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57
세상이 일그러졌다. 하늘에서 끊임없이 핏물이 쏟아지고, 썩은 시체 냄새가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초월자조차 기겁할 독이 뚝뚝 떨어졌다.
휘이잉!
죽음의 폭풍이 몰아쳤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외면한다면, 자신도 세상 모두를 버리겠다고 소리치는, 끔찍할 정도의 독선이었다. 고집이었다. 독기였다.
그 흉악한 마력에 맞서 아이반이 겨우살이 가지를 들어 올렸다. 세상 가장 연약한 가지 끝에 핀 꽃이 은은한 빛을 뿌리며 사악한 마력을 밀어냈다.
아이반이 걸었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자 세상 모든 것이 그를 응원했다. 바람이 그의 등을 지탱했고, 대지가 기꺼이 발판이 되었으며, 빛이 앞길을 밝혔다. 아이반의 발걸음마다 꽃이 피고 생명력이 터져 나왔다. 아홉 세계의 정당한 주인이 돌아왔음을 세상 모두가 축복했다.
– 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다!
니드호그는 태어나기를 악의와 함께 태어났다. 그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위협하며, 들이켜는 숨에 생명이 죽고, 내뱉는 숨에 대지가 썩었다.
세상 그 누구도 그를 위하지 않았다. 모두가 경멸했으며, 두려워했고, 거부했다.
아득한 세월, 세상의 깊은 곳에 홀로 몸을 움츠리고 썩어 가는 시체를 씹는 것만이 삶의 전부였다. 세상 모두가 거부했기에 그것이 유일한 삶이었다.
그러나 아이반은 어떤가? 아니, 광명신 발드르는 어떤가?
그는 세상 모든 것들의 사랑을 받았다. 모두가 존중했고, 그 누구보다 명예로웠으며, 누구도 세상의 희망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있는 모든 존재로부터 세상의 모든 찬사를 들었고, 말을 하지 못하는 모든 짐승으로부터 애정을 받았다. 생명이 없는 것들조차 그의 도움이 되기 위해 애썼다.
그건 니드호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세상이랑 응당 가장 역겹고 잔인한 존재여야만 했다. 저처럼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카아아악!
니드호그가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아이반의 육신을 찍어 눌렀다.
쿵!
산을 능히 조각낼 수 있는 공격이 막혔다. 저 멀리 뒹굴고 있던 흐레스벨그가 몸을 일으켜 니드호그를 붙잡았다.
흐레스벨그는 더는 움직이는 시체답지 않았다. 정말로 생명을 되찾은 듯 기운이 넘치고 강력했다. 니드호그는 그게 아이반이 쥐고 있는 겨우살이의 힘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이반이 겨우살이를 움직일 때마다 세상의 법칙이 요동쳤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졌고, 있을 수 없는 기적이 당연한 듯 펼쳐졌다.
아이반은 세상 모든 가능성을 긍정했다. 그가 원한다면 가장 아득한 확률조차 현실이 되었다.
라그나로크 이후 잘게 찢어졌던 흐레스벨그의 영혼이 돌아왔다. 아이반이 그 아득한 가능성을 붙잡고 있는 동안은 흐레스벨그가 진실로 부활하였다.
흐레스벨그가 니드호그를 후려쳤다. 단단한 부리로 가죽을 파헤치고 살점을 뜯었다. 그렇게 갈라진 상처의 틈으로 검이 파고들었다.
스걱!
달의 여신 셀룬이 보름달을 머리 위에 얹고 니드호그의 가슴을 찔렀다. 녀석의 심장이 쩍 갈라지고, 막대한 마력이 쏟아지다가 다시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회복했다.
– 하찮은 놈들이!
니드호그가 사악한 마력을 쏟아 내자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몸으로 그것을 막았다. 가장 순수한 불꽃을 몸에 두르고 사악함을 정화했다.
