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5
“전투 준비!”
아이반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파티원들은 정리하던 짐들을 내팽개치고 무기를 들어올렸다. 따로 정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서 움직였다. 이제는 둔한 자들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언데드들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젠장! 동굴 입구를 막고 버텨야 하나?”
“수가 많아! 그래서는 말라죽는다! 위험해도 벗어나야만 살 수가 있어!”
짧은 의견 교환 후, 파티원들은 일제히 동굴 밖으로 뛰어나왔다. 다행히 언데드들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적들만 해치운다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길을 연다! 떨어지지 않게 바짝 붙어와!”
그렇게 소리친 랄프가 일행의 선두에 섰다.
그는 검을 든 팔을 등 뒤로 돌리고 방패를 몸에 딱 붙인 기묘한 자세를 하고 앞을 노려보다가 언데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실드차지!] 짧은 도약 후 상대에게 달라붙어 방패로 밀치는 탱커의 기본 스킬.
그동안 스쳐지나갔던 어중이떠중이들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방패술이 랄프의 손에서 제대로 펼쳐졌다.
슈우욱! 쾅! 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전방의 적들이 일제히 밀려나간다.
그렇게 생긴 짧은 틈을 치고 율리아가 뛰쳐나와 마무리를 했다.
강한 진각, 거기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스피드, 앞으로 달려 나가며 펼쳐지는 연격기. 쿵! 스스슥 치지직, 치지지직! 율리아의 몸에서부터 뿜어진 푸른색 번개가 사방으로 튕겨져 나간다. 주먹질을 한 번 할 때마다 마치 천둥이 터지는 것 같은 굉음이 들리고 언데드들이 무너져 내린다. [천둥걸음!] [뇌격권(雷擊拳)!] 반쯤 썩어서 진물이 뚝뚝 흘러내리던 언데드들의 몸이 터져나갔다. 이미 죽은 놈들이었으나, 생명을 대신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던 사령핵이 부서지자 허무하게 쓰러진다.
“빨리 달라붙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야!”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고 있는 랄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큰 기술을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반동이 있었다. 준비 시간 없이 남발할 수가 없었으니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포위당할 뿐이다. 슈욱! 슈우욱!
“젠장! 언데드라니, 나랑은 상성이 나쁜데!”
뒤를 향해 화살을 날리던 스벤이 욕설을 내뱉었다.
언데드는 이미 죽어버린 놈들이라 단번에 급소를 공략해서 핵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면 상처는 별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 모든 화살을 머리나 심장에 박아 넣는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화살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고, 회수할 수가 없는 상황이니 더더욱. [매직 미사일!] 투명한 마력으로 만들어진 투사체 몇 개가 날아가 좀비의 몸을 때렸다. 녀석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지! 이거야 마법사 양반! 계속 이렇게 망할!”
넘어졌던 좀비가 다시 일어났다.
살점이 떨어지고 달랑거리던 손목이 날아갔으나 녀석은 이전과 똑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위력이 부족한 모양인데, 조금 더 강한 마법은 없 .”
말을 하던 스벤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도저히 그런 말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색 마탑의 마법사 에민은 헥헥 거리면서 죽을 듯 살 듯 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매직 미사일이라도 몇 번 날린 것이 용하다 여길 정도로 안색이 엉망이었다. 마법은 극도의 정신집중과 세밀한 마력컨트롤이 필요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육성된 배틀 메이지가 아닌 이상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건 에민을 탓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마법사는 이렇게 쓰이는 게 아니니까.
슈우욱! 푹! 아이반이 검을 휘둘렀다. 옆에서 달려들려던 좀비늑대의 머리가 잘려서 바닥을 구른다.
“고, 고맙 !”
아이반은 감사를 표하려는 에민에게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호흡을 아끼시오. 한참은 더 달려가야 하오.”
스걱! 푸슉! 아이반이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언데드 하나가 바닥에 쓰러진다.
사령핵만을 노리는 극도로 효율적인 칼놀림. 그러나 그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생각보다 속도가 늦어.
따라잡힌다.’ 파티원들은 다들 실력이 있었지만 언데드를 상대하는 방법은 미숙했다.
지금은 강한 힘으로 밀고 가고 있었지만 금방 지치고 말거다. 당장 에민의 체력이 가장 문제였다. 그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이 벌써부터 느껴졌다.
‘분명히 지휘개체가 있을 텐데 .’ 자연 발생한 언데드들이 아니었다.
지금 이 녀석들을 움직이고 있는 중간 보스급 개체가 근처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이반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마력을 듬뿍 머금은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대낮처럼 환하게 주변을 살필 수가 있었다. ‘이놈은 아니고, 저놈도 아니고, 저기 저 녀석은 그래, 네놈이구나.’ 목표를 확인한 아이반이 사납게 웃으며 손을 바꿔 쥐었다. 투척용 손도끼를 오른손에 쥐고 축복을.
“토르, 토르. 망할 놈의 빌어먹을 토르. 내 적의 대가리를 부수기 위해 힘을 빌려주시오.”
우웅- 저 멀리, 아주 멀고 먼 곳. 필멸자들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천상의 한 귀퉁이에서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반의 몸속에서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닌 힘이 솟아올랐다. 망할 천둥의 신이 신앙심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자신의 전사를 위해 힘을 빌려준 것이다. 대가리를 부수라.
적의 대가리를 부수고 썩은 핏물로 축제를 열어라.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며, 무식하기 짝이 없는 천둥의 신은 그것으로 만족한 듯 축복을 내려주었다. 우웅- 치직, 치지직! 마치 말조심하라는 듯 따끔거리는 손도끼를 치켜들고 아이반은 자신의 적을 향해 집어던졌다.
