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73
아홉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위험한 늑대를 만나는 길이 순탄치는 않겠지.
‘하긴,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였지.’
요르문간드와 헬라가 아스가르드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펜리르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개학 전날까지 미뤄 두고 뤄 둔 방학 숙제처럼 마음속 한구석에 바위가 남아 있었다. 처리할 때가 되었으니 하긴 해야지.
한 달이 넘는 분량의 일기를 몰아서 쓰기 위해 통계청에 들어가 지난 날씨를 검색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아이반이 말했다.
“펜리르는 지금 어디에 있소? 그를 만나려면 무엇을 해야만 하오?”
아이반이 그리 물으니 불쑥 누군가 나타났다. 예전에 우트가르다 로키를 만나러 갈 때 일행을 안내했던 토르의 시종, 샬피였다.
“하하하, 이번에도 제가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그를 보며 아이반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째 토르보다 로키의 지시를 더 많이 따르는군.”
“본의는 아닙니다만,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네요.”
샬피는 아홉 세계를 통틀어도 비교할 자가 몇 없을 만큼 다리가 빨랐다. 인간으로 태어나 오직 달리기만으로 빛의 속성을 얻어 신격이 되었으니 사실 영웅도 이런 영웅이 없었다. 항상 토르에게 치이느라 정작 영웅 대접을 못 받아서 그렇지.
“펜리르는 헬헤임의 아주 깊은 곳에 있습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겠군요.”
그래도 두 번째 만남이라고 제법 편해졌는지 샬피는 여유로운 태도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이반과 델피노, 사나운 이빨이 전부였다. 다른 이들은 부르지 않았다. 혹시 전투가 벌어질지언정 먼저 펜리르를 자극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니드호그는 그냥 때려눕히기만 하면 충분했지만, 펜리르는 잘 설득해서 아군으로 끌어들여야했다. 힘으로 겁박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니플헤임을 가로지르면서 델피노가 신기한 듯 눈을 굴렸다.
“진정 저승으로 간다는 말입니까? 참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는군요.”
털옷으로 몸을 감싸고도 견딜 수 없는 니플헤임의 냉기가 영혼까지 차갑게 얼렸다. 그게 기분 좋을 리가 없지만, 델피노는 이 모험이 제법 감동적인 모양이었다.
지금껏 온갖 경험을 했지만, 저승을 모험한다는 것은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다. 악신이 갇혀 있던 유폐된 차원이나 요정의 숲, 심지어 마계까지 다녀왔지만, 따지고 보면 그저 다른 세계에 불과했다. 죽어서야 갈 수 있는 저승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델피노는 이제 빛의 신 아룬의 하위 신격이 되었으니 저승에 갈 일은 앞으로도 없을 터였다. 설령 숨이 끊어져 허신이 된다고 하더라도 천상으로 올라가 부활의 그때를 기다릴 테니까.
원래 저승은 신이라 해도 살아서는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헬헤임이 저쪽 세상의 저승과 많이 다르고 특별한 상황이라 이런 식으로 찾아갈 수 있는 거지.
“저승……! 나는 마침내 죽음마저 이겨 냈다!”
사나운 이빨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콧김을 뿜었다. 그가 흥분하자 화염 드래곤의 심장이 반응해 뜨겁게 타올랐다. 니플헤임의 추위가 한순간 밀려날 정도였다.
“하하, 재미있는 분들이로군요. 헬헤임에 가기를 이처럼 원하는 사람들은 처음 봅니다.”
샬피는 껄껄 웃으면서 걸었으나,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저 멀리 훌쩍 사라졌다가 미안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오고는 했다.
그렇게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헬헤임에 닿았다. 굘(Gjǫll) 강과 그를 가로질러 헬헤임으로 이어진 다리, 걀라르브루(Gjallarbrú)가 보였다.
창백한 여인 모드구드(Móðguðr)가 여전히 걀라르브루를 지키고 있었다. 본디 그녀는 망자가 헬헤임을 빠져나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두 눈을 감았다. 아홉 세계가 부활하며 헬헤임에 있는 자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아이반은 굳이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녀 또한 그를 붙잡지 않았다. 조용히 걀라르브루를 건너서 헬헤임에 도착했다.
“으흠, 역시 저승이군요. 죽음의 기운이 이리도 강하다니…….”
델피노가 헬헤임을 바라보며 그리 말하자 아이반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죽음의 기운이 많이 약해졌소. 망자가 다시 삶을 찾아 각자의 고향으로 떠나는 중이니까. 처음 왔을 때는 끔찍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리 대단치 않군.”
처음 헬헤임에 닿았을 때는 초월자 셋이 정문을 넘기 힘들 정도였다. 지독한 죽음의 기운이 온몸을 짓눌러서 생사가 뒤바뀌고 신격이 오염될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굳게 닫혀 있던 헬헤임의 거대한 문도 지금은 활짝 열려 있었다.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알리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헬헤임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돌던 망자의 무리도 싹 사라졌군.”
아홉 세계의 모든 이가 한 번에 죽어서 그 넓은 헬헤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제법 여유로웠다.
아이반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으니 샬피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설명했다.
“이번에 들어온 정기로 많은 이들을 되살렸습니다. 지금은 미드가르드나 알파헤임, 니다벨리르도 제법 북적거리겠죠.”
