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40
재빨리 근처 나무로 올라가니 오크들이 뭐라고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황금멧돼지를 거의 잡았다가 놓친 모양이었다. 지금 다른 조에서 추적중이라는 말도 있고.
그러나 아이반은 그 내용보다도 말 그 자체에 집중했다.
아이반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북동부식 오크 방언.
이쪽 녀석들이 아니야.’ 아이반은 무심코 동쪽을 바라보았다. 결국 동부 전선이 무너졌다.약속했던 동굴에서 피알라르가 육포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싸구려 육포가 그의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표정이 영 떨떠름했다. 그의 표정은 아이반을 보고서 더욱 굳어졌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피알라르가 씹고 있던 육포를 퉤, 하고 뱉고는 물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주변은 살펴봤소?”
“살펴봤는데, 상황이 그리 좋지 않소.”
“황금 돼지와 초록 돼지가 동시에 돌아다니는데 좋을 리가 없지. 정보가 있소?”
아이반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짧은 검을 꺼내들면서 말했다.
“일단 황금멧돼지는 잡히지 않았소. 하지만 오크 놈들이 그걸 추적하고 있는 중이지.”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이 지역 오크 놈들이 아니오. 동북부에서 내려온 놈들이더군. 동부전선에서 녀석들을 막아내는데 실패했소.”
동부 전선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든, 이미 무너졌든 상황이 더럽게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피알라르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황금멧돼지고 나발이고 온통 전쟁터가 되게 생겼군. 여기에 나타난 놈들의 수가 많소?”
“확인한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꽤나 많겠지. 그러니 놈들이 여유롭게 황금멧돼지나 사냥하고 있는 게 아니겠소?”
아이반은 피알라르를 재촉했다.
“빨리 움직여야하오. 괜히 녀석들에게 들켜서 공격을 받으면 그저 귀찮은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젠장, 재수도 더럽게 없군.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오지 않는 건데.”
그들은 황금멧돼지를 포기하고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어서 빨리 도시에 알려야 했다.
오크들의 동선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이나 이동하는 와중에 문득 거친 짐승의 숨소리가 들렸다. 쉬익, 쉬익! 저 멀리 숨을 몰아쉬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웬만한 황소보다도 덩치가 커다랗고 털빛이 황금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이 찾아다니던 황금멧돼지가 분명했다.
” 저 녀석이 당신이 말하던 그 녀석이오? 확실히 대단해 보이는군. 저 녀석의 가죽으로 방어구를 만들면 아주 훌륭하겠어.”
훌륭한 재료를 만난 피알라르의 눈이 몽롱해졌다. 그는 수많은 재료를 다루어봤지만 황금멧돼지는 결단코 처음이었다. 장인에게 처음 만나는 재료만큼 설레는 것이 있을까?
“욕심을 비우니까 녀석이 나타났군. 세상일이란 것이 모두 이런 식이라니까.”
“오크를 피해서 움직이다보니 저 녀석과 동선이 겹쳤나보오. 오크들이 녀석을 우리 쪽으로 몰아준 꼴이 되어버렸어.”
“어찌하시겠소? 저 녀석을 잡을 거요? 잔뜩 지쳐 보이는 게 지금이 기회 같은데.”
그 물음에 아이반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지?’ 오크들이 저 녀석을 쫓고 있으니 이대로 시간을 끌면 결국 마주치고 말 거다.
저 녀석을 사냥한다고 소란을 벌이면 오크들이 더욱 빨리 오겠지.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약간의 여유가 있기는 했다.
저 녀석이 쉬고 있다는 뜻은 오크들과 꽤 거리를 벌렸다는 뜻이니까.
녀석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반짝이며 움직이는 황금색 털가죽. 그것을 보고 있으니 아이반의 눈동자에 욕심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스윽 결국 아이반이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내들었다.
“빠르게 녀석을 처리하고 통째로 아공간에 넣어 가져가야겠소. 시간을 더 끌 이유가 없군.”
“흐흐, 좋은 생각이오.”
꽈악! 아이반이 창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고 자세를 잡았다. 목표는 녀석의 심장.
일격에 꿰뚫어 숨을 끊어놓는다. 쉬익! 한껏 마력을 담아서 집어던지니 창이 마치 사라진 듯이 보였다. 아이반이 던진 창이 어느새 녀석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뀌이익!”
녀석이 화들짝 놀라 몸을 틀었다.
아이반의 투창이 녀석의 심장 대신 가죽만 잘라내고 튕겨 나왔다. 피가 왈칵 쏟아졌으나 목숨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놈이 날뛰기 시작했다.
“젠장! 저걸 피했다고?”
가죽이 지나치게 튼튼한 탓도 있었다. 만약 아이반이 활을 쏘았으면 화살이 박히지도 않았으리라. 차르륵! 피알라르가 강철로 된 그물을 뿌렸다. 황금멧돼지를 뒤덮은 그물이 바닥에 박혀들었다가 이내 으드득 끊어졌다.
중대형 몬스터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인데 잠깐을 버티지 못했다.
“맙소사, 괴물은 괴물이군!”
쾅! 단숨에 천둥걸음으로 거리를 좁힌 아이반이 검을 휘둘렀다. 녀석의 머리를 베려고 했으나 칼이 깊이 박히지가 않았다. 지독하게 가죽이 질겼다. 왈칵! 녀석의 목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황금색 가죽을 적셨다. 황금멧돼지가 고통과 분노, 공포에 질려서 몸을 비틀었다.
