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66
그러나 신성한 결계의 틈을 넘어왔다는 것은 평범한 하급 악마가 아니란 뜻이었다. 몇몇 놈은 창칼이 몸에 박히면서도 거칠게 날뛰어 병사들을 찢어 놓았다.
그러면 기사들이 나섰다. 축복받은 검으로 악마의 심장을 꿰뚫고, 목을 잘라 버렸다. 그러면 더 강한 악마가 넘어와 기사를 죽이고, 그보다 더 강한 자가 나타나 악마를 쓰러뜨렸다.
쾅!
멀리서 커다란 창 하나가 날아와 신성한 결계를 꿰뚫었다. 무식한 힘으로 방어막을 부수고 틈을 만들었다. 성기사 하나가 그걸 막으려고 방패를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짓눌려서 죽었다.
– 크하하하! 언제까지 그리 버틸 수 있겠나!
멀리서 사악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악마가 여섯 개의 창을 들고서 하나씩 집어 던지고 있었다. 불타오를 듯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보면 틀림없는 고위 악마였다.
아이반은 어두운 용의 발톱을 꺼내 들고서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손을 까딱 움직이니 고위 악마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푸슈욱!
녀석의 팔 두 개가 잘려서 바닥을 굴렀다. 검붉은 피가 콸콸 쏟아져 주변을 적셨다. 단번에 목을 베려고 했는데, 실력에 비해서 감이 무척이나 좋은 놈이었다.
고위 악마가 다급히 도망가는 것을 보면서 아이반이 창을 거뒀다. 따라가 죽일 수 있었으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적은 주변에 가득했다.
수많은 놈을 죽였고, 또 수많은 이가 죽었다. 그러나 이건 겨우 간 보기에 불과했다.
“이곳은 어찌 잘 막아내고 있소. 그쪽은 어떻소?”
아이반이 그리 물으니 수정구 속에서 뱀신 모르나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 악신을 계속 자극하고 있다. 이대로 파멸의 마왕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거냐고 찔러보아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구나. 세상을 멸망으로 이끄는 악신들도 크툴라스는 무서운 모양이지.
“악신이 크툴라스 밑으로 들어가는 일은 막아야만 하오. 수고해 주시오.”
– 뭐, 이것도 재미가 있으니 상관없노라. 그나저나 천상과 이상한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는데, 정말로 마계로 갈 생각이더냐?
“그럴 것이오. 선금도 넉넉히 받았으니 이제 와서 못 하겠다고 말하면 천상의 아홉 신격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 그것도 제법 재미가 있을 것 같은데…….
뱀신 모르나는 낮게 웃다가 말했다.
– 움직일 거라면 대전사를 데려가라. 악마와 동물신을 잡아먹고서 제법 컸으니 이제 자기 몫은 능히 해낼 수 있을 거다.
뱀신 모르나는 사나운 이빨이 껍질을 벗어던져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으며, 가슴에 품고 있는 용의 심장에 어울리는 자가 되었다고 알렸다.
끊임없이 탈피하여 성장하는 뱀처럼, 사나운 이빨도 그렇게 끊임없이 강해지고 강해졌다고 말했다.
순수하게 사나운 이빨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뱀신 모르나가 자신의 신력을 소모해 사나운 이빨의 길을 열어 버린 모양이다.
세계수가 이레인을 초월자로 만드는 것을 봤는데 뱀신 모르나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는 상관없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세계수가 신경 쓰였을 테니까.
세계수가 엘프의 종족신으로 선택받은 것과 달리 뱀신 모르나는 버려졌으니, 질투심과 열등감이 남아 있었다. 초월자답지 않은 감정이었으나, 그 또한 일곱 요정이 벗어던진 허물이자 뱀신 모르나의 본질이니 당연한 일이다.
– 쯧, 대전사라는 녀석이 내 곁에 있는 것보다 그대와 함께 싸우는 것을 좋아하다니. 빌려줄 테니 잘 쓰고 돌려놓아라.
통신용 수정구에서 뱀신 모르나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아이반 옆 공간이 요동쳤다. 성지 선포로 이 주변을 장악한 델피노가 그를 허락하자 요정의 숲을 통해 사나운 이빨이 넘어왔다.
“오랜만이다!”
크게 소리치며 나타난 사나운 이빨의 모습이 낯설었다. 덩치는 이전보다 더욱 커졌고, 얼굴은 조금 더 날카로웠다. 내뿜는 기운마저 웅장했다. 이제 리자드맨의 흔적은 거의 다 사라졌고, 용의 모습이 짙게 나타났다.
“…새로운 동족이 탄생했구나.”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는 사나운 이빨을 보고서 그리 중얼거렸다.
세계주권은 없어도, 태어나기를 용으로 태어나지 않았어도, 이제 그는 용이었다. 아마 지금 이 땅에 남아 있는 모든 드래곤이 그리 생각할 터였다.
“그대의 곁에서 싸우기 위해 뱀신께 청하여 내가 왔다!”
“고맙소. 큰 도움이 될 것이오.”
그렇게 아군이 모이는 것만큼 적도 강해졌다. 스치는 바람에 섞인 사악한 기운은 이전보다 더 짙었고, 신성력이 없었다면 그 독기를 못 버티고 쓰러지는 병사들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달의 여신 셀룬이 자세를 가다듬고 성벽 너머를 노려보았다. 막강한 마력이 몇이나 느껴졌다.
