 흐레스벨그, 니드호그의 숙적이라 알려진 요툰의 시체가 틀림없었다.
“이걸 대체 어디서……!”
아이반이 깜짝 놀라 소리치자 우트가르다 로키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라그나로크의 끝에 흐레스벨그의 시체를 발견했다. 어째서인지 녀석은 죽고도 니플헤임에 오지 못하였기에 내가 그것을 수습해 보관하고 있었다.”
비록 라타토스크의 이간질로 생긴 원한이었으나, 니드호그의 분노는 진심이었다. 흐레스벨그의 기운을 느낀다면 녀석이 외면할 리가 없었다.
“이것으로 니드호그를 유혹하겠다. 녀석을 머나먼 세계에서 이곳으로 불러오겠다. 그러니 그대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라.”
지금이라도 물러날 기회를 주겠다는 듯 우트가르다 로키가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을 본 아이반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찾아갈 수고를 덜었으니 다행이군. 얼른 녀석이나 부르시오.”
그러자 우트가르다 로키는 끌끌 웃으며 주문을 읊었다. 마법진을 그리고 차원의 문을 열어 니드호그를 유혹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사흘째가 되던 날 찢어진 하늘을 가리는 어둠이 나타났다. 세상이 비명을 지르는 듯 굉음이 울리고, 붉은 번개가 몰아쳤다.
시체 냄새가 퍼졌다. 지독한 독기가 니다푤을 물들였다. 세상 가장 불길한 숨결이 스치고, 진득한 공포가 밀려왔다.
마침내 멸망의 용이 고개를 내밀었다. 녀석의 붉고 노란 눈동자가 그들을 보았다.
260화 숙적
‘저런 걸 잡으라고? 로키, 이 개자식!’
멸망의 용을 마주한 아이반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일단 덩치부터가 그동안 봤던 드래곤의 몇 배는 될 정도로 컸고, 품은 기운이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대단했다.
웬만한 대신격은 한입에 꿀꺽 삼킬 것 같았다. 저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로 으적으적 씹으면 신이라 해도 견딜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과연 멸망의 용이었다. 신화에 자신의 이름을 공포로 새긴 끔찍한 존재였다. 흘러나오는 존재감만으로 아이반의 몸이 떨렸다.
옆을 힐끗 보니 요툰 군주 우트가르다 로키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그가 자랑하는 환술로 몸을 숨기고 멀리서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겠지.
고오오오-
니드호그가 그 거대한 덩치로 세상을 넘어 니다푤에 내려앉았다. 시체 냄새 가득한 날개를 활짝 펴 하늘을 가리고 아이반을 보았다.
숙적 흐레스벨그의 시체와 그 앞에 있는 조그마한 자들.
니드호그의 크고 사악한 눈이 얇게 찢어졌다. 치솟는 의심으로 물었다.
– 너희는 무엇이냐? 나에게 공물을 바치고자 하는 것이냐?
산맥조차 능히 으깨 버릴 수 있는 발톱으로 흐레스벨그의 시체를 쥐었다. 니드호그의 발톱이 살을 파고들자 분명 한참 전에 죽었을 녀석의 시체에서 뜨끈뜨끈한 피가 흘러나왔다.
피에 섞인 신성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거짓도 환상도 아니었다. 한때 위그드라실의 꼭대기에 있었던 흐레스벨그가 분명했다.
“나는 아이반 에시르손, 아홉 세계의 후계자이며 아스가르드의 화신, 흘리드스캴프의 주인이다!”
아이반이 그리 소리치자 니드호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위그드라실이 불타고 무너져 아홉 세계를 떠났지만, 관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 파멸을 막아선다는 멍청한 자가 바로 너였구나. 그러나 가진 힘에 비해 과한 이름이로다.
“오딘이 이미르를 죽여 세상을 만든 것처럼, 나는 너를 죽여 아홉 세계를 부활시키겠다.”
– 멸망한 세계의 찌꺼기 같은 힘으로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냐?
“그렇다! 나야말로 모든 가능성이며 세상의 씨앗이니!”
우트가르다 로키가 니드호그를 부르기 위해 며칠씩 마법진을 그리고 주문을 읊는 동안 아이반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니다푤 전체를 함정으로 삼아 수십, 수백 가지 마법을 새겨 넣었다.
마법의 신 오딘의 비밀스럽고 강력한 지식을 이어받은 것이 아이반이었다. 그와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 달의 여신 셀룬이 함께 준비한 것이니 대마법사 우트가르다 로키가 감탄할 정도의 마법이 쏟아졌다.
