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83
정말로 우주에서 떨어지는 유성은 아니었으나, 마왕의 마력에 이끌려 나타난 바윗덩이는 너무나 파괴적이었다. 산맥 하나는 통째로 갈아엎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사사삿-
그때 니드호그가 종말의 마력을 내뿜었다. 어둡고 잔혹한 마력이 사방으로 퍼졌다가 악마를 잡아먹고 돌아왔다. 너덜너덜한 날개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찢어진 가죽이 달라붙었다. 부러진 발톱마저 다시 자라나니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휘이익!
상처를 회복한 니드호그가 하늘로 날아올라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떨어지는 유성에 맞섰다. 파괴적인 종말의 마력으로 비처럼 쏟아지는 바위들을 잘게 부수고 멀리 흩어버렸다.
그 많은 바위가 모두 돌가루가 되었다. 흙먼지가 하늘을 뿌옇게 가리고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온통 누렇게 변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치지직!
쾅!
그때 하늘이 번쩍이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천둥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휘이잉-
흙먼지 가득한 하늘을 씻기듯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시커먼 구름이 서로 부딪혀 번개가 몰아치고 파괴적인 기운이 땅으로 떨어졌다.
아이반이 묠니르를 쥐고 낙뢰를 받아들였다. 넘치는 천둥신의 힘을 끌어내며 마왕을 노려보았다.
“적당히 날뛰어 보시오. 마왕이 아홉 세계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아이반이 그리 중얼거리자 천둥신이 껄껄 웃었다. 아홉 세계 최강의 투신다운 자존심과 오만함을 담아서 대답했다.
– 그 누구도 아홉 세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이반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불안감을 지웠다. 그리고 이전의 그라면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일을 태연하게 시도했다.
육신의 제어를 완전히 포기했다. 영혼조차 자리를 비우고 천둥신을 위한 그릇을 준비했다. 그 모든 것을 오직 그를 부르고 받아들이기 위한 제물로 사용했다.
우웅-
아이반이 떠난 자리에 토르가 채워졌다. 아이반의 영혼과 정신이 아스가르드로 향하고, 그를 대신해 토르의 영혼과 신성이 자리했다.
이전이었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령 시도한다고 해도 버티지 못했을 거다. 아스가르드 최강의 투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그릇이 튼튼하지 못했으니.
그러나 이제 아이반이 아홉 세계의 주인이 되었으니 천둥신의 영혼과 신성을 감당할 수 있었다. 토르쯤 되는 허신을 부활시키기는 아직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스스로 그릇이 되어 그를 불러온다면 이제 못할 것도 없었다.
탁!
기둥은 창으로 되었으며, 천장은 방패였다. 수많은 전사가 가장 치열한 전투를 준비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전당이었다.
아홉 세계의 가장 높은 곳, 가장 위대한 자리에서 아이반이 눈을 떴다. 발할라의 꼭대기,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에 앉아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곁에는 아이반에게 자리를 양보한 오딘이 서 있었다. 마법의 여신이라는 프레이야가 있었고, 로키와 프레이, 스카디와 이둔을 비롯해 아스가르드의 수많은 신이 아이반을 바라보았다.
– 저 망종에게 몸을 맡기다니, 미친 것이 분명해.
로키가 낄낄거리며 말하자 아이반이 피식 웃었다.
“나는 이제 아홉 세계의 주인이니까. 미치지 않고서 그대들을 다룰 수 있겠소?”
– 그것도 옳은 말이야. 아홉 세계의 모든 자는 광기를 품고 있으니, 놀랄 것 하나 없지!
아이반은 고개를 돌려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육신과 그것을 차지한 천둥신을 보았다.
스읍-
모처럼 살아있는 육신으로 땅을 밟은 토르가 깊이 숨을 들이켰다. 사방에 가득한 피 냄새와 전장의 소음이 온몸으로 물씬 느껴졌다. 토르의 미소가 한층 깊어졌다.
– 나는 토르. 아스가르드 최강의 투신이다.
285화 어둠을 밝히는 번개
치지직!
쾅!
제법 뛰어난 실력을 지닌 고위 악마의 육신이 단번에 터져 나갔다.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고, 핏물과 고깃덩이가 바닥을 더럽혔다.
토르가 묠니르를 가볍게 돌리면서 앞으로 걷기 시작하자 주변에 가득한 악마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조금 전과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모양이다.
육신은 비록 아이반의 것이었으나, 그 영혼과 신성은 토르의 것이었다. 비록 아이반이 아홉 세계의 주인으로서 드높은 신성을 지녔다고는 해도 아홉 세계 최강의 투신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아득한 옛 시절부터 요툰과 싸워 온 전사의 기세가 악마를 억눌렀다.
“…그자로군.”
허무의 마왕과 한창 싸우던 오크투신 타르칸이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씨익 웃었다. 심상 공간에서 단 한 번 붙었을 뿐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였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꿈틀거리는 거친 기운은 과연 천둥의 신다웠고, 그 폭력적인 힘이 섬뜩할 정도로 섬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홉 세계 최강의 전사다웠다.
