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31
“듣던 대로 시원스러운 성격이시군요. 좋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대뜸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풀어놓았다.
그러자 아이반은 방금 전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신성력이 남자의 안에 맴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봉인구. 힘을 막는 것이 아니라 힘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것인가? 정체를 숨기는 용도로군.”
아이반이 그렇게 추측을 입으로 내뱉자 의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델피노라고 합니다. 찬란하신 빛의 주, 아룬을 모시는 사제입니다.”
잠깐 신성력을 뿜어내는 걸로 자신을 증명한 델피노가 다시 목걸이를 착용했다.
그러자 또 다시 신성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신기하군.’ 아이반이 예민한 감각을 집중해서 그를 훑었다. 그가 빛의 신 아룬의 사제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쉽게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감쪽같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감추는 것을 보니 아주 비밀스러운 의뢰인가 보오.”
“그렇습니다. 이 지역에 숨어있는 악마숭배자와 흑마법사들을 색출해내는 임무죠.”
그는 아이반에 대해 조사를 했다고 순순히 밝혔다. 그동안의 행적을 살피고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의뢰를 하는 것이라 했다.
“노르드의 신들에게 사랑받는 전사라고 들었는데, 과연 그렇군요. 당신이 악마숭배자와 손을 잡을 리가 없죠.”
아이반이 얼마 전 버려진 수도원이 던전으로 변한 사건을 해결했다는 것 역시 중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곳은 모종의 이유로 철저하게 파괴된 곳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때 찬란한 빛의 주를 모시던 자들이 타락한 장소죠. 그곳에 다녀오셨으니 짐작하셨을 겁니다.”
“그렇소. 썩 유쾌한 장소는 아니더군.”
델피노는 쓴웃음을 지었다.
같은 아룬의 사제로서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빛의 신을 모시는 자가 어찌하여 어둠에 물들 수가 있단 말인가.
“저희는 그곳이 갑자기 던전으로 변한 이유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흑마법사와 악마숭배자들의 수작이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 비슷한 일들이 최근 들어서 연이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반은 대충의 스토리를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의문을 표시했다.
“악마숭배자들이? 갑자기 무엇을 노리고?”
“저희도 그 목적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이곳저곳에서 악마숭배자들이 발견되고 있었으나 하필이면 지금 동부전선에서 그린스킨들과의 전쟁까지 터졌다. 아룬의 신전뿐만 아니라 다른 신전의 사제들까지 죄다 전쟁터로 불려가는 중이라 인력이 아주 부족하다고 했다.
심지어 대륙 북부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부터 신전의 영향력이 약한 곳이었고.
그래서 믿을만한 사람을 구해 함께 조사를 하려는 것이라 했다.
그들이 무슨 짓을 꾸미는 지, 대체 무슨 의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의뢰금 외에도 활약에 따라 저희 신전에서 따로 보상을 드릴 것입니다. 신전은 공을 세운 자에게 인색하지 않습니다.”
대륙 최고 성세를 자랑하는 빛의 신, 아룬의 사제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만큼 재정이 풍족하다보니 어떻게든 챙겨줄 수 있다는 소리지.
마탑과의 인연이 귀한 것처럼 신전과의 인연 역시 귀했다.
가능하면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미 퀘스트가 뜬 뒤라 방법이 없기도 하지만.
“의뢰를 받아들이겠소.”
“감사합니다. 당신의 도움으로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질 것입니다.”
세상이 밝아지는 만큼 내 인생도 밝아질 수가 있을까. 델피노는 환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으나 아이반은 마주 웃지 못했다.
“우선 이곳부터 자세히 찾아봐야겠습니다.”
델피노가 먼저 조사해야할 곳으로 짚은 곳은 도시 외곽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어느 빈민가였다. 그가 그동안 모아온 정보, 아이반이 산적을 털면서 얻었던 정보가 겹치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흑마법사들은 이곳에서 마약을 유통 중이었다.
그것이 단순히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빈민가에 도착하자마자 썩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풍겼다. 단순히 코로 느껴지는 것보다 어둡고 패배감 가득한 절망의 냄새가 더욱 강렬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불안한 집, 길거리에 대충 앉아있는 우울한 눈동자의 사람들. 빈민가에는 특유의 분위기란 것이 있었지만 이곳은 그 정도가 심했다. 떠오르는 태양을 닮아야할 아이들의 눈빛조차 지고 있는 석양 같았다. ‘며칠을 돌아다녀도 영 이상한 곳이군. 느낌이 아주 묘해.’ 의문을 삼키고 아이반은 코너를 돌았다. 안쪽에는 선객이 있었다. 반쯤 약에 취한 눈으로 뻐끔뻐끔 무언가를 피워대고 있는 건달, 양아치, 혹은 강도.
아이반이 흠칫 놀라는 척을 하며 뒷걸음질을 치자 녀석들이 히죽 웃으면서 길을 막았다. 빈민가 뒷골목에 나타난 낯선 사람.
