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33
그렇다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겠지.
파삭! 유리가 깨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녀석이 만들어낸 방어막이 꿰뚫렸다.
아이반의창이 녀석의 몸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푸슉! 놈의 배에 창을 박아 넣었으나 아이반은 오히려 표정을 굳혔다. 손맛이 영 이상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이럴 리가 없는데. 아이반이 창을 뽑아내니 시커멓게 썩은 피가 흘러나왔다.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풍긴다. 언데드. 인형.
가짜. 아이반의 머릿속으로 그런 단어가 스치는 순간, 언데드의 육신이 부풀어 올랐다. 흑마력이 불안정하게 떨리고 덩치를 키웠다. ‘자폭!’ 그 순간 느껴지는 희미한 마력의 흐름을 향해 아이반은 창을 집어던졌고, 순식간에 폭발에 휘말려 나가떨어졌다.
쾅! 우르르 낡은 건물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다.
떨어져 내리는 나무토막과 부서진 벽돌, 기둥.
무너지는 건물 잔해를 쳐내면서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온 아이반이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씨부럴, 여기서 미끼를 써?”
폭발의 충격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피부가 찢어져 엉망이었다. 그 와중에 언데드가 폭발하면서 뿌려놓은 시독이 몸을 파고들려고 하다 아이반의 내성에 막히고, 썩은 피를 매개로 한 저주가 그의 몸을 맴돌았다.
스스슥! 아이반이 인벤토리에서 생명의 구슬을 꺼내 손에 쥐자 죽음을 기반으로 한 저주가 밀려나 사라진다.
아이반의 피부에 생긴 찰과상이 아물고 활력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아이반은 피와 흙먼지로 더럽혀졌지만 피해는 없었다. 다만 기분이 더러울 뿐이다. 스윽 아이반이 손을 뻗으니 멀리 날아갔던 창이 되돌아왔다. 그 날 끝에 묻어있는 선홍색 피. 언데드의 썩은 피와는 달리 살아있는 인간의 것이었다.
“쯧, 죽이지는 못한 것 같은데 .”
지금이라도 쫓으면 잡을 수가 있을까? 힘들겠지?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소란이 벌어지자 사람들이 놀라서 뛰어나왔다. 주변이 그렇게 아수라장으로 변하자 아이반의 날카로운 감각으로도 더 이상은 적을 감지할 수가 없었다.
“아이반! 괜찮으십니까?”
뒤늦게 달려온 델피노가 아이반의 몸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상처를 치료하려는 의도였으나 이미 생명의 구슬로 회복된 상태였기에 아이반은 그를 말렸다.
“잡은 줄 알았는데 사역마였소. 언데드를 인형으로 사용해서 지켜보는 것이더군. 미끼였어.”
신중한 놈이었다.
그렇게 함정을 파다니. 괜히 이쪽의 정보만 넘겨주고 얻은 것이 없었다. 그때 아이반의 창끝을 빤히 바라보던 델피노가 물었다.
“이 피는 녀석의 피입니까?”
“반쯤은. 죽이는 데는 실패했소. 아마 팔뚝이나 약간 스친 모양이더군.”
아이반이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말을 꺼냈으나 델피노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수확이 없는 것도 아니군요. 훌륭한 단서를 얻었습니다.”
아이반의 창날에 묻은 피를 헝겊으로 닦아 유리병 안에 넣어 봉인한 델피노가 그걸 흔들며 말했다.
“이거면 충분하죠. 저희가 어떻게 그들을 추적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델피노가 아이반을 데리고 간 곳은 근처에 있는 작은 신전이었다. 아룬 교단의 명성에 비하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히려 아이반은 놀랍기만 했다.
“이런 곳에도 신전이 있었소?”
“많은 분들이 노력한 결과죠.”
“고생 꽤나 했겠군.”
대륙 북쪽은 노르드인들을 포함해 크고 작은 민족으로 흩어져 각자의 신을 모시고 있었다. 이곳은 그런 대륙 북부와 가까워서 다른 여타 메이저급 교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신앙의 불모지나 다름없었고. 그런 곳에서 중소도시까지 작게나마 신전을 박아 넣었으니 대단한 일이었다.
과연 대륙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는 아룬 교단다웠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델피노는 일반적인 신도들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출입하는 본당을 넘어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지나가다 사제를 마주할 때가 있었으나 그들은 크게 눈동자를 뜨더니 아무런 말없이 목례를 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간혹 델피노와 아이반에게 격려와 축복의 말을 하는 사제들은 있었으나 낯선 이가 이곳까지 들어온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따로 연락을 하고 찾아온 것도 아닐 텐데.
아이반이 그것을 궁금하게 여기니 델피노가 웃으며 설명했다.
“이것 때문입니다.”
“목걸이?”
