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65
그러나 아홉 세계가 그리한다면, 아스가르드의 강대한 신들이 만약 몸을 회복한 후 마계를 공격한다면, 천상에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만약 마계에서 끝없는 전쟁이 벌어지면 피에 미친 광전사 오크투신 타르칸은 기꺼이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끝없는 전투와 영광스러운 싸움이야말로 오크투신 타르칸이 그토록 꿈꾸던 일이 아닌가.
그렇게 녹색 만신전이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 굳이 천상이 그들을 견제할 이유가 없었다. 천상의 낙원이 이 땅에 펼쳐지는 것이다.
“아홉 세계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만큼, 그대들도 아홉 세계를 위해 노력하라!”
아이반이 그리 소리치자 천상의 아홉 신격이 깊이 고민했다. 그러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천상의 아홉 신격이 그동안 아껴 두었던 힘은 실로 막대한 수준이었으나, 겨우 그것으로 마계를 치울 수 있다면 크나큰 이득이 분명했다.
아스가르드의 사악한 마신들은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끝없는 전쟁을 두려워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악마 놈들을 마음껏 때려죽이고 약탈할 수 있다며 즐거워했다.
언제나 이깟 연약한 세계를 잡아먹자고 속삭이던 오딘과 로키도 흐뭇하게 웃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아스가르드의 화신이자 아홉 세계의 주인다운 배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잘했다. 정기는 먼저 받아 챙기고, 적당히 마계와 싸우는 척하다가 이쪽 세계가 약해지면 둘 다 잡아먹는 것이 좋겠구나. 너는 그 어떤 계약도 벗어날 수 있으니 참으로 훌륭한 계책이다.
운명조차 붙잡을 수 없는 특이점을 활용한 수준 높은 음모라면서 오딘이 칭찬하자 아이반은 급격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소. 계약은 지킬 것이오.’
아이반은 어디까지나 모든 세상을 위한 건설적인 제안을 했을 뿐이었다. 언제나 뒤통수를 칠 궁리만 하는 배반의 지배자와는 달랐다. 적어도 아이반은 그렇게 생각했다.
몇 가지 계약 조건을 검토한 뒤에 천상의 아홉 신격이 사라졌다.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이곳에 닿았으나, 존재는 멀어졌다.
천상의 아홉 신격은 하나같이 대신격이었다. 겨우 의지만 불러온 수준이었으나 홀로 그들을 장시간 감당하는 것은 델피노에게도 제법 힘든 일이었다.
오가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워낙 중요했기에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영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피로했다.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델피노가 허허 웃으니 아이반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원하는 것이 명확하면 방법이 있기 마련이지. 나도 제법 머리를 썼소. 오크투신과 달리 힘으로 설득할 수 있는 자들은 아니니까.”
“아홉 신격께서도 당신과 싸우기를 원치는 않으실 겁니다. 그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니까요.”
“천상은 합리적이지.”
“그러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마계를 공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오. 끔찍한 싸움이겠지. 그러나 어찌 위험하다는 이유로 세상을 위한 일을 외면할 수 있겠소?”
아스가르드의 몇몇 신이 탭댄스를 추며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은 숨긴 채 아이반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실로 영웅다운 태도였다.
오랜 세월 아이반과 함께했던 델피노는 아이반의 표정 너머의 생각을 읽고 피식 웃었다.
“언제나 그대가 가장 힘들 때 제가 곁에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든든하군.”
아이반은 힐끗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상의 아홉 신격은 계약을 지켰다. 막대한 양의 정기가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막대한 정기를 받아먹었으니 그만큼 열심히 싸워야만 했다. 더는 발을 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예전부터 그러했으니 새삼스러운 제약도 아니었다.
흘러들어온 정기가 새롭게 태어난 아홉 세계를 촉촉하게 적셨다. 아직도 부족하고 부족했으나, 그것만으로 위그드라실이 크게 자라나는 것이 느껴졌다. 뿌리는 더욱 굵고 튼튼해졌으며, 가지를 길게 뻗고 잎사귀는 푸르렀다.
