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59
“저는 녹색 만신전의 오크투신이 천상을 공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264화 선배의 솜씨
녹색 만신전이 천상을 공격할 것이라는 예언에 셀룬과 사브리나의 표정이 바뀌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였기 때문이다.
“오크투신이 천상을 공격한다고? 설마 녹색 만신전이 악마와 손을 잡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셀룬이 그리 외치자 볼바는 그저 침묵했다. 자신이 본 것을 말했으니 거기서 덧붙일 말이 없다는 소리였다.
때로 언어란 것이 신묘해서, 말을 하면 할수록 본질에서 벗어나고는 했다. 더 자세히 설명하려다가 오히려 오해만 쌓이는 것이다.
다행히 아이반은 그런 예언의 성질을 알고 있었다. 새로운 아홉 세계의 주인이자 오딘의 후계자이기에 조금 더 냉정히 예언을 곱씹을 수가 있었다.
예언에는 복잡하고 은밀한 행간이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말이라도 전혀 다른 의미가 되고는 했다.
눈을 감고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반이 물었다.
“파멸의 마왕이 넘어오자 오크투신이 천상을 공격한다, 본 것은 그것뿐이오?”
“그렇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시여.”
“알았소. 당신이 본 것을 명심하지.”
아이반이 그리 말하자 잠시 망설이던 볼바가 입을 열었다.
“비록 제가 그리 예언하기는 했으나…….”
“알고 있소. 나는 예언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운명조차 나를 강제할 수 없으니, 예언 또한 다르지 않소.”
“진실로 그러하기를 빕니다.”
볼바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러나자 아이반은 거울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 뒤를 따르던 사브리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을 요구하자 아이반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볼바가 예언한 것은 오크투신과 천상의 싸움이지, 오크투신이 악마와 손을 잡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소. 애초에 녹색 만신전과 천상은 동맹 관계가 아니니, 시기가 영 수상하기는 해도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지.”
어째서 오크투신이 천상을 공격했는지, 그것이 정당한 일이었는지, 악마나 악신과 관련이 있는지, 예언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알 수가 없었다.
“예언이란 본디 무척이나 섬세한 것이오. 이처럼 세계의 운명이 뒤엉키고 온갖 초월자가 끼어든 판이라면 그 누구도 미래를 단언할 수는 없지. 볼바이기에 이런 판에도 예언을 할 수 있었으나, 볼바라도 그 이상은 보지 못했다는 뜻이오.”
파멸의 마왕이 넘어오면 오크투신이 천상을 공격할 것이다.
볼바가 그리 예언했으니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 예언의 빈 곳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알아봐야겠지.
“돌아오자마자 일이 터지는군. 하여간 잠시의 여유도 없어.”
아이반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인벤토리에서 나뭇잎 하나를 꺼냈다. 세계수의 잎이었다. 일행이 아홉 세계에서 돌아오면 연락할 수 있도록 이레인이 주고 간 것이었다.
우웅-
세계수의 잎에 마력을 불어넣으니 상쾌한 기운이 퍼졌다. 얇은 선이 멀리 뻗어 나가 차원을 넘어 요정의 숲에 닿았다.
– 아이반, 나의 은인. 이계에서 돌아왔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잘 풀린 모양이다.
높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딱히 무엇이라고 말하기 힘든 여럿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모든 엘프의 집합의식이자 그들의 종족신, 세계수였다.
“당신이 직접 응답할 줄은 몰랐군. 이레인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소?”
– 그 아이는 새롭게 자라나고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우니 오래지 않아 눈을 뜰 것이다.
“다행이군. 그녀라면 잘해낼 것이오.”
아이반이 요정의 숲으로 가기를 청하자 세계수가 받아들였다. 직접 차원문을 열어 그들을 환영했다.
스스슥-
얼음 계곡에서 두어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그들은 어느새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는 숲속에 있었다. 한때 대악마에 의해 끔찍하게 파괴되었던 요정의 숲은 겉모습만은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일행이 숲을 걷고 있으니 곧 엘레나 이븐우드가 나타났다. 세계수의 언질을 받았는지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계의 일은 잘 마무리하셨는지요?”
“뭐, 그럭저럭 마무리되었소. 덕분에 더 바빠지기는 했지만.”
엘레나 이븐우드의 자세는 지극히 공손했다. 그러면서 살짝 눈이 커진 것을 보니 꽤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아이반을 마주하고 그가 예전보다 더 깊고 커다랗게 변했음을 깨달은 모양이다.
아이반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는 이제 아홉 세계의 주인이었다. 아홉 세계의 정점이니 격만 따지자면 세상 그 어떤 대신격도 그보다 우월하다 자처할 수는 없었다.
그저 엘레나 이븐우드 개인이 놀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세계수와, 그와 연결된 모든 엘프가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동요하고 있었다.
단순히 인간이 필멸자의 한계를 넘어 초월자가 되었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설마 거기서 더 성장해서 대신격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태어나기를 신격으로 태어난 위대한 자들조차 격을 높이는 데는 아득한 세월이 걸렸다. 세상의 시작과 생명을 함께한 자들조차 대신격이 되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한데 실로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물어볼 일이 많소. 이야기가 제법 길어질 것이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고개 숙인 엘레나 이븐우드가 일행을 요정의 숲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가까이 갈수록 진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모든 엘프의 운명이 한곳에 모여 힘차게 박동하는 것이 보였다.
