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8
허접한 스켈레톤 뼈다귀가 아니라 하나같이 제대로 된 언데드 사역마를 다루고 있었다. 흑마법사는 셋 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들이 다루는 사역마를 생각하면 결코 수가 부족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들은 수십이나 되는 사역마를 부리고 있었고, 필요하다면 그 배 이상은 더 꺼내놓을 터였다. 스윽- 아이반이 손을 뻗자 바닥을 구르던 창이 날아와 잡힌다. 바닥에서 사악한 손길이 그를 붙잡으려는 것을 비웃으며 발을 강하게 굴렀다. 쿵! 마력을 머금은 발길질이 땅을 후려치자 스멀스멀 기어오던 저주가 유리처럼 깨져나갔다. 아이반을 노리고 쏟아지던 마법은 엘프들이 정령의 힘으로 막아내었다. 휘이익! 쾅! 아이반은 한 걸음 앞으로 달려서 창을 찔러 넣었다. 죽음의 기사가 둘이나 나타나 그것을 막아서는데 손목이 시큰했다.
녀석들이 자신의 팔이 꺾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잠깐이나마 죽음의 기사들이 멈칫한 틈을 타서 마무리를 하려고 했으나 저급한 좀비들이 몸을 날려 시간을 벌었다. 좀비가 완전히 뭉개지기 전, 아이반은 그 얼굴을 보았다. 흑마법사가 부리던 노예 중 하나였다.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던전 입구에 버려두고 쓸 만한 것은 좀비로 만들어 챙긴 모양이다.
아이반의 시선이 다시 흑마법사들로 향했다.
“더러운 네크로필리아 변태새끼들.”
그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과 함께 몸을 감싸고 있던 폭풍마저 강렬하게 뻗어나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가볍고 빠르게, 동시에 무겁고 강렬하게.
[천둥걸음!] 우르르, 쾅! 정말로 천둥이 울리는 것과 같은 소음과 함께 아이반이 날아올랐다. 몸에 휘감은 폭풍과 발에 머금은 우레가 그의 앞길을 열었다. 죽음의 기사 하나가 찌그러진 깡통이 되어 튕겨져 나갔다. 금속으로 된 갑옷이 찢어지고 상반신의 절반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그렇게 반신이 날아간 녀석조차 흑마법사들의 마력이 훑고 지나가자 꿈틀거리면서 다시 일어났다.
이래서 제대로 된 흑마법사가 부리는 언데드가 무서운 것이다. 끊임없는 소모전. 아이반이 결코 좋아하지 않는 구도였다. 또로로롱! 그때 어딘가 영롱한 소리와 함께 주변에 상쾌한 향기가 퍼져나갔다. 계속된 전투로 약간이나마 무거워졌던 아이반이 몸이 가벼워지고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더 이상 부서진 녀석들이 회복되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모래로 변했다.
사악한 기운이 빠져나가고 한낱 시체로 되돌아갔다. – 아아, 아! 엘프들이 소환한 정령들이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랫소리에 담긴 맑은 기운이 사악한 힘을 억눌렀다. 파각! 재수 없게 주변을 얼쩡거리던 키메라의 머리를 터트려버린 아이반이 다가가자 흑마법사들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사역마들이 파괴되는 속도가 빨랐다. 앞을 막고 있던 키메라는 모두 처리했지만 그 사이 아이반과 엘프들에게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아이반이 날뛰는 동안 은밀하게 움직인 엘프들이 벌써 데스 나이트를 셋이나 파괴했고, 수많은 사역마들이 정화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의 목숨마저 노리고 있었다. 푸슉! 방어막을 깨고 들어온 엘프의 화살이 팔에 박혀들자 흑마법사들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무언가 수가 필요했다.
그들은 남은 마력을 모두 한 곳으로 모았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
자신들이 모시는 악마의 힘을 빌려야하지 않겠나. 악마는 결코 자비롭지 않았으나 계약만큼은 철저했다.
