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6
‘흑마법사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확실한데, 과연 엘프들이 나를 알아차렸을까?’ 아이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엘프들이 끼어들어서 판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던전 내부에 대해 만족할 만큼 파악이 된 것인지 흑마법사 무리는 노예들을 뒤로 빼고 던전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엘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우웅! 푸슉! 일제히 쏘아진 화살들이 던전 밖에 남아있던 녀석들을 향해 박혀들었다. 엘프의 궁술은 과연 신기에 도달해서 빗나가는 법이 없었고, 심지어 한 발을 쏘아서 둘 셋을 맞히거나 날아가다 휘어져서 꽂히기도 했다.
그렇게 몇 명이 쓰러지자 놈들이 크게 소리쳤다.
“화살! 엘프다!”
위잉- 흑마력을 사용한 어두운 방어막이 나타나 화살을 막아섰다.
그러자 화살만으로 그것을 뚫는 것이 꽤 부담스럽다고 여긴 것인지 엘프들의 일부가 활을 거두고 직접 달려들기 시작했다.
흑마법사들은 남아있던 노예들을 움직여 강제로 엘프들의 길을 막아섰다.
그들이 결코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흑마법사들은 알았지만 단지 한 호흡을 벌기 위해 그렇게 던져버렸다. 초록 풀숲에 붉은 피가 튀었다.
노예로 부려지던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져 생명을 토해냈다.
그들이 강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엘프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불쌍한 인간을 구해야겠다는 목적의식이 없으니까.
숲을 위협하는 자, 사악한 흑마법사들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던 아이반이 기척을 드러내고 창을 집어던졌다. 말 그대로 번개처럼 쏘아진 창이 검은 방어막을 꿰뚫고 흑마법사 하나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윽!”
새로운 적의 등장에 놀란 흑마법사들이 움찔하고, 엘프들마저 아이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움직임을 멈추고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그러다 아이반의 창이 흑마법사의 목숨을 앗아간 것을 보고 일단 적은 아니라 판단했는지 엘프들이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흑마법사들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하필이면 그분들이 던전으로 들어간 틈을 노리다니!”
강한 자들은 이미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빠진 상황.
그것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릴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한탄하던 흑마법사들이 저주의 말을 토해냈다.
“망할 귀쟁이 놈들! 네놈들의 숲을 몽땅 태워버리고 말겠다!”
화살에 꿰뚫리고 칼에 베이면서도 흑마법사들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살아있던 노예들은 물론, 이미 죽은 사람들까지 바짝 말라붙었다.
“으으어어억!”
순식간에 살이 썩고 피부가 늘어진다.
살아있는 채로 언데드로 변해가는 지독한 고통에 비명과 함께 몸부림을 치던 사람들이 풀썩 바닥이 쓰러졌다가 몸을 일으켰다.
상쾌한 숲의 향기가 사라지고 칙칙하고 퀴퀴한 시체 냄새가 가득했다. 사악한 어둠이 땅을 적시고 음습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마침내 스스로의 육신마저 새하얀 백골로 바꾼 흑마법사들이 푸른 안광을 빛내며 깔깔 웃었다.
“너희들에게 죽음이 찾아오리라!”
손을 뻗어 창을 회수한 아이반이 탕탕 가볍게 발을 땅에 구르고는 중얼거렸다.
“지랄하네.”
쾅!한 걸음에 간격을 좁혔다. 미처 흑마법사들이 무언가를 하기 전, 아이반의 창이 두개골을 깨부수고 들어갔다.
중간에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방어막이 그의 창을 막아서려했으나, 거칠고 폭력적인 천둥신의 힘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파각! 단숨에 머리가 터지고 뼛조각이 흩날렸다.
그 둔탁한 손맛을 느끼면서 아이반이 속으로 생각했다.
‘스켈레톤 메이지가 되니 피나 살점이 튀기지는 않아서 좋군.’ 차르르륵! 어둠에서 튀어나온 마력사슬이 아이반의 몸을 묶으려들었다.
그것을 엘프들의 화살이 끊어내었다. 파바박! 흑마법사들에게 부려지는 노예들은 자신들의 생명으로도 모자라 죽음마저 바쳐서 아이반의 앞을 막았으나 소용없었다. 급조해서 만들어낸 언데드 따위로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아이반이 또 다시 스켈레톤 메이지 하나를 감자탕에 넣기 좋게 조각내는 동안 엘프가 그들의 친구들을 이 땅 위로 불러왔다.
우웅- 화아악- – 아하하하하! 모습을 드러낸 정령들이 깔깔 웃으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암흑에 물들어있던 땅이 단숨에 정화되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이 쏘아 보낸 사악한 마법들이 깨져나가고 정령들이 뿜어내는 힘이 언데드의 몸을 불태웠다.
– 으, 으아아아! 흑마법사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입으로 뱉는 것이 아니라 정신파, 혹은 그 너머의 처절한 비명.
헤임달의 권능을 통해 아주 작은 일부분이나마 초월자의 감각을 가지게 된 아이반은 그들의 영혼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뼈만 남은 육신에 간신히 붙어 있다가 그것마저 사라지자 그들이 계약한 악마가 손을 뻗어 영혼을 회수한 것이다. 영혼을 바치고 힘을 얻는다. 이것이 악마숭배자의 말로였다. 이제 악마의 땅에서 영원히 고통 받으리라.
