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94
그의 신호를 받은 이들이 일제히 비프로스트를 건넜다. 그 넓은 다리가 빽빽하게 채워질 만큼 많고 많은 전사가 무기를 들고서 용맹하게 달려왔다.
오딘의 궁전 발할라에는 한 번에 팔백의 전사가 드나들 수 있는 거대한 문이 오백하고도 사십 개가 있으니, 마침내 그 모든 문이 열리고 대기하고 있던 에인헤랴르가 모두 쏟아져 나왔다.
미드가르드의 인간들부터 알프헤임의 요정들, 요툰헤임의 거인들이 니다벨리르에서 만든 창칼을 들고서 진격했다.
로키는 배신하지 않았고, 프레이는 칼을 팔아먹지 않았고, 프레이야는 도망가지 않았으니 옛 라그나로크 때에도 이보다 강하지는 못했을 거다. 이게 진정한 아홉 세계의 힘이었다.
아홉 세계의 전사들을 이끌고 넘어온 오딘이 아이반을 보았다. 아이반도 오딘을 보았다. 언제나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오딘이 흐릿하게 웃고 있었다.
아이반은 아홉 세계의 가장 높은 자리,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에 앉았다. 그리고 한쪽 손에 겨우살이 가지를 쥐고서 명했다.
“마왕을 죽여라. 감히 우리의 파멸을 자칭한 녀석을 벌해라.”
오딘이 허공에 룬을 새겼다. 로키가 음흉하게 나섰으며, 헤임달이 듬직하게 검을 뽑았다.
티르는 하나 남은 팔로도 능히 대악마를 상대할 수 있었고, 악마의 그 어떤 사악한 마법도 프레이야에게 미치진 못했다.
물론 그 모든 이 앞에 토르가 있었다. 천둥신이 껄껄 웃으며 묠니르를 쥐었다. 가장 먼저 파멸의 마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294. 마왕과 마왕
번개가 쏟아진다. 하늘이 화를 내며 우렁찬 천둥이 울려 퍼졌다. 천둥신 토르의 망치질 소리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
치지직!
쾅!
산을 으깨고 강을 끊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는 날아오는 묠니르를 발로 차서 멀리 밀어내고 오히려 토르에게 달려들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크툴라스가 주먹을 휘두르니 세상의 법칙이 무너졌다. 시간과 공간마저 끊어지며 어느새 토르를 짓누르고 있었다.
쿵!
크툴라스는 토르의 턱을 후려치고 땅에 박아 넣었다. 그 강인한 토르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하지만 파멸의 마왕은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미묘한 이질감을 느끼고 고개를 휙 돌렸다.
-흐, 보이는 게 모두 진실은 아닌 법이지.
로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을 휘저으니 땅에 처박혀 있던 토르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다 사라졌다. 그리고 로키의 환영 너머에 숨어 있던 토르가 튀어나와 크툴라스를 공격했다.
-머리통을 날려 주마!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토르를 피해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러자 빛의 신 아룬이 천상의 힘으로 그를 붙잡았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빛의 문양으로 악마의 왕을 짓눌렀다.
마계화의 권능이 사라졌기에 아룬은 천상의 힘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땅의 가장 강대한 신격이 세상을 움직였다.
멸망으로 달려가는 이 순간도 세상의 많은 이가 신의 이름을 불렀다. 천상의 아홉 신격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찬란한 빛의 신을 향해 기도했다.
믿음은 곧 힘이었다. 많은 이가 기도할수록 신의 힘이 강해졌다.
-모든 것을 빛으로 정화하라!
쏟아지는 빛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세상을 멸망으로 밀어 넣던 마왕의 마력이 신성한 빛에 밀려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너의 빛은 이제 찬란하지 않다.
파멸의 마왕이 빛의 신 아룬을 노려보며 그리 말했다. 쏟아지는 빛을 견디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러자 하늘에 새겨진 빛의 문양이 비틀리며 깨지기 시작했다. 이 땅과 천상의 연결이 흐릿해지고 빛의 신 아룬의 명을 따르던 세상이 괴로운 듯 몸을 뒤틀었다.
마계도 아닌데 마왕의 말 한마디에 세상이 움직였다. 아주 폭력적이었으나 분명 정당한 방식이었다.
자신에게 달려들던 고대 악마를 불태우던 불의 신 쿤다라가 신음처럼 소리쳤다.
-세계주권……!
세계주권. 세계의 주인이라는 증명이자 권리.
일찍이 이 땅의 주인은 모든 것을 창조한 태초의 용이었고, 그 권한을 이어받은 것은 지금의 드래곤이었다.
신화시대의 끝 무렵 드래곤은 천상과 힘을 합쳐서 악신과 악마를 이 땅에서 밀어냈는데, 그때 천상의 아홉 신격은 세계주권을 나눠 받기를 원했다.
그건 드래곤에 대한 견제였으며,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이었고, 차원 방벽이 세워진 뒤에도 이 땅을 편하게 다스리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천상의 아홉 신격도 세계주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악마와 악신은 물의 신 뤼안을 공격해 그걸 강탈하였다. 그리고 그 힘으로 차원 방벽을 억누르면서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를 이 땅으로 불러왔다.
자격 없는 자가 세계주권을 사용하였으니 그것으로 쓰임이 다한 줄 알았건만, 그 파편이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에게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마계와 연결이 끊어지고도 크툴라스의 힘이 더 강해진 것은 그저 숨기고 있던 힘이 대단해서만은 아니었다. 세계주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땅이 억누르는 것을 무시할 수 있었던 거다.
