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56
스으윽!
바닥에 내려온 니드호그가 휙 몸을 비틀었다. 녀석의 큼지막한 꼬리가 움직이며 땅을 갈아 버렸다. 그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민첩했다. 범위가 너무 넓어서 아이반이 천둥 걸음으로 물러났음에도 미처 벗어나지 못하고 얻어맞을 정도였다.
쾅!
일격에 능히 산을 부술 수 있는 공격이었다. 아이반은 그 짧은 순간 몇 개나 되는 방어막을 만들고, 인벤토리에서 가장 튼튼한 방패를 꺼내 막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커억!”
한참을 날아가 몸으로 봉우리를 부수고서야 멈췄다.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팠다. 입에서는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시야조차 벌건 것이 피눈물이 분명했고, 귀가 먹먹한 것이 고막이 터졌음이 확실했다.
아이반이 짓눌린 고깃덩이가 되지 않고, 사지가 온전히 붙어 있는 것은 그의 육신이 웬만한 거인보다 튼튼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그렇게 튼튼한 육신으로도 한 번에 이 모양이 될 만큼 강렬한 공격이었다.
화아아-
아이반의 등에 새겨진 위그드라실의 문양에서 청춘의 여신 이둔의 힘이 흘러나왔다. 신의 노화를 막는 황금 사과의 터질 듯한 생명력이 엉망이 된 아이반의 육신을 빠르게 치유했다.
흔들리던 시야가 바로잡히고, 부서진 갈비뼈와 으스러진 팔다리가 원래의 형상을 되찾았다. 아직도 온몸이 삐걱거리지만 조금씩 회복되었다.
온몸을 내리누르고 있는 흙더미와 바위를 밀어내고 아이반이 일어났다. 피에 젖어 흔들리는 머리칼을 넘기고 저 멀리 니드호그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흐레스벨그를 짓뭉개고 달의 여신 셀룬을 튕겨 냈다. 그사이 사브리나도 당했는지 날개 하나 없는 화염 드래곤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거 이길 수 있나? 가능한 일인가?’
니드호그는 지독하게 강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아무리 녀석의 몸을 찢고 베어도 제대로 공격이 먹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기껏 상처를 만들어도 호흡 한 번에 멀쩡히 몸을 회복하고 그대로 몰아쳤다.
이곳은 이계라 셀룬과 사브리나가 온전히 초월자의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아이반이 가진 세계주권으로 그들을 아홉 세계의 초월자로 받아들여도 일순간일 뿐, 니드호그가 힘을 내뿜으면 임시로 만든 연결이 끊어져 나갔다.
기본적인 힘의 격차가 너무 심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소환한다면 몰라도,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불러야 하나?’
하지만 그래서야 싸우는 의미가 없었다. 토르가 나타나 녀석을 죽인다면, 오딘이 등장해 녀석을 쓰러뜨린다면 그건 토르와 오딘의 업적이지 아이반의 업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면 그 누구도 아이반을 인정하지 않을 터였다. 아스가르드 신들이 역시 헛짓거리를 했다고 비웃으며 외면할 뿐이다.
지금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우트가르다 로키는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 침묵할 것이며, 헬라도 아홉 세계에 대한 희망을 버리겠지.
으드득!
아이반은 이를 악물고 달려나갔다. 폭풍을 휘감아 창을 던지고 번개를 불러 니드호그를 후려쳤다. 온갖 마법을 쏟아내고, 수십 가지 권능을 휘둘렀다.
그렇게 니드호그를 반쯤 죽여 놓았다고 생각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녀석은 멀쩡히 회복해서 아이반을 땅속 깊이 박아 넣었다.
싸움이 계속될수록 마력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니드호그가 세계 그 자체를 잡아먹고 있었기에 한 줌의 기운마저도 제대로 흐르지 않았다.
일행은 계속 힘을 빼앗기고, 니드호그는 점점 더 강해졌다. 녀석은 탐욕스럽게 입을 벌리고 주변 모든 것을 씹어 삼켰다.
– 어린 세계수야, 나는 너를 삼켜 아홉 세계의 진정한 끝을 고하겠다.
그리 외치는 니드호그를 보면서 아이반은 생각했다.
아스가르드의 신을 부르자, 그렇게 녀석을 때려눕힌 다음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또 다른 방법으로 인정받으면 되겠지, 애초에 무리한 일이었다.
그런 나약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자 아이반은 욕설을 내뱉었다.
“망할, 쪽팔려서 그렇게는 못하지.”
아홉 세계는 상남자 마초의 세계였다. 또한, 온갖 협잡과 비방, 음모가 가득한 세계였다.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는 한번 뒤로 물러나면 다시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 누구도 그를 인정할 리 없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런 꼴은 볼 수가 없었다.
우웅-
아이반은 온 힘을 끌어올렸다. 등에 새겨진 위그드라실의 문양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을 내뿜었다.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잠든 기운마저 솟아나 아이반의 몸을 휘감았다.
싸운다, 죽인다, 이긴다.
오직 그 생각만 하면서 아이반이 앞으로 나섰다.
화아아-
아이반이 쥐고 있던 겨우살이 가지가 조금씩 자라났다. 연약하고 연약한 가지 끝에서 꽃을 피웠다. 세상의 씨앗이며, 모든 가능성의 개화였다.
그 순간, 아이반은 자신이 환한 빛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을 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고 달려들던 니드호그는 어디로 가고, 티 없이 깨끗한 새하얀 공간에 따뜻한 빛만이 가득했다.
아이반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신성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발드르.”