달의 여신 셀룬도,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도 심각한 부상을 회복하고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 모습이었다. 그 역시 아이반이 긍정한 가능성이었다.
쾅!
꼬리로 사브리나를 후려쳐 날려 버린 니드호그가 사납게 발톱을 휘둘렀다. 달의 여신 셀룬이 달빛을 머금은 검으로 그것을 막자 니드호그는 크게 숨을 들이켜 셀룬의 힘을 삼키려 했다.
흐레스벨그가 그것을 방해하고 부리를 들이대니 니드호그는 기다렸다는 듯 날카로운 이빨로 흐레스벨그의 목을 깨물었다.
키에에에엑!
흐레스벨그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하얀 수리의 넘치는 생명력을 들이켜 마시면서 니드호그가 아이반을 노려보았다.
쿵!
흐레스벨그가 강력한 바람을 몰아치며 반항하자 니드호그는 물고 있던 흐레스벨그를 퉤 뱉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스으읍-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뒤덮은 니드호그가 한껏 가슴을 부풀렸다. 세상이 단번에 썩어 버리고 그 기운이 녀석에게 흘러들어 갔다. 가장 끔찍한 마력이 녀석의 입에서 불타올랐다.
용의 숨결.
드래곤이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강력한 권능.
니드호그가 머금은 죽음의 마력이 세상을 부수기 시작했다. 세계를 찢고 법칙을 뒤흔들었다. 오랜 세월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서 품었던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화르륵!
검은 불꽃, 세상에서 가장 서늘하고 끔찍한 저주가 불길의 형태로 쏟아졌다. 아이반을 노리고 떨어졌다.
그때 겨우살이 꽃이 다시금 흔들렸다. 세상 가장 연약하지만, 세상 가장 위대한 가능성을 품고서 멸망의 용이 내뱉은 숨결을 가로막았다.
화아아-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었다. 니드호그가 잡아먹은 세계가 다시 생명을 찾았다.
이 춥고 서늘한 땅, 니플헤임에도 봄이 찾아왔다. 아득한 옛 시대부터 계속해서 얼어 있던 세계에 잠시나마 훈풍이 불었다.
쾅!
니드호그가 내뱉었던 죽음의 숨결이 반전하여 녀석을 붙잡았다. 녀석은 그 연약한 겨우살이의 채찍질에 한참이고 뒤로 밀려났다. 날개로 몸을 감싸고 잔뜩 움츠린 채, 외로움과 추위에 떨었던 아득한 옛 시절로 되돌아갔다.
우웅-
아이반의 주위를 돌고 있던 세 무기에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묠니르 앞에 토르가 섰고, 어두운 용의 발톱엔 오딘이 나타났다. 피의 검 브리카 곁에는 프레이가 있었다.
헤임달이 아이반 등 뒤를 지켰고, 티르가 하나 남은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프레이야가 수많은 발키리 앞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이둔이 황금 사과를 들고서 빙긋 미소 지었다.
아하하하하!
멀리서 로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힐끗 헬헤임 쪽을 바라보던 아이반이 니드호그에게 손을 뻗었다.
스으윽!
아이반은 녀석을 붙잡고 공간을 뛰어넘었다. 니플헤임의 가장 깊은 곳, 나스트론드를 지나 흐베르겔미르가 있던 곳까지 날아갔다.
위그드라실이 무너지며 파헤쳐진 흐베르겔미르는 태초의 공허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긴눙가가프(Ginnungagap), 하품하는 심연.
아이반은 아득한 공허의 틈새로 니드호그를 밀어 넣었다. 니드호그가 끝까지 반항하려 했으나, 주변을 둘러싼 신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너로 인해 아홉 세계가 부활하리라. 새로운 세상의 너의 품에서 시작되니, 더는 배척받지 않으리라. 짧은 잠을 자고 나면, 더는 너는 예전 같지 않으리라.”