강도질을 하기에 딱 좋은 대상이 아닌가.
“흐흐, 거기 친구. 우리가 지금 술이 좀 고파서 그런데 네 돈으로 좀 마시면 안 될 .”
앞쪽에 셋, 뒤쪽에 둘. 그 외에 따로 보고 있는 사람은 없음.
주변의 기척을 확인한 아이반이 허리를 폈다.
으드득 기묘한 소리와 함께 왜소해졌던 아이반의 덩치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암살자의 변장술은 다 좋았지만 온몸이 뻐근한 것이 별로였다. 격한 움직임을 할 수도 없고.
‘그래도 다 배워두니 쓸데가 있군.’ 옛날에 뒤통수를 쳤던 녀석을 죽여 버리려고 익혔다가 한참을 잊고 있던 기술이었다. 그걸 이렇게나마 사용하니 다행이다.
“어, 어?”
눈앞에서 사람이 바뀌는 모습을 본 강도들이 입을 쩍 벌렸다. 분명 덩치가 작은 녀석이었는데 어느새 어깨가 떡 벌어진 전사가 내려다보고 있다니. 녀석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아이반이 주먹을 휘둘렀다. 안타깝게도 아이반에게 무투가로서의 소양은 별로 없었지만 그게 그의 주먹이 아프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윽!”
털썩 미처 반항할 틈도 없이 강도들이 쓰러진다.
그저 조금 더 지독한 양아치에 불과한 놈들이었다. 아이반이 맨손이라고 한들 그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쓰러진 강도들을 한쪽 구석에 몰아넣고 한 놈을 붙잡아 일으켰다.
녀석은 아파서 끙끙거리고 있었으나 아이반이 뺨을 후려치니 벌떡 일어났다.
물리치료가 잘 통한 모양이다.
그때쯤 멀리 떨어져서 몸을 숨기고 지켜보던 델피노가 다가왔다.
“어떻습니까?”
“약을 빨던 녀석들은 맞소. 약을 팔던 녀석들인지는 이제 알아봐야지.”
이놈들을 찾으려고 아이반이 며칠이나 빈민가를 돌아다녔다. 괜히 덩치 큰 노르드 전사가 돌아다니면 위화감만 주고 아무것도 알 수가 없으니 안 쓰던 암살자의 변장술까지 사용하면서.약에 취한 약쟁이들은 쉽게 찾을 수가 있었으나 약을 파는 녀석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며칠을 두고 돌아다닌 끝에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인상착의는 맞는 것 같은데 .”
아이반이 빤히 바라보자 녀석이 움찔 몸을 떨었다. 놈의 머릿속에는 온통 엿 됐다는 생각뿐이었다.
‘으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아이반은 미간을 찌푸리며 마력을 움직였다.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아주 어색하게.
느릿느릿하게 마력을 움직이면서 그는 주문을 외웠고, 곧 아이반이 뿜어낸 마력이 주변을 감싸 안았다. 기초 마법서를 읽고 나름의 마력을 다루던 경험까지 조합하여 어설프게나마 마법을 발동한 것이다. 물론 마법사가 그걸 봤다면 어이가 없어서 쌍욕을 뱉었을 거다.
그게 마법이냐며 고함을 질렀겠지.
‘이걸 마법으로 만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박아서 기막을 쳤다고 해야 하나.’ 발동속도도 더럽게 느리고 들어가는 마력도 지나치게 많아서 효율이 개똥이었으나 어쨌든 어설프게나마 성공했다.
그게 어딘가.
아이반이 마법을 익히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제 이곳의 소리는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로메오 패거리, 맞나?”
“아, 아닙니다.”
순순히 맞다 자백했으면 실망할 뻔 했다.
그랬으면 오히려 의심했을 테니까. 화르륵! 아이반은 손가락에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리고 무기점에서 서비스로 챙겨온 단검을 달구기 시작했다.
적당히 열이 올라 단검의 날 색깔이 변하자 아이반은 그것을 녀석의 팔뚝에 대고 눌렀다. 치이익!
“으, 으악!”
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바닥을 굴렀다. 고통에 눈물콧물을 흘리며 날뛰려는 것을 아이반이 발로 밟아 제압했다.
“나는 묻고, 너는 답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네가 거짓말하면 불주사가 한방 더 나갈 거고, 내가 알고 있는 것만 말한다면 앞으로 네가 손으로 음식을 먹을 일은 없게 될 거다.”
아이반이 담담하게 그리 말하자 녀석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아, 알겠습니다! 모두 말하겠습니다!”
치이익!
“으악! 왜! 말한다고 했는데!”
“시끄러워. 귀가 아프다.”
아이반이 사이코패스처럼 그렇게 한 놈을 조져놓고 있으니 다른 녀석들의 눈빛에 공포가 가득 어렸다.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되었군.”
한 놈이 지쳐서 실신하면 다른 놈을 끌고 와서 조진다. 그걸 반복하면서 아이반은 최대한 심문을 했고, 녀석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