우웅-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홉 세계의 모두가 죽은 자였으며 허신이었다. 그러나 정기가 닿으니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진실로 죽음에서 벗어나 삶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들이 허신을 벗어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으나, 예전보다 훨씬 살 만했다.
깡! 깡! 깡!
스바르트알파헤임, 니다벨리르에서 끊임없이 망치 소리가 흘러나왔다. 난쟁이들은 진실로 초월적인 능력으로 위대한 무기를 쏟아 내고 있었다. 난쟁이 왕의 둘째 아들, 레긴이 그들을 이끌었다.
뜨거운 쇳물이 망치를 얻어맞고 모습을 바꿔서 차갑게 식었다. 그 서늘한 무구는 아스가르드로 옮겨져 발할라의 에인헤랴르를 무장시켰다.
아홉 세계가 부활한 이후 조금씩 진행된 재무장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겨우 인간의 군대를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괴물을 죽일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아홉 세계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끼면서 아이반이 남쪽을 바라보았다. 지독한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끼이이익!
마치 세상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온 세상이 비틀리고 꺾이며 요동쳤다. 온갖 법칙이 흔들리고 상식이 뒤집혔다. 가장 사악하고 어두운 자가 이 땅에 발을 디뎠다.
마계가 이 세상을 잡아 뜯었다. 날카로운 손으로 잘게 찢은 다음 가장 사악하고 역겨운 땅으로 만들었다.
파멸의 마왕이 마침내 나타났으니, 모든 종말이 그를 경배했다.
척!
아이반이 손을 올리자 헤임달이 크고 화려한 뿔피리를 꺼냈다. 한때 미미르가 지혜의 샘을 퍼마실 때 사용했다는 뿔잔을 개조한 물건이었다.
걀라르호른(Gjallarhorn), 뜻은 부르짖는 뿔피리.
예전 라그나로크가 시작되었을 때, 헤임달은 이것을 불어서 세상에 알렸다. 그 이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것을 다시금 꺼내 들었다.
뿌우, 뿌우우우-
크고 우렁찬 소리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 땅의 모든 존재를 향해서 위대한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신호를 받은 모든 이가 움직였다. 드워프이 세 왕국은 하나가 되어 진격을 시작했고, 세계수는 뿌리를 뻗어 엘프를 이 땅으로 보냈다. 수인 동맹이 날카로운 손톱을 번뜩이며 대수림을 벗어났고, 라이칸스로프와 노르드의 전사가 남쪽으로 향했다.
힘을 모아 파멸의 마왕이 건너오는 것을 막던 드래곤들은 실패를 인정하고 뒤로 물러난 후, 영락한 초월자들의 목을 조이고 있는 악마의 계약을 끊어 버렸다. 투신 바르투이와 뱀신 모르나는 그들을 데리고 악의 세력을 벗어났다.
자잘한 신경전은 할 만큼 했다. 이제 전쟁의 시간이었다.
라그나로크(Ragnarǫk), 신들의 운명.
이번 신들의 운명은 예전과 다를 것이다.
270화 최선의 방어
대륙 남부에 마계의 문이 열리고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넘어왔다. 그동안 위축되어 있던 악마의 세력은 단번에 일어나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리난 제국의 남부는 다시금 악마의 땅이 되었고, 타락한 동서 마리난의 황제들을 가까스로 처리한 라인하르츠 공작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아슬아슬한 방어선을 지키고 있었다.
사방에서 악마의 추종자들이 호응해 날뛰었다. 각지에서 오래된 괴물이 나타나 날뛰거나 언데드 군대가 움직였다. 때로 도시 하나가 그들의 손에 넘어가 주변을 공격하기도 했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이 땅에 등장한 것만으로 세상의 선악이 요동쳤다. 균형이 무너지고 어둠이 깊어졌다.
“세상이 두려움에 떨고 있어.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군.”