‘빛의 신 아룬과 엇비슷할까?’
이 땅에서 가장 강력한 신격을 떠올리며 오크투신 타르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그는 곧 헛웃음을 흘리며 그런 생각을 지워 버렸다.
빛의 신 아룬은 오크투신 타르칸이 평생의 적수로 여겼던 강자였다. 지금 시대의 주인인 천상의 아홉 신격 중에서도 주신이라 불릴 만한 자는 그밖에 없었으니.
그러나 싸움 실력만 놓고 비교하자면 이 땅의 그 어느 신격도 감히 저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자존심 강한 오크투신이 그리 생각할 정도로 실로 위대한 전사였다.
천둥신 토르. 아홉 세계 최강의 투신이라는 그의 기운만 보아도 아홉 세계가 그 어느 세상과 비교하더라도 밀리지 않을 강력한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아홉 세계가 진정으로 힘을 되찾는다면 그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
허무의 마왕도 토르의 강렬한 존재감을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주변에 초월자가 가득했으나, 그 어떤 자보다 토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망한 세계의 옛 신이 잘도 밖으로 기어 나왔구나.
허무의 마왕이 그리 말하며 손을 뻗으니 세상 모든 것이 저 멀리 밖으로 멀어지고, 토르의 존재만 가까이 다가왔다.
형언하기 힘든 어둠이 밀려와 토르의 팔다리를 붙잡았고, 세상의 법칙조차 허무로 돌아가는 공허의 숨결이 스며들었다.
스사아아앗-
육신과 영혼, 초월자의 신성마저 공허의 바다가 집어삼키려 했다. 모든 것이 허무로 돌아가려 했다.
토르는 사방에서 자신을 잡아당기는 힘을 느끼면서 오히려 껄껄 웃었다.
– 긴눙가가프의 어둠도 이보다는 짙었다!
뚜두둑!
토르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공허의 사슬이 끊어졌다. 혼돈만이 가득한 이곳에 새로운 법칙이 생기니, 그게 바로 천둥신의 힘이었다.
치지직!
쾅!
묠니르가 날아가며 모든 것을 부쉈다. 공허의 바다마저 갈라지고 물질계로 돌아왔다. 마왕의 권능을 토르가 힘으로 깨부순 거다.
왼손에는 아이반의 망치가, 오른손에는 토르의 망치가 있었다. 두 개의 묠니르를 쥐고서 토르가 허무의 마왕을 바라보았다.
– 잔재주는 치우고, 힘으로 증명하라. 마왕의 힘을 보여라.
그러자 허무의 마왕이 권태로운 표정을 지우고 흐릿하게 웃었다.
– 왕이 시험하노라.
허무의 마왕이 입을 열자 세상이 요동쳤다. 언령을 통해 새로운 법칙을 세상에 새겨 넣었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을 마왕이 긍정하여 현실로 불러왔다.
스스슥-
공허의 틈새에서 무언가 빠져나왔다. 회백색 점액과 보랏빛 보석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다가 뭉쳐서 새로운 형상을 만들었다.
튼튼한 육신에 두 개의 망치. 온몸에 천둥을 몸에 휘감고 있는 투신.
토르가 토르를 보았다. 서로의 미소가 점차 짙어졌다.
– 너는 자신을 이길 수 있는가?
허무의 마왕이 그리 입을 열자마자 가짜 토르가 달려들었다. 빛과 같은 속도, 천둥과 같은 기세, 두 개의 묠니르마저 원본과 극히 비슷했다.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쾅!
서로의 망치가 부딪치자 강력한 충격파가 원형으로 퍼졌다.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졌다. 지반이 흔들리면서 거센 지진이 퍼지고 동쪽 높은 산에서 용암이 치솟았다. 시커먼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고, 천둥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우르릉-
쾅!
허무의 마왕이 이곳에 있으니, 이 땅은 이제 마계였다. 악마를 제외한 누구도 제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천둥신이 천둥신의 머리를 후려치고, 또 옆구리를 짓밟았다. 아주 미묘한 차이였으나, 아홉 세계의 토르보다 공허를 찢고 나타난 토르가 더 빠르고 강했다.
공허 토르의 묠니르가 아홉 세계의 토르 가슴을 때렸다. 한 방에 육신의 절반이 뭉개지고 심장이 타올랐다. 천둥이 몇 번이나 지지고 지나갔다.
– 으하하하! 너는 나를 이기지 못한다! 나는 너보다 강하다!
공허 토르는 자신이 원본보다 강하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즐거운 모양이었다. 몇 번이나 망치를 휘두르고 짓밟으면서 힘을 쏟아 냈다.
아홉 세계의 토르는 그 모습이 너무나 한심해 보였다. 자신을 복사했다는 놈이 겨우 이런 수준이라는 것이 모욕처럼 느껴졌다.
– 뭣……!
분명 때려눕혔던 원본 토르가 멀쩡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공허 토르는 혼란스러워했다. 그럼 지금껏 자신이 공격하고 뭉개 버린 이놈은 대체 뭐란 말인가?
치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