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3
마탑의 의뢰를 받을 만큼 신용도가 검증된 사람들, 말하자면 이 지역 용병들의 에이스뿐이었기에 다들 부지런했다. 아이반이 동쪽 성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두 명은 도착해있었고, 다른 한 명 역시 늦지 않게 나타났다.
‘한 명은 레인저, 한 명은 검방 전사.
마지막은 무투가인가?’ 그 중에서 아이반의 시선을 끈 것은 무투가였다. 낡은 도복 위에 걸친 가죽갑옷과 양손에 금속 건틀릿, 그 외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여성.
남들 다 칼이며, 창이며, 활이며 무기를 들고 다니는 와중에 무기 없이 맨손격투라니 병신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영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기, 내공, 마력, 마나, 오러, 차크라. 부르는 명칭이야 어쨌든 그런 초월적인 힘이 존재하고, 그것으로 육신을 강화한다거나 하는 이능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역시 무기를 드는 것이 더 강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곳에서 무투가는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고 육체를 단련하는 고행자이기도 했다.
무기를 들지 않고 적을 상대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발전을 꾀한다는 것이 그들의 사상이었다. 물론 아이반은 그런 복잡한 배경 설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은 원래 게임이었던 곳이다. 판타지 게임 속에서 무투가라면 흔한 직업이 아닌가.
그냥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그래도 무투가라면 실력은 확실하겠군.’ 당연한 이야기지만 능숙하게 이능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맨손으로 적을 상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멍청한 짓. 무투가들의 무파(武派)에서는 수련자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니 정식 무투가라면 실력은 믿을 만 했다.
“용병들은 다 온 것 같군.”
“마법사는?”
“그 양반이 늦는 건 이해해야지. 엉덩이 무거운 마법사 양반 아닌가?”
먼저 자신을 소개한 것은 검방 전사였다. 꽤 큼지막한 덩치에 붉은 수염이 탐스러운 근육질의 남자.
“나는 랄프요. 보다시피 검과 방패를 주로 쓰고, 앞에서 공격을 받아내는 것에 익숙하지. 여기 활쟁이는 스벤. 동부전선 레인저 출신이라 숲에서는 꽤 믿음직한 놈이지.”
“랄프, 내 소개는 스스로 하고 싶었는데.”
“흐흐, 말솜씨도 별로인 녀석이. 아, 그리고 이쪽의 무투가 숙녀는 .”
“율리아 밀러, 뇌랑권(雷狼拳) 수련자.”
그녀는 크게 친근한 성격은 아닌지 딱딱하게 말을 뱉었지만 그게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솔직히 꽤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썬더울프라, 오랜만이군.”
“그대는 이전에 우리 무파의 수련자를 만난 적이 있었나?”
“그렇소. 한 번쯤은. 아마 안도렐에서였던가?”
무투가 자체가 드문 존재라 쉽게 보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썬더울프라면 무투가들의 무파 중에서는 꽤 메이저한 편이다. 지난 몇 년간 개고생을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니 아이반이 한 번쯤 수련자를 봤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혹시 누구를 만났는지 알려줄 수 있겠나?”
“마티아스.”
“마티아스 선배인가, 그는 무탈해보였나?”
“2년 전까지는. 상당히 유쾌한 남자였지. 안도렐에서는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소.”
“다행스러운 소식이군.”
같은 지역에서 활동한 연고가 있어서인지 셋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여기서 낯선 이라고는 아이반밖에 없는 셈이다.
“아이반 에시르손. 이것저것 다루지만 검이 제일 익숙하오. 이쪽에 온지는 며칠 되지 않았소.”
“그래, 듣기로는 서쪽에서 히드라를 잡았다던데 .”
또 그 이야기군.
뱀 새끼 하나 잡아서 몇 년을 우려먹겠어. 아이반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별 것 아닌 놈이었소. 어쩌면 히드라가 아니라 그냥 돌연변이 뱀이었을지도 모르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마침내 마탑의 마법사가 나타났다.