그들이 육신과 영혼을 바친 만큼 힘을 내려줄 것이다.
“위대한 죽음이시여! 당신의 종이 이렇게 비나이다!”
우웅- 흑마법사들이 탈진하기 직전까지 마력을 불어넣자 공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시작했다. 물질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과 연결이 생기고 일렁이는 통로가 조금씩 몸을 드러냈다.
데몬 게이트. 사악한 악마들의 땅과 이어지는 문이었다.
화아악- 즐겁게 노래를 부르던 정령들이 한쪽으로 밀려난다. 데몬 게이트에서 뿜어지는 사악한 기운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대악마 죽음의 인도자 휘하에 있는 어느 마족이 하찮은 권속의 요청을 받고 이 땅 위에 나타나려 하 .
푸슉! 그때 땅에서 뾰족한 나무가 갑자기 자라나 흑마법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마력을 공급하던 자들이 모두 죽어버리자 데몬 게이트가 닫히고, 이 땅에 강림하려던 악마는 또 다시 차원방벽 너머로 추방되었다. 갑작스런 상황변화. 아이반은 이전보다 더욱 긴장한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새롭게 나타난 것은 몹시 기묘한 존재였다. 피부는 살가죽이 아니라 마치 오래된 나무껍질과 같았고, 그 피부를 뚫고 얇은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돋아나 있었다. 머리카락 역시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어느 식물의 줄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들고 있는 나무 지팡이는 사실 들고 있는 것인지 손에 붙어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넝쿨로 하나가 되어 이어져있었다.
나무가 된 사람, 혹은 인간의 형상을 한 나무.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를 보면서 엘레나 이븐우드가 드물게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것은 무엇입니까? 인간도, 나무도 아니면서 서로 억지로 이어 붙인 불안정한 생명체군요. 이것도 그 미친 마법사가 만들어낸 키메라입니까?”
그 말에 아이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 않소.”
“그럼 원래부터 저런 끔찍한 생명이라는 .”
“그게 아니라, 저 녀석이 바로 미친 마법사라는 뜻이오.”
마법사들은 원래 미친놈들이니 두 번 미쳤으면 정상으로 돌아올 법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수학공식처럼 그리 딱딱 들어맞는 것이 아닌지 상태가 더 심각했다.
‘망할, 조졌군.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이반이 심각한 표정으로 창을 들어올렸다. 등줄기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 던전의 핵을 겸하는 보스는 던전을 만들어낸 마력에 묶여서 일정 영역 밖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데 설마 던전 보스가 스스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줄이야.
“죽은 녀석을 던전의 마력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구슬 때문에 애초에 죽지 않았던 거군. 그래서 속박되어 있지 않았던 거야. 젠장, 이런 변수도 고려하기는 했어야 했는데 .”
녀석의 가슴에 박혀있는 붉은 구슬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이 바로 생명의 구슬이었다. 지금 이 빌어먹을 던전을 만들어낸 원흉이자 아이반이 노리고 있는 아이템. 아이반이 물욕을 불태우고 있으니 이미 반쯤 동물을 벗어나 식물로 향해가고 있는 녀석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에엘프으, 조오으은 시일허엄체에다아아! 녀석의 외침과 함께 죽어나자빠져 있던 놈들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그리고 공허한 눈으로 다시 일어났다.
강력한 생명력이 이미 숨이 끊어진 육신조차 치료해서 되살린 것이다. 그렇게 정신과 영혼은 이미 죽어 사라지고 썩지 않은 육신만이 남아 미쳐버린 마법사의 조종을 받고 있었다. 방법은 전혀 달랐으나 이 또한 언데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생명을 모독하고, 죽음을 능욕하는 지독한 행위.
누가 죽음은 평안한 잠이라고 했던가.
마음 놓고 편히 죽을 수조차 없다니, 이곳은 참으로 빌어먹을 세계였다. ‘오딘, 당신도 나를 저렇게 부리고 싶은가?’ 아이반이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물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우두둑 그런 소리가 들리고 숲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풀이 자라고 나무가 커졌다. 굵어진 뿌리가 땅을 뒤흔들고 평범한 식물들이 괴물이 되어 눈을 떴다.