툭-
아이반이 쥐고 있던 겨우살이의 꽃이 씨앗이 되어 니드호그의 위에 떨어졌다. 씨앗은 발아하여 니드호그 위에 뿌리내리고, 녀석의 사악하고 사악한 힘을 흡수하여 세상 가장 순수한 기운으로 바꿔놓았다.
우두둑-
씨앗이 순식간에 자란다. 그 작고 작은 씨앗이 커져 땅을 메우고 하늘로 솟구쳤다. 끊임없이 커지고 커져 세상을 뒤덮었다. 아니, 세상이 되었다.
우웅-
아이반의 등에 새겨진 위그드라실의 문양과 새로 자라난 거대한 나무가 공명했다. 둘은 하나였으며, 또 아홉이었다. 세상 가장 추운 곳에서 시작해, 가장 뜨거운 곳까지 가지를 뻗고 잎을 펼쳤다.
찢어지고 갈라진 세상의 파편 사이로, 작지만 생명력 넘치는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 그것을 발견한 모두가 기쁨으로 소리치고, 감격으로 눈물 흘렸다.
거대한 나무의 뿌리에 묶여서 긴눙가가프에 떨어진 니드호그조차 그 찬란한 순간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세계의 탄생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길고 긴 어둠과 절망의 시대가 끝나고 희망이 꽃피었다.
그 찬란하고 따뜻한 빛을 보면서 니드호그는 자신의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차갑고 어두운 곳에 있었기에 실은 가장 따뜻한 빛을 원할 수밖에 없었다. 니드호그가 있는 곳까지 닿은 빛은 오로지 하나뿐이니, 어찌 그것을 외면할 수 있을까.
헤르모드가 죽은 발드르를 부활시키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을 찾아가 울어 주기를 청했을 때, 그것을 거부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로키가 변신한 요툰 여인, 소크(Þǫkk)가 전부였다.
그건 니드호그 역시 눈물을 흘렸다는 뜻이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아홉 세계의 존재였으며, 찬란한 빛을 사랑했던 존재였다.
– 잠에서 깬다면, 다음에 눈을 뜬다면……!
“그때는 다를 것이오. 내가 그리 선언하였소.”
아이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긍정하자 니드호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선명한 비웃음 속에 작은 기대와 희망이 숨어 있음을 아이반은 모르지 않았다.
– 흐, 과연 어떨지…….
니드호그가 반항을 포기하고 눈을 감으니 그를 휘감은 나무는 이전보다 더욱 빠르게 자라났다. 두꺼운 뿌리로 니드호그를 뒤덮어 그의 모습을 가리고 찬란하게 피어났다.
– 드디어, 드디어!
크게 소리친 오딘이 가장 먼저 예를 표했다. 그 뒤로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차례로 고개 숙이며 새로운 시대의 주인을 맞이했다.
위대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요툰 군주, 우트가르다 로키가 모습을 드러내고 무릎 꿇었다. 지극한 자세로 경배했다.
가장 차가운 땅에 사는 서리 거인부터 빛과 어둠의 요정들, 인간과 괴물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라그나로크의 마지막에 직접 불의 검을 휘둘러 세상 모든 것을 불태웠던 무스펠헤임의 수호자마저 아홉 세계의 정당한 주인을 환영했다.
마침내 새로운 아홉 세계가 태어났다.
263화 예언의 의미
아홉 세계가 부활했다는 소식이 온 사방으로 전해졌다. 발드르가 마침내 돌아왔으며, 그는 바로 아이반이라고 하였다.
이계에서 아스가르드 신들의 축복을 받아 인간의 몸으로 신이 되었고, 마침내 부서진 세계로 와서 멸망의 용 니드호그를 쓰러뜨리고 그 육신 위에 새로운 씨앗을 뿌렸으니, 그가 바로 진정한 아홉 세계의 후계자이자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라고 했다.
상당히 구체적인 소문이었다. 게다가 소문이 어찌나 빨랐는지, 아이반이 헬헤임으로 돌아올 때쯤에는 이미 그를 모르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