그는 스스로가 마법사라는 것을 사방팔방에 알리고 싶은 것인지 기다란 로브와 큼지막한 지팡이를 쥐고 있었는데, 슬쩍 살펴보니 여행용 장비를 제대로 챙기기는 했는지 영 어설픈 모양새였다.
“크흠!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아서 .”
달랑달랑.
덜컹덜컹.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마법사가 고개를 숙이자 그가 짊어지고 있는 배낭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것저것 매달려있는 것들이 제대로 고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대로 가면 온갖 숲의 괴물들은 다 불러 모으겠군.”
레인저 스벤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숲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을 장기로 삼는 레인저에게 지금 모습은 마치 재앙처럼 보이는 듯했다. 그 말을 들은 것인지 마법사의 귀가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면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자기도 본인의 준비상태가 형편없다는 것을 잘 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아이반은 오히려 크게 안도했다.
‘드물게 정상적인 마법사로군. 아직 젊어서 마법사 물이 덜 들었나?’ 숲속으로 직접 들어가 이상 현상을 조사한다는 것은 몹시 위험하고 귀찮은 일이었다.
엉덩이가 무거운 마탑의 늙은이들이 직접 움직이기 싫으니 대충 젊은 마법사 하나를 보낸 모양인데, 아이반 입장에서는 이쪽이 훨씬 나았다. 행동이 어설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 말을 알아듣잖아.
“배낭을 이리 주시오. 안쪽을 좀 정리해야할 것 같으니까.”
역시나 제대로 바깥을 돌아다녀본 적이 없는 초보자의 짐이었다.
꼭 필요한 것이 없고 없어야 될 것은 많은 비효율적인 가방.
“유리 플라스크? 이건 왜 필요하오? 거기서 연금술이라도 하시려고? 숲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을 거요. 그리고 식량이 너무 적군. 육포랑 곡식가루를 조금 더 챙겨야 하오. 물도 부족하군.”
물론 마법사는 고급 인력인 만큼 웬만하면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도록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서로 헤어졌을 때 자신이 먹을 최소한의 식량은 마법사라도 챙겨야지.
용병들이 이것저것 알려주며 가방을 정리해주는 데는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물론 필요한 물품을 새로 구매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마법사의 숙소에 다시 가져다놓는 것까지 포함한 시간이었다. 아공간 마법이 새겨진 마법물품은 헉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더럽게 비쌌고, 스스로 아공간 마법을 사용하려면 고위 마법사쯤은 되어야 했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짐을 효율적으로 들고 다니는 것부터가 용병들의 실력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파티 같은데?’ 탱커로 세울 수가 있는 든든한 국밥 같은 검방 전사 하나에 빠르게 치고 빠지면서 적진을 휘저을 수가 있는 무투가, 길잡이와 후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레인저, 거기에 후방에서 화력을 담당할 마법사까지.
아이반 자신이 부족한 쪽에 힘을 실어줄 수가 있으니 딜탱 조합으로는 꽤나 안정적인 파티구성이었다. ‘용병길드 추천이니 실력이 평균 이상을 할 테고.’ 사실 그것만 해도 충분했다.
가끔 의뢰를 위해 이런 저런 사람들과 파티를 맺다보면 상상을 초월한 병신들이 튀어나오고는 했으니까.
사람이 다섯이 모이면 반드시 쓰레기가 하나는 있다는 금과옥조의 명언.
게임 속에서야 서로 화기애애하게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헤어졌을 것이 현실이 되니 가끔은 진짜로 칼질까지 할 만큼 심각했다.
아이반이 괜히 이것저것 잡다한 것에 능숙해진 것이 아니었다.
