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37
아이반이 그렇게 말을 받자 델피노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것이 실례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디 곡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말해보시오.”
델피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신은 무너질 겁니다. 그릇이 깨져서 목숨을 잃게 되겠죠.”
그 말에 아이반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찻잔 대신 인벤토리에서 술병을 꺼내들었다.
“차보다는 술이 필요한 이야기로군.”
아이반이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내려놓았다. 그가 내밀자 델피노 역시 한 모금 크게 마시고는 입을 닦았다.
“계속 말을 해주시오.”
“신들의 사랑은 때로 우리 같은 필멸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기도 합니다. 가지고 있는 그릇 이상의 힘을 받으면 결국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죠. 이미 당신도 느끼고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아이반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최근 들어서 크게 느끼고 있는 일이었다.신성력은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에게 빌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노력보다 초월자의 의지가 더욱 중요했다.
막말로 신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면 신성력이 강한 것이고, 신들이 관심이 없다면 신성력이 약했다. 문제는 아이반이 과한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이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인은 그도 알고 있었다. ‘스킬 포인트의 부작용이야.’ 스킬 포인트는 아주 간단하게 힘을 주었다. 언어학을 배우면 온갖 언어에 능통하게 되고, 검술을 배우면 세세한 움직임과 원리까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게 신성력까지 작용되니 이런 일이 생긴 거다.
신성력 스킬은 신들의 관심을 강제로 끌어왔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 갑자기 아이반에게 호감이 생긴 것이다. 아이반의 수준이 높지 않았으니 아주 미약한 정도겠지만 신격이 그것을 깨닫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무엇이 나의 관심을 가져가는가, 무엇이 호감을 만들었는가, 내가 은총을 내리지 않은 자가 어떻게 나의 힘을 사용하는가.
그때부터 아이반은 자신이 찍은 스킬 이상의 신성력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정말로 신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지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그에게 깊은 관심이.
천상의 신들이 몇이나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아이반은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신들의 존재감은 너무나 선명해서 모른척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신들을 혐오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아이반이 수많은 기술들을 익혔으면서도 막상 정말로 힘이 필요한 순간이 되면 신을 찾는 것은 그런 공포에서 오는 의존성 때문일 것이다. 아이반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다가 술병을 털어 비웠다.
“고맙소. 앞으로는 조심해야겠군.”
휙휙! 신전을 떠난 아이반은 걸음을 옮기면서도 검을 휘두르기를 계속했다.
전투 때마다 아스가르드의 신에게 의존하는 것을 고치려는 의도였다. 입으로는 그렇게 싫다 소리를 치면서도 정작 그들의 힘을 밀어내지 못했다. 그게 쉬운 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된 일이었다.
신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면 진작 이랬어야 했다.
치지직! 그런 아이반의 다짐이 토르는 못마땅한 듯했지만 다른 신들은 딱히 말리지 않았다. 이것 또한 나름의 재미라고 여긴 것이겠지.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에 더 끌린다니, ‘나를 때린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를 외치는 드라마 속의 재벌도 아니고. 하여간 취향이 음흉한 놈들이었다. 아이반이 그렇게 검을 휘두르며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산길 한가운데 누군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길이라고는 이것 하나뿐이고, 심지어 인적도 드문 곳이라 아이반은 무척이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사람이군.
돌아갈까?’ 의심스러운 상황은 일단 피하는 것이 옳았다. 괜히 호기심을 드러내다가 위험해지는 것은 사양이니.
그렇게 아이반이 슬쩍 길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려는데 저 멀리 앉아있던 남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아이반은 신경 쓰지 않고 자리를 피하려했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가 크게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묻겠다! 그대가 감히 에시르손이라 자칭한 자인가!”
아이반 에시르손.
그의 이름.
아니, 이제는 그의 것이 되어버린 이름.
아이반이 피하려던 걸음을 멈추고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렇소.”
그 대답과 함께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슬갑옷에 철제 투구, 등에는 둥근 방패가 걸려있고 허리춤에는 검과 도끼가 달랑달랑.
남자의 팔뚝은 근육이 가득해 무척이나 굵었고, 허벅지는 그것보다 더욱 굵었다. 누가 보더라도 전사의 모습.
아이반은 크게 경계심을 높였다. ‘먼저 도끼를 날려야하나? 아니면 창을 던질까? 거리를 벌려서 화살을 쏘는 게 나으려나?’ 순간적으로 그런 고민을 했으나 차마 먼저 공격을 하지 못했다. 거친 기색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표정이 무척이나 오묘했기 때문이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면서 기쁜 듯했고, 즐거운 것 같기도 하면서 묘하게 실망스러운 얼굴이었다. 어쨌거나 살의는 없었고, 먼저 공격하고자하는 기색 역시 없었기에 아이반은 검을 휘두르고 싶은 욕망을 참아냈다.
“자신이 에시르손이라고 주장하는 자여!”
“아이반 에시르손.”
“주장하는 자여!”
“그래, 무슨 일이오?”
그는 아이반을 위아래로 몇 번이나 훑어보더니 소리쳤다.
“그대가 에시르손이라 자칭할 자격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아이반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쉬익!검을 휘둘렀다. 가장 짧고 간결한 방법으로.
