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63
타르칸이 커다란 도끼로 내리찍었으나 티르는 검을 움직여 그것을 막아냈다. 한쪽 팔이 없지만, 전혀 불리한 것 같지 않았다. 때때로 위협적인 공격을 하기도 했다.
타르칸은 분명 가장 건장한 오크의 몇 배나 되는 덩치를 가졌지만, 티르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 역시 요툰의 피가 흐르니 힘과 덩치에서 밀릴 것은 없었다.
순식간에 수십 번의 공방이 지나갔다. 서로 자잘한 상처는 있었으나 치명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호흡조차 거칠어지지 않고 처음처럼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언뜻 보기에 백중세, 누가 유리한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오크투신 타르칸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듯 낮게 중얼거렸다.
– …아깝구나, 허신의 상태가 아니라면 더욱 재미있는 싸움이 되었을 텐데. 팔이라도 멀쩡했다면 더욱 훌륭했을 텐데.
타르칸은 티르가 허신임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또한, 아이반의 역량이 티르를 온전히 소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아이반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티르가 너무나 대단한 것이었다. 티르는 소환수로 부리기에는 너무나 강력했다. 이만한 대신격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이 현실의 제약을 벗어난 심상 공간이기에 허신인 티르가 나타날 수 있었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완벽하지 않았다. 아직 아이반은 티르의 강함을 선명히 그릴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꼼수로 부족한 점을 채웠지만, 허신의 상태로 타르칸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항상 만전의 상태로 싸울 수는 없는 법이지. 전사의 입은 변명을 담기 위한 것이 아니다.”
– 실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 진정한 승리로 여기지는 않겠다. 그 또한 전사의 긍지이니.
오크투신 타르칸이 거세게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엇비슷한 듯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오크투신 타르칸은 점점 더 강해졌고, 티르는 점점 더 약해졌다.
마침내 오크투신 타르칸의 도끼가 티르의 가슴에 박혔다. 결투에 패한 티르가 사라지자 오크투신 타르칸을 묶고 있던 글레이프니르 역시 사라졌다.
억눌린 신성과 마력이 멀쩡히 돌아오자 아주 조금이나마 쌓였던 전투의 피로가 단번에 날아가는 듯했다. 사라지기 전 티르가 칼을 박아 넣었던 옆구리의 상처가 단번에 지워졌다.
오크투신 타르칸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덩치가 한층 더 커졌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는 광전사의 특징은 여전했다. 오크투신 타르칸은 명백히 티르를 쓰러뜨렸을 때보다 강해졌다.
– 다음은 무엇인가!
거칠게 소리치며 아이반을 바라본 오크투신 타르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궁지에 몰렸을 아이반이 오히려 흥미로운 듯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오크투신 타르칸. 녹색 만신전의 주인이 약할 리가 없지. 그렇다면 다음은 어떻게 할까?”
오크투신 타르칸이 티르와 싸우는 사이 준비해 둔 온갖 마법진이 빛을 뿌렸다. 아이반의 등 뒤에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 위그드라실의 문양에서 온갖 기운이 흘러나왔다.
아스가르드의 수많은 자가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건너기를 원했다. 아이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래, 이번에는 우르가 좋겠어.”
그러자 궁술과 스키의 신 우르가 두 손을 활짝 들고 환호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신들은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묠니르를 들고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하던 토르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 아이반을 노려보았다. 티르에 이어 우르에게까지 밀린 것이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그러나 비프로스트 앞에서 한참을 버티던 토르도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뒤로 물러났다.
신들의 계보로 따지면 궁술과 스키의 신 우르는 여신 시프의 아들이었다. 토르의 아내가 바로 여신 시프이니, 말하자면 우르는 토르의 의붓아들이란 소리였다.
아무리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토르라고 해도 아들 차례를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다. 아주 놀라운 일이지만.
그사이 우르가 재빠르게 비프로스트를 건넜다. 그리고 활을 꺼내 들고서 오크투신 타르칸에게 소리쳤다.
“나는 궁술과 스키의 신, 우르다! 어서 싸우자!”
전투라면 사족을 못 쓰는 광전사의 신인 타르칸이라고 해도 이게 상황이 좀 이상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오크투신 타르칸이 아이반을 빤히 바라보았으나, 아이반은 오히려 뻔뻔하게 되물었다.
“왜 그러오? 싸우기 싫은 것이오? 오크투신 타르칸이 싸움을 피한다니, 아주 놀라운데.”
조금 떨떠름하기는 했지만 싸우기 싫은 건 아니었다. 훌륭한 전사와의 싸움은 길고 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니, 이처럼 대단한 상대를 연속해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오크투신 타르칸에게는 오히려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 오늘 내가 대단한 선물을 받았군. 그래, 얼마든지 오라!
오크투신 타르칸이 다시금 투기를 내뿜었다. 온몸이 불타는 듯 투쟁심이 솟구쳤다.
우르는 마치 허공을 미끄러지듯 스키를 타고 움직이며 화살을 쏘았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뚫고 오크투신 타르칸이 거리를 좁히려 애썼다.
그 싸움을 지켜보던 아이반이 스스로 점검했다. 이곳은 현실과 동떨어진 심상 공간이라 부담이 덜했다. 워낙 격이 높은 자들이니 그 누구도 온전하게 소환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과 같은 수준이라면 앞으로 몇 명쯤 더 불러올 수 있으리라.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할 수 있다면 다양한 방법을 시험하는 것이 좋았다.
“다음은 누구로 하지?”
아스가르드 신들이 번쩍번쩍 손을 들었다. 그중에서 아이반이 하나를 선택했다.
“그래, 다음은 스카디가 좋겠어.”
토르는 화가 나서 묠니르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268화 천상의 아홉 신
“제법 즐거운 싸움이었다!”