“드디어 대악마가 움직이는군.”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를 모시는 다섯 대악마 중 둘을 쓰러뜨렸으나, 아직도 셋이 남아 있었다. 또한, 대악마와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고대 악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걱!
대악마의 커다란 손톱이 하늘을 가르고 신성한 결계를 찢었다. 부서지는 결계를 뛰어넘어 악마들이 달려들었다.
바닥에 가득한 피와 시체를 밟으면서 대악마가 걸어왔다. 검은 날개가 전장을 뒤덮고, 하늘에서 내리쬐는 천상의 빛을 막았다.
사제들이 신성력을 내뿜었으나 대악마에 닿지 않았다. 마치 봄바람처럼 흩어지기만 했다.
가장 신성한 자가 가장 지독하게 타락했으니, 이자가 바로 악마의 수호신이었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와 가장 치열하게 싸우던 자가 가장 충실한 부하가 되었으니, 이자가 바로 천상의 치욕이었다.
대악마, 신성의 배신자.
빛의 신 아룬의 형제는 천상을 비웃으며 손을 펼쳤다. 아직도 파멸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 세상의 끝을 보아라! 이것이 파멸의 축복이다!
그 뒤로 강력한 힘을 가진 고대 악마들이 움직였다. 천상의 군대를 찢어발기기 위해 무기를 들고 진격했다.
틀림없이 종말을 논할 만큼 거친 전장이었다. 위험하고 위험한 전투였다.
‘정말 계획대로 해도 될까? 버틸 수 있을까?’
아이반이 그리 고민하는 것을 본 테잔이 피식 웃었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가? 그런 생각은 마시게. 우리는 약하지 않으니까.”
이기는 것이라면 몰라도, 지지는 않는다. 버티는 것이라면 문제없었다.
“대악마 몇이 있다고 이곳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니 안심하고 다녀오시게.”
테잔이 지팡이를 꺼내 바닥을 내리치자 땅이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며 적을 휩쓸고 지나갔다. 폭풍이 몰려와 악마를 공격했다.
달의 여신 셀룬이 검을 휘둘렀다. 대악마가 달빛을 튕겨 내니 주변에 있던 악마 수십이 몸이 잘려서 쓰러졌다.
스읍-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본 모습으로 돌아와 하늘로 날아올랐다. 숨을 크게 마시고 마력을 불태워 단숨에 내뱉었다.
화르르륵!
악마의 육신이 우습게 불타올랐다. 화염 악마조차 용의 불길을 못 견디고 재가 되었다.
우웅-
하늘이 열리고 천상의 군대가 내려왔다. 온갖 권능을 품은 전투 천사들이 악마를 꿰뚫었다.
“그러면 다녀오겠소. 그때까지만 버티시오.”
아이반은 그러면서 델피노와 사나운 이빨을 보았다. 본래 혼자 움직일 생각이었으나, 천상은 델피노를 통해 성실히 계약을 이행하고 있는지 감시하고자 했고, 사나운 이빨이 이리 찾아왔으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우웅-
아이반의 등에 새겨진 위그드라실의 문양이 황금으로 빛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세계가 왜곡되며 그들은 춥고 죽음 가득한 땅에 도착했다.
니플헤임의 니다푤, 니드호그가 아홉 세계를 떠나고, 또 돌아왔던 곳.
아이반은 부서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곳으로 마계를 칠 것이오.”
271화 마계 침공
니다푤은 여전히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니드호그와 싸우면서 산맥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 모습 그대로였다.
초월자의 영혼조차 시리게 만드는 지독한 추위에 하늘은 부서졌고, 그 너머의 풍경조차 옛 라그나로크의 영향으로 끔찍하기만 했다.
한때 찬란했던 도크알프들의 땅, 난쟁이의 왕국. 옛 니다벨리르가 파괴된 채 방치되었다.
이제 새로운 니다벨리르가 탄생했으니 이곳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새롭게 태어난 아홉 세계가 더욱 성장하여 옛 상처를 지울 때까지는 계속 폐허로 남아 있으리라.
아이반은 니다푤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홉 세계의 군대를 불러 모았다.
뿌우- 뿌우우우-
길고 긴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다시 전쟁의 시간이 찾아왔음을 알렸다.
라그나로크를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아홉 세계의 비명이었다면, 지금 울려 퍼지는 소리는 아홉 세계의 환호성이었다. 새로운 영광을 위한 신호였다.
쿠구구궁-
땅이 울린다. 수많은 전사가 영광을 쟁취하기 위해 찾아오는 소리였다. 아홉 세계의 가장 용감한 자들이 앞다퉈 달려왔다.
알프헤임의 료스알프(Ljósálfr: 빛의 요정)부터 미드가르드의 인간 전사, 요툰헤임의 거인들과 아스가르드의 신에 이르기까지.
전투를 두려워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 번 목숨이 끊어졌음에도 그들을 멈출 수는 없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치열하게 싸웠던 요툰조차 아홉 세계의 주인이 병사를 소집한다는 말에 대뜸 찾아왔다. 이번 전쟁이 아홉 세계에게 얼마나 위대한 싸움인지 알기 때문이다.
악마를 죽이고 녀석들의 힘을 빼앗아야만 허신을 벗어나 진정으로 부활할 수가 있었다. 마계를 점령해야만 아홉 세계가 옛 모습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언제나 치고받고 싸우던 아홉 세계가 이제야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