“토오오르으으으!”
슈우욱! 퍽! 하얀 번개는 썩은 트롤의 몸을 가르고 머리에 박혀들었다. 중간에 검은 방어막이 막아섰지만 신의 축복을 받은 도끼는 그것을 부수고 기어이 골통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건방진 전사가 자신의 적을 가리키자 오만한 천둥의 신이 껄껄 웃었다. 자신의 전사를 위해 친히 망치를 내리쳤다.
번쩍! 쿠구구쾅! 아주 잠깐 밤이 낮이 되었다. 하늘에서부터 한줄기 벼락이 내려와 손도끼의 손잡이를 타고 썩은 트롤의 몸을 지져버렸다.
그것으로 모자라 놈의 주변에 있던 언데드 몇까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 파괴적인 광경을 본 일행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도끼를 던지자 번개가 내리치고 언데드를 쓸어버렸다는 것만으로 할 말을 잃기에는 충분했다.
” 이거 그냥 내버려뒀으면 당신이 혼자서 다 쓸어버릴 수가 있었던 거 아니오?”
질린 듯한 표정으로 랄프가 묻자 아이반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적이 얼마나 더 있을지 알고? 나라고 매번 이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뭐, 그거야 그렇겠지만 .”
“헛소리 말고 길이나 뚫으시오. 밤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이곳을 벗어나야 하니까.”
그 다음 랄프가 사용한 실드차지부터는 묘하게 힘이 없었다.
챙! 도르르르, 탁! 날이 밝았다. 밤새 뛰어다니던 랄프는 적당한 동굴을 발견하자마자 무기를 집어던지고 쓰러지듯 바닥에 뻗어버렸다.
“씨부럴, 모처럼 빡센 밤이었어.”
강인한 체력의 검방 전사가 욕설을 내뱉을 만큼 지난밤은 무척이나 고단했다.
낮에는 어떻게 숨어있었던 것인지 사방팔방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언데드들의 대가리를 부수고, 정신없이 달리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가장 체력이 약한 마법사 에민은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서 눈이 풀려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툭 건드리면 그대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나마 체력을 보존한 아이반은 마지막까지 후방에 남아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야 동굴로 들어왔다.
“모두 사라졌소. 해가 뜨니 아무래도 언데드들이 움직이기엔 껄끄럽겠지.”
“그건 밤이 되면 놈들이 또 다시 나타난다는 뜻이군. 젠장, 내가 수락한 의뢰에는 이런 말이 없었는데 .”
날카로운 시선이 에민에게 박혀들었다. 임무 수행 중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의뢰인이 욕을 먹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따가운 눈총 정도로 끝났으니 몹시 신사적인 태도였다. 이들이 용병 길드의 추천을 받을 정도로 급이 높은 용병들이 아니었다면 이미 한 명쯤은 칼을 뽑아서 의뢰인의 목에 들이댔을 거다.
“청색 마탑에서 알고 있는 것은 뭐요? 여기서 숨길 생각은 하지 마시오, 마법사 양반. 상황이 이러니 꼭 알아야 되겠소.”
어제에 비해 확연히 공격적으로 변한 말투.
에민은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 마탑에서는 얼마 전에 숲속 깊은 곳에서 이질적인 마력의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원래 거기에는 오래된 유적이 하나 있는데, 사실 그동안은 별 다른 것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쪽에서 마력반응이 나타나고 숲의 몬스터들이 포악해졌다고 하니 사실 유적에 뭔가 숨겨진 것이 있는 게 아닌가하는 말이 나와서 .”
유적.
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용병들의 눈빛이 변했다.
몹시 위험한 곳이었으나 잘만하면 인생을 바꿀만한 대박이 숨겨져 있는 곳이 바로 유적이었다.
“유적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신만 움직인다고? 군침을 흘릴 사람이 하나둘이 아닐 텐데? 그건 마법사들이 더하지 않나?”
율리아의 날카로운 질문.
에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유적에 뭔가 더 있을 거라는 건 소수의견입니다. 이미 거기는 수백 년 동안 알려질 만큼 알려졌거든요.”
적어도 청색 마탑의 상층부, 늙은 마법사들은 별 것 없으리라 여겼다는 소리다. 그런 뜬소문에 몸이 달아오른 것은 젊고 모험심이 많은 마법사밖에는 없을 정도로.
“우리를 공격했던 언데드들은 자연발생된 것이 아니지. 명백히 누군가 만들어낸 놈들이지. 이게 과연 유적과 관련이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사령술과 관련이 있었다면 수백 년 동안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
“그 ‘설마’하는 마음 때문에 조사를 의뢰했던 것 아니오? 알 수 없는 일이지.”
동쪽 숲의 오래된 유적이라, 여기에 대체 뭐가 있었지? 아이반은 미간을 찡그리고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는 딱히 설정에 파고드는 스타일의 게이머는 아니었기에 이런 쪽으로는 몹시 약했다.
“그래서 들어갈 건가? 아니면 빠져나갈 건가?”
“본래라면 이런 위험은 피해가는 것이 상책이지. 하지만 .”
유적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만약 정말로 미발견된 유적이라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해도 한 번쯤은 모험을 걸어 볼만 했으니까.
“그래도 바로 진입하는 것은 위험해. 언데드용 장비로 세팅을 마친 다음이라면 가능성이 있겠지.”
오래된 마법서,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 금화와 보석.
욕심이 슬금슬금 움직이며 그들의 눈을 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