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71
쿵!
– 일어나라, 노예들아! 나의 적을 붙잡아 너희의 동료로 만들어라!
스스슥-
바닥이 갈라지며 무수히 많은 해골이 일어났다. 푸른 안광이 타오르고, 사악한 마력이 뼈만 남은 몸을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평원의 모든 것이 뼈로 뒤덮였다. 손짓 한 번에 백만의 망자를 움직일 수 있다는 녀석의 소문이 헛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 헬헤임의 전사들아! 아홉 세계를 위해 싸워라!
나글파르가 해골 병사를 갈아 버리며 앞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망자의 군주가 불러온 해골 병사가 너무 많아서 조금씩 나글파르를 기어오르다 보니 순식간에 해골 병사로 가득했다.
망자와 망자, 저승의 전사와 죽음의 노예.
그들은 서로를 불쾌한 듯 바라보다가 달려들었다. 창칼로 뼈를 부수고, 차갑게 식은 육신을 꿰뚫었다.
헬헤임의 전사들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도 신경 쓰지 않았고, 망자의 군주가 소환한 해골 병사들은 뼈가 가루가 되어도 물러나지 않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나, 그들의 싸움은 그 어떤 전장보다도 치열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기에 더욱 격렬했다.
“가장 어두운 곳에 빛이 임하리라.”
화아아-
델피노가 낮게 기도문을 외우자 그의 등 뒤로 후광이 나타났다. 사악한 것을 정화하는 신성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는 그 빛이 나글파르와 헬헤임의 전사를 비추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각도를 조정한 후 악마를 향해 강하게 내뿜었다.
화르륵!
델피노의 빛이 닿는 곳마다 신성한 불길이 피어올랐다. 망자의 군주가 소환한 해골 병사들은 수가 많았지만 하나하나는 강하지 않아서 신성한 빛을 견딜 수 없었다.
– 역겨운 놈이……!
망자의 군주가 델피노를 노려보자 사악한 저주가 쏟아졌다. 원혼이 비명을 내지르고, 생명을 질투했다.
끼아아아악!
평생 신실하게 몸과 마음을 갈고닦은 수도사라도 눈을 까뒤집고 스스로 목을 조를 정도로 지독한 저주였다. 그러나 빛의 신 아룬의 인도로 초월자가 된 델피노는 그저 빛을 조금 더 강하게 내뿜는 것으로 그 사악한 저주를 밀어냈다.
쾅!
그때 땅이 뒤틀리면서 한쪽이 크게 무너졌다. 그리고 거대한 덩치의 괴물이 바닥에서 솟아나 일행을 노려보았다.
초월자의 경지에 닿은 마물이었다. 동물신이 세상의 정기를 받아 초월자가 된 것처럼, 마계에 가득한 어두운 마력을 흡수한 마물이 초월자로 각성한 모습이었다.
격은 겨우 간신히 벽을 넘어 초월자가 되었을 뿐이지만, 덩치 하나는 남달랐다. 상반신만으로 웬만한 성채와 비슷한 크기였다.
평범하게 땅을 파고 지나다닐 크기가 아니었다. 발밑까지 몰래 움직일 수도 없을 테고. 아마 그와 관련된 권능이 있는 모양이다.
부우우웅-
쾅!
늑대를 닮은 앞발로 땅을 후려치니 온 사방이 쩍쩍 갈라졌다. 강력한 충격파가 퍼지고, 흙먼지가 폭풍처럼 솟아나 앞을 가렸다.
겨우 흙먼지로 초월자의 눈을 가릴 수는 없었다. 그러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 다른 권능의 힘이었다.
스걱-
아이반이 순간 섬뜩한 감각을 느끼고 몸을 비틀었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시?’
강철보다 단단하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가시였다. 그 거대한 마물이 손을 휘두를 때마다 털이 날아오는 모양이다.
스르륵
아이반이 마력을 내뿜으니 오른쪽 눈이 황금으로 빛났다. 그리고 그의 뒤에 황금 옥좌가 나타났다.
흘리드스캴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곳을 살펴볼 수 있다는 마법의 의자.
아이반은 주신 오딘이 넘겨준 그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눈을 가리는 권능을 꿰뚫고 전장을 살폈다.
타락한 초월자, 대악마, 신성을 얻은 마물, 전투밖에 모르는 고대 악마와 비틀린 신격.
강력한 적이 몇이나 나타나 서로의 권능을 엮어서 전장을 바꾸고 있었다. 아홉 세계의 강력한 전사들을 멀리 찢어버리고 약한 부분부터 하나씩 공격했다.
서로 합이 지나치게 잘 맞았다. 자존심 강한 놈들이 저리도 협조적일 수가 없었다. 평생 그러했던 것처럼 움직임이 익숙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 사악한 놈들이 손발이 잘 맞는 경우는 그보다 더 격이 높은 자가 명령을 내렸을 때밖에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았다.
스윽-
아이반이 시선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보자 눈동자가 타들어 갈 듯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악하고 불길했으며, 끔찍하고 지독했다. 너무나 어두워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흔들릴 것 같았다.