쾅!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는 빛의 신 아룬을 저 멀리 밀어내면서 동시에 티르가 휘두른 검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걸 꺾어 버린 후 뒤이어 덤벼들던 헤임달을 후려쳤다.
-나는 파멸이다! 너희의 파멸이다!
쿵!
크툴라스가 강하게 발을 구르니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이 쪼개지고 지반이 무너지며 용암이 치솟았다.
크툴라스는 진정으로 강했다. 홀로 세상 하나를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모든 힘을 드러낸 마왕은 실로 세상의 종말이었다.
그러나 아이반은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에 앉아서 덤덤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스가르드의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 모든 것을 살필 수 있다는 흘리드스캴프에 앉으니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의 미래마저 보이는 듯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군.’
파멸의 마왕은 물론 강력했으나, 아이반은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짓누를 듯이 쏟아지는 크툴라스의 마력마저도 끝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크툴라스의 힘은 절대로 무한하지 않았다. 지독하게 강한 적이었으나,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적은 아니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모든 힘을 토해 내며 달려들었으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는 지나치게 신중했다.
물론 예전 패배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러했겠지. 그러니 허무의 마왕도 부르고, 섣불리 움직이지 않으며 조금씩 확실하게 이 땅을 먹어치우고 있었겠지.
그러나 그사이 아홉 세계가 힘을 되찾았으니, 마왕이라도 두렵지 않았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그 모두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우웅-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헤임달의 심장을 부수려 하니 열여덟 개의 룬 문자가 나타나 그를 둘러싸고 돌았다. 그 하나하나에 오딘이 죽음의 경계에서 깨달은 마법이 담겨 있으니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라고 해도 무방비로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쾅!
크툴라스는 헤임달을 공격하던 것을 멈추고 파멸의 마력을 내뿜었다. 그를 둘러싼 룬 문자가 차례대로 부서지자 마왕은 단번에 공간을 뛰어넘어 오딘을 노렸다.
법칙을 짓뭉개면서 크툴라스가 달려왔다. 세상을 부수는 주먹이 오딘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나 오딘의 하나 남은 눈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깊은 눈빛으로 마왕을 바라보면서 주문을 읊을 뿐이다.
알포드(Alfǫðr), 뜻은 만물의 아버지.
요르문(Jǫrmunr), 뜻은 강력한 존재.
루나튀르(Rúnatýr), 뜻은 룬 문자의 신.
시그디르(Sigðir), 뜻은 승리를 주는 자.
그가 지금 읊는 주문은 물론이오, 지금껏 아이반이 사용했던 모든 주문이 오딘의 별명이자 칭호였다.
룬 문자는 오딘이 스스로 제물로 바쳐서 물푸레나무에 매달린 채 아홉 번의 밤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니, 오딘의 존재 자체가 마법이었다. 그의 이름이 곧 주문이었고, 또 세상의 기적이었다.
오딘의 다른 이름은 위그(Yggr: 끔찍한 존재)였다. 드라실(drasill)은 곧 말을 말하니, 위그드라실(Yggdrasill)은 오딘이 올라탄 말이요, 그가 스스로 제물로 바쳐서 아홉 번의 밤을 매달려 있던 물푸레나무였다.
우웅-
오딘이 주문을 읊었다. 수많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위그드라실이 반응했다. 아홉 세계가 공명했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의 주먹이 한없이 느려졌다. 눈앞까지 다가왔으나, 더는 좁히지 못했다. 시간과 공간마저 무너뜨리는 파멸의 마력을 오딘의 마법이 억눌렀다.
한 호흡에 수백, 수천 가지 마법이 흘러나온다. 크툴라스의 마력이 그 많은 마법을 부수고 나아가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오딘의 마법이 채워졌다.
마법의 여신 프레이야가 그걸 보면서 깔깔 웃었다.
-악마는 숨결조차 참으로 역겹구나. 왕이라는 자조차 이리도 품위가 없으니 하찮기 그지없어.
그녀는 발할라 전사들의 절반을 소유한 자였고, 모든 발키리의 수장이었다. 오딘에게 여인들의 마법 세이드를 전수한 존재이기도 했다. 아홉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존재인 볼바와 프레이야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조차 있었다.
비록 아홉 세계에 깃든 끔찍한 모순과 비극적인 운명은 사랑의 여신인 그녀가 사라진 남편을 찾아 헤매도록 했지만, 그녀의 강력함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프레이야는 예전 라그나로크가 일어났을 때 아스가르드를 버리고 바나헤임으로 도망갔던 전적이 있기에 그 부끄러운 기억을 지우고자 더 열심히 싸웠다.
파바바밧!
마법의 여신 프레이야의 손짓을 따라 수많은 마법이 쏟아졌다. 그녀를 따르는 발키리들이 함께했다.
오딘과 프레이야, 아홉 세계 최강의 마법사들이 쉴 새 없이 마법을 뿜어내니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뒤로 밀려났다.
휘리릭!
어디선가 얇은 실이 나타나 마왕을 묶었다. 그리고 묠니르가 가슴을 후려치고, 스스로 움직여 거인을 베는 검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파멸의 마왕은 그 공격을 견디고 글레이프니르를 끊어 냈다. 그러나 미처 반격하지도 못하고 우르의 화살을 피해야 했다. 헤임달의 검을 막아야만 했다.
뒤이어 니드호그가 멸망의 숨결을 내뿜고, 펜리르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이제 크툴라스는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공격보다 방어가 잦아졌다. 처음에는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몸을 지키는 것만 해도 버거웠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약해진 것이 아니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강해지고 있었다. 아홉 세계의 힘이 점차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