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85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새롭게 자리 잡았다. 온갖 내성과 저항이 균형을 맞추고, 내장과 핏줄, 하다못해 모근마저 튼튼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최강의 전사가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쏟아 밑바닥에서부터 육신을 재구성하니 마치 예술 같았다. 최고의 석공이 작품을 빚어내듯 토르는 진정한 전사의 육신을 빚어냈다.
과정은 짧았다. 빛이 번뜩이는 사이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러나 이전의 육신과 지금의 육신이 전혀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카아아악!
땅을 뚫고서 거대한 괴물이 솟구쳤다. 마계의 사악한 마력을 머금어 초월자로 각성한 마물이었다. 예전 허무의 경고 때문에 차마 마무리하지 못했던 그 녀석이었다.
웬만한 성채와 비슷한 크기의 녀석이 기척도 없이 불쑥 나타나 토르를 덮쳤다. 커다란 앞발로 내리찍었다.
쿵!
산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한 충격이 퍼졌다. 땅이 그대로 내려앉고 쩍쩍 갈라졌다.
그러나 토르는 으깨지지 않았다. 지반이 무너졌을지언정 그의 무릎은 굽혀지지 않았다.
탁!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한 마물의 앞발을 한 손으로 막아 내고, 다른 손으로 묠니르를 휘둘렀다. 천둥신의 권능을 듬뿍 담아서 후려쳤다.
쾅!
크에에에엑!
땅을 뚫고 불쑥 내민 상반신만으로 웬만한 성과 비슷한 크기의 괴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한 방에 팔 하나가 사라졌다. 녀석의 피와 살점, 뼛조각이 하늘로 떠올라 쏟아졌다.
녀석은 몸을 마구 비틀며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곧 움직임이 멈췄다. 토르가 다시 묠니르를 휘두르니 녀석의 머리가 사라지고 심장이 터져 나갔다.
마물의 피를 뒤집어쓴 토르가 입으로 흘러들어 온 핏물을 퉤 뱉었다. 그리고 양손에 묠니르를 하나씩 든 채로 말했다.
– 다음.
허무의 마왕은 그를 지켜보다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주변 공간이 요동치면서 온갖 괴물과 악마가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초월자에 근접했거나 그를 넘어선 강자였다.
허무의 마왕은 지금껏 마주친 수많은 강자를 모두 공허의 바다로 집어삼켰다. 그들의 영혼과 신성, 정신과 육신을 모두 녹여 버리고 때때로 이렇게 불러내 하수인으로 부렸다.
허무의 마왕 홀로 수십의 초월자와 같았다. 이러니 마왕 하나가 하나의 세상과 맞먹는다는 것이다.
쾅!
토르가 묠니르 두 개를 던지고 또 휘둘렀다. 앞을 가로막은 이름 모를 대악마의 골통을 깨부수고 피와 시체로 길을 열었다. 천둥이 몰아쳤다.
그 뒤를 따라 니드호그가 움직였다. 입을 쩍 벌리고 바닥에 널려 있는 시체를 가득 씹어 삼키고 또 종말의 마력을 내뿜었다.
트롤왕이 두껍고 커다란 주먹으로 적을 때려죽였다. 온몸에 새겨진 주술 문신이 넘쳐나는 생명력을 재료로 뜨겁게 타올라 그의 힘을 몇 배나 증폭했다.
오크투신 타르칸이 껄껄 웃으며 도끼를 휘두르니 거대한 도끼가 다시금 하늘에 나타나 악마들을 싹둑 잘랐다. 거인 형상을 한 악마가 떨어지는 도끼를 막으려 했으나 그대로 짓눌릴 뿐이었다.
“하늘을 막아!”
그리 소리친 이레인이 호흡을 가다듬고 화살을 쏘았다. 팔라시온의 활이 모든 엘프의 마력을 머금고 날아가 하늘에서 사악한 마력을 내뿜는 악마들을 꿰뚫었다.
엘프의 새로운 종족신이 된 이레인의 권능을 머금은 화살은 악마의 사악한 마력을 빨아들여 꽃을 피웠다. 하늘에서 꽃잎이 팔랑팔랑 흔들리며 쏟아졌다.
화아아-
이레인의 신성이 담긴 꽃잎이 마계의 독기를 정화했다. 바닥난 아군의 체력을 채웠다.
타다닥!
땅을 박차고 사나운 이빨이 날아올랐다. 용의 화염이 날개가 되어 그를 하늘로 이끌었다.
“너희의 피로 나를 씻겠다!”
사나운 이빨이 제정신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그만큼 그도 전투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뒤에서 든든히 받쳐 주니 토르의 기세가 더욱 강렬했다. 앞을 가로막는 괴물들을 치우고 마왕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마왕과 가까이에 있을수록 권능이 약해졌다. 몸이 무거워지고 반응이 느려졌다. 산봉우리를 능히 뭉갤 수 있는 주먹이 솜처럼 가벼웠다.
마왕이 밟고 있는 땅은 곧 마계였다. 마왕은 더욱 강해지고, 다른 세계의 존재는 더욱 약해졌다. 마왕의 의지에 따라 그 격차가 더욱 심해졌다.
천둥이 이처럼 느렸던가, 번개가 이처럼 둔했던가. 주먹은 한없이 느렸고, 발놀림은 더없이 무거웠다.
쾅!
