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95
공격받는 것은 이 땅만이 아니었다. 마계도 그러했다. 아홉 세계의 전사들은 니다푤의 험한 산을 올라 옛 니다벨리르를 지나 마계로 넘어갔다.
비다르와 발리, 모디와 마그니. 라그나로크를 견디고 살아남은 넷은 물론이고, 흐륌이 이끄는 나글파르의 전사들, 한때 가장 강력한 토르의 라이벌이라 불렸던 요툰 흐룽그니르와 니드호그의 숙적 흐레스벨그가 부활하여 날뛰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악마는 모두 찢어 버리고 그 피와 육신, 정기와 영혼을 뽑아서 아홉 세계의 가장 깊은 곳으로 집어 던졌다. 마왕이 없는 마계는 그들을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아홉 세계의 영역은 늘어나고 정기가 채워졌다. 위그드라실은 그 막대한 정기를 정화하여 다시 내뿜었다. 아홉 세계의 모든 존재가 옛 힘을 되찾을 수 있도록,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아이반은 아홉 세계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 그 모든 과정을 조율했다. 아홉 세계의 모든 가능성을 의미하는 그의 신성이 더없이 밝은 빛을 뿌리며 운명을 비틀었다.
마왕은 곧 세상의 끝이요, 영원한 어둠이요, 절망이었다. 그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세상의 추가 기울고 끝없이 멸망으로 달려가곤 했다.
본래라면 아주 사소한 일이더라도 악마에게 유리하게끔 흘러갈 터였다. 세상의 운명이 그러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오딘이 운명을 벗어나려 노력할수록 예언을 현실로 만들었던 것처럼, 프레이가 싸움을 앞두고 어이없는 이유로 검을 다른 이에게 줘 버리는 것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이 태연하게 일어났다. 그게 멸망의 운명이었다. 정해진 흐름이었다.
그러나 아이반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운명에서 자유로운 특이점이기에 오직 아이반만이 그럴 수 있었다.
아이반은 자신이 가진 힘으로 그 운명의 흐름을 막아 냈다.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 세우고 정해진 결말을 바꿔 썼다. 운명의 간섭을 밀어내고 오직 자신들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운명을 다루는 여신, 노른 세 자매가 아이반의 곁에서 그 일을 도왔다. 지금껏 그녀들은 운명의 흐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야 진정으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베르단디, 스쿨드, 우르드는 아이반의 지시를 따라 물레를 돌리며 새로운 운명을 엮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 원하는 방향으로 운명을 비틀었다.
끼리릭-
그렇게 한창 물레를 돌리던 우르드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베르단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반을 보았다. 스쿨드가 당황해서 손을 떨었다.
힘차게 돌아가던 물레가 뭐에 걸린 듯 삐걱거렸다. 새로운 운명을 엮는 일이 힘겨웠다.
아이반은 고개를 돌려 동쪽을 보았다.
허무의 마왕이 축 늘어진 오크투신의 목덜미를 붙잡고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로 드래곤이 몇이나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295화 세계를 불태우는 자
하나의 마왕은 하나의 세상과 같았다. 그들은 수많은 세상의 절망이며, 끝이며, 어둠이었다.
하나의 세상에 마왕 둘이 침공하였으니 이 땅의 결말은 정해진 것과 같았다. 세상의 종말이 둘이나 나타났으니 그 땅의 운명이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허무의 마왕은 느꼈다. 쉴 새 없이 멸망으로 치달을 세상의 흐름이 크게 비틀어지고 있다는 것을.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숨기고 있던 모든 힘을 드러내고도 밀리고 있었다. 이 하찮은 세상쯤이야 단번에 짓누르리라 여겼는데, 그 강대한 어둠이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
아홉 세계의 군대가 마계를 침공했다. 그전처럼 빈집을 헤집는 좀도둑 수준이 아니라 마계를 완전히 삼키겠다는 것처럼 거칠고 강력하게 밀고 들어왔다.
이제 허무의 마왕은 선택해야만 했다. 물러날 것인지, 나아갈 것인지. 이 세상을 포기하고 마계로 돌아가 자신의 영역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숨기고 있던 모든 힘을 끌어내 몰아칠 것인지.