스킬 포인트 낭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잡캐가 된 것은 동료를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 많아서였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줄 알아야 안심이 되었다. ‘그에 비하면 마탑에서 마법만 연구하던 샌님 마법사 하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천국이지.’ 어쩌다보니 출발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파티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젊은 마법사, 에민이 생각보다 분위기를 잘 읽고 싹싹했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고급인력이라 오만하고 괴팍한 사람들이 많았다. 경력을 웬만큼 쌓은 용병이라면 적어도 몇 번쯤은 마법사와 함께할 일이 있는데, 그러다보면 꽤나 질릴 만한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 와중에 수더분한 마법사라니, 몇 시간 출발이 늦어진 걸로 인상을 찡그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는 평민 출신이거든요. 어릴 때 스승님을 따라 마탑으로 들어간 뒤에 밖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에민은 지루한 마탑 생활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 실험을 하다보면 폭발할 때가 있거든요? 근데 마탑은 시도 때도 없이 그런 소리가 울려 퍼져서 잠을 자려면 .”
다들 꽤 흥미롭게 들었다. 마탑은 워낙 폐쇄적인 곳이라 일반인은 안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대단한 비밀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쉽게 듣기 힘든 이야기였으니 나중에 맥주 한 잔 하면서 꺼낼 안주거리로는 충분하리라.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더 이상 성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깊숙이 숲속으로 들어가자 다들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스스스슥! 지지직!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잎사귀가 서로 비벼지는 소리, 벌레의 울음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고요할 것만 같은 숲속은 생각보다 훨씬 시끄러운 곳이었다.
그 중에 미묘한 단서를 찾아내 움직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미리 전해 듣기로는 마력 반응이 느껴진 곳이 숲속 깊은 곳에 있는 호수 근처라고 들었소. 위험한 곳을 많이 지나가야할 테니 내 말을 반드시 따라주시오.”
길잡이를 맡은 스벤이 앞장서기 시작했다.
동부전선 출신의 레인저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그는 숲속에서도 발걸음 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움직였다. 그는 시야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벌려 척후를 맡았다. 다른 이들은 그의 수신호에 따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멈칫! 앞쪽에서 신호가 왔다.
– 몬스터 발견.
수는 둘. 잠시 고민한 아이반이 몬스터 종류가 어떻게 되냐고 수신호를 보내자 스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레인저들이나 알 수 있는 복잡한 수신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스벤은 신기한 눈빛을 하면서도 답을 보냈다. – 만만한 상대, 칼날뿔멧돼지, 혼자 처리하겠음. 아이반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벤은 활을 꺼내들고 빠르게 쏘아 보낸 후 앞으로 나아갔다.
결과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뒤이어 그쪽을 지나갈 때 아이반이 화살을 회수하며 확인하니 확실히 실력이 괜찮았다.
‘한 마리에 한 번씩.
미간을 꿰뚫어서 죽였군.’ 아이반이 엄지를 치켜 올리자 스벤이 씨익 웃었다.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연계 퀘스트: 동쪽 숲의 비밀 – 1] [최근 안도렐 동쪽 숲이 이상해졌다. 그 비밀을 파헤쳐보자.] [보상: 대량의 경험치, 스킬 포인트 +1, ?] ‘연계 퀘스트?’ 그동안 긴급 퀘스트니, 서브 퀘스트니 하는 것들은 많이 있었지만 연계 퀘스트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연계 퀘스트가 뜬다고? 보상도 이상했다.
물음표야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대량의 경험치에 스킬 포인트라니, 전에 본 적이 없는 수준의 보상이었다. 무언가를 깨달은 아이반의 표정이 저절로 굳어졌다.
‘메인 스토리와 연결되어 있다!’ 이 빌어먹을 세계는 한때 게임이었다. 게임이 현실이 된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게임인 척 했을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때는 그러했다.
당연히 메인이 되는 스토리가 있었다. 요즘의 게임들이 흔히 그러하듯 대륙이 불타오르고 세계가 갈라지는 평범한 세계멸망 스케일의 시나리오가.
그동안 아이반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그저 게임과 현실이 다를 뿐이겠지, 하면서 넘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이반은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진행되기 이전의 시점에 떨어졌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안 그래도 병신 같은 세계가 더욱 지옥처럼 변한다는 뜻이다.
“흐흐, 1골드라니. 씨부럴. 그게 설렁탕이었군.”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