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61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던 위그드라실 문양이 움직이자 저 머나먼 곳에서 무지개다리가 닿았다. 새로운 아스가르드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의 전사들이 비프로스트를 밟고서 이 땅으로 건너왔다.
발할라의 문이 열렸다. 에인헤랴르가 크게 소리 지르며 달려왔다. 아홉 세계가 부활하니 에인헤랴르가 품고 있는 기운이 한층 깊어졌다. 그들이 지닌 장비조차 번쩍이는 빛이 범상치 않았다.
‘난쟁이의 솜씨로군.’
스바르트알파헤임을 되찾은 레긴이 약속을 지켰다. 여신 헬이 허락한 도크알프들은 그들의 세계 스바르트알파헤임으로 가서 니다벨리르를 재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발할라의 전사들을 위한 무구를 만들고 있었다.
가장 단단한 금속조차 찰흙처럼 주무르는 장인이 바로 도크알프였다. 난쟁이였다. 신조차 탐내는 무구를 손에 쥔 에인헤랴르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 아스가르드를 위하여! 아홉 세계를 위하여!
– 우리의 새로운 아버지, 아이반을 위하여!
– 발드르! 우리의 빛에 영광이 있으라!
언제나 오딘과 토르의 이름이 먼저 나오던 에인헤랴르가 한입으로 아이반을 칭송했다. 그는 이제 에인헤랴르의 진정한 주인이었다.
– 이 전장을 아이반께 바친다!
발할라의 전사들은 누구나 인간 세상 최강의 전사였다. 위대한 싸움 끝에 오딘의 인정을 받은 자만이 발할라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강한 전사가 강한 무기를 들었으니 질 리가 없었다. 에인헤랴르는 그 하나하나가 모두 신의 권속이었으며, 준신이었다. 격만 놓고 보자면 천상의 아홉 신격이 다루는 천사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발할라가 그들을 기억하는 한 에인헤랴르는 죽지 않았다. 비록 몸은 썩어 문드러져도, 투지는 사라지지 않으니 영혼만은 아직도 거세게 불타올랐다.
쾅!
방패로 제국의 병사들을 후려치고 검으로 두들겼다. 차마 베지는 못하고 면으로 때리기만 했다.
어쩌다 병사의 칼날이 에인헤랴르의 가슴을 꿰뚫을 때도 있었으나, 그들은 껄껄 웃으며 적의 뺨을 갈겼다. 그러면 아예 병사의 턱이 으스러져서 바닥에 쓰러졌다.
십만의 병사를 에인헤랴르가 오히려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이반이 처음 그어놓았던 선을 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걸 보던 아이반이 창을 빙글 돌리며 뒤돌았다. 저 멀리 짙어지는 존재감을 향해 낮게 말했다.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은 거로 아는데, 벌써 나오셨단 말이오? 제법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지?”
그러자 하늘을 울리는 웃음소리가 퍼졌다. 기가 센 오크 전사마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 아하하하! 피와 전투가 눈앞에 있는데 내가 어찌 그것을 외면할까!
오크로드 카르타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껄껄 웃는 자가 있었다. 가장 건장한 오크와 비교해도 두 배는 더 큰 것 같은 자가 시뻘건 도끼를 들고 있었다.
웃음소리에 살기와 투기가 가득 담겨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그의 감정에 따라 하늘이 요동치고 날씨가 바뀌었다.
오크투신 타르칸, 녹색 만신전의 주인이 씨익 웃으며 아이반을 보았다.
– 어때, 나와도 한판 해볼까?
266화 쟁취하기 위해
오크투신 타르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니 한창 싸우고 있던 에인헤랴르가 고개를 휙 돌리며 그를 경계했다. 마리난 제국의 십만 병사들 역시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두려움에 무심코 뒤로 물러났다.
