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82
넘치는 생명력을 대가로 전투력을 끌어올린다. 죽거나 승리하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광전사가 되겠노라 다짐했다.
– 악마의 심장을 뜯어먹고 허기를 채우겠다!
오크투신 타르칸이 그리 소리치며 도끼를 들었다. 멀리서 밀려오는 악마의 군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수많은 광전사가 그를 따라 움직였다.
“기세 하나는 대단하군.”
타르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아이반은 창을 뽑아 들었다.
니다벨리르에서 레긴이 수리해 준 어두운 용의 발톱은 예전보다 더욱 강했고, 더욱 날카로웠다. 아마도 마왕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을 만큼.
“그러면 허무의 마왕이 얼마나 대단한지 봅시다.”
치지직!
쾅!
아이반이 한걸음에 공간을 뛰어넘었다. 마왕이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휘이잉!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창을 내밀었다. 폭풍이 창을 타고 날아갔다.
284화 아스가르드 최강의 투신
마력을 머금은 폭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하늘에 떠 있던 비행 악마 여럿이 그에 휩쓸려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그러고도 폭풍은 힘을 잃지 않고서 허무의 마왕에게 날아갔다.
그러나 그 거센 폭풍도 허무의 마왕에게는 닿지 못했다. 그가 바라보자 마치 녹아들 듯 사라졌기 때문이다.
해변의 모래성처럼, 소금을 바다에 뿌린 것처럼, 누군가의 주식 잔고처럼.
하늘과 땅을 뒤집던 폭풍이 산들바람처럼 흩어졌다.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없어졌다.
아홉 세계의 온갖 지식을 얻은 아이반조차 언뜻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권능이었다. 과연 허무의 마왕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힘이다.
휘이잉-
허무의 마왕이 손을 휘저으니 사라졌던 폭풍이 아이반의 코앞에서 나타났다. 그가 쏘아 보낸 공격이 역으로 덮치자 아이반은 입을 굳게 다물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우웅-
아이반의 손끝에서 겨우살이가 피어났다. 아홉 세계의 모든 가능성을 의미하는 그의 신명, 발드르가 힘을 발휘했다.
스스슥-
아이반의 모습이 수십 개로 갈라졌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성장한 수십 명의 아이반이 현실에 나타나 폭풍을 뛰어넘었다.
쾅!
수십 명의 아이반이 공격을 쏟아내자 허무의 마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태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무엇도 무용하니, 공허로 돌아가라.
마왕의 한마디에 세상이 요동쳤다. 법칙이 뒤틀리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이 땅의 드래곤이 창조주에게 받은 권한을 용언을 통해 사용하는 것처럼, 마왕도 언령을 통해 세상을 재구성했다. 그가 있는 곳이 바로 마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끼이익!
세상이 비틀리는 소음과 함께 아이반의 분신이 깨져나갔다. 현실의 다른 갈래에서 가져온 가능성이 짙은 허무 속으로 사라졌다.
쿵!
권능이 무너지고 곧 막대한 압력이 아이반을 짓눌렀다. 산 하나를 머리 위에 얹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그때 공간을 찢고 니드호그가 나타났다. 거대한 육신이 하늘을 가리자 낮이 사라지고 밤이 찾아왔다. 어둠 속에서 종말의 마력을 내뿜어 허무의 마왕을 공격했다.
사사삭-
허무의 마왕도 종말의 마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아이반의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스걱!
아이반이 움푹 파인 땅을 딛고 일어나니 누군가 그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얇은 선이 공간을 가르고 지나갔다. 아이반의 머리가 바닥을 뒹굴고 피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 어리석은 자여, 겨우 그런 힘으로 허무를 노리려 하느냐.
음울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시커먼 기사 하나가 나타났다. 검은 갑옷 위로 붉은 마력이 핏줄처럼 꿈틀거리고, 용암보다 뜨거운 지옥의 불길이 그의 뒤에 넘실거렸다.
허무의 마왕을 따르는 대악마였다. 서 있는 자세만으로 아득한 경지에 올랐음을 알 수 있는 검사였다.
탁!
아이반의 시체가 바람과 함께 흩어지고 멀쩡한 모습의 아이반이 대악마의 뒤를 노리고 나타났다. 잠깐이라면 세상조차 속일 수 있는 환영이었다.
챙!
그러나 대악마는 검을 비스듬히 들어 올리는 것으로 아이반의 공격을 간단히 흘렸다. 전장에서 단련된 날카로운 본능이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흠……!”
코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검을 피하면서 아이반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어째 최근 들어서 환영이 먹히지 않는 상대가 많아졌다. 잠깐의 눈속임을 할 수 있을지언정 더는 치명적인 한 수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 나는 마검공, 너의 목숨을 가져갈 자다.
