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62
“후회할 것이오. 너무나 강대한 적을 마주하고서야 뼈저리게 느낄 것이오.”
“미래의 싸움을 위해 현재의 싸움을 포기하는 법을 나는 모른다. 그리하여 강자에게 스러진다면, 그 또한 싸움의 결과겠지.”
현명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행동했다. 어차피 파멸의 마왕에게 패하든, 천상에게 밀리든 녹색 만신전의 미래가 어둡다면 상황을 바꿔야만 했다. 승리의 길을 찾는 전사의 본능이 그리 속삭였다.
화르륵!
현자처럼 깊은 눈에서 선명하게 광기가 불타올랐다. 억누르고 있던 흉포한 투기가 솟구쳤다.
결국, 오크투신 타르칸은 이런 존재였다. 이 또한 신성의 본질이라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녹색 만신전의 문을 활짝 열고 지상에 내려올 거다. 그것을 막는다면 악마가 되었든, 천상의 아홉 신격이 되었든, 그 누구라도 싸워야만 한다.”
볼바는 오크투신 타르칸이 천상을 공격할 것이라 말했다. 아홉 세계의 파멸을 예언했던 위대한 자가 미래를 내다보고 그리 읊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신들조차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읽었으니, 변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운명에 이끌려 갈 것이라면 아이반은 새롭게 탄생한 아홉 세계의 주인이 될 수가 없었을 거다. 운명은 선택하는 것이지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가 그리 결정했으니까.
벌컥벌컥!
인벤토리에서 독한 술 한 병을 꺼낸 아이반이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시원하게 비우고서 오크투신 타르칸에게 말했다.
“원하면 쟁취하는 것이 전사의 방식이라 했소? 그게 당신의 규칙이라고?”
“그렇다. 나는 그리 살아왔고, 그리 살아갈 것이다. 그게 나의 본질이며 신념이다.”
“그렇다면 증명하시오. 당신의 힘으로.”
아이반이 눈이 번뜩이며 오크투신 타르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세상이 변했다. 현실이 멀어지고 환상이 가까워졌다.
“심상 공간이오. 현실과 달리 여기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 그대도 본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겠지.”
그러자 오크투신 타르칸이 껄껄 웃었다. 눈물마저 흘리며 배를 붙잡고 한참이나 웃었다.
“하하하!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싸우라는 말이냐! 본신의 힘을 모두 끌어내서 덤비라는 말이냐!”
오크투신 타르칸이 씨익 웃었다. 그의 미소에 번들거리는 살기가 스며들었다. 투기가 태양처럼 뿜어졌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산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바다가 밀려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크투신 타르칸,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싸움꾼이 아이반을 보았다. 세계가 인정한 싸움의 신이 술동이를 내려놓고 도끼를 쥐었다.
“이 타르칸의 앞에서 그리 오만할 수가 있단 말이냐!”
그 말에 아이반이 피식 웃었다. 고개를 한껏 치켜들고 오크투신 타르칸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오만하다는 말이오? 누가 감히 나를 그리 부를 수 있다는 말이오?”
아이반이 힘을 내뿜었다. 위그드라실의 문양이 떠오르고, 그와 연결된 아홉 세계가 힘을 더했다.
“명심하시오. 당신 앞에 있는 자가 아홉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을.”
아이반의 곁에 피의 검 브리카, 어두운 용의 발톱, 묠니르가 나타났다. 위대한 신들의 힘이 무기에 깃들었다.
아이반이 내뿜는 기운이 강해질수록 오크투신 타르칸의 미소도 깊어졌다. 오래도록 경험하지 못한 짜릿한 느낌이었다.
– 그래, 이게 나의 방식이다! 이것이 투쟁이다!
오크투신 타르칸이 도끼를 휘둘렀다. 그렇게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싸움이 조그마한 텐트 안에서 시작되었다.
267화 아스가르드식 결투법
마치 세상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내려찍는 도끼는 대지를 부수고 산을 조각낼 만큼 파괴적이었다.
쾅!
어두운 용의 발톱이 오크투신 타르칸의 도끼를 막았다. 그러나 그 무게가 영 버거워서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크게 휘어졌다.
그 어떤 거인보다 힘이 강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단 한 번의 공격이었지만 절대로 근접전으로 붙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월자와 싸우는 것이 아직 미숙하던 바르투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노련한 투신이었다. 순수하게 전투만 놓고 본다면 아이반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고, 요행을 노릴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쉬이익-
오크투신 타르칸의 도끼가 아이반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렇게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면 틈이 생길 법도 한데, 도저히 파고들 수가 없었다. 마치 반동이 없는 것처럼 도끼의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치지직!
쾅!
묠니르가 붉게 달아오른 채 오크투신 타르칸을 노렸다. 산봉우리를 손쉽게 날려 버릴 힘을 품고 있었으나 오크투신 타르칸은 한 걸음도 밀려나지 않고서 그걸 튕겨 냈다.
