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69
테잔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마계로 넘어간 일행이 어떤 상황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잘하고 있다면 무언가 변화가 있을 텐데, 악마의 공격이 점점 더 거세지니 불안하기만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락취가 검을 뽑아 멀리 뻗었다.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멀리 날아가다가 문득 막혀서 흩어졌다.
우우웅-
흔들리는 공간 너머로 기괴하게 생긴 악마가 씨익 웃고 있었다. 제대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흐릿했지만, 결코 약한 녀석이 아니었다.
“크툴라스를 따르는 고대 악마인가?”
테잔이 잔뜩 경계하며 주력을 모으기 시작하자 공간을 찢고 나타난 악마가 낄낄 웃었다.
– 크툴라스? 나는 그를 따르지 않는다.
비록 악마가 서로 배신하고 잡아먹기를 반복하는 놈들이지만 압도적인 힘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감히 파멸의 마왕을 따르면서 그를 부정하는 말을 할 수는 없다는 소리다.
‘새로운 세력이라고? 또 다른 마왕?’
테잔의 표정이 변했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 하나만 해도 쉽지 않은데 또 다른 마왕이 전쟁에 끼어든다면 미래가 암울하기만 했다.
“여기만 나타난 것이 아니야! 다른 쪽도 확인을…….”
자연의 구도자 테잔의 분신이 흙무더기가 되어 사라졌다. 검신 카락취가 내뿜는 기세와 새로운 악마의 힘을 못 이기고 술식이 무너진 것이다.
방금 고대 악마를 쓰러뜨리고 아직 그 독기가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카락취는 흡족한 듯 웃었다. 이리도 강한 자와 계속 싸울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즐거웠다.
나는 아직도 강해질 수 있다. 앞으로도 나아갈 길이 있었다.
검에 대한 열망, 강해지고 싶은 생각, 끝도 없는 투쟁심.
그 모든 것이 그를 초월자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한낱 고블린이 검신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얻은 이유였다.
“얼른 처리하고 움직여야겠군. 이제야 전쟁이 재밌어졌어.”
카락취가 검을 뽑았다. 언제나 그러했듯 검을 쥐었다.
집념, 그래 집념이었다.
273화 망자의 군대
길게 갈라진 땅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고, 두껍게 쌓인 성벽은 한참이나 고개를 들어야 할 정도로 높았다.
과연 악마의 성채였다. 인간이 만든 성이 장난감처럼 느껴질 정도로 흉악하고 단단했다.
쾅!
큼지막한 바위가 악마의 성채를 후려쳤다. 검붉은 방어막이 마치 핏줄처럼 나타나 성채를 보호했다. 평범한 성벽이라면 진작 무너졌어야 하지만, 악마의 성채는 자그마한 균열조차 없었다.
그 모습을 살펴보던 아이반이 입을 열었다.
“제법 방어가 단단하군. 이제야 진짜가 나타난 모양이오.”
그동안 이곳이 마계라는 것을 잊을 만큼 시원하게 밀고 왔다. 지금껏 제대로 막아서는 놈이 없이 파죽지세로 이곳까지 닿았으나, 이제야 반항다운 반항이 시작된 듯했다.
조금만 힘을 써도 모래처럼 무너지던 것과 달리 방어가 튼실했다. 보통 초월자가 나서면 성벽이고 나발이고 소용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건 초월자조차 쉽게 넘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긴,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마계는 전투가 끊이질 않는 곳이니 이 정도 대비는 되어 있어야지.
피우웅!
악마의 성채가 반격을 시작했다. 거의 기둥에 가까운 수준의 큼지막한 화살이 쏟아지고, 온갖 저주와 역겨운 독기, 끔찍한 마법이 날아왔다.
평범한 인간의 군대라면 단번에 쓸어버릴 공격이었다.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아군을 평범한 인간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발할라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최고의 전사들이며, 아홉 세계를 통틀어 가장 용맹한 자들이었다.
– 아스가르드와 아홉 세계를 위하여!
천둥신의 아들다운 기운을 터트리며 마그니가 앞으로 달려갔다. 그를 노리고 온갖 공격이 쏟아졌으나, 그는 맨몸으로 그 모든 것을 견디고 파괴의 망치를 휘둘렀다.
치지직!
쾅!
마그니의 묠니르가 악마의 성채를 때렸다. 큼지막한 바위는 가볍게 막아 냈으나, 묠니르도 그리 막을 수는 없는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방어막이 요동쳤다.
스스슥-
악마의 방어막은 무너지지 않았으나, 그 여파만으로 성벽이 쩍 갈라지고 돌가루가 흘러내렸다. 공격을 쏟아 내던 악마들이 발라당 넘어져서 바닥을 굴렀다.
– 으하하! 몇 번 더 두드리면 무너지겠군!
마그니가 묠니르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다시금 달려드니 악마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이전보다 몇 배로 두꺼워진 방어막이 떠올라 마그니를 밀어냈다.
– 언제까지 막을 수 있겠나!