단 한 걸음에 전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투기가 온 사방을 장악하니 이곳에 있는 모든 자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분명 피의 동맹이 녹색 만신전의 문을 열려면 조금 더 준비가 필요했다. 오크투신 타르칸은 그 좁은 문을 억지로 비틀어 열어서 화신을 내려보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이 전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과연 녹색 만신전의 주인인가, 화신만으로 이 정도면 본신의 수준은 대단하겠어.’
아이반은 내심 감탄했다. 오크투신 타르칸의 강함은 둘째 치고, 그가 품은 투쟁심만큼은 실로 하늘을 떨쳐 울릴 정도로 훌륭했다.
오크투신 타르칸은 오크의 종족신이며 동시에 피와 전투, 광전사의 신이었다. 치열한 싸움이야말로 그의 본질이며, 끝없는 투쟁이야말로 그의 이상향이었다.
‘발할라야말로 오크투신이 환장할 만한 곳이겠지.’
아이반은 새롭게 탄생한 아홉 세계의 주인으로서 오크투신 타르칸을 아홉 세계로 영입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판 해보겠느냐고? 그건 나와 싸우자는 소리요?”
– 훌륭한 전사가 있는데 무기를 겨루지 않고서 내가 어찌 투신을 자청할까!
투신이란 그 많은 신 중에서 가장 전투적인 존재만이 얻을 수 있는 칭호였다. 대체로 하나의 신계를 대표할 만한 싸움꾼이거나, 언젠가 그럴 잠재력을 품은 존재만이 신명에 투신을 올렸다.
타고나기를 싸움에 최적화된 자들이 수많은 전투로 스스로 갈고닦아 법칙에 닿고, 그렇게 격을 이루고서도 강해지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자만이 투신이라 불릴 수 있었다.
단순히 싸움 실력이나 재능, 전투 경험과 센스만 놓고 본다면 아이반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투신이라는 것은 세계가 가장 싸움을 잘한다고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이반은 밀리지 않고 오크투신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히려 깔아보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몸으로 되겠소? 화신의 상태로 나를 감당할 자신이 있소?”
오크투신 타르칸이 강하다는 것은 알았다. 그가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화신의 몸으로 아이반을 상대하겠다는 것은 오만이었다. 지독한 모욕이었다.
– 승산을 고려해 싸웠다면 나는 광전사의 신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들기만 했다면 녹색 만신전의 주인이 될 수도 없었겠지.”
아이반이 빤히 바라보자 오크투신 타르칸은 웃음을 지웠다. 한쪽 손으로 쥔 거대한 도끼를 만지작거리다가 뒤로 돌았다.
– 귀한 손님이 찾아왔으니 고기를 준비해야겠어.
타르칸의 초대에 아이반이 화답했다.
“술은 준비되었소.”
둘은 제국의 병사들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초월자들이 마음먹었다면 제국의 군대는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마리난 제국의 군대는 방향을 돌려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결코 동맹의 땅을 밟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반의 표정이 밝지만은 못했다. 오크투신 타르칸이 벌써 등장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제국의 병사가 동맹을 공격하는 것은 막았지만 대악마의 음모를 완전히 날려 버리지는 못했군.’
오크투신 타르칸이 정말 구경이나 하려고 화신을 내려보냈을 리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대악마 음습한 모략의 계획대로 오크투신 타르칸이 천상을 공격하려는 모양이다.
아이반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술동이를 꺼냈다. 그리고 오크투신이 내뿜는 기운을 따라 걸어갔다.
동맹의 전사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만들었다.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큼지막한 천막에 도착하니 오크투신 타르칸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직접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 뒤로 오크로드 카르타크와 동맹의 각 종족 대표들이 서 있었다. 자연의 구도자 테잔 역시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눈짓으로 인사했다.
아이반이 타르칸 앞에 앉으니 그들은 모두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텐트에는 둘밖에 없었다.
탁!
큼지막한 사슴 다리 하나를 먹음직스럽게 구운 타르칸이 그걸 아이반에게 내밀었다. 아이반은 말없이 받아들고, 대신 술동이를 밀었다.
