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45
“이 깊은 곳까지 와서 헛소리를 할 이유가 없지. 정보는 확실하오.”
“확실하다? 그렇게 단언해서는 안 될 텐데?”
“자신이 있으니까.”
아이반은 그냥 그렇게 질렀다.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씨부럴 알게 뭐야.
아예 단서가 없는 것도 아니니 대충 키워드만 던져두면 이들이 알아서 찾아내겠지.
여기서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 바로 의심을 사고 상황에 잡아먹힌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야 이 새끼 뭐가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법이다.
” 조금 고민을 해봐야겠군. 방을 내어주겠다. 그곳에서 답을 기다려라.”
“오래 기다릴 수는 없소. 지금도 오크 놈들이 산맥을 넘으려 준비 중일 테니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서로 쉭쉭거리고 있으니 델피노는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리자드맨이 내어준 숙소에서 비로소 설명을 들었다. 그러자 델피노의 표정이 무척이나 오묘하게 변했다.
“어, 이거 상황이 좀 심각한 것 아닙니까?”
뱀신 모르나가 침묵한 것이 벌써 수백 년이 넘었다. 그런데 그 단서를 리자드맨이나 나가도 아니고 아스가르드의 전사인 아이반이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보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거짓은 아니오.”
“그렇습니까? 그러면 설마 우리가 찾으려던 던전이라는 것이 .”
“아니, 그건 뱀신 모르나와는 상관없소. 상황이 변했으니 조금 센 것을 꺼내들어야 저들이 반응할 것 같아서 좀 크게 내질렀지.”
깔짝깔짝 내뱉는 걸로는 상황을 주도할 자신이 없었다. 도저히 물지 않고서는 못 배길 미끼 정도는 되어야 낚싯대를 흔들어보지.
지금도 오크들이 움직이고 있었으니 상황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리자드맨들도 몸이 달아올랐다. 어서 빨리 아이반이 한 말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먼저 그대가 가진 정보를 풀어야할 것이다.”
“인정하겠소. 서북쪽 난폭한 호수 아래에 뱀신 모르나의 제단이 있을 거요. 그것을 확인한다면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겠지.”
“여기서 서북쪽이면 오크들의 행로와 겹치는군.”
혹시 이용만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 그런 의심이 담긴 눈빛에 아이반은 당당히 가슴을 폈다.
“단서를 알려주었음에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만 가겠소. 거래상대를 잘못 선택한 셈이군.”
그러자 리자드맨 족장이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대답했다.
” 우리는 신의를 모르는 자가 아니다. 받은 것이 있다면 능히 돌려주어야지. 뱀신 모르나께서 이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뱀신 모르나의 이름을 걸었다면 리자드맨은 계약을 준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경고이기도 했다.
만약 아이반의 말이 거짓이라면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
“나의 신들 역시 아스가르드에서 지켜보고 있소.”
휘이잉- 치지직! 아이반이 슬쩍 신의 힘을 끌어내자 리자드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을 믿을 수는 없지만 그들 문화에서 신의 이름을 꺼낸 전사를 의심한다는 것은 싸우자는 말과 같았다.
“그러면 정해졌군. 출진이다! 우리의 신을 찾으러 떠난다!”
쿵! 쿵! 족장이 그리 외치자 주변에 있던 리자드맨들이 모두 바닥에 발을 굴러 호응했다.
박수를 치고 무기를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전사들은 순식간에 준비를 마쳤다. 각자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족장의 지시를 기다렸다.
족장은 본인이 직접 움직이기를 원했으나, 아직은 아이반의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가 없어서 사나운 이빨을 대장으로 삼았다. 사나운 이빨은 아이반과 델피노를 이곳으로 안내한 일행의 리더였다.
“떠나라! 막아서는 적을 죽이고 우리의 신을 되찾아라!”
아이반과 델피노는 리자드맨의 마을에서 딱 하루를 머물고 다시 숲으로 향했다. 목표는 서북쪽 난폭한 호수, 그리고 그 사이 마주칠 오크들의 섬멸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이들을 움직였으니 절반은 성공했군.’ 아이반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리자드맨에게 들은 오크들의 병력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동쪽에서 거세게 싸우고 있는 지금, 산맥을 넘어오는 이 루트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피해야 있겠지만 어렵지 않게 처리하리라 여겼지.
그런데 오크들이 투입한 병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리자드맨들이 자신들 영역 밖으로 멀찍이 나와서 경계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거의 수천이나 되는 놈들이 산맥에 진을 치고 있다고 했다.황금멧돼지를 잡으러 들어왔을 때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그 사이 그렇게나 늘었다? 심상치가 않았다. ‘나 때문인가? 왠지 나를 알아보는 눈빛이긴 했는데 .’ 아이반은 얼핏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내 흘려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의식과잉이었다.
설마 본인 하나 때문에 수천이 넘는 병력을 빼서 이곳으로 돌린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게 리자드맨의 마을을 벗어나 숲속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을 때, 뭔가 미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온몸에 달라붙는 불길한 공기.