물론, 허무의 마왕은 물러나지 않았다. 마계는 적자생존의 땅이었다. 약해 보이면 잡아먹힌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물러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허무의 마왕은 태도를 바꿔 거세게 몰아쳤다. 숨기고 있던 것을 모두 드러내며 찍어 눌렀다.
대주술사들이 모두 모여 대지의 심장에 결계를 만들었으니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녹색 만신전과 드래곤이 힘을 합친다면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허무의 마왕이 진심으로 몰아치니 견딜 수가 없었다. 마왕이라 해도 쉽게 넘을 수 없으리라 자신했던 결계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허무의 마왕은 하나의 세상을 능히 잡아먹을 힘을 품고 있었다. 녹색 만신전과 드래곤들이 힘을 합친다 해도 이 땅이 가진 힘의 절반에 불과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결계를 부수고 안에 있던 자들을 끌어냈다. 드래곤을 때려눕히고 오크투신의 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리로 따지면 수천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었으나, 그처럼 강대한 초월자에게는 거리가 큰 의미가 없었다.
아이반이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에 앉아 온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마왕의 시선도 수천 킬로미터를 넘어서 이곳을 꿰뚫고 있었다.
그걸 빈틈이라 여겼는지, 목이 붙잡힌 채 축 늘어져 있던 오크투신 타르칸이 손을 휘둘러 허무의 마왕의 심장을 꿰뚫었다. 오크투신의 두껍고 거친 손이 마왕의 가슴을 헤집고 심장을 뽑아냈다.
그러나 그 순간 오크투신 타르칸은 깨달았다. 심장이 뽑힌 것은 허무의 마왕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허무의 마왕은 자신을 덮친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과정을 제멋대로 편집하고 결과도 자기 마음대로 바꿔 놓았다.
오크투신 타르칸은 분명 허무의 마왕을 공격해 그 심장을 뽑았으나, 손에 들린 것은 자신의 심장이었다.
– 커헉!
오크투신 타르칸은 가슴이 쩍 갈라진 채 아직도 꿈틀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쥐고서 피를 토했다. 그러면서 아이반을 보았다. 아이반은 그 눈빛을 읽었다.
오크투신 타르칸은 자신의 공격이 마왕에게 통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그러나 마왕이 지금껏 숨기고 있던 권능이 무엇인지 알려 주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심장을 바쳤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오크투신 타르칸은 승리를 원했다. 짧은 순간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자신의 심장으로 단서를 남겼다.
탁!
오크투신 타르칸을 멀리 집어 던진 허무의 마왕이 공간의 문을 만들었다. 살아남은 녹색 만신전의 신들과 드래곤들이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허무의 마왕은 방해를 뿌리치고서 훌쩍 넘어왔다.
– 크툴라스, 참으로 한심한 모습이로군.
허무의 마왕이 그리 말하며 낮게 웃었다.
– 혹시 벌써 힘이 다했나? 그대로 죽어 나자빠졌나?
비웃음을 한껏 담은 말을 내뱉으면서 허무의 마왕의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였다. 전장을 훑고 또 상대를 살폈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와 마계의 연결이 끊어졌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자신이 있는 곳이 곧 마계가 되는 마왕의 권능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세계에서든 우위에서 싸울 수 있는 마왕의 권능이 무너졌다는 뜻. 과연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모든 힘을 발휘하고도 압도하기는커녕 밀리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허무의 마왕은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의 경계심이 한껏 치솟고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더욱 강해졌다.
우웅-
마왕 둘의 마력이 같은 곳에 뭉쳐 있으니 세상이 비틀리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온갖 법칙이 무너지고 세상이 비명을 내질렀다.
오딘은 물론이고 프레이야와 로키마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이 쉼 없이 쏟아 내던 마법이 점차 힘을 잃었다.
원래 마법이란 세상의 법칙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힘이라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면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그 미묘한 차이를 초월적인 능력으로 보완하며 온갖 마법을 쏟아 냈는데, 아예 법칙이 무너지니 마법의 신이라 해도 방법이 없었다.