토르의 공격은 또다시 공허의 바다로 스며들었다가 되돌아왔다. 이전과 달리 한 방에 엉망이 되어 밀려나지는 않았으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묠니르를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상처 입었다.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졌으며, 또 피를 뿜었다. 어쩌면 몇 번쯤은 심장이 멈췄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번개를 머금어 심장을 쥐어짜지 않았다면 분명 그러했을 거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조금만 더 강했으면.’
아이반의 육신을 새롭게 재구성했으나, 그러고도 토르의 본래 육신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마왕에게 가까워질수록 그 차이가 토르는 너무나 거슬렸다.
홀로 하나의 세상과 맞먹을 수 있다는 마왕은 몹시 강했다. 아스가르드 최강의 투신이 이처럼 상처 입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나 토르는, 아홉 세계를 통틀어 최강의 전사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틈을 발견했다. 승리로 향하는 길을 확인했다.
쾅!
토르가 뒤로 날아갔다. 마왕의 주먹에 얻어맞고 한참이나 바닥을 굴렀다. 계곡을 만들 정도로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오히려 마왕의 표정이 굳었다. 인상을 찡그리고는 버럭 화를 냈다.
– 네 녀석이……!
온몸이 피에 젖어 지친 몸으로 토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듯 엉망이었지만 토르는 마왕을 도발하며 껄껄 웃었다.
– 이걸로 술잔을 만들면 딱 맞겠군.
토르는 그 상황에서 기어이 마왕의 뿔 하나를 꺾었다. 악마의 자존심을 부수고 손에 쥐었다.
마왕의 뛰어난 재생력은 부러진 뿔조차 바로 회복했으나, 그 무엇도 통하지 않던 공격이 마침내 마왕에게 닿았음을 알리는 증거였다.
– 너의 모든 것을 공허로 던져 주마!
허무의 마왕이 토르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들었다. 지칠 대로 지친 토르는 도저히 그걸 막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캉!
그러나 허무의 마왕은 두꺼운 결계에 막혔다. 대지의 심장이 품은 정기로 대주술사가 모두 달라붙어 만든 결계였다. 세상을 능욕하고 법칙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마왕조차 당장 깨부술 수는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도 사흘은 꼬박 지켜야만 완성할 수 있을 텐데 벌써 결계가 나타났다는 것이 놀라웠다.
– …다음은 반드시 그 목숨을 거두어 주마.
단번에 결계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허무의 마왕은 그리 말하면서 군대를 뒤로 물렸다. 몹시 불쾌했으나 두꺼운 결계를 계속 공격하느니 점령한 땅을 마계로 바꾸는 것이 먼저였다.
허무의 마왕이 사라지는 것을 한참이나 바라보는 토르 곁에 우트가르다 로키가 나타났다. 그는 몹시 피곤한 표정이었다.
– 아슬아슬했군. 내 마법력이 간당간당했어.
아홉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대마법사 우트가르다 로키는 대지의 심장 내부의 시간을 가속해서 사흘을 반나절로 줄였다.
니드호그를 그런 식으로 불러온 후에 남은 마법력을 죄다 털어 넣어서 이룬 성과였다. 이제 그는 자신의 궁전으로 돌아가 한동안 쉬어야만 하겠지.
– 이기지 못한 것이 분한가?
토르가 대꾸도 않고 마왕이 떠난 자리만 보고 있으니 우트가르다 로키가 그리 물었다.
감히 토르의 신경을 긁을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은데, 우트가르다 로키가 그 극소수에 속했다.
– …패배를 분하게 여기지 않는 전사란 없다.
이곳이 아홉 세계가 아니라 제힘을 다 발휘할 수 없었다, 아이반의 육신은 새롭게 조율하고서도 토르의 본래 육신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 변명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토르는 그러지 않았다. 패배는 패배였다. 토르의 길고 긴 삶에서 몹시 드문 일이었지만, 그는 패배했다.
– 마왕도 모든 힘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숨긴 힘이 더욱 많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악마는 음흉한 놈들이었다. 마왕은 그 정점에 있는 녀석이고. 당연히 만약의 상황을 준비했을 거다. 허무의 마왕은 파멸의 마왕을 경계할 수밖에 없으니.
파삭!
마왕의 뿔을 으스러뜨리면서 토르가 말했다.
– 다음은 나를 온전히 부활시켜라! 더는 기다릴 수가 없다!
아스가르드의 가장 높은 곳, 흘리드스캴프에 앉아 모든 것을 지켜본 아이반이 답했다.
– 다음은 당신의 차례요. 내가 약속하겠소.
287화 반격의 의지
아이반의 육신에 깃들었던 토르가 떠났다. 분을 삼키면서 아스가르드로 향했다. 온전히 부활할 날을 기다리며 그리 사라졌다.
흘리드스캴프에 앉아 있던 아이반이 눈을 감았다가 뜨니 어느새 본래의 육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으음……!”
전신에 짜릿한 고통이 가득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다 찢어지고 깨질 것만 같았다. 토르의 강대한 영혼과 신성이 깃들어서 마왕과 싸우며 한바탕 난리를 쳤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작은 자극조차 지나치게 선명해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마저 마치 도끼로 내리찍는 것처럼 느껴졌다.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이나 가만히 있고서야 겨우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나마도 마력회로나 영혼의 그릇이 엉망이라 옆에서 툭 하고 치면 바로 쓰러지겠지만.
“괜찮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