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43
명백히 도구를 사용해 죽인 것이다. 아이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그들을 만날 수도 있겠소. 쓰읍,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 .”
말을 하던 아이반이 문득 표정을 굳히고 바깥을 보았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적입니까?”
그의 표정 변화를 빠르게 눈치 챈 델피노가 물었지만 아이반은 확답을 하지 못했다.
“모르겠소. 하지만 무기를 들고 있소.”
“무기?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란 말입니까? 그러면 오크들?”
“그건 아니오. 오크들의 기척과는 너무나 달라.”
아이반이 긴장한 표정으로 무기를 뽑아드는데, 멀리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갑고 매끈한 비늘로 덮인 피부,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 날름거리는 혓바닥. 그 모습을 확인한 델피노가 신음처럼 외쳤다.
” 리자드맨!”
도마뱀을 닮은 외형과 강력한 영역의식 때문에 리자드맨들은 인간과 그리 친한 종족은 아니었다.
그런 리자드맨 십수 명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들이 긴장하는 것도 당연했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인데 .’리자드맨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비늘은 자잘한 공격은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예전 어느 습지에서 시비가 붙은 용병 하나가 리자드맨에게 잔인하게 해체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델피노는 그때가 떠올라서 절로 입안이 말랐다. 그는 슬쩍 눈치를 보았다. 싸우게 된다면 차라리 먼저 공격하는 것이 유리했다.
그러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아이반이 그저 서있을 뿐이었다.
그때 대장으로 보이는 리자드맨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쉬이익, 쉐엑, 스솨악, 삭!”
리자드맨이 혀를 날름거리며 거친 숨소리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뱉어냈다.
“어, 저거 혹시 우리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 겁니까?”
델피노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놀랍게도 표정을 굳힌 아이반의 입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시익, 스슈욱, 솩! 스시샥!”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둘은 쉬익거리며 숨소리를 주고받았다. 그제야 델피노는 그 기묘한 숨소리가 리자드맨 특유의 언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러면 리자드맨 언어를 알고 있다는 건가? 진짜 뭐하는 사람이지?’ 아이반은 숨기고 있는 것이 참으로 많았다. 과연 찬란하신 빛의 주, 아룬께서 관심을 가질 만한 사내였다. 델피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대화가 끝난 것인지 리자드맨이 공용어를 내뱉으며 털썩 자리에 앉았다.
“적이 아니면 싸울 필요가 없지.”
“그러시오. 우리는 식사를 하고자 하는데 그쪽은?”
“우리는 그대들처럼 자주 무언가를 먹을 필요가 없다. 기다리겠다.”
아이반이 그쪽을 흘깃 살피고는 델피노를 동굴 속으로 이끌었다.
“일단 저쪽은 신경 쓰지 마시고 식사나 하시오.”
“무슨 일입니까?”
“예상치 못한 손님. 어쩌면 잠깐 정도는 손을 잡을 수도 있는 존재.”
아이반은 자세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도 리자드맨과의 만남은 예상치 못했기에 아직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곰을 보고 나니 왠지 곰탕이 먹고 싶군. 뜨끈한 국밥에 밥이나 말아서 한 그릇 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여기서 냄새를 풍기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니 대충 샌드위치나 씹으면서 끝냅시다.”
아이반은 그러면서 흘깃 리자드맨 쪽을 바라보았다. ‘이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나 본데.’ 기회일까? 아니면 위기? 샌드위치를 씹는 아이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식사가 끝나자 리자드맨들이 아이반과 델피노를 이끌고 움직였다. 물론 야밤에 비를 맞으며 행군을 한다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커다란 덩치들이 같이 움직이고 있어서 대놓고 말을 못할 뿐이다. 힐끔 델피노가 아이반을 바라보았다. 그냥 이대로 따라가도 괜찮겠냐는 뜻이었다.
아이반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빗속을 헤치며 한 시간을 더 이동한 끝에 리자드맨들이 세운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법 커다란 동굴에 큰 천막까지 설치해서 널찍한 공간이었다. 여러모로 곰의 누린내가 가득하던 그 좁은 동굴보다는 나았다. 리자드맨들은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모닥불 앞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은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빗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그들도 원치 않는 일이었으리라.
리자드맨들의 안내를 따라가 안쪽에 마련된 장소를 배정받았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커다란 욕조가 있었다.
“여기는 임시 캠프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런 욕조가 있다고요?”
델피노가 눈을 끔뻑이며 황당해하자 아이반이 주변을 살피다가 마력을 흩뿌렸다.
그들을 감싸는 얇은 결계.
이전보다 한층 자연스러워진 방음마법이었다. 아이반은 그렇게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고서야 설명을 시작했다.
“인간들의 인식과는 달리 리자드맨들은 몹시 깔끔한 종족이오. 아마 칼로난 대륙에서 제일 발전한 목욕 문화를 가지고 있을 걸.”
이들은 체온유지 문제로 더울 때면 차가운 물에, 추울 때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기를 즐겼다. 자연히 목욕 문화가 발달하였고, 자신들의 비늘 틈에 무언가 묻어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몹시 깔끔한 종족이었다. 씻으면 스스로가 약해진다고 생각해서 평생을 씻지 않고 사는 더러운 트롤새끼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썩은 내가 수백 미터는 족히 퍼져나가는 역겨운 놈들.