홀로 세상 하나를 감당할 수 있다는 괴물, 마왕이었다. 이 넓은 마계에서도 몇 없다는 어둠의 군주였다.
녀석은 스스로 숨길 생각이 없는지 아이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서로 거리는 아주 멀고 멀었지만, 서로를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니 그 멀고 먼 거리가 의미가 없었다.
– 네가 파멸을 괴롭힌다는 녀석이구나.
마왕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그는 웃음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파멸의 마왕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그저 즐거운 모양이다.
“그저 지켜만 볼 것이지 왜 들어왔소? 크툴라스가 고생하는 것을 알면서.”
아이반이 쏘아붙이자 마왕이 껄껄 웃었다.
– 너는 녀석을 모르는구나. 크툴라스가 그리 쉽게 무너질 것 같으면 이미 오래전에 내가 녀석의 목을 베었을 거다.
“그건 당신이 무능해서 그랬겠지.”
– 배짱은 좋군. 그러니 마계를 직접 공격할 생각을 했겠지.
허무의 마왕이 아이반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히 마계를 침공한 아홉 세계의 주인에게 경고했다.
– 거기까지. 더는 들어오지 마라.
그 경고에 아이반이 눈을 가늘게 떴다. 녀석을 노려보다가 이를 악물었다.
아직 아홉 세계는 홀로 마왕 하나를 감당할 정도로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대로 마왕과 마주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뷔페인 줄 알았더니 제사상이었군.’
흙먼지가 가라앉고 초월자의 눈과 귀를 가리던 것이 모두 사라지자 아홉 세계의 군대가 열심히 악마를 몰아치는 모습이 보였다.
나글파르의 전사들이 해골 병사를 깨부수고 망자의 군주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뒤로 언데드 드래곤이 나타나 죽음의 숨결을 내뱉고, 그에 대항하여 사나운 이빨이 용의 불길을 내뿜었다.
비다르가 거대한 마물의 앞발을 붙잡아 내팽개치고, 마그니가 묠니르를 휘두르며 피떡으로 만들었다.
상황만 보면 아군이 참으로 유리했다. 그러나 아이반은 퇴각을 명령했다. 마왕의 경고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만! 이제 돌아간다!”
지금은 물러간다. 그러나 다음에도 이러지는 않으리라.
아이반은 끝까지 마왕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275화 로키의 아들
아홉 세계는 점령했던 곳을 그대로 내어놓으면서 뒤로 퇴각했다. 마왕의 위협 때문에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 몹시 기분이 나빴지만, 아직 아홉 세계의 힘이 완전하지 않은데 마왕과 직접 맞붙을 수는 없었다.
대신 돌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철저히 파괴했다. 아홉 세계의 영역을 넓힐 생각으로 내버려 뒀던 도시와 시설까지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어설프게 돌아다니던 악마가 보이면 그대로 잡아 찢었고, 녀석이 품은 정기와 영혼을 그대로 아홉 세계로 던져 넣었다.
영격이 세상의 법칙과 얽혀 있는 초월자의 영혼은 강탈하기 쉽지 않았으나, 그 이하 자잘한 악마 놈들은 아예 영혼까지 쥐어짜겠다는 생각으로 바닥까지 싹싹 긁었다.
다시 태어난 아홉 세계가 옛 힘을 되찾으려면 막대한 수준의 정기가 필요했다. 이번에 마계에서 제대로 한탕 해서 보충하려고 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수확이 좋지 못했다.
“거기서 허무의 마왕이 나올 줄이야.”
아이반이 아쉬움을 담아 그리 중얼거리자 델피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멸의 마왕이 움직인 것만 해도 세상의 끝을 논할 만큼 위험한 일인데, 마왕 하나를 더 상대해야만 한다니 앞이 막막하군요.”
아홉 세계가 본격적으로 참전하면서 무너진 균형이 이런 식으로 맞춰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차라리 마왕끼리 싸우면 싸웠지, 손을 잡고 함께 움직일 줄이야. 아이반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마계를 직접 공격한 것이 그리도 충격적인 일이었나?’
마계가 역으로 공략당하는 것은 악마에게도 생소한 일이 분명했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양이다.
치지직!
불만스러운 듯 스파크가 번쩍였다. 자신을 불렀으면 마왕이고 나발이고 모두 다 뚝배기를 깼을 거라며 토르가 투덜거리는 것이다. 물론 아이반은 코웃음을 쳤다.
‘그 막대한 정기는 어디서 구하고?’
토르 수준의 대신격이 허신을 벗어나 온전히 부활하려면 끔찍할 정도의 정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부활하고도 마왕을 홀로 상대할 수는 없었고.
아홉 세계의 신격이 특히나 강력한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마왕을 우습게 여길 수준은 아니었다. 어쨌든 마왕은 홀로 세상 하나를 끝낼 수가 있는 가장 강력한 어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달의 여신 셀룬과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아홉 세계로 갔을 때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아홉 세계의 신들도 마계에서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가진 신성의 근원은 아홉 세계였다. 아홉 세계를 떠나면 지닌 격만큼의 힘을 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