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32
“이런 잡것들이야 그냥 이용당한 것일 테고, 흑마법사들은 이미 이쪽에서 손 털고 나간 것 같소.”
“원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추적을 피하기 위해 옮겨 다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델피노는 태연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강도들을 치료했다.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 녀석들이 죽지 않도록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아이반이 했던 고문에 대해서는 별말하지 않았다. 악마숭배자들을 쫓는 구마사제로서 이것보다 훨씬 지독한 것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건 악마숭배자들이 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당하는 것까지 포함된 말이었다.
당장 세계 최고의 고문전문가는 성황청의 이단심문관들이었고.
이 세계에서 고문은 그리 놀라운 행위가 아니었다.
인권이라는 개념자체가 거의 없는 곳이었으니. 툭! 아이반은 쓰러진 녀석들을 발로 차면서 밧줄로 한데 묶었다. 이들을 경비대에 넘길 생각이었다. 아이반에게 강도짓을 시도하고도 사지가 멀쩡하니 운이 좋은 녀석들이다.
경비대쪽에서 또 무언가 처벌을 받겠지만 죽지는 않으리라.
“수확이 많지는 않군요.”
“몇 군데 더 털어보면 그림이 그려지겠지.”
“일단 의심 가는 곳부터 차근차근 뭐하십니까?”
무심코 쓰러진 녀석들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돈을 챙기던 아이반이 아차 싶었다. 역시 사제 앞에서 할 만한 짓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이들이 이대로 경비대에 넘겨지면 육신의 죄는 처벌받을지언정 영혼의 죄는 어쩌지 못하오. 이들의 금전이 신을 위해 쓰인다면 어리석은 영혼이 신께 조금이나마 용서받겠지.”
그 말에 델피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입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한 일이로군요.”
신을 향해 짧게 기도를 올린 델피노는 아이반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사이좋게 녀석들의 주머니를 털었다.아이반과 델피노는 악마숭배자의 손길이 닿았다고 의심이 되는 곳을 몇 군데 더 돌아다녔다. 그렇게 정보를 조금씩 모았으나 워낙 파편화 되어 있어서 딱히 이렇다고 할 만한 단서가 없었다. 핵심이 모두 빠져서 겉만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가 진짜인지 모르겠군.”
아이반은 방금 전 확보한 약을 뒤적거렸다. 역시나 진하게 풍기는 독초의 향기.
악마숭배자들은 정말로 돈을 위해서 약을 팔았나? 이건 단순한 마약인가?
“이건 아무래도 마탑으로 보내서 성분 분석이라도 해봐야하는 게 아닐까 싶은 .”
말을 하던 아이반이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델피노가 그대로 약을 한 움큼 쥐더니 불을 붙인 후 연기를 크게 빨아들인 것이다. 미처 제지할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라 아이반은 그저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지 이건? 구마사제라더니 악마가 들리기라도 했나? 뭔 미친 짓이지?’ 웬만큼 맛이 간 약쟁이들도 하지 않을 양을 단번에 들이마신 델피노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변했다.
곧 눈을 뒤집어 까고 몸을 잘게 떨었다.
“씨부럴, 사제가 아니라 약쟁이였네. 드루이드도 아니면서 약을 빨아?”
우웅- 아이반이 욕을 내뱉으면서 손을 쓰려던 그때, 델피노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의 신 아룬의 신성력이 그의 몸을 감싸더니 이내 정신을 되찾았다.
방금 전까지 약에 취해 눈이 풀려있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델피노의 눈빛이 차분하게 되돌아왔다.
“환각성분이 상당히 강하네요. 중독성도 심하고. 이전의 녀석들이 가지고 있던 것보다 순도가 높은 것을 보니 이쪽이 핵심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말을 늘어놓는 델피노를 보면서 아이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괜찮소?”
“이 녀석들을 조금만 더 털어보면 네?”
“아니, 방금 그건 좀 위험해보였는데.”
그 약이 대체 무엇일줄 알고 그리 흡입한단 말인가.
신성력을 끌어올려 정화하기 전에 치명적으로 작용해서 뇌를 파괴하거나 생명을 앗아가면 어떻게 하려고. 아이반의 그런 우려 섞인 눈빛에 델피노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런 마약에 관해서라면 제법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아무리 잘 알아도 그건 .”
“괜찮습니다. 저는 구마사제니까요.”
델피노는 구마사제, 그러니까 악마를 쫓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제였다. 그가 상대해야하는 대상은 온 세상의 사악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마귀들이었고, 그들을 따르는 악마의 추종자들이었다. 일반인들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아주 사악하고 비참하고 잔인하며 역겨운 일들을 일상처럼 보아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을 쫓는 의지가 꺾이지 않아야했다. 약물, 고문, 협박, 그 어떤 방법이라도.
“우리가 그들을 쫓듯 그들 역시 우리를 쫓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제들이 악마의 추종자에게 납치당하죠. 그들은 고문과 협박, 약물과 세뇌 등으로 우리의 정신을 파괴하고 타락시키려합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구마사제들은 그것에 대비한 훈련을 받습니다. 그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찬란하신 빛의 주, 아룬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델피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에서 아이반은 짙은 신념의 향기를 맡았다. 그 어느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을 위대한 정신을 느꼈다. 동시에 깊은 의문이 피어올랐다. 과연 그럴 수가 있는가? 사람이 어찌 그리할 수가 있는가? 아이반은 그에게 물었다.