별다른 꾸밈이 없었기에 더욱 빠르게 느껴졌을 그 검을, 놀랍게도 상대는 허리를 비트는 것으로 쉽게 피해냈다.
그가 만만치 않은 전사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지금의 움직임을 보면 예상보다 더한 실력자인 듯했다. 쿵! 아이반이 강하게 앞발을 딛으면서 나아갔다.
검을 위에서 아래로 재차 휘둘렀다. 그 섬광 같은 공격을 상대가 무기를 뽑아 받아냈다.
쾅! 검과 검이 부딪히고 강한 반동이 되돌아왔다. 아이반은 자신의 힘만큼이나, 어쩌면 그것보다 더욱 상대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르륵 남자가 미묘하게 검을 비트는 동작에서 노련한 전사임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육신이 강한 자가 아니라 전사로서의 역량 역시 뛰어난 자였다. 챙! 투두둑! 다시 한 번 강하게 검을 휘둘러 부딪친 후에 뒤로 몸을 날리며 도끼를 집어던졌다. 상대가 그것을 쳐내는 사이 아이반은 멀찍이 물러나 숲으로 들어갔다.
“잠깐! 멈추어라!”
남자가 그리 외쳤으나 아이반은 코웃음을 쳤다.
적이 멈추라고 진짜로 멈추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피우웅! 아이반은 화살을 날리면서 계속 거리를 벌렸다. 나무 위에 올라가 이리저리 가지를 옮겨 다니면서 활을 쏘고 있으니 남자가 쉽게 달라붙지 못했다. ‘설마 혼자인가? 정말로 주변에 더 없나?’ 아이반은 활로 남자를 견제하면서 날카로운 감각으로 주변을 훑었다. 이쯤 난리를 부리고 있으면 적이 더 튀어나올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 것이 퍽 이상했다.
그때 남자가 분통이 터진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익! 나는 그대와 대화를 하고자 하였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그게 대화를 하려고 다가오는 사람의 기세였다고? 개소리가 창조적이군. 아이반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언뜻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라기에는 꽤나 소극적인 대응이었기 때문이다.
스윽 아이반은 여전히 활시위를 당긴 상태로 물었다.
“대화? 무슨 대화를 하고자 하시오? 그냥 시비를 걸면서 한 판 붙자는 뜻이 아니었나?”
그러자 남자가 이를 갈면서 소리쳤다.
“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자여! 역시 그대같이 배포가 없는 자가 에시르손일 리가 없다!”
쉬이익! 쿵! 그가 강하게 손도끼를 던지자 나무 하나가 통째로 꺾여서 쓰러졌다.
아이반은 다른 나무로 건너가지 않고 그곳에서 훌쩍 뛰어내려 남자의 앞에 섰다.
다른 적이 없다면 굳이 거리를 벌리면서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상대는 강하고 노련한 전사였으나 자신이 질 것 같지는 않았다. 활을 집어넣고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낸 아이반이 상대를 바라보았다.
“내가 나를 에시르손이라고 하는데, 당신이 왜 시비요?”
“왜라니! 그대는 정녕 에시르손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모른단 말인가! 그러면서 감히 에시르손이라 자칭했단 말인가!”
아, 씨부럴.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달고 싶어서 달고 다니는 이름도 아닌데. 아이반은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달려들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고 싶어 하니 일단 때려눕히고 이야기를 나눠볼 작정이었다. 휘이익!
“큭!”
상대가 신음을 흘리며 밀려났다. 아까와는 달랐다. 그냥 평범한 무기점에서 구입한 철검을 들었을 때와 성장형 유니크 장비를 들었을 때는 아이반의 움직임부터가 달라졌다.
치직, 치지직! 쾅! 천둥걸음, 이어서 하늘 찌르기. 남자가 방패로 막았으나 표정을 찡그렸다.
충격이 상당했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도 대부분의 힘을 흘려버리고 칼을 휘둘러 반격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노련했다.
스으윽 상대가 휘두른 칼을 아이반이 창대로 막았다. 웬만한 강철 이상으로 튼튼한 창대에 흠집이 새겨지는 모습이 가슴이 아팠다. ‘가만두지 않겠 .’ 속으로 이를 갈던 아이반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남자의 검에서 번쩍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짜릿한 번개가 창을 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참으로 익숙한 힘이었다.
그가 자주 사용하던 천둥신 토르의 번개였으니까. 팟! 아이반이 그를 휙 밀어내며 창을 털었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번개가 파바박 바닥을 때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라 손이 저릿저릿했다. 항상 적을 태우던 토르의 번개가 자신을 향하니 꽤나 위협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천둥신의 힘이다! 그런 가짜 번개 따위로 감히 에시르손을 자칭하다니! 가만두지 않겠 .”
어딘가 자랑스러운 기색으로 말을 늘어놓던 상대가 입을 딱 벌렸다. 아이반의 몸에서 더욱 강한 번개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천둥걸음이 내뿜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천둥신 토르의 힘을 토르의 전사가 알아보지 못 할리가 없었다.
” 망할 것.”
아이반은 아이반 나름대로 기분이 나빴다. 신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또 힘을 끌어다 쓰게 될 줄이야. 신의 힘을 멀리하겠다고 다짐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담배랑 다를 바가 없었다. 몸에 해롭다고 생각하면서, 끊어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결국은 손이 가는 것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