“신성력을 감추는 봉성의 목걸이는 구마사제가 임무를 수행중이라는 뜻이죠. 악마와 싸우고 있으니 우리를 응원하는 것입니다.”
구마사제가 봉성의 목걸이를 하고 나타났을 때는 임무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라 했다.
워낙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교단차원에서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구마사제에게 임무중 주어지는 경비는 꽤 풍족한 편이었다.
따로 신전에 요청하지 않고도 아이반의 비싼 몸값을 감당할 만큼.
물론 델피노는 최근 다른 방법으로도 주머니가 풍족해지는 법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신전에서 경비를 조금 덜 받아도 되겠지.
드르륵! 사제들이 방해 없이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지하 기도실을 빌린 델피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얼마 전 흑마법사의 피를 닦은 천이 들어있는 유리병이다.
“정말 그것으로 놈들을 찾을 수 있겠소?”
아이반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적어도 그가 알고 있는 사제 스킬 중에서는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반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게임이던 시절부터 존재하던 일부에 불과했지만. 델피노는 걱정 말라면서 허허 웃었다.
“저희들이 놈들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때로는 녀석들이 사용하던 사악한 힘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있었죠. 그 힘을 이용하는 것 역시 가장 가까이에서 악마와 싸우고 있는 구마사제에게만 특별히 허용된 일이기도 합니다.”
델피노는 분필을 꺼내 바닥에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척 보기에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도형을 자도 없이 그리는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반듯했다.
“악마의 상징을 그리고 그 힘을 찬란한 빛의 주의 이름으로 억눌러 적을 추적하는 것입니다. 녀석들의 흑마법을 살짝 이용하는 것이죠.”
사방에 양초 네 개를 켜서 밝힌 델피노가 다시 한 번 차분히 마법진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군요.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유리병에서 피 묻은 헝겊을 꺼내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요사스러운 악마의 이름과 찬란한 빛의 신의 이름이 들어간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우웅-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따라 공기가 흔들린다.
순식간에 이질적인 기운이 마법진 안에 차올랐다.
화르륵! 피 묻은 헝겊에서 검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델피노의 두 눈에서 푸른 안광이 흘러나왔다. 화아아- 델피노의 머리 위, 지하임에도 어디선가 뿜어진 환한 빛이 검붉은 불꽃을 억눌렀다. 그때 델피노가 미리 준비해뒀던 나침반을 들어올렸다. 츠즈즉! 검붉은 불꽃이 나침반 안에 스며들고, 아룬의 빛이 그것을 감싸자 마침내 이질적인 기운들이 사라졌다.
델피노의 눈에서 흘러나오던 푸른 안광마저 흩어지고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되었다.
“끝났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델피노의 안색이 파리했다.
옆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대단한 것 같지 않아도 상당히 심력을 소모한 모양이었다.
“괜찮소?”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는 그렇게 손을 내젓다가 나침반을 가리켰다.
“이제 이것으로 녀석들을 추적하면 됩니다.”
“이것으로? 어떻게?”
“이것이 녀석의 피와 악마의 마력과 공명하여 위치를 알려줄 것입니다. 유지시간은 겨우 며칠밖에 안되지만 꽤 강력한 단서를 얻은 셈이죠.”
그 나침반처럼 생긴 악마추적기가 아이반은 영 의심스러웠지만 델피노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꽤 성능이 괜찮은 듯했다. ‘뭐, 전문가가 하는 말이니 믿을만하겠지.’ 악마추적기의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더니 곧 멈춰서 한쪽을 가리켰다. 그쪽 방향이 녀석들이 있는 장소인 모양이다.
그걸 보니 기력이 돌아온 것인지 델피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힘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야겠습니다.”
아이반과 델피노는 빠르게 움직였다. 신전에서 꽤 덩치가 좋은 말을 빌려 밤낮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틀쯤 달리기 시작하니 녀석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북부 경계에 있는 마을이로군. 그동안 멀리도 도망쳤어.”
아이반이 마을의 위치를 떠올리고 있을 때, 델피노는 다른 것에 집중했다.
“좋지 않습니다.”
“무엇이 말이오?”
“평범한 마을이 아닙니다. 이곳 영주의 별장이 있는 곳이죠. 영주의 영향력이 아주 강한 장소에 흑마법사가 숨어있다는 것은 .”
“영주가 한통속일지도 모른다는 소리군.”
아이반에게는 전혀 놀랍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전부터 짐작하고 있던 일이니. 어차피 어느 영주가 손을 잡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나.
차라리 이렇게 밝혀지면 마음이 편했다.
“어떻게 하시겠소?”
그 질문에 델피노는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에 적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데 둘만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이미 본단에 연락을 했으니 추가 병력이 올 때까지 감시를 하면서 기다려보죠.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 노숙할 준비를 해야겠군. 마을을 쉽게 살필 수 있으면서 이쪽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