니드호그와 대화하는 사이 은밀히 마력을 움직인 아이반이 순식간에 마법진을 활성화하고 준비한 것들을 토해 냈다.
니다푤이 빛을 뿜었다. 짧은 시간 빼곡하게 새긴 마법진에서 빛이 흘러나와 사방을 환하게 밝혔다.
차라락!
마법진에서 솟구친 쇠사슬이 니드호그의 육신을 붙잡아 땅으로 끌어당겼다. 하늘에 거대한 말뚝이 생겨 녀석을 짓눌렀다. 아군의 몸은 가벼워지고, 적의 몸은 무거워졌다.
영혼마저 시린 니플헤임의 추위가 사라지고, 부드럽고 따스한 바람이 불었다. 불길한 마력과 짙은 독기는 녹아내렸다. 신성한 빛의 기둥이 솟아올라 니다푤을 성지로 만들었다.
태양조차 제대로 닿지 못해 낮에도 희뿌연 빛만 뿌리던 하늘이 깨끗해졌다. 찢어지고 갈라진 하늘 너머로 선명한 달이 떠올라 이곳을 비췄다.
아스가르드의 화신, 아홉 세계의 후계자가 긍정하자 이계의 여신이 멀어진 달의 신성을 되찾았다. 이 땅에서도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계의 창조주가 남긴 화신이자 분신,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 역시 세상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비록 찢어지고 갈라져 파편밖에 남지 않은 세상이었으나 그렇게 흘러들어 오는 힘만으로 온몸이 충만해졌다.
직접 위그드라실을 심어 세상을 만든 위대한 창조주의 후계자가 인정하니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는 이곳에서도 세계의 조율자였다.
아홉 세계는 무너졌으나, 이 세상은 여전히 아스가르드의 것이었다. 직접 위그드라실을 심고 가꾼 오딘의 것이었고, 그의 뒤를 이은 아이반의 것이었다.
아이반은 자신이 가진 세계주권으로 세상에 명령했다. 자신을 도와 적을 물리칠 것을 지시했다.
위그드라실이 심어지기 전부터, 오딘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니플헤임이 그 명령에 복종했다. 그건 니플헤임이 여전히 아홉 세계의 하나라는 의미였다.
끼이이익!
찢어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니드호그의 육신이 흔들렸다. 아주 오랜 세월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살았던 니드호그를 니플헤임이 거부하고 있었다.
이 세계의 모든 땅이 녀석을 밀어냈다. 스치는 바람마저 녀석을 피했고, 한 호흡을 들이쉬기조차 쉽지 않았다. 공기는 녀석의 숨결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세상 모든 것이 니드호그를 적대하고 있었다. 아주 오랜 세월 살았던 고향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보며 니드호그가 크게 웃었다.
– 같잖은 수작이구나!
뚜두둑!
니드호그가 불길한 마력을 뿌리며 일어났다. 녀석을 붙잡았던 사슬이 어이없이 끊어지고, 녀석을 짓눌렀던 모든 것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세상 모든 것이 적대하고 있음에도 니드호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평생 아군은 없었고,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으니 지금껏 살아온 삶과 다를 것도 없었다.
– 너희가 날 거부한다고 해도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쾅!
지난 며칠간 일행이 준비한 마법이 우습게 무너졌다. 신을 능히 붙잡을 수 있는 함정이 니드호그의 날갯짓 한 번에 날아갔다.
쉬이익!
아이반은 인벤토리에서 수십 개의 창을 꺼내 일제히 쏘아 보냈다. 단 하나로 범선을 침몰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품고 있었으나 니드호그의 가죽을 꿰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멸망의 용은 지독하게 강력한 마법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두껍고 질긴 가죽은 그 어떤 날카로운 검조차 쉬이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했다.
다른 무엇도 필요 없이 그저 육신만 있어도 녀석은 괴물이었다. 세상의 끝을 기다리는 존재다웠다.
쿵!
니드호그가 앞발을 내리찍으니 니다푤이 흔들렸다. 그 거대한 산맥이 내려앉았다. 땅이 쩍쩍 갈라지고 무너졌다.
“묠니르!”
흔들리는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아이반이 소리치자 우렁찬 천둥소리와 함께 파괴의 망치가 움직였다. 번개를 휘감고 붉게 달아오른 채 니드호그를 후려쳤다.
치지직!
쾅!
녀석의 튼튼한 가죽도 묠니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니드호그의 거대한 육신이 흔들리고 녀석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러나 니드호그는 오히려 비웃듯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