그런 놈들과 동맹을 맺고 있는 오크, 고블린 놈들도 추잡하기는 매한가지다.
“더러운 그린스킨 놈들, 상회입찰이나 할 줄 알지 쓸모도 없는 놈들이오.”
그렇게 리자드맨의 목욕 문화의 우수성으로 시작해서 그린스킨을 욕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요상한 설명을 들은 델피노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음, 내가 본 리자드맨들은 특별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는데 .”
구마사제로서 많은 곳을 돌아다녔던 그는 리자드맨을 볼 일이 꽤 많았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들이 특별히 깔끔을 떤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적을 찢어 그 피로 몸을 적시기를 두려워하지 않던 위험한 자들이 아닌가.
그런 델피노의 얼굴을 본 아이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전사들이니까. 리자드맨들은 전사가 아니면 영역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소. 그대가 만난 리자드맨들 역시 전부 전사 계급일 거요.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 오물이 묻을 것을 각오하고 인간 사회에 나선 자들이니 그런 걸 못 느꼈을 수도 있겠지.”
“그들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아까 보니 그들의 언어도 하시고. 저는 그들이 금방이라도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입맛을 다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별 거 없는 잔재주지. 그래도 덕분에 우리가 공격받지 않고 이렇게 대접을 받고 있군.”
마치 거친 숨소리와 같은 리자드맨의 언어는 무척이나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종족이 익히기는 몹시 어려웠다.
그런 것을 아이반이 사용하니 호의적으로 나오는 거지 실제로는 이렇게 친절한 자들이 아니었다.
심장을 뽑은 사냥감의 시체를 여기저기 널어놓는 것은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경고를 하는 방식.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공격을 당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리자드맨에게 한 발쯤 걸치려고 했던 것은 맞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너무 빨리 만났소.”
원래 리자드맨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계곡이나 늪지까지는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벌써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그만큼 오크들의 존재를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들의 힘으로 오크를 견제하려는 아이반에게는 좋은 일이었으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주도권을 잡기보다는 끌려가게 생겼다.
“아까 하셨던 대화는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우리가 오크들이 산맥을 넘는 것을 막기 위해 왔다고 했소. 물론 저들은 믿지 않았지. 겨우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래서 이름을 좀 팔았소. 저들은 우리를 일종의 사신으로 알고 있을 거요.”
“그걸 저들이 믿었습니까?”
“리자드맨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무니까 믿을 수밖에. 다소 폭력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저들 역시 지성 종족이오. 사신을 박대하지는 않소.”
그렇게 일단 시간은 벌었지만 거짓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다. 아이반은 진짜 사신이 아니었고, 그들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 당연히 이후의 계획도 있으시겠죠?”
” .”
” 아이반?”
원래 계획은 적당히 오크들을 견제하면서 근처에 있는 던전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걸 공략해서 보상을 챙긴 후에야 상황을 봐서 리자드맨 쪽으로 접근하려했지.
예상치도 못하게 이들을 빨리 만나서 순서가 뒤엉켰다.
소득 없이 몸을 빼기도 그렇고, 그냥 들어가기도 그렇다.
“일단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소. 리자드맨이 군침을 흘릴 만한 정보들은 가지고 있으니까.”
“이들을 믿을 수는 있겠습니까?”
그 말에 아이반이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부모, 형제, 자식도 상황에 따라서 서로 뒤통수를 치는 것이 세상살이였다. 그런데 처음 만난 놈들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 그것도 언어도, 문화도, 심지어 종족도 다른 녀석들을.
“그래도 서로 쓸모가 있을 때까지는 적대할 이유가 없지. 그 아슬아슬한 줄을 타는 것이 문제겠지만, 그렇게 불안하지는 않군.”
거기까지 말한 아이반은 방음결계를 거둬들였다. 조용히 의견을 나누는 거야 일행들끼리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너무 길어지면 의심을 사는 법이다. 리자드맨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아이반에게 말을 걸었던 자는 아니었다.
파충류를 닮은 리자드맨의 얼굴은 인간의 미적 기준으로는 쉽게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특유의 비늘 색이 조금씩 달랐기에 알 수 있었다.
“밤 춥다, 목욕?”
그가 꽤나 숨소리가 많이 섞인 공용어를 내뱉었다.
다른 종족이 리자드맨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리자드맨 역시 공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짧은 단어 위주로 의사소통을 시도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비에 젖었더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좋긴 하겠군요.”
델피노가 그렇게 대꾸하자 리자드맨이 아이반을 바라보았다. 너무 길어서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까 전 그자는 공용어가 꽤나 익숙하던데. 하긴, 무리의 대장이 이런 것까지 일일이 챙길 수는 없겠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아이반이 리자드맨의 언어로 통역을 해주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들의 언어로 말했다.
“몸이 차가워지면 좋지 않지. 저기 달궈진 돌이 있으니 원하면 가져가서 물을 데우시오. 깨끗한 물은 저기 저 샘에서 떠오면 되오.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를 부르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스물일곱 번째 발톱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