당장 아홉 세계의 힘을 끌어올리려면 강자를 먼저 되살리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강력한 요툰 군주나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허신에서 되돌리고 그들을 앞세워 악마, 악신과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당장 코앞만 보는 짓이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나 요툰 군주를 되살려 봐야 결국 정기가 소비되기만 하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과 요툰에 비하면 인간이 대단치 않아도 결국 그들이 번성하고 기도하면서 정기를 만들었다. 부활한 인간들이 진심으로 기도하면 아스가르드 신들의 힘이 차오르니 효율적인 분배를 위해 그들을 먼저 되살렸다고 했다.
비록 아이반이 아홉 세계의 주인이었으나, 그는 바빠도 너무 바빴다. 아이반은 밖에서 정기 벌어오는 일에 집중하고 그 사용처는 아스가르드 신들과 헬헤임의 지배자인 여신 헬라가 논의해서 정했다.
“토르가 불만이 많았겠군.”
아마도 당장 자신 먼저 되살리면 악마의 대가리를 모조리 깨부수고 정기를 가져오겠다며 소리치지 않았을까?
그러나 토르는 연비가 좋지 못했다. 버는 만큼 빠져나가기만 할 테니 적을 쓰러뜨리는 것은 몰라도 그런 식으로 아홉 세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테크만 올리면 병력이 부족하고, 병력만 뽑으면 테크가 밀린다. 본진 확장과 멀티, 업그레이드까지 하려면 미네랄과 가스가 아무리 많아도 부족했다.
“…혹시 그대가 뛰어다니는 것이 그것과 관련이 있소?”
문득 아이반이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자 샬피가 말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샬피가 일하는 만큼 토르가 정기를 챙기겠군. 그래 봐야 푼돈일 텐데 그렇게 모아서 언제 부활하겠다고…….’
단순히 부활하고 싶어서는 아닐 테고, 얼른 밖으로 나와 싸우고 싶어서 그런 것이겠지.
속으로 쯧쯧 혀를 찬 아이반이 고개를 돌리자 샬피가 다시 안내를 시작했다. 펜리르가 있는 곳은 헬헤임에서도 아주 깊은 곳이었다.
한때 길게 흐르다가 말라붙은 강줄기가 보였다. 거기서 느껴지는 은은한 기운으로 이게 가름의 흔적임을 깨달았다.
펜리르를 글레이프니르로 묶은 후 창을 꽂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는데, 그렇게 흘리는 침이 모여 저승에 흐르게 된 강을 가름이라고 불렀다.
이제 펜리르가 글레이프니르에 묶여 있지도 않고, 턱을 다물지 못해 침을 흘리는 것도 아니니 가름이 말라 버린 모양이다.
“펜리르가 아직도 이곳에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곳은 펜리르가 머물던 곳이지만 펜리르의 집은 아니었다. 오히려 억지로 묶여 있던 감옥이었지. 그런데 지금도 이곳에 머물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펜리르를 설득하기가 쉽지는 않겠어.’
아이반이 표정을 굳히고서 한참이나 말라붙은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자 거대한 짐승의 모습이 보였다. 작은 언덕만한 크기였다.
“저게 펜리르입니까? 실로 거대하군요.”
델피노가 긴장하며 말하자 샬피가 손을 내저었다.
“저건 펜리르가 아니라 가름입니다. 헬헤임을 지키는 파수견이죠.”
“가름? 그건 이 강의 이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의 이름도 가름이고, 펜리르를 묶어 놓은 바위의 이름도 가름이고, 저 괴물의 이름도 가름입니다.”
그러자 델피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초월자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이처럼 쉽게 겹칠 만큼 흔해 빠진 것으로 정하는 경우란 거의 없었다.
“속성이 겹친다는 뜻이지. 어쩌면 셋 모두의 근원이 같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헬헤임의 파수견 가름의 태생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틀림없이 펜리르와 관련이 있을 터였다. 아마 녀석의 자식이겠지.
그르르르르-
낯선 이가 다가오자 낮게 경고하던 가름이 문득 위협을 멈췄다. 아이반이 내뿜는 기운을 알아본 것이다.
아이반이 새롭게 위그드라실을 심고 아홉 세계의 주인이 되면서 그의 존재는 아홉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알려졌다. 아홉 세계가 부활하며 퍼져나간 기운을 느끼지 못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앞가슴 털이 붉은 피로 물든 헬헤임의 파수견 가름이 아이반을 바라보며 말했다.
– 아홉 세계의 주인께서 이리 누추한 곳에 어찌 오셨습니까?
울려 퍼지는 정신파에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공손한 말투였으나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펜리르를 만나러 왔다.”
아이반이 그리 말하자 가름이 힐끗 뒤를 살피고는 대답했다.
– …추천하고 싶지 않군요. 그분께서는 환영하지 않으실 겁니다.
“환영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만나지 않고서 돌아갈 수는 없으니.”
– 그분께서는 아스가르드에 대한 분노를 완전히 삼키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이 한 번 멸망하고 다시 태어나도 떨치기는 쉽지 않은 감정이지요.
“그래서 나를 막으려 하는가?”
아이반의 물음에 가름이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지나가십시오.
가름이 거대한 덩치를 옮기자 가려져 있던 동굴이 보였다. 그 깊은 곳에서 거친 기운이 느껴졌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돌아가면 이번에야말로 로키를 제대로 후려갈겨야겠어.’
아이반은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안으로 향했다.
277화 세계를 삼킨 늑대
헬헤임은 니플헤임 안에 있어서 어디든 지독하게 추웠다. 얼음과 안개의 세계를 개척해 죽은 자의 땅을 만들었으나 그 기본적인 성질을 벗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