오른쪽 황금안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아이반이 슬며시 웃었다.
“확실히 이레인이 잘하고 있군. 세계수의 품에서 새로운 초월자가 나타나겠어.”
엘레나 이븐우드가 안내한 곳은 요정의 숲에서 가장 조용하고 또 신성한 곳이었다. 누군가 가만히 앉아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느껴지는 기운으로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시아린 이븐우드, 현재 세계수의 무녀이자 엘레나 이븐우드의 언니.
그녀는 아주 아름다웠으나 동시에 부서질 듯이 가녀렸다. 필멸자의 몸으로 초월자를 받아들였으니 그 대가가 가벼울 리가 없었다. 평생의 대부분을 정령계에서 잠드는 것으로 버텼는데, 지금처럼 위험한 시기에는 그럴 수 없으니 몸이 상할 대로 상한 모양이다.
“편히 쉴 것을 내가 방해한 모양이오.”
아이반이 그리 말하자 시아린 이븐우드가 옅게 웃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평생을 잠들었는데 더 쉴 것이 있겠습니까?”
비록 그녀의 육신은 엉망이 되어 생명의 불빛조차 깜빡거렸으나, 표정만큼은 밝았다. 오랜 세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가 이제야 그것을 벗어던졌으니 홀가분하겠지.
이제 이레인이 초월자로 깨어난다면 엘프는 이제 따로 세계수의 무녀를 뽑을 필요가 없었다.
세계수의 무녀는 실로 영광스러운 자리였으나, 그 누구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자리였다. 참으로 무거운 자리였다.
“현재 요정군단은 리자드맨과 나가를 상대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큰 충돌은 없으나, 자잘한 전투는 끊이질 않으니 주변에서는 뱀신과 확실히 틀어졌다 여길 것입니다.”
다른 종족이었다면 상층부에서 거짓 대결을 약속해도 아래쪽까지는 그 뜻이 전해지지 않았다. 혹시나 외부에 유출될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단 병사들은 실상 아군의 손에 죽어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엘프와 나가, 리자드맨은 확실히 달랐다. 각자 세계수와 뱀신 모르나를 중심으로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기에 겉으로는 거칠게 싸워도 실제로는 손해가 하나도 없는 실감 나는 연극이 가능했다. 바깥으로 그 정보가 새어나갈 일도 없었다.
“악마의 움직임은 어떻소?”
“은밀하게 움직이던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악마의 군대를 자랑하길 두려워하지 않으니 아마도…….”
“파멸의 마왕이 넘어올 때가 다 되었다는 뜻이로군.”
드래곤이 모두 달려들어 파멸의 마왕이 넘어오는 것을 막고 있으나 한계는 뚜렷했다. 시간을 제법 벌었으나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한참이나 현재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서 엘프가 자리를 떠나자 아이반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와중에 오크투신이 천상을 공격한다고? 대체 왜? 그 이유가 뭘까?’
미미르, 로키, 오딘. 수많은 자가 아이반에게 속삭였다. 비밀스러운 지식을 꺼내고 음습한 지혜와 끔찍한 계획에 대해 떠들었다.
아스가르드의 가장 음흉한 존재들에게 조언을 들으며 아이반은 깊이 고민했다.
타닥, 타다닥.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하던 아이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대악마가 겨우 인간의 제국을 무너뜨리는 걸로 만족할 리가 없지.”
언제나 말했듯, 초월자가 뒤엉킨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월자였다. 대악마가 음모를 꾸민다면 단순히 필멸자를 갈라놓는 것 이상의 목적이 분명히 존재할 터였다.
아이반이 뱀신 모르나와 투신 바르투이, 동물신을 포석으로 악신과 악마를 갈라놓을 계획을 세운 것처럼, 대악마도 녹색 만신전과 천상의 사이를 갈라놓을 계획이 있었겠지.
음습한 모략은 그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운 요툰을 움직여 아이반을 견제하려 했다. 놈이 느끼기에 오크를 다루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거다.
서둘러 요정의 숲을 빠져나온 아이반은 테잔을 호출했다. 그러자 땅이 꾸물거리더니 솟아올라 늙은 오크의 모습이 되었다. 테잔은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돌아왔구먼. 안 그래도 슬슬 자네가 필요하던 참…….”
“동맹의 상황은 어떻소? 위험하지는 않소?”
아이반이 말을 끊으며 그리 소리치자 테잔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되물었다.
“뭐? 그게 무슨 뜻인가?”
“혹시 동맹 내부에서 이상한 일은 없었소? 뭔가 평소와 다른 것은?”
“글쎄, 잘 모르겠는데. 도대체 뭘 말하는 건가?”
“그럼 바깥은? 갈라진 마리난 제국은?”
“마리난 제국은 지금 무척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네. 라인하르츠 공작이 새롭게 몸을 일으켜 동서 마라난 제국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소리쳐서 치열한 내전으로…….”
그 말을 들은 아이반이 미간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볼바가 예언했소. 파멸의 마왕이 넘어오자 오크투신이 천상이 공격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소.”
“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어찌 위대한 아버지께서 천상을 공격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