이 땅이 아홉 세계였다면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들은 외부의 존재였다. 힘을 완벽히 발휘할 수가 없었다.
아이반이 낮게 혀를 찼다.
‘기껏 마왕의 권능을 무너뜨려서 놈들을 같은 처지로 만들었는데, 본래대로 돌아가고 있군.’
이 땅이 다시금 마계로 바뀌고 있었다. 파멸의 마왕이 가진 권능은 펜리르가 삼켰으나, 허무의 마왕이 가진 권능은 멀쩡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카아악!
펜리르가 다시금 입을 쩍 벌렸다. 아래턱이 땅에 닿고, 위턱이 하늘에 닿았다. 세상 모든 것을 그사이에 놓고서 단번에 삼키려 했다.
그러나 한 번은 당했어도 두 번이나 그럴 리가 없었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거세게 달려들었다.
헤임달과 티르가 그걸 막으려 했으나 허무의 마왕이 끼어들었다. 단번에 상황을 파악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스스슷-
공허의 바다에서 거짓된 헤임달과 티르가 빠져나왔다. 그들을 흉내 내어 맞서 싸웠다.
가짜 헤임달과 티르는 결코 원본에 미칠 수 없었다. 그러나 헤임달과 티르가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를 붙잡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쾅!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세상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파멸의 마력이 걸리는 모든 것을 짓누르며 파괴했다.
세계를 삼키는 펜리르의 권능이 완성되기도 전에 무너졌다. 파멸의 마력이 펜리르의 기운을 밀어냈다.
마계화의 권능으로 이 땅이 다시금 마계로 바뀌니 아홉 세계의 존재는 약해지고 악마는 모두 강해졌다.
격의 차이가 선명하다면 무시할 수 있었으나, 이처럼 강대한 존재들의 싸움에서는 아주 치명적인 수준이었다.
반쯤 아군을 향해 기울었던 승리의 추가 다시금 움직였다. 마왕들을 비롯해 악마의 초월자들이 거세게 날뛰었다.
녹색 만신전의 살아남은 신들, 드래곤들이 합류했으나 그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멀쩡한 자들이 하나 없었다.
검신 카락취는 팔 하나가 잘린 상태로 검을 휘둘렀고,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는 날개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이리저리 꺾인 상태였다.
뛰어난 재생력을 가진 초월자들이 육신의 결손을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다는 뜻이다.
– 나는 이 땅의 모든 어둠을 거부한다!
– 나는 악마를 징치한다!
드래곤들이 힘을 쥐어짜서 용언을 사용했다. 그들이 창조주의 화신이자 분신이기에 가진 명령권이었다. 그들의 명령에 따라 세상이 복종하고 법칙이 다시금 새겨졌다.
그러나 이미 세상의 힘이 너무나 약해졌다. 이 땅의 절반은 마계가 되었고, 용언은 힘을 잃었다. 심지어 파멸의 마왕은 세계 주권의 파편마저 가지고 있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쿵!
허무의 마왕이 발을 구르니 공허의 바다에서 그동안 그가 상대했던 무수히 많은 강자가 쏟아졌다. 영혼과 육신을 곱게 갈아서 공허의 바다에 던져 놓았다가 자기 마음대로 부활시킨 것이다.
비록 그들은 예전 찬란하고 위대한 정신을 잃었으나 가진 힘만은 그대로였다. 수십의 초월자가 새롭게 나타난 셈이다.
공허의 바다에서 튀어나온 초월자들이 전장을 휩쓸었다. 천상의 아홉 신격이 그들을 억눌렀으나, 그러면 마왕을 견제할 자가 부족했다. 마왕이 하나라면 감당할 수 있으나, 둘이 되니 막을 수가 없었다.
– 너희의 모든 것이 파멸하리라!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그리 외치며 세상을 뒤틀었다. 이미 마계의 영역이 되어 버린 남부와 동부가 흔들리며 마왕의 명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을 잃은 용언과 달리 마왕의 언령은 아주 강력했다. 파멸의 마왕뿐만이 아니라 허무의 마왕마저 그에 동조하여 힘을 더하고 있으니 세상의 운명이 급격하게 움직였다.
두두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