그렇게 흑마법사들의 영혼을 가져간 악마가 눈을 돌렸다. 노예로 부려지던 사람들의 영혼마저 탐을 내는 것 같았다. 척! 그것까지는 용납할 수 없었다. 목숨은 지켜주지 못했어도 영혼은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반이 창을 땅에 박아 넣고 앞을 막아섰다.
“이들은 너의 권속이 아니다, 역겨운 녀석아.”
우웅- 아이반의 몸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 기운이 그것에 동의했다.
멀고먼 그곳, 아득한 천상에서 아래를 굽어 살피던 신들이 자신의 전사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치지직! 휘이잉! 아이반의 몸을 타고 흐르는 번개와 창에 머금은 폭풍이 악마, 죽음의 인도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악마는 그들의 영혼을 포기한 듯 순순히 돌아섰다.
계약대로 흑마법사의영혼만을 붙잡고 사라졌다.
겉으로는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반은 희미한 악마의 시선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주르륵 아이반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떨리는 몸이 진정되지 않아서 이를 꽉 깨물었다.
‘ 망할.’ 본체는 당연히 아니었고 분신마저 아니었다.
그저 정해진 계약에 따라 영혼을 수거할 뿐인 힘의 일부분. 그러나 헤임달이 빌려준 초월적인 감각은 그 너머의 본신을 보고 말았다.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 사악한 존재를 느낄 수가 있었다. 지금은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는 자연재해와 같은 강함.
압도적인 강자를 마주하고서 느껴지는 공포에 아이반의 얼굴이 질려버렸다.
“젠장, 내가 어쩌다가 이런 곳에서 저런 놈들과 싸워야 하는 거야?”
아이반은 침을 가득 모아 바닥에 퉤, 하고 뱉어냈다.
그의 몸을 잠식하고 있는 불쾌한 감정을 그렇게나마 털어내고서야 침착함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방금 그것은 ?”
엘프들의 표정에 모처럼 생명체다운 감정이 드러났다.
그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대악마가 영혼을 회수하는 것을 막아선다는 건 웬만한 정신으로 하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만물의 본질을 바라볼 수가 있는 그들의 눈에 방금 전 상황이 똑똑히 들어왔다.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 사악한 악마가 그렇게 순순히 물러나다니.
“아스가르드의 전사, 당신은 정말로 신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군요.”
얼마 전 그와 만났던 여성 엘프가 나서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미한 감탄의 감정이 서려있었다. ‘이러니 보기가 훨씬 낫군.’ 엘프들의 외형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극도로 적어서 마치 로봇이나 인형처럼 보였다. 그것이 그들을 꺼리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였다. 불쾌한 골짜기.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오히려 불쾌함이 증가한다는 이론.
어쩌면 아이반이 다른 이종족을 만나도 무덤덤하게 넘기면서 엘프만은 이렇게 불편하게 여긴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외형은 닮았으나 감정에서 아주 이질적이었으니까.
“사랑이라기보다는 관심이라는 표현이 맞겠지. 그리고 신들의 관심이란 필멸자에게는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오.”
“그렇습니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소.”
초월자의 사고방식은 필멸자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그들이 세상만물을 대하는 기준은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게이머나 제작자의 시선과도 비슷했다.
그래서 게이머에서 한낱 등장인물로, 플레이어에서 캐릭터가 되어버린 아이반으로서는 도저히 그들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깊이 생각할수록 자신의 처지만 한탄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 같은데. 이놈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소. 계속 밖에서 기다릴 생각이오?”
아이반의 물음에 그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바라보는 것은 동굴 속에 있는 일렁이는 차원문, 던전으로 향하는 입구.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엘프들은 서로 눈 한번 맞추지 않고, 이야기 하나 나누지 않고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는 이곳에 남고,”
“우리는 들어갈 것입니다.”
“아스가르드의 전사, 그대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럿이 말하고 있음에도 전혀 막히거나 어색한 점이 없었다. 엘프들은 세계수라는 시스템을 통해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나누기 때문이다.
입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 뿐,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로 토론을 마치고 의견을 정한 상태였다.
“나 역시 들어갈 것이오. 저 안에 잠들어 있을 유물에 관심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을 마친 아이반이 강렬한 눈빛으로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만일 자신이 노리는 물건에 손을 댄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의 의미였다.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유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의 숲에서 위험이 사라지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 대답에 아이반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부디 그러기를 빌겠소.”
말은 누가 못해.
그저 입으로만 하는 약속은 믿을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은 그 이상의 다른 방법이 없어서 넘어갈 뿐이다. 귀쟁이놈들, 만약 내 뒤통수를 친다면 그대로 잘게 토막을 쳐서 얼큰한 요정찌개로 만들어주마. 아이반은 속으로 그리 다짐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진행했다.
“안에 들어간 놈들이 우리의 존재를 몰랐으면 좋겠지만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아마 충분히 알고 있을 거요.”
던전 밖에서 노예들만 집어넣어서 정보를 수집하던 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