이전에 경험한 나무정령과 비슷했다.
물론 그것은 자연의 구도자 테잔이 장기간 주력을 먹여서 나무정령을 깨운 것이고, 이건 그저 막대한 생명력에 물들어 몬스터로 변이했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차르륵 땅에서 나무뿌리가 뻗어와 아이반을 노렸다. 바위조차 으스러뜨릴 힘을 품고 있었지만 아이반이 도끼를 내리치자 쩍하고 갈라졌다.
그 사이를 노리고 미친 마법사가 부리는 영혼을 잃은 생명들이 덮쳐들었다. 자신을 막는 나무를 부수면서 오로지 아이반을 죽이는 것만을 목표로.
“키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날아오른 녀석의 몸이 공중에 그대로 멈췄다. 엘레나 이븐우드의 정령들이 붙잡아 들어 올린 것이다. 푸슉! 허공에서 꿈틀거리는 녀석의 심장에 아이반의 창이 파고들었다. 창을 뽑아내자 왈칵 피를 품으며 녀석의 몸이 축 늘어졌다.
“생각보다 간단하 .”
말을 하던 아이반이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심장을 터트렸던 녀석이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녀석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 역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막대한 생명력이 터져버린 심장마저 재생시켜 새로운 목숨을 불어넣은 것이다.그야말로 언데드. 탄생뿐만이 아니라 그 행태마저도 똑같았다.
이것을 보고 흑마법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고, 사악한 죽음의 마력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쾅! 정령의 힘으로 놈을 완전히 짓눌러버리면서 엘레나 이븐우드가 소리쳤다.
“생명의 힘을 가지고 생명을 모욕하는데 사용하다니 !”
본질을 볼 수 있는 엘프들에게 이 녀석들은 무척이나 역겨운 존재였다. 안이 텅 비어서 껍질만 움직이는 고기인형.
차라리 사령술에 의해 부려지는 언데드는 원래 그렇다고 여기며 넘어가겠으나 이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무던한 엘프들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한껏 감정을 토해내었다. 분노한 엘프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콰과광! 엘프들이 쏘아 보낸 화살들이 마치 폭격처럼 적에게 날아가 꽂혔다. 막아서는 것을 용서치 않고 꿰뚫어 터트리면서 주변을 정리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괴물들이 모두 어딘가 구멍이 뚫린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 소오요옹어업다아 정말로 반쯤 나무로 변해버린 미친 마법사가 느릿하게 말을 뱉으며 지팡이를 움직였다. 그러자 부서진 나뭇조각에서 다시 뿌리가 자라고 줄기가 자랐으며, 잎이 생기고 꽃이 피어올랐다. 코로 느껴지는 꽃향기가 이렇게나 역겨운 적은 처음이었다. 지나치게 강렬해서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엘프들이 몸을 비틀거렸다. 단순히 짙은 꽃향기가 아니라 그 속에 환각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감각을 교란시켰다. 독성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 아이반만이 멀쩡하게 서있었다.
휘이잉- 바람이 분다.
아이반의 몸을 타고 흐르던 폭풍 같은 바람이 넓게 퍼져서 꽃향기를 밀어냈다. 그것을 바람의 정령이 도와주자 다시 상쾌한 공기만이 가득해졌다.정신을 차린 엘프들이 다시 밀려오는 녀석들을 처리하고 있을 때, 아이반은 하늘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 나의 적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부수고 적의 피를 뿌릴 수 있는 힘을!”
오딘, 토르, 프레이, 씨부럴 아무나. 아이반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저 멀리, 멀고 먼 천상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토르가 껄껄 웃었다. 맹랑하고 건방진 자신의 전사를 위해서 아스가르드 최고의 투신이 기꺼이 힘을 내려주려 했다.
