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96
땅이 쩍 갈라졌다. 대륙이 둘로 나뉘고 세상이 찢어졌다. 마왕들은 이 세상을 완전히 끝장내고자 하는 모양이다. 감히 반항한 대가를 받고자 했다.
뚝, 뚜두둑!
우르드, 베르단디, 스쿨드. 운명을 다루는 여신들이 새롭게 운명을 짜내던 물레가 삐걱거리며 부서졌다. 운명의 실이 엉망으로 엉키고 끊어지고 있었다.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에 앉아서 아홉 세계의 정기와 세상의 운명을 조율하고 있던 아이반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해진 운명을 거슬러 세계의 압력을 그대로 받아 내려니 온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미래의 가능성이 깜빡거리다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으니 부릅뜬 눈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이반은 그런 상태로도 마왕들을 바라보며 당당히 선언했다.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이번 라그나로크는 영광스러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멀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홉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세계를 바라보았다.
침묵하고 있으나 너무나 강렬해서 무시할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의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 또한 아홉 세계의 존재였다. 뒤로 물러나 있지만은 않을 터였다.
아이반이 겨우살이 나무를 굳게 쥐고서 휘둘렀다. 그러자 아홉 세계를 뒤덮은 정기의 흐름이 요동쳤다.
화아아-
미처 비프로스트가 준비되기도 전에 누군가 아스가르드를 뛰쳐나갔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는지 아주 거칠었다.
너무나 커서 세상을 뒤덮고도 모자라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어야만 했다는 세계 뱀이 옛 육신을 되찾았다.
뱀신 모르나가 영혼을 얼핏 엿보고서 진정한 뱀신이란 저런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위대한 뱀이 아스가르드를 벗어나 이 땅에 나타났다.
콰아악!
바다가 넘칠 듯이 부풀어 올랐다. 물의 신 뤼안이 다급히 바다를 안정시키지 않았다면 밀려오는 해일만으로 대참사가 일어났을 거다.
그러나 세계뱀 요르문간드는 그 따끔한 시선을 무시하고 몸을 움직였다. 크게 대륙을 휘감고서 자신의 꼬리를 물었다.
드드드드-
벌어지던 땅이 다시금 붙었다. 찢어지던 세상이 아물었다. 세계뱀 요르문간드가 그 거대한 몸으로 대륙을 휘감고서 벌어지지 않게 꽉 조였다.
예전 그는 태어나자마자 깊은 바다에 버려져 외로움에 몸부림쳐야만 했다. 모든 이가 그를 두려워했고, 세상의 종말이라 손가락질했다.
자신의 꼬리를 물었던 것은 단순히 커다란 몸을 가눌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분노를 참기 위해서였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 요르문간드가 꼬리를 문 것은 세상을 위해서였다. 대륙이 갈라지고 세상이 찢어져 마계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려는 독을 참고서 세상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 동생의 활약을 본 펜리르가 아련한 눈빛으로 옛 기억을 더듬다가 다시금 입을 쩍 벌렸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가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시금 덤벼들려고 하니 로키가 앞을 막았다. 아들을 공격하는 불한당을 붙잡았다.
화르륵!
로키의 불길이 치솟으며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환영이 나타났다. 아주 잠깐의 눈속임이었으나 힘으로 막아서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이었다.
그사이 펜리르는 마왕의 권능을 삼키는 대신 목을 길게 빼고 울음을 터트렸다. 펜리르의 울음소리는 마치 단말마처럼 짧고 강렬했다. 라그나로크가 깊어졌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화르륵!
멀고 먼 세계에서 밀려온 불길이 이곳에 닿았다. 불의 신 쿤다라의 것과는 다르고, 로키의 불길과도 확연히 다른, 뜨겁고도 뜨거운 불길이었다.
탁!
치이익!
그가 한 발을 내디디니 초월자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열기가 밀려왔다. 똑바로 바라보면 눈이 타들어 갈 것처럼 강렬했다.
어쩌면 아홉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
어쩌면 아홉 세계의 진정한 종말.
무스펠헤임의 수호자가 나타났다.
수르트가 나타났다.
296화 모든 것이 불타기 전에
세상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퍼졌다. 그 불은 신성하지도 않았고, 사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천상의 횃불보다, 지옥의 불길보다 강렬했다.
수르트의 불은 그 무엇보다 순수했다. 원초적인 불의 정수였고, 모든 화염의 근원이었다.
천상의 아홉 신격, 그중에서도 불의 신 쿤다라가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득한 옛 시절에 존재했다는 태초의 불꽃이 눈앞에 있는 느낌이었다.
화르륵!
때로 음습한 뱀처럼, 때로 용맹한 사자처럼 불길이 흔들렸다. 그러면서 퍼져 나오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마왕들마저 움찔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오딘, 토르, 헤임달과 프레이야, 로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수르트를 바라보았다. 옛 위그드라실을 불태우고 아홉 세계를 잿더미로 만든 존재를 마냥 반길 수가 없었다.