그 순간 묠니르에서 뻗어 나온 번개가 오크투신의 몸을 꿰뚫었으나, 타르칸은 그저 씨익 웃는 것으로 털어 버렸다.
– 피가 끓는구나!
타르칸의 외침은 그 자체로 권능이었다. 전투의 함성은 자신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높이고, 상대의 움직임을 둔하게 했다. 아이반은 순간적으로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스걱!
아이반의 몸이 느려진 사이 가까이 다가온 타르칸의 도끼가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훑고 지나갔다. 아이반의 육신이 둘로 쩍 갈라지며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오크투신은 그 피와 시체를 무시하고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그대로 도끼를 휘둘러 후려쳤다.
쾅!
환영을 남기고 멀어지던 아이반이 다급히 도끼를 막았다. 몇 겹의 마법 방어막이 설탕처럼 부서지고 피의 검 브리카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키에에엑!
타르칸의 도끼는 너무나 강했다. 이제 거의 용이나 다름없는 브리카의 영체가 거친 투기에 상처 입을 정도였다.
– 더 많은 피를! 더 치열한 전투를!
이곳은 현실의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심상 공간이었다. 화신의 상태를 넘어 점점 더 본신에 가까워졌다. 오크투신 타르칸이 도끼를 휘두를수록 그의 기운이 끝도 없이 강해졌다.
순식간에 화신의 한계를 넘어선 타르칸이 아이반을 마구 몰아쳤다.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날카로운 바람이 쏟아졌다. 핏빛 가득한 마력이 살갗을 찢었다.
쉬이익!
타르칸의 도끼가 아이반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몸을 벗어나 허공에 떠오른 머리가 무표정하게 그를 지켜보았다.
“열려라!”
목만 남은 아이반이 소리치자 허공을 뚫고 얇은 끈이 나타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오크투신 타르칸의 몸을 묶고서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글레이프니르(Gleipnir), 뜻은 열린 것.
여인의 수염과 산의 뿌리, 고양이의 발걸음 소리, 물고기의 숨과 곰의 힘줄, 새의 침을 재료로 만든 아홉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봉인구.
이름부터 재료, 그 역할까지 그야말로 모순덩어리이니 가장 아홉 세계다운 보물이었다. 모순으로 뒤덮인 노르드 신화에서도 강렬한 상징이었다.
세계를 삼키는 늑대, 펜리르를 종말의 순간까지 묶어 놓았던 글레이프니르가 오크투신 타르칸을 붙잡았다.
스스스-
마력이 사라졌다. 신력이 사라졌다. 온갖 이능이 사라지고 오로지 육신의 힘만 남았다.
그러나 오크투신은 쇠약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강력한 육신의 힘으로 글레이프니르를 잡아당기며 가까이 다가왔다.
– 우습다, 실로 우습다!
상대를 봉인하는 것은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적을 약하게 했다면 자신도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아이반 역시 마력과 신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온갖 이능이 사라지고 오직 육신의 힘만 남았다. 거기에 더하여 오른손을 쓸 수 없었다. 감각 없는 살덩어리가 되어 달랑거리기만 했다.
근접전을 할 자신이 없어서 도망만 다니다가 글레이프니르로 서로 묶었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로 육신의 힘만 쓸 수 있다면 이전보다 더욱 불리하기만 했다.
오크투신 타르칸이 도끼를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아이반의 머리를 쪼개기 위해 거세게 휘둘렀다.
캉!
타르칸의 도끼가 막혔다. 아이반은 아니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팔 하나가 없는 전사가 나타나 검을 내밀었을 뿐이다.
티르, 오른손을 희생해 묠니르를 봉인한 전쟁의 신.
그가 아이반이 뒤집어쓴 제약을 가져갔다. 서로를 묶은 글레이프니르의 결투장 안에 아이반 대신 들어가 오크투신 타르칸과 마주했다.
“여기서는 내가 싸우겠다, 녹색의 신. 혹여 불만이 있는가?”
티르의 물음에 오크투신 타르칸이 껄껄 웃었다. 그리고 눈을 붉게 빛내며 대답했다.
– 전사는 상대를 고르지 않는다. 앞을 가로막는 자를 쓰러뜨릴 뿐이다.
“결투는 성립되었다.”
우웅-
티르가 가진 결투의 신으로서의 신성이 움직였다. 주변에 룬 문자가 새겨졌다가 불타서 사라졌다. 이제 이곳은 신성한 결투의 공간이니 그 어떤 것도 개입할 수가 없었다.
쾅!
오크투신 타르칸과 전신 티르가 붙었다. 둘 다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자들이었다. 오로지 육신의 힘만 사용한다고 해서 그 치열함과 강력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세고 날카로웠다.
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