토르가 묠니르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오크투신 타르칸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발을 치웠다.
다른 신들이 비프로스트를 건너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토르는 마침내 끝까지 참지 못하고 다른 신들을 윽박질러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 그렇게 힘으로 순서를 차지하고서 억지로 비프로스트를 건너왔다.
어찌나 행복하게 날뛰었는지, 심상 공간이라 그를 소환하는 부담이 현저히 적었음에도 아이반의 얼굴이 홀쭉해질 정도였다.
“다 즐겼으면 돌아가시오.”
아이반이 퀭한 눈으로 그리 말하자 토르가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마음 같아서는 한판 더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그리고 자신이 때려눕힌 오크투신 타르칸에게 말했다.
“괜찮은 솜씨였다. 다음은 이런 장난이 아니라 제대로 붙어 보자.”
오크투신 타르칸은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찌나 지쳤는지 고개를 들어 올릴 힘조차 없어 보였다.
아무리 오크투신 타르칸이 위대한 투신이며 녹색 만신전을 이끄는 대신격이라 할지라도 아스가르드 신들과 연속해서 싸우고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하나 건너 하나가 대신격이었기에 허신이라고 허투루 볼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싸울 때마다 강해지는 광전사의 특성도 한계가 있었다. 일순간 모든 능력치가 폭발적으로 오르고, 끊임없이 체력을 회복하는 사기적인 권능도 시간제한이 있어서 계속 싸움이 이어지자 의미를 잃었다.
“다음은, 내가 이길 거요.”
오크투신 타르칸이 간신히 그리 내뱉으니 토르는 껄껄 웃으며 아스가르드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타르칸은 토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눈을 감은 채 한참이나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적당히 호흡이 돌아오자 부들거리는 손으로 땅을 짚고서 일어났다.
“흐, 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니. 대체 얼마 만에 경험하는 일인지 모르겠군.”
오크투신 타르칸의 본질은 끝없는 투쟁심이며, 멈출 수 없는 전장의 광기였다. 피와 죽음이 교차하는 전투야말로 그의 고향이며 잠자리이고, 안식처였다.
그러나 정작 오크투신 타르칸이 제대로 싸웠던 것은 아득히 오랜 옛날이 마지막이었다. 옛 대전쟁을 마지막으로 신화시대가 종결되고 그가 활약할 수 있는 전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화시대는 아직 질서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서 눈을 뜨면 언제나 주변에 피와 죽음이 가득했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짜릿한 싸움이 넘쳐 났다.
그러나 차원 방벽이 생긴 이후로 대부분의 초월자는 물질계에서 쫓겨났다. 아홉 신격은 천상으로, 그린스킨의 조상신들은 녹색 만신전으로.
오크투신 타르칸이 녹색 만신전의 모든 신을 제압하고 그들의 대표가 된 이후 그는 만족할 만한 전투를 할 수가 없었다.
더는 초월자가 맞부딪치는 전장이 없었고, 설령 있다 하여도 녹색 만신전의 주인인 그에게 덤비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를 건드릴 만한 자는 천상의 아홉 신격 정도밖에 없었는데, 아홉 신격은 굳이 오크투신을 공격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기를 원치 않았다.
그렇게 끝없이 전투를 갈망하며 참고 또 참은 것이 아득한 세월이었다. 이처럼 온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싸우고 싸운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심지어 패배하여 바닥을 구른 것은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음껏 싸우고, 마음껏 이기고, 마음껏 졌다. 이런 일은 길고 긴 신격의 삶에서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혼자서 여러 신과 돌아가며 싸웠으니 패배가 억울할 법도 하건만, 오크투신 타르칸은 그러지 않았다. 승리와 패배는 광전사가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이토록 즐겁게 싸울 수 있었으니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스스슥-
뼈마디가 으스러지고 살이 터져 나갔던 오크투신 타르칸은 짧은 휴식을 취하며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끊어질 듯 가늘고 또 거칠었던 숨소리마저 바다처럼 깊어졌다. 실로 괴물 같은 회복력이었다.
반면 아이반은 온갖 신을 소환하여 영적으로 연약해진 상태였다. 정신력의 한계가 간당간당했다.
그러니 지금 타르칸이 공격한다면 손쉽게 아이반의 목을 붙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나는 패배했다. 쟁취하기엔 힘이 부족하니 지금은 물러나겠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그러지 못했다. 오랜 세월 전투다운 전투를 하지 못했기에 생각보다 몸이 많이 굳어 있었다. 예전처럼 감각이 서늘하지 못하고 반응이 늦었다.
길고 긴 평화의 시간이었다. 그것이 투사의 몸을 좀먹었다. 이득을 생각하고 미래를 고민했으니 광전사라 할 수 없었다.
녹색 만신전의 주인, 그런 자리는 타르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화려한 옥좌에 앉아서 썩어 가고 있었다. 쓸데없는 살만 뒤룩뒤룩 찌고 있었다.
“정말 형편없이 약해졌군. 새로 단련해야겠어.”
그리 말하는 타르칸의 얼굴은 밝았다. 부족함을 알았으니 그것을 채울 뿐이다. 싸우고 또 싸워서 잃어버린 감을 되찾고, 최강의 투신으로 돌아갈 뿐이다.
패배하고도 살아남은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또다시 싸울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기쁘고 기쁜 일이었다.
“마침내 뜨거운 전사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오크투신 타르칸이 그리 외치는 것과 동시에 심상 공간이 무너졌다. 아이반이 거둬들인 것이다.
서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마력과 신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몸에 남은 상처도 깨끗이 사라졌다.
그들은 작은 텐트 안에 있었다. 둘 사이에 모닥불이 타오르고, 잘 익은 사슴 고기와 술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