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75
“루나튀르(Rúnatýr: 룬 문자의 신)”
콰과광!
아이반이 주문을 몇 개나 뿌렸지만 역시 펜리르를 위협할 수가 없었다. 하나하나가 대마법이었으나 거대한 늑대는 마치 그걸 무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르르르-
펜리르가 낮게 으르렁거리니 오히려 아이반의 몸놀림이 둔해졌다. 마력의 움직임이 거칠고 반응이 느렸다.
상성이 문제였다. 아이반은 오딘의 힘으로 펜리르를 억누르려 했으나, 펜리르의 심성이 오히려 오딘의 힘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오딘에게 배운 마법은 물론이고 그의 힘으로 발휘되는 모든 것이 펜리르 앞에선 힘을 잃었다.
하긴, 펜리르는 오딘을 한입에 집어삼켰던 장본인이었다. 오딘이 직접 와도 부족할 판에 그 힘을 빌려서 상대하고자 했던 아이반의 생각이 짧았다.
‘비다르는 펜리르를 대체 어떻게 죽인 거지?’
비다르는 펜리르의 턱을 찢어 버리고 심장을 꿰뚫어 목숨을 끊은 자였다. 그러나 그의 실력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펜리르만은 못했다. 비다르를 통해 펜리르의 힘을 대충 짐작하던 아이반이 경악할 정도로 차이가 심했다.
그래도 그가 이곳에 있었다면 싸움이 한결 수월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비다르는 지금 마계에서 한창 싸우는 중이었다. 아홉 세계는 허신이 아닌 존재가 많지 않아서 그가 빠지면 아홉 세계와 마계로 이어진 통로를 지킬 수가 없었다.
휘우웅-
아이반이 겨우살이 가지를 쥐고서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의 뒤로 무수히 많은 아이반의 분신이 나타나 그를 따랐다.
그 모든 것이 아이반의 가능성이었다. 어쩌면 닿았을 지도 모를 미래였다.
수십, 수백의 아이반이 달려들었다. 펜리르는 그걸 비웃으며 입을 쩍 벌렸다.
콰직!
278화 불신의 대화
펜리르가 마치 허공을 물어뜯듯 턱을 크게 벌렸다가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당기니 세상이 잘려 나갔다. 세계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아이반에게 힘을 불어넣는 아홉 세계의 연결이 끊어졌다. 광명신 발드르의 권능으로 만들어 낸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사라졌다.
수십, 수백의 아이반이 모두 지워졌다. 한 가닥 가능성을 쥐고 있었던 무수히 많은 미래가 한낱 망상으로 변했다.
아이반의 선택에 따라서 어쩌면 그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미래는 오지 않았다.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였다.
수많은 아이반이 사라지고 홀로 남았다. 다른 가능성을 모두 잃어버리고 오직 현재의 아이반만 있었다.
주르륵
핏물이 흘러나온다. 입은 물론이고, 눈과 코, 귀에서도 붉은 피가 흘렀다.
간신히 몸은 피했으나, 멀쩡한 곳이 하나 없었다. 권능이 통째로 잘려 나가는 충격에 신성마저 흔들렸다.
방금 펜리르가 세상을 삼켰다. 아래턱은 가장 낮은 곳에 닿고 위턱은 가장 높은 곳에 닿아서, 그 날카롭고 거대한 이빨을 세상에 박아 넣고 단번에 물어뜯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마저 한입에 꿀꺽 먹어 버렸다.
아이반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면서도 감탄했다.
‘이게 펜리르군… 오딘의 대적자.’
그 강력한 오딘이 어째서 펜리르에게 잡아먹혔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실로 강력하고, 또 까다로운 적이었다.
지독할 정도로 대단한 마법 저항력에 거대한 덩치에서 나오는 육신의 힘은 물론이고, 온갖 권능을 씹어 삼키며 세상의 가호까지 꿀떡 넘기니 손발이 다 묶인 느낌이었다.
쉬이익!
아이반은 어두운 용의 발톱에 궁니르의 권능을 가득 담아서 집어던졌다. 거리와 방향을 무시하고 반드시 명중하는 힘이 있었으나, 펜리르가 그 정해진 결과조차 물어뜯으니 창이 힘을 잃었다. 그의 가죽을 꿰뚫지 못하고 중간에 떨어졌다.
탁!
펜리르가 훌쩍 뛰어서 달려들었다. 웬만한 산보다 거대한 덩치로 그리 들이닥치니 그 어떤 바람보다 빠르고 화살보다 날렵했다.
아이반이 만든 방어막 몇 개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델피노가 빚어낸 빛의 방패도 우습게 무너졌다. 아이반이 표정을 굳히고 충격에 대비할 때, 멀리 날아갔던 사나운 이빨이 어느새 다가와 방패를 들이밀었다.
“너는 못 지나간다!”
쾅!
사나운 이빨이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다. 난쟁이의 손길이 닿은 방패가 형편없이 찌그러지고 그의 팔이 부러졌으며, 용의 가죽만큼이나 질기고 튼튼한 그의 가죽이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그러나 사나운 이빨은 펜리르의 공격을 막아 냈다. 용의 심장으로 막대한 마력을 내뱉어 거대한 늑대의 발톱이 그를 조각 내는 것을 막았다.
화염 날개가 뒤로 거세게 뿜어지며 사나운 이빨이 더 밀려나는 것을 막았다. 멀쩡한 모습은 아니었으나, 사나운 이빨은 산보다 거대한 늑대를 멈춰 세웠다.
“…막았다!”