“크허엉!”
둥! 둥!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파였다. 나무가 쓰러지고 바위가 부서져나갔다. 짐승 하나가 날뛰는 것만으로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퍽! 녀석의 박치기를 방패로 막아낸 아이반이 멀찍이 날아가 나무를 부수고 바닥에 쓰러졌다.
튼튼한 방패가 쪼개지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망할 놈, 힘은 더럽게 좋네.”
아이반이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이 콧김을 잔뜩 뿜으며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반드시 아이반을 죽이겠다는 기세였다. 그야말로 저돌이다.
“흐읍!”
아이반이 도끼를 집어던졌다. 그의 도끼가 녀석의 엄니를 부수고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놈이 고통에 고개를 돌리자 달려오던 방향이 틀어졌다. 아이반은 녀석이 그를 지나치려할 때 훌쩍 몸을 날려서 놈의 등에 올라탔다.
무척이나 흔들리고 불안정했지만 아이반은 털가죽을 붙잡고 녀석의 목덜미까지 기어갔다.
“아이반!”
피알라르가 크게 소리치며 그에게 창을 던졌다. 그걸 낚아챈 아이반이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꿰뚫고 박아 넣었다. 관천, 하늘 꿰뚫기. 가로막는 모든 것을 꿰뚫고 지나가겠다는, 아주 단순하고 파괴적인 기교가 녀석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뇌를 휘저었다.
그러자 녀석이 짧은 비명을 내지르지도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이마에 흐르는 땀 한 방울을 닦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땅은 다 뒤집어지고 나무는 모두 꺾여있었다. 이렇게나 난리를 쳤으니 오크들이 들이닥치는 것은 시간문제겠지.
스윽 아이반은 숨이 끊어진 황금멧돼지의 시체를 통째로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쉴 시간이 없소. 뒈지기 싫으면 미친 듯이 달리시오.”
뒤늦게 아이반과 피알라르의 존재를 알고 추적해오는 오크들이 수백이었다. 그들은 추적자들을 제거하면서 빠르게 몸을 뺐다.
오크들 역시 이쪽 지형에 익숙하지 않아서 다행히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도망칠 수가 있었다. 완전히 분노로 눈이 돌아버려서 끝까지 쫓아올 것 같던 오크들은 아이반과 피알라르가 산맥을 넘으니 다시 되돌아갔다. 아직까지 그것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다시 피알라르가 머물고 있던 소도시로 돌아온 둘은 그대로 경비대를 찾아가 자신들이 본 것에 대해 증언했다.
“우리는 저 산맥 너머에서 오크무리를 보았소.”
“뭐? 거기까지 갔다고? 그런데 오크들이야 어디서나 잘 나타나는 놈들이 아닌가?”
“녀석들이 쓰는 말을 들었소. 무기도 확인했지. 평범한 놈들이 아니었소. 지금 동부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 녀석들이오. 동부전선이 무너졌으니 이곳으로 녀석들이 곧 들이닥칠 거요. 방어준비를 해야만 하오.”
그렇지만 사람들은 아이반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수백 년 동안 굳건하게 로만왕국의 동쪽을 지키던 동부전선이 무너졌다는 말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동부전선이 무너진다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나 알고서 하는 말이냐! 야만인 둘이서 헛소리나 늘어놓는군!”
비난, 비웃음, 불신.
피알라르는 크나큰 모욕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로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감히 전사의 말을 거짓이라고 음해한단 말인가.
“젠장! 이래서 대륙인들과는 이야기가 안 통한다니까! 그렇게 있다가 오크 놈들에게 몸이 토막 나야만 정신을 차리지!”
피알라르는 몹시 불쾌한 기색이었다. 당장이라도 경비대를 때려눕힐 듯 얼굴이 붉어졌지만 간신히 화를 참아내고 자리를 떠났다. 휙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싸늘했다.
자신의 공방으로 돌아온 피알라르가 코웃음을 흘렸다.
“잘되었군. 어차피 떠나려고 했는데.”
애초에 이곳은 대륙인인 로만 왕국의 영역이지 노르드의 땅이 아니었다.
이곳이 전쟁터가 되든 어쩌든 그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다.
“나는 다시 노르드로 돌아가려고 하오. 이런 곳에서 영웅을 찾는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는 혐오스러운 감정을 가득 담아 몇 번이고 대륙인들을 욕하더니 아이반에게 말했다.
“아이반, 나와 함께 노르드로 돌아갑시다. 내 그곳에서 거하게 대접하겠소.”
그 말에 아이반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초대를 해줘서 감사하지만, 나는 이곳에 남아야겠소.”
“뭐? 설마 여기서 오크 녀석들과 싸울 생각이오? 저 멍청하고 무례한 대륙인 놈들을 위해?”
믿지 못하겠다는 피알라르의 눈빛에 아이반이 피식 웃으며 긍정했다.
“그렇소. 그리 할 것이오.”
그를 지켜보고 있는 신들이 피와 죽음, 전투를 원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무분별한 관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전쟁은 막대한 경험치를 주었다. 특히나 그것이 메인이벤트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아이반의 영적인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결국 레벨을 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른 신앙인들처럼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계속해서 기도를 하며 정신을 단련하는 일은 그와 전혀 맞지 않았다. 아주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아이반은 어느새 전투가 평화보다 익숙해졌다. 전장에서 피를 흘리는 것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 전사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