쾅! 콰쾅!
묠니르가 후려칠 때마다 방어막이 부서지고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어찌어찌 막고는 있었으나 마법을 사용하는 악마들이 하나둘씩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 이 무식한 놈이!
악마의 성채에서 고대 악마 하나가 뛰쳐나왔다. 지닌 힘이 대악마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놈이었다. 아마도 이 성채의 주인이겠지.
– 멀리 사라져라!
고대 악마가 소리치니 마력이 움직이며 법칙을 비틀었다. 껄껄 웃으며 달려들던 마그니의 걸음이 점차 느려지고,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았던 거리가 한없이 멀어졌다.
공간을 비틀고 몇 개나 되는 차원을 겹쳐서 마그니를 멀리 밀어냈다. 어설픈 공간 마법이라면 무시했겠지만, 과연 고대 악마의 권능이라 마그니조차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밀려났다.
휘이익!
고대 악마의 머리를 깨부수기 위해 한 뼘 앞까지 다가왔던 묠니르가 멀어졌다. 마그니의 모습이 마치 점처럼 멀어지다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렇게 신격 하나를 멀리 추방하고도 고대 악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발리가 검을 들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이익!
고대 악마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수십 개나 되는 보호 마법을 두르고 있었으나, 발리의 검은 그 모든 방어를 뚫고서 녀석의 어깨를 찔렀다. 마지막에 고대 악마가 몸을 비틀지 않았다면 수월하게 심장을 꿰뚫었으리라.
쾅!
고대 악마는 마력을 터트리며 발리를 뒤로 밀어냈다. 그와 동시에 공간을 넘어서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고대 악마의 마력에 홀린 상급 악마들이 몸을 던져서 시간을 벌었다.
발리의 검에 베여서 몸이 조각나고서야 정신을 차린 상급 악마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크어어억!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하들을 고기 방패로 만든 고대 악마는 오히려 부하들의 피와 육신을 제물로 삼아 마법을 사용했다.
차르르륵!
악마들의 피와 육신, 원혼을 재료로 사슬을 만들었다. 그 사슬이 발리의 손발을 묶어서 봉인했다.
쿵!
발리가 힘을 줄 때마다 사슬이 끊어졌지만, 신격이라도 아주 잠깐은 붙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붙잡힌 발리를 향해 고대 악마가 주문을 읊었다.
– 삶과 죽음을 반전…….
화르륵!
녀석이 미처 주문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사나운 이빨이 불을 내뿜었다. 용의 불길을 날개로 삼아 하늘로 날아오른 사나운 이빨이 덤벼드니 고대 악마는 이를 악물며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 모두 죽……!
치지직!
쾅!
몇 번 공간을 뛰어넘어 몸을 피한 고대 악마는 다시금 공격하려다 말고 머리가 터져 나갔다. 끔찍한 육신이 허무하게 아래로 떨어져 성벽을 무너뜨리고 바닥에 박혔다.
비다르가 고대 악마의 목을 붙잡고 주먹을 휘둘렀다. 조금씩 재생하려던 고대 악마의 머리가 다시금 터져 나가고, 땅이 흔들렸다. 겨우 주먹질만으로 지진이 일어났다.
그는 대단한 장사였다. 아스가르드의 무수히 많은 신 중에서 그보다 힘이 강한 자는 오직 토르밖에 없었다. 모디와 마그니가 아버지 토르와 닮아서 힘이 세다고는 해도 맨손으로 펜리르의 턱을 찢어 죽인 비다르만은 못할 터였다.
팟!
고대 악마를 완전히 마무리한 비다르가 녀석의 육신을 헤집고 핵을 뽑았다. 고대 악마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힘을 강탈했다.
비다르는 그걸 빤히 바라보다가 아이반에게 내밀었다. 아이반은 그걸 보지도 않고 위그드라실을 향해 던졌다.
스르륵!
고대 악마의 핵을 받아먹은 위그드라실의 문양이 밝은 빛을 뿜었다. 사악한 기운을 꼭꼭 씹어서 소화한 이후 순수한 힘의 형태로 가공하여 아홉 세계로 퍼트릴 것이다.
본디 초월자의 신성을 정화하여 흡수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위그드라실은 아홉 세계를 능히 지탱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에 다소 탁한 기운이라도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게다가 아스가르드의 마신들은 정화가 덜 끝난 악마의 핵이 짜릿한 맛이 있다면서 더 선호하기도 했고.
우웅-
새로운 정기가 공급되니 새로운 자가 아홉 세계에서 나타났다.
거대한 육신을 가졌으나, 너무나 쇠약하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늙은 요툰.
외형만 보자면 조금도 위험할 것 같지 않았으나, 그가 등장하자 에인헤랴르는 물론이고, 비다르와 발리, 모디가 크게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대 악마의 마법으로 저 멀리 추방되었던 마그니 역시 가까스로 돌아와 가쁜 숨을 내쉬는 와중에도 묠니르를 쥐고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