피를 토하면서도 사나운 이빨이 껄껄 웃었다. 강력한 재생력을 가진 육신으로도 단번에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으나, 펜리르를 한 번이라도 막아섰다는 것을 기뻐했다.
용의 심장과 강력한 재생력이 있는 한 사나운 이빨은 쇠약하지 않았다. 죽지 않으면 결국 힘을 되찾아 처음으로 돌아왔다. 한 번 막을 수 있다면 두 번도 가능했다. 세 번, 네 번도 물론이다.
그러나 펜리르는 그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겨우 한 번 막은 거로 정말 그리 생각한다는 말인가.
– 이것도 막을 수 있겠나!
펜리르가 다시금 앞발을 내리찍었다. 사나운 이빨은 물러서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방패는 이리저리 찌그러진 상태였고, 미처 몸을 회복하지도 못했다. 아슬아슬하게만 보였다.
그때 누군가 슬쩍 끼어들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쾅!
펜리르의 앞발이 땅을 부수고 깊숙이 박혔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그 충격파로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누구도 그 공격에 맞지 않았다.
샬피가 사나운 이빨을 붙잡고 사라졌다. 그는 달리기 하나로 신격이 된 남자였다. 생각과 속도를 다툴 수 있을 정도로 재빨라서 펜리르의 공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사나운 이빨을 빼낼 수 있었다.
순식간에 멀찍이 떨어진 사나운 이빨이 그를 바라보자 샬피가 민망한 듯 웃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밖에 없네요. 칼질을 좀 한다고 해도 펜리르에게 통할 수준은 아니라서…….”
“그것만 해도 대단합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이곳 헬헤임의 주민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요.”
델피노가 날카로운 눈으로 펜리르를 살피며 그리 말했다.
비록 델피노가 초월자가 되었다고는 해도 신체 능력이 대단하지는 않았다. 이 치열한 전장에서 그가 멀쩡한 것은 오로지 샬피가 그를 붙잡고 펜리르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했기 때문이다.
“하하, 그러면 다행…….”
머리를 긁적이며 웃던 샬피가 델피노와 사나운 이빨을 붙잡고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사라지자마자 펜리르의 발톱이 할퀴고 지나갔다.
재빨리 움직이는 샬피 때문에 공격을 실패한 펜리르가 으르렁거리다가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마치 세상이 지워지듯 슥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세상이 법칙을 잃고 혼돈 속에서 공허로 돌아갔다. 방향과 거리마저 의미를 잃으니 샬피의 속도로도 벗어날 수 없을 정도였다.
탁!
아이반이 창을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마력을 움직여 어두운 용의 발톱을 길고 두껍게 만들었다. 펜리르의 입에 창을 세워 그가 턱을 닫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펜리르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으드득!
펜리르가 힘줘서 턱을 움직이자 어두운 용의 발톱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한 번 제련하고 나면 절대 파괴할 수 없다는 아다만트로 만든 창이 조금씩 휘어지고 부서졌다. 펜리르의 턱이 서서히 닫혔다.
땅과 하늘이 사라지고 세상의 모든 것이 거대한 괴물 늑대의 입으로 사라졌다. 펜리르의 거대한 이빨이 모든 것을 찢어발겼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입을 다물기 전, 세상을 완전히 삼키기 전에 누군가 그 턱을 붙잡고 강제로 벌렸다.
치직, 치지직!
온몸에 천둥을 휘감고 있는 토르가 두껍고 튼튼한 팔다리로 펜리르의 턱을 벌렸다. 아이반과 자신의 묠니르로 펜리르의 날카로운 이빨을 막아 내면서 서서히 밀어냈다.
– …토르!
펜리르가 그리 소리치자 토르가 껄껄 웃었다.
– 비다르가 한 일인데, 그보다 힘이 센 내가 못할 리가 없지. 그러면 이제 이대로 칼을 던져서 심장을 꿰뚫으면 되는 건가?
라그나로크에서 펜리르는 그리 죽었다. 비다르는 절대 찢어지지 않는 신발로 펜리르의 이빨을 버티며 힘으로 턱을 찢어버리고 칼로 심장을 꿰뚫어 죽였다.
토르가 아픈 옛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들쑤시자 펜리르가 버럭 화를 냈다.
– 그래, 또 다시 나를 죽일 작정이냐! 그렇게 나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냐!
– 이미 죽은 녀석의 심장을 헤집어 봐야 의미 없는 일이지. 그리고 내가 너를 쓰러뜨리고자 했다면 이미 그러했다. 설마 내가 그러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건가, 바르그(vargr: 괴물 늑대)?
탁!
토르가 강하게 밀치자 펜리르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 토르, 프레이, 헤임달… 아스가르드의 높으신 분들이 죄다 몰려왔군. 오딘이나 프레이야, 프리그는 오지 않았나?
펜리르는 그리 비아냥거렸으나 섣불리 덤비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는 해도 이런 상황에서 쉽게 날뛸 수는 없었다.
– 티르, 팔 하나 잘린 거로 부족했나? 그러고도 뻔뻔하게 나타나니 참으로 낯짝이 대단해. 하긴, 결투의 신이 비겁한 수작으로 남을 속였는데 당연히 그러시겠지.
펜리르가 사납게 몰아붙였지만 티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젠장, 힘으로 겁박하는 것 같아서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대화 좀 하자는 걸 그리 사납게 나오면 어쩔 수가 없잖소?”
아이반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나섰다. 얼굴에 가득한 핏물을 닦아 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진정으로 그대와 싸울 생각이 없었소. 뒈질 것 같지만 않았다면 이들도 부르지 않았을 거고.”
– 말은 언제나 쉽지. 그러나 너희 아스가르드 놈들은 항상 말과 행동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