프레이의 눈이 깊어졌다. 마지막까지 수르트와 맞서 싸웠으며, 그러나 결국 막지 못해 세상이 불타는 것을 봐야만 했던 그의 마음이 가장 복잡했다.
이곳에 그를 반기는 이는 하나 없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을 불태우는 그를 환영할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 따끔따끔한 적의를 느끼면서도 수르트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자잘한 감정의 흐름에 휩쓸리기엔 무스펠헤임이 지나치게 뜨거웠다.
탁!
수르트가 한 발을 내디디니 불길이 확 커졌다. 땅이 녹아내리고 하늘이 불탔다. 마왕이 가진 마계화의 권능조차 의미가 없었다. 수르트의 불길은 세상을 살라먹었다.
– 굳이 수르트를 끌어들여야만 했나?
오딘이 아이반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 과한 힘이다. 네가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아득한 옛날, 오딘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죽였던 태초의 거인 위미르와 비교해도 격이 그리 밀리지 않을 존재가 수르트였다.
태초의 거인 위미르는 무스펠헤임의 열기와 니플헤임의 냉기가 만나 태어났지만, 수르트는 무스펠헤임에 가득한 열기 속에서 나타났다.
누군가는 무스펠헤임의 화염이 그를 만든 것이 아니라, 수르트가 그곳에 있기에 무스펠헤임이 화염의 세계가 되었다고도 했다.
그는 라그나로크의 마지막에 나타나 모든 것을 끝낸 존재이지만, 진정으로 그에 관해서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세상을 창조한 오딘마저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확언하지 못했다.
– 세상을 구하기 위해 불렀으나, 그가 세상을 불태울 수도 있다.
오딘은 아이반에게 강하게 경고했다.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자신의 손 위에서 다뤄야만 하는 책략가인 오딘에게 수르트처럼 제어할 수 없는 존재는 너무나 껄끄러웠다.
오딘이라면 결코 수르트를 부르지 않았을 거다. 그 화염의 거인이 무스펠헤임을 벗어나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했다.
그러나 아이반은 고개를 저었다. 오딘의 걱정을 밀어내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도 아홉 세계의 존재요. 펜리르와 요르문간드, 헬라가 아스가르드와 함께하는 것처럼, 로키가 배신하지 않고 프레이야가 도망가지 않은 것처럼 수르트도 예전 같지는 않을 거요.”
오딘은 세상 모든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자신의 손으로 조율하기를 원했다. 궁극적인 위험을 막기 위해 자기 손으로 만든 세상에 전쟁이 계속되도록 마법을 걸었고, 탐욕스럽게 마법과 지식을 긁어모으며 달려갔다.
그러나 아이반은 오딘과 달랐다. 그 역시 한때는 세상 모두를 불신하며 잔뜩 경계했으나,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동료를 얻었다.
아이반은 왕이었으나 혼자가 아니었고, 신이었으나 숭배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오딘과 아이반의 세상은 달랐다. 오딘이 겪은 것과 아이반이 겪은 것이 다르고, 오딘의 생각과 아이반의 생각이 달랐다.
– …그래, 그게 그대의 결정이라면.
오딘이 잠깐 침묵하다가 그리 대꾸했다. 어딘가 시원섭섭한 목소리였다.
아홉 세계의 주인,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를 내주었으니 오딘은 아이반의 결정을 따르고자 했다. 이제야 진정으로 짐을 내려놓은 듯 후련했다.
오딘의 세상은 불타서 사라졌다. 아이반의 세상은 이제 피어올랐다. 그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 내가 아홉 세계를 만들었으나, 진정으로 주인이 된 적은 없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살았지. 마음이 다급하니 누구를 믿을 여유가 없었어.
오딘이 그리 말하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허공이 쩍 갈라지며 찬란한 창이 하나 나타났다.
궁니르(Gungnir).
가장 유명한 오딘의 무기였으나, 정작 오딘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신들의 왕을 의미하는 상징이었을 뿐이다.
오딘은 그걸 아이반에게 보냈다. 진정으로 아이반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탁!
아이반이 궁니르를 잡으니 창을 휘감고서 겨우살이가 피어올랐다. 가장 강력한 상징에 가장 연약한 존재가 뿌리내려서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나타냈다.
끼리릭!
마왕이 둘이나 모여 멸망으로 치닫던 운명의 흐름을 아이반이 홀로 막아섰다. 그러나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으나, 지금껏 그와 함께한 모든 이가 아이반을 도왔다.
출렁이는 운명의 흐름을 느끼면서 수르트가 검을 쥐었다.
발드르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선 예전 세상이 무너져야만 했다. 수르트의 역할은 그것이었다. 오래된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것.
화르륵!
수르트가 불의 검을 휘둘렀다. 지독한 화염이 쏟아졌다.
잡다한 악마는 불길이 닿기도 전에 재가 되었다. 대악마조차 견디지 못하고 몸이 타들어 갔고, 마왕이라도 섣불리 받아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방어에 집중했다.
아홉 세계의 다른 이들이 이제 막 허신을 벗어나 예전의 힘을 회복했다면, 수르트는 예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해진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