자연의 구도자 테잔이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자연의 화신인 대주술사이기에 그 끔찍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파멸의 마왕이 나타나면서 이 땅은 마계가 되었다. 그렇게 세상이 죽어 가고 있었다.
“예상하던 일이잖소? 지금이라도 잘 막아 봐야지.”
아이반은 그리 말하며 델피노를 보았다. 성자 델피노는 성황청의 모든 군대를 이끌고 이곳에 있었다. 마계의 역겨운 땅이 이 세상을 점점 집어삼키는 것을 보면서 낮게 기도문을 읊었다.
“…이 세상의 모든 빛과 영광으로 한 점의 사악함마저 닦아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화아아아-
델피노의 몸에서 흘러나온 빛이 이곳에 있는 모든 병사의 몸에 깃들었다. 저 멀리서 흘러나오는 사악한 기운에 잔뜩 움츠려 있던 병사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용기가 솟아올랐다.
천상의 아홉 신격이 선택한 신성 대리인, 델피노는 몇 번이나 신을 소환하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면서 영격이 성장했다. 그는 이제 천상의 하위 신격이나 다름없었다. 필멸자를 벗어나 초월자에 닿은 셈이다.
사실 그를 제외하고도 초월자가 몇이나 탄생했다. 멸망의 순간은 세상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잠재력을 토해 내는 시기였다. 난세에 영웅이 태어난다고, 필멸자의 한계를 기어코 넘어선 자들이 생겼다.
오랜 세월 차원 방벽에 가로막혀 있다가 그것이 사라지고 초월자가 사방에서 날뛰니 덩달아 영격이 자극받았다.
아이반이 그러했으며, 투신 바르투이가 그러했고, 요정의 숲에서 각성 중인 이레인이 그러했으며, 성자 델피노가 그러했다.
강철 모루의 왕자 브릭타는 은빛 용광로의 첫 번째 망치, 위대한 소두린을 이어 드워프를 지키는 영웅이 되었으며, 수인 연맹의 맹주는 동물신으로 승화했다.
오크투신 타르칸은 오크로드 카르타크를 녹색 만신전으로 초대하여 자신의 하위 신격으로 삼았으니, 그 어느 때보다 초월자가 많이 탄생하고 있었다.
그 옛날 신화시대가 끝나고 이처럼 세상이 요동치던 때가 있었던가. 파멸을 맞이한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생명력이 넘쳐 나고 있었다.
스스스-
저 멀리서 시커먼 악마들이 달려왔다.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고, 땅을 뒤덮었다. 가장 역겹고, 두렵고, 위험한 것들이 거칠게 몰아쳤다.
휘리릭!
성자 델피노는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깃발, 신성의 증명을 펼쳤다. 한순간 어둠이 밀려나고 광명이 내리쬐었다.
“그 어떤 어둠도 나를 넘을 수는 없노라! 천상의 주들이 우리를 보호하신다!”
그가 그리 외치자 방어선을 따라 신성한 기둥이 치솟았다. 대륙 전체를 뒤져도 몇 되지 않는다는 추기경부터, 이제 막 성직을 시작한 수련 사제에 이르기까지 일념으로 기도하니 신성한 힘이 퍼져 나가 그들을 보호했다.
성지 선포. 천상에서 내려온 아홉 빛깔의 신성한 기운이 강력한 결계가 되어 그들을 감싸 안았다.
우우웅-
신성한 결계가 나타나자 기세 좋게 달려들던 악마들이 움찔했다. 그러나 발을 멈출 수가 없었다. 뒤에 있는 녀석들의 발에 짓밟혀 죽지 않으려면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쾅!
하급 악마들이 신성한 결계에 몸을 던졌다. 사악함을 정화하는 힘이 악마의 육신을 단번에 불태웠으나, 사방에서 끝도 없이 몰아치니 신성한 결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르륵!
악마를 정화하는 불길이 여기저기서 치솟아 세상이 환해졌다. 그 뜨거운 불길 앞에서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놈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흔들리는 결계의 틈으로 넘어오려는 녀석을 발견하면 재빨리 움직여 창칼을 쑤셔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