그때 천둥신의 앞을 누군가 가로막으며 끼어들었다. 아스가르드 최고의 사고뭉치, 거짓말과 장난의 신. 한 번쯤 세계를 멸망시킨 대전쟁을 주도했으면서도 여전히 아스가르드의 신으로 불리는 자. 아하하하하! 아이반은 어렴풋이 로키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도 같았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는 미약한 불씨가 되어 아이반의 창에 스며들었다. 화르륵! 쥐고 있던 창에 강렬한 불길이 치솟는다.
그것은 주변에 있던 엘레나 이븐우드마저 움찔 놀라며 몇 걸음쯤 뒤로 물러날 정도였지만 아이반은 전혀 뜨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신의 화염, 로키의 불꽃.
아이반은 불타는 창을 들고 키메라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러자 로키의 불꽃이 녀석에게 옮겨 붙어 몸을 불태웠다.
끊임없이 재생하는 육신마저 로키의 화염이 감싸자 한낱 평범한 시체가 되어 타들어간다.
그렇게 숯덩이로 만들어놓고서 로키의 불꽃은 다시 아이반의 창으로 돌아왔다.
다른 무엇에도 옮겨 붙지 않고서.
“이제야 좀 마음이 맞는 신이 붙었군.”
한때 아스가르드를 불태우고 신들의 대가리를 터트렸던 존재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자인가.
아이반은 크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달려들었다. 새롭게 얻은 로키의 불꽃을 마음껏 휘둘러보았다.
화르륵!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나무들을 로키의 힘이 불살라버렸다.
이리저리 장난치듯 옮겨 붙는 불꽃에 뒤덮여 연기조차 내뿜지 않고 숯덩이가 되어 쓰러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적들이 하나씩 불타오르자 마치 숲 전체가 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조차 세상 전부를 불태우려했던 로키의 불꽃에게는 부족한 제물이었겠지만. 더 이상 무한한 생명력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하찮은 장작더미가 되어 사라질 뿐이다. 그리고 미친 마법사는 그제야 느릿하게 분노를 터트렸다.
– 내애 수웁으을 부울태애우우다아니이! 둥, 둥! 미친 마법사가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땅이 울렸다. 나무와 풀들이 순식간에 자라난 것처럼 미친 마법사 역시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나갔다. 겨우 몇 걸음.
미친 마법사는 완전히 인간의 탈을 벗어던지고 몸이 나무로 만들어진 거인이 되어 아이반을 내려다보았다.
– 모오두우 지잇누울러어주우마아! 쿵! 미친 마법사의 커다란 주먹이 떨어져 내렸다. 바위를 부수고 땅을 꿰뚫는 일격.
바닥이 내려앉고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이반은 가볍게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는 것으로 피해냈다.
공중에 떠있는 그를 향해 또 다시 공격이 날아오려는 것을 엘프의 화살이 막아섰다.
파바박! 미친 마법사의 관절에 화살이 다다닥 박혀들었다. 녀석의 관절이 꺾이고 그대로 바닥에 무릎 꿇었다. 들어 올리던 손은 정령들에게 붙잡혀 빼낼 수가 없었다. 그때 센스가 있게 엘레나 이븐우드가 정령으로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반이 그것을 밟고 미친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 아안드에느은 .
[관천(貫天)!] 푸슉! 아이반의 창이 녀석의 머리를 파고든다.미친 마법사의 몸에서는 붉은 피 대신 수액 같은 액체가 흘러내렸고, 이내 로키의 불꽃에 그것마저 증발되고 온몸이 타들어갔다.
탁! 녀석의 가슴에 붙어있던 생명의 구슬을 뽑아내자 그 커다란 덩치가 허무하게도 너무나 간단히 재가 되어 사라졌다.
우웅- 미친 마법사가 쓰러지자 공간이 뒤흔들린다. 핵이 사라지자 던전이 붕괴되고 뒤틀렸던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니 그들은 어느 한적한 숲속에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