대악마가 스스로 그리 소개하자마자 녀석의 기운이 더욱 단단하고 날카로워졌다. 어쩌면 자신을 소개한다는 행위 자체가 힘을 끌어내기 위한 과정인지도 몰랐다.
쉬이익!
마검공의 검이 흔들리다가 수십 개로 갈라져서 마치 비처럼 쏟아졌다. 아이반은 최대한 몸을 비틀며 창으로 막았으나, 피부를 찢고 새겨지는 상처가 점차 늘어났다.
악의의 증명과 비슷한 수준의 전사였다. 근접전으로 싸운다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캉!
아이반을 구한 것은 카락취였다. 낡은 검 하나로 마검공의 공격을 끊고 검신이 끼어들었다.
거세게 몰아치는 검의 흐름을 끊고 카락취가 나타나자 마검공이 크게 경계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둘은 얼마 전에 맞붙은 적이 있었다. 서로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잘 알았으니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위잉-
카락취는 팔짱을 낀 채로 낡은 검집을 안고 있었으나 검은 검집을 벗어나 허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칼끝으로 마검공을 겨누며 날카롭게 빛났다.
“너는 뜻을 이루지 못한다. 내가 막을 것이니.”
검신이 그리 말하며 한걸음 내디디니 낡은 검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듯 날아간 검이 마검공의 칼끝에서 멈췄다. 둘은 한 점으로 맞부딪쳐 서로 힘겨루기를 했다.
끼리릭!
카락취의 검이 낡고 평범한 검이라면 마검공의 검은 쉽게 보기 어려운 보물이었다. 아마 마계의 모든 검을 놓고 비교하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테지.
그러나 그런 차이가 있었음에도 어느 한쪽으로 쉽게 기울지 않았다. 검신 카락취가 쥐고 있으면 그 어떤 낡은 검이라 해도 세상 가장 날카롭고 튼튼한 검이 되었다.
캉!
서로를 밀어낸 검이 다시 서로를 노렸다. 튕겨 나간 검을 붙잡은 검신 카락취가 한걸음에 달려가 검을 휘두르니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찢어졌다.
집념. 스스로 그렇게 이름 붙인 검이 마검공의 코앞까지 다가왔다가 가로막혔다. 마검공이 검을 휘두르니 지옥불이 쏟아지고, 카락취가 검을 비트니 땅이 녹아내리는 열기가 휘감겨 올라갔다.
순식간에 서른여섯 번의 공방이 오갔다. 서로의 목과 가슴에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그대로 목숨이 끊어질 공격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또 가로막혔다.
‘그사이도 또 성장했군.’
아이반은 검신 카락취를 보며 감탄했다. 못 보던 사이 또다시 경지가 크게 높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초월자의 경지에 닿은 자가 그 짧은 사이에 이렇게나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이반처럼 아홉 세계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혼자만의 재능과 노력으로 이룬 성과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과연 검신이었다. 이 땅의 그 어떤 신격도 감히 얻지 못한 신명을 얻은 자다웠다.
투신 바르투이도 놀라운 재능과 실력을 가졌으나, 검신 카락취가 한 수 위인 것 같았다.
그의 몸놀림은 한 점 과한 것이 없었고, 또 부족한 것이 없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보다 더욱 간결했고, 부드러웠으며, 신선했다.
캉!
마검공은 웬만한 대신격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대악마였다. 그러나 지닌 힘과 기운, 격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검술만 보자면 카락취가 밀릴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분명 더 강해야만 하는 대악마가 카락취를 압도하지 못했다.
그렇게 카락취가 마검공을 붙잡으니 아이반이 몸을 빼고 마왕에게 향했다. 허무의 마왕은 그 위용을 그대로 발휘하며 아군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니드호그의 날개 하나가 뜯어져 너덜너덜했다. 두껍고 질긴 용의 가죽이 길게 찢어져 핏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날카롭고 단단한 발톱이 몇 개나 부러졌다.
허무의 마왕은 트롤왕의 오른팔을 짓눌러 고깃덩이로 만들고 한 손으로 오크투신의 도끼를 튕겨냈다. 그리고 이레인이 쏘아 보낸 화살을 붙잡아 꺾었다.
화르륵!
사나운 이빨이 뜨거운 용의 불길을 내뿜었으나 허무의 마왕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시했다. 그 뜨거운 용의 불길도 중간에 씻은 듯이 사라져 닿지 않았다.
화아아-
델피노가 불러온 신성한 빛은 마왕의 불길한 마력을 뚫지 못했다. 허무의 마왕이 비웃으며 바라보자 빛과 어둠이 반전하면서 오히려 델피노가 피를 뿜었다.
딱!
허무의 마왕이 손가락을 튕기니 하늘이 갈라지면서 유성이 떨어졌다. 작게는 어린아이의 주먹 크기부터, 크게는 집만 한 크기의 돌덩이들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