아이반이 사슴 다리를 뜯고, 타르칸이 술동이를 비웠다. 그러고 나서야 둘은 서로를 보았다.
“왜 내려오셨소? 내가 왜 이리 뛰어다니는지 알 텐데.”
먼저 아이반이 툭 말을 내뱉으니 타르칸이 답했다.
“싸움이 나를 부르는데 피할 수는 없다.”
사방을 찍어 누르던 정신파가 아니라 육성이었다. 투쟁심이 하늘을 불태울 듯 쏟아지던 전사의 모습 너머에 노회하고 현명한 오크가 앉아 있었다. 광전사의 신을 보고 할 말은 아니지만, 마치 현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게 대악마의 수작인데도?”
“그것뿐이라면 웃어넘겼겠지.”
그 미묘한 대답에서 아이반은 사정을 깨닫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어쩔 수 없다는 소리군.”
대악마가 진정으로 자극하고자 한 것은 피의 동맹이나 녹색 만신전, 오크투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천상의 아홉 신격이었다.
악마와 악신이 동료가 아니라면, 천상과 녹색 만신전도 동료는 아니었다. 피의 동맹은 다가올 싸움을 위해 녹색 만신전을 이 땅으로 불러왔으나, 그건 천상이 몹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십만의 병사가 동맹을 공격하면 피의 동맹이 거칠게 반응할 테지만, 그리하여 십만의 병사가 모두 죽는다면 그건 또 천상의 명분이 될 수 있었다.
아마 대악마는 십만의 병사가 이곳에서 모두 죽기를 진심으로 원했으리라. 그리하여 명분을 얻은 천상이 녹색 만신전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기를 바라겠지.
그걸 천상도 알았고, 녹색 만신전도 알았다. 알면서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천상은 녹색 만신전이 지나치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녹색 만신전은 천상이 또다시 대전쟁의 승리자로서 막강한 권세를 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신화시대를 종결한 옛 대전쟁을 이기고 천상의 아홉 신격은 시대의 주인이 되었으나, 지나치게 자비 없는 승리자였다.
그들은 승리의 영광을 오롯이 자신들만 느끼고자 했으며, 다른 이들을 배척했다. 옛 대전쟁에서 함께 싸웠던 수많은 신격이 신앙을 잃고 영락하는 것을 외면했다.
녹색 만신전은 그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란 믿음이 없었다. 전쟁은 이기되, 그 영광이 오롯이 천상의 것이어서는 아니 되었다.
“천상과 녹색 만신전은 한 번도 동료였던 적이 없다. 원래 그러했으니 이전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 말한 오크투신 타르칸은 껄껄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다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대의 노력은 알고 있으나, 우리는 우리의 방식이 있다. 원하는 것은 싸워서 얻는다. 피를 흘리지 않고선 전리품을 챙길 수가 없다. 나는 나의 도끼로 나를 증명한다.”
“···다들 벌써 이긴 것처럼 행동하는군. 파멸의 마왕이 그리 만만하오? 크툴라스가 그리 우습단 말이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는 존재만으로 세상을 위협하는 최악의 적이었다. 세상 모든 신화와 전설,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악의 근원이며, 모든 예언자가 내다본 세상의 끝은 언제나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였다.
천상은 녀석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었다. 녹색 만신전도 너무 안일했다. 예전 경험한 한 번의 승리가 지나치게 달콤했던 모양이다.
그동안 아이반이 뛰어다니며 온갖 음모를 깨트렸다. 그리하여 악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어 있으니, 천상과 녹색 만신전은 승리를 자신했다.
아니었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는 진실로 세상의 종말이었다. 아득한 옛날보다 더욱 강하고 위험한 적이었다.
“나는 항상 싸웠다. 가장 약한 적을 상대할 때도, 가장 강한 적을 상대할 때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도 싸우고, 그때도 싸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