아이반이 그리 중얼거리자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였다.
“그래, 한때 그게 나의 이름이었지.”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자였다. 누구보다 뛰어난 웅변가이며, 누구보다 자비롭고, 누구보다 현명한 자였다. 완벽함이란 그를 위해 존재하는 단어였으며, 세상 모두가 사랑하는 자였다.
광명신 발드르(Baldr).
라그나로크 이후 새롭게 태어날 아홉 세계를 이끌 것이라 예언된 자.
“아니, 그건 자네의 것이지. 더는 나의 것이 아니야.”
발드르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서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아이반마저 아무렇지 않게 대꾸할 수 있었다.
“나는 그대의 이름을 빼앗은 거짓이지. 이 귀찮은 짐을 얼른 가져가시오.”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나는 사라진 자이며, 그대야말로 미래의 희망이니까.”
오딘은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는 자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눈을 뽑아 샘에 던질 수 있었고, 스스로 옆구리를 창으로 꿰어서 나무에 매달릴 수 있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세상에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게 한 것도 멸망을 막기 위해서였으며, 아직 죄도 짓지 않은 로키의 어린 자식들을 가장 혹독한 곳에 처박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비록 여신 헬이 아스가르드의 뜻을 잘 따라서 그녀를 존중했다고 하더라도, 여신 헬이 요구했던 대로 세상 모든 것이 눈물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드르를 되살리는 것을 포기하는 게 오딘다운 일인가?
오딘은 발드르를 자신의 후계자로 여기고 있었다. 진정 아름다운 미래의 지배자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 발드르가 죽었는데, 그저 여신 헬의 요구를 이루지 못했으니 그의 부활을 포기한단 말인가?
오딘이 발드르의 부활을 포기한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이미 광명신 발드르는 헬헤임은 물론이고 아홉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발드르인 것이 아니라, 아홉 세계의 후계자가 발드르야. 끔찍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 진정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자가 바로 발드르야.”
오딘의 아들은 그러지 못했다. 예언을 피하지 못하고 예언대로 죽었기에, 진정으로 운명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시대의 희망이 될 수 없었다.
광명신 발드르는 진정한 아홉 세계의 후계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그런 신성이었다. 그렇기에 오딘의 아들은 죽음과 동시에 그 신성을 잃어버렸다.
“그러니 이제 그 이름은 자네의 것이야. 망설이지도 말고, 흔들리지도 말게. 그 이름이 자네를 증명하니까.”
한때 광명신 발드르라 불렸던 남자는 그리 말하며 웃었다. 왠지 시원스러운 미소였다.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을 넘겨 줬기 때문이다.
부족한 자신의 죽음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슬픈 눈으로 지켜만 보던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이름에 어울리는 자를 발견하고 그 모든 힘과 가능성을 전해 주었다. 그러니 이제야 편히 쉴 수 있었다.
“눈을 뜨십시오, 발드르. 당신이야말로 앞으로 맞이할 아홉 세계의 정당한 주인이십니다.”
자신의 힘과 이름을 모두 넘겨 준 남자가 무릎 꿇고 고개 숙였다. 그것을 바라보던 아이반이 고개를 들었다. 눈을 떴다.
아홉 세계의 주인이 눈을 떴다.
262화 위그드라실
쾅!
세상을 때려 부수는 굉음과 함께 니드호그의 턱이 돌아갔다. 탐욕스럽게 벌어졌던 입이 부서지고 사악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통보다 먼저 찾아온 것이 의아함이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약하고 어린 신, 스스로 아홉 세계의 후계자라 외친 어리석은 제물이 어느새 크게 성장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입이면 쉬이 삼킬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오히려 사냥꾼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스스슥-
세상의 기운을 강탈해서 몸을 회복했다. 부서진 입을 멀쩡하게 만들고 니드호그가 다시 아이반을 보았다.
찬란하고 찬란한 빛이었다. 세상 모두가 사랑한 그의 기운이었다. 어이없이 목숨을 잃어 마침내 세상의 종말을 알렸던 오딘의 아들이었다.
– 광명신 발드르, 네가 어찌 그 힘을 사용하느냐?
니드호그가 그르렁거리며 물었다. 놀리듯, 장난치듯 대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감정적인 물음이었다.
아이반 에시르손, 아사 신족의 아들이 대답했다. 아홉 세계의 정당한 주인이 입을 열었다.
“내가 바로 광명신 발드르다. 나만이 유일한 아홉 세계의 희망이니,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바로 나다.”
이름은 곧 본인의 증명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장난의 신 로키와 우트가르다 로키처럼 어쩌다 이름이 겹치는 경우가 있었으나, 아이반은 아예 본인이 광명신 발드르라 선언했다. 그건 본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니드호그는 혼란스러웠다. 초월자가 본인을 다른 신격이라 소개하고, 거짓된 신명을 입에 올린다면 근원이 흔들리고 신성이 무너져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아이반은 오히려 신성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세상이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네가 발드르일 리가 없다!
아이반의 영혼과 발드르의 영혼은 전혀 달랐다. 그러니 같을 수가 없었다. 같은 자일 리가 없다. 설령 발드르가 이계에서 환생했다고 하더라도 영혼의 근원이 이처럼 달라질 수는 없었다.
– 어떤 속임수를 부리고 있는지 모르나, 그딴 짓으로 나를 농락할 수는 없을 것이다!
휘이익!
하늘로 날아오른 니드호그가 사악한 마력을 내뿜었다. 마치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고, 그 기운에 기겁한 세상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같았다.
끼이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