“무엇이 당신을 그리 만들었소?”
그 말에 델피노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모든 것은 찬란하신 빛의 주, 그분을 위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사제로서 옳은 일이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기에 하는 것이죠. 그저 저는 제게 주어진 일을 피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는 가끔 후회하거나 한탄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 세상의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절망스럽고 잔인한 장면을 볼 때, 남몰래 아룬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며 고백했다.
“민망한 일입니다. 아직 제 믿음이 단단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죠.”
그렇게 허허 웃으면서 말하는 델피노에게 아이반은 무척이나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털어놓았지만 그 인간적인 모습이 오히려 그의 삶을 숭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단하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신앙을 위해 자신의 삶 전부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지옥불로 던질 수가 있는 자라니, 그리고 그것을 그저 자신이 맡은 일이어서 그랬을 뿐이라 말하는 자라니. 실로 경탄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는 아이반이라 그 대단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어쨌든 이쪽이 진짜인 것 같으니 조금 더 깊이 파보도록 하죠.”
“알겠소. 그래도 그동안 돌아다닌 것이 의미가 없지는 않았 .”
말을 하던 아이반이 온몸의 긴장감을 단번에 올리고 허리를 폈다.
아이반의 표정이 순식간에 심각해진 것을 본 델피노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여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소.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군.”
악마숭배자인가? 흑마법사? 여기저기 쑤셔댔더니 무슨 일인가 확인하려고 했나? 아이반은 여전히 등을 돌린 상태였다. 시선이 날아오는 쪽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아이반이 눈치 챘다는 것을 녀석 또한 알아차릴 테니까. 숲이나 산, 한적한 개활지가 아니었다.
한 블록만 지나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로가 있었다. 잘못하면 놓치기 십상이다.
“어느 쪽입니까?”
델피노가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혹시나 저쪽에서 입술을 보고 대화를 읽어낼까 싶어서였다.
“뒤쪽. 거리가 가깝지는 않소.”
“추적이 가능하겠습니까?”
“노력은 해봐야지.”
가장 빠르게 다가가려면 천둥걸음이 제격이지만 그건 너무 시끄럽고 화려했다.
정면으로 때려 부수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런 일에 쓰기는 어렵지.
‘암살자 스킬은 숙련도가 그리 높지 않은데 .’ 이상하게 델피노랑 같이 행동하면서 암살자 스킬을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사적이라 그런가? 같이 주머니를 뒤질 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어.
아이반은 잡념을 지우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척을 지우고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은신], [암습] 대단한 스킬은 아니었다.암살자의 기본 중의 기본.
그저 겉만 핥은 수준.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 기술의 수준을 높여서 아주 형편없지는 않았다. 델피노는 이상하게 그쪽에 시선이 가지 않음을 깨달았다.
보고 있음에도 기척이 흐릿하다.
아주 미약한 차이지만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재주가 참 많으시군요.”
“어쩌다보니. 잠깐만 시선을 끌어주시오. 금방 다녀올 테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델피노는 벌떡 일어나 쓰러져있던 놈들을 발로 후려 찼다.
“이 망할 녀석들! 신께서 보고 계신데 어찌 이런 사악한 짓을 하느냐? 남들의 인생을 망치고 어찌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살 수가 있으며, 아룬께서 뿜어내는 빛을 맞으며 살 수 있단 말이냐! 자고로 성휘경전에 이르기를 따뜻한 태양 아래 따뜻한 마음을 갖추어야만 .”
델피노가 아룬교단의 경전을 강독하는 사이 아이반은 슬쩍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시선에서 벗어났다.
“으이? 나 때는 말이야! 아무리 삶이 어려워도 떳떳하게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어, 근성이! 어이구! 눈 돌아간다! 이게 다 너희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이런 건 돈 주고 들어야해, 돈 주고!”
델피노가 그렇게 시선을 끌고 있었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녀석이 이상함을 느끼기 전에 파고들어야했다. 휘릭! 골목 사이로 몸을 띄운 아이반이 그대로 벽을 타고 올라갔다.
결코 지붕 위로는 가지 않았다. 녀석의 시야에 잡힐 수가 있으니. 타다닥! 빨랫줄과 난간을 밟으며 달린다. 건물 사이의 틈이 좁고 외벽이 매끈하지 않아서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전사의 날카로운 감각이 주변의 공간을 파악하고, 레인저의 경험이 최단거리로 이어지는 길을 찾는다. 암살자의 몸놀림이 발자국 소리를 줄이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달리니 녀석의 근처까지 도달할 수가 있었다. ‘어느 허름한 건물의 옥상.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녀석 하나.
주변에 다른 녀석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음.’ 짧게 주변을 파악하는 사이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피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쯤 이미 아이반은 녀석이 있는 옥상에 올라온 상태였다.
“아니 !”
녀석이 당황하는 것과는 별개로 마력장벽이 피어올랐다. 무의식적으로 방어막을 만들어낼 정도니 아주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란 소리였다. 잘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