숲이 너무 조용했다.
원래 숲이란 이렇게나 고요한 것이 절대 아닌데. 챙! 아이반이 검을 뽑아들자 주변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
다들 말은 없었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한동안 그렇게 움직였음에도 습격은 없었다. 아이반은 그걸 결코 좋아할 수가 없었다. 천천히 신경이 갉아 먹히는 느낌.
낯설지 않은 감각이었다.
” 포위되었소. 점점 조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때 고요하던 숲을 깨우는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 뿌우, 뿌우우- 아이반은 검을 고쳐 잡았다. 적이 온다.피우웅! 화살이 날아온다.
아이반은 재빨리 방패를 꺼내 앞을 막았고, 그 보호를 받으며 델피노가 기도를 올렸다.
“찬란하신 빛의 주여, 그 따스한 빛으로 우리를 감싸 안으시고 .”
델피노의 몸에서 따스한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고, 그것이 다른 이들의 몸에 스며들었다. 위잉- 아이반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방어막의 존재를 느꼈다. 날아오는 화살들이 가로막혔다.
화살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뿌우, 뿌우우우-
“우! 우! 우!”
다시 한 번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오크들의 기묘한 기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방향을 특정할 수가 없었다. 온 사방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타다닥! 리자드맨 전사들은 적을 그저 기다리지만 않았다. 오크들이 눈에 보이자마자 달려들었다. 오크는 강인한 전사의 종족이었으나, 리자드맨은 더했다. 그 커다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폭발적인 속도는 오크들의 목을 베어버리기 충분했다.
아이반 역시 검을 쥐고 달렸다. 선두에 있던 오크의 심장을 꿰뚫었다.
옆에서 다가오는 녀석을 발로 차서 치우고, 그 뒤에 있던 녀석의 목을 날렸다. 도끼가 어느 놈의 두개골을 쪼개놓고, 창이 녀석들의 가슴에 새로운 숨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녀석들의 핏물이 아이반의 몸을 적셨다. 오크들의 피는 붉고, 뜨거웠으며, 비릿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오크들을 쓰러뜨리고 있으면서도 아이반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흘깃 리자드맨 전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처음의 기세를 잃고 조금씩 막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단단한 가죽에 상처가 하나씩 새겨졌다.
오크들은 그저 수만 많은 약병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가 강인한 전사이자 투사였고, 자신의 죽음이 이 땅에 영광을 가져온다고 믿는 광신도였다. 오크들은 치열한 싸움을 좋아했다.
피가 끓는 전투 속에서 황홀함을 느꼈다. 강자와의 전투가 곧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모시는 종족신, 오크투신 타르칸이 그것을 원했다. 때문에 약하다 해서 방심할 수가 없었다. 쾅! 사나운 이빨이 검을 휘두르자 바위가 부서지고 바닥이 갈라졌다.
그 주변에 서있던 오크들의 몸이 쪼개지고 팔다리가 짓뭉개졌다. 그러나 오크들은 사지 중 하나를 잃어도 투지를 잃지는 않았다. 눈을 붉게 물들이며 한 칼이라도 더 휘두르려고 애썼다. 걷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무기를 휘두르지 못한다면 깨물어서라도.
그런 자들이 하나가 아니라 수십을 넘어가면, 그 뒤에 수백이 있고 수천이 있다고 생각하면 질릴 수밖에 없었다.
“마을로 돌아간다!”
사나운 이빨이 그리 외쳤다. 이대로는 버틸 수가 없다.
자신들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오크들은 순순히 그들을 보내주지 않았다. 짙은 주력이 피어오르더니 숲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나무가 자리를 옮기고 길을 지웠다.
그 너머에서 날카로운 투기가 느껴졌다.
돌아가는 길은 이미 막힌 듯하다.
“주술사! 아주 제대로 준비했구나!”
사나운 이빨이 본인의 이름대로 사납게 소리쳤다.
주술사가 후방을 막았으면 그것을 뚫고 지나가기는 어려웠다.
답은 전진.
앞으로 나아간다.
“난폭한 호수로 간다! 그곳은 우리들에게 유리한 곳이니 오크들이 쉽게 날뛰지 못할 거다.”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아이반과 델피노를 바라보았다. 리자드맨에게는 호수가 익숙했지만 인간들에게는 아닐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을 바꿀 수는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나운 이빨은 그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시기가 너무 공교로워.
그저 우연일까?’ 갑자기 찾아온 인간들, 이어진 오크의 공격.
언뜻 생각하면 이상할 것이 없었으나, 사나운 이빨은 어딘가 껄끄러웠다. 아이반은 그런 기색을 눈치 채고 입을 다물었다.
리자드맨들이 쉽게 이용당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치직, 치지직! 아이반의 몸에서 번개가 흘러나왔다. 그는 신의 힘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길을 열겠소. 따라 오시오.”
사나운 이빨은 잠시 아이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