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6
눈 먼 용기는 실패의 두려움을 외면하고 성공의 달콤함만을 가리켰다. 아이반 역시 반대하지 않았다. 메인스토리와 연결되어있는 연계 퀘스트의 완료, 그 보상.
종류는 달랐지만 욕심이 생긴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용맹함인가, 만용인가.’ 아이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적을 해치울 때는 잘만 느껴지던 신의 존재를 지금은 찾을 수가 없었다. 숲을 벗어나 성벽 안쪽으로 들어온 일행은 최대한 은밀하게 짐을 꾸렸다. 벌써 돌아왔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허허 웃으며, 처음 합을 맞춰보느라 손발이 맞지 않아서 돌아왔다, 금방 안으로 들어갈 거라 둘러댔다.
잃어버린 짐들을 다시 구매하고, 언데드를 상대하기 좋은 장비들로 교체했다.
랄프와 스벤은 큰마음을 먹고 은으로 도금된 무기도 샀다고 했다.
주말에 신전으로 가면 성수랍시고 뿌리는 맹물이 아니라, 제대로 성직자가 신성력을 쏟아 부어서 축성한 성수도 몇 병을 챙겼다.
“젠장, 망할 신전놈들. 물에다가 손만 몇 번 담그면 되는 것을 가지고 더럽게 비싸게 팔더군. 효과가 없기만 해봐라, 당장 신전에 쳐들어가서 사제놈들 대가리를 다 부숴버릴 거야.”
랄프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한쪽 품에 성수를 소중히 쑤셔 넣었다. 말과는 달리 성수를 몹시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이틀.
아주 짧은 정비를 마쳤다. 어디서 정보가 샐지 모르니 다들 서둘러 출발하고자 했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면 언데드들이 우리를 알아차릴 겁니다. 위험하지만 밤에도 움직여야만 해요. 쉬더라도 밤중에 두 번 정도는 장소를 바꿔야 합니다.”
계속 이동하면서 잠을 끊어 자야 한다는 뜻이다. 휴식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최악이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낮에 자고 밤에 움직이는 편이 낫겠군.”
투덜거리는 랄프에게 스벤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어두운 숲을 무시하지 마. 언제 언데드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을 돌아다닌다니, 무모한 일이야. 얼마 움직이지도 못할 테고.”
“이동하려면 언데드가 튀어나오지 않는 낮에 많이 움직여야 하오. 낮에 베이스캠프를 만들면서 이동하고, 밤이 되면 왔던 길을 돌아오면서 쉬어야겠지.”
같은 길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나아가야하니 속도는 좀 나지 않겠지만 어두운 밤에 모르는 길을 찾아 나설 수는 없었다.
“다른 의견 있소?”
아이반이 묻자 다른 이들은 어깨를 으쓱거릴 뿐 별 말하지 않았다. 다들 동의한다는 뜻이다. 조금 귀찮고 피곤한 것 정도로 언데드들과의 싸움을 피할 수가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스스슥! 타다닥! 일행은 빠르게 숲을 가로질러 움직였다. 이전과 같이 스벤이 선두에서 길잡이를 맡고, 추적술을 인정받은 아이반이 후방에서 훑으며 전진했다.
겨우 며칠 만에 다시 방문한 숲속은 이전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살아있는 몬스터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에 있던 놈들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야. 언데드놈들이 돌아다니니 다른 곳으로 도망쳤을 뿐이지.’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하늘에서 장대비를 퍼붓던 그날 이전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으니까.
‘좋지는 않군.
언데드들이 동쪽 숲을 장악할 만큼 세력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니.’ 뒤쪽에서 흔적을 확인하며 움직이던 아이반은 흘깃 선두에 선 스벤을 바라보았다. 동부전선 레인저였다는 그는 이 모든 것을 알아차렸을 거다.
그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역시 욕심이 눈을 가려서 위험하게 느껴지지가 않는 걸까? 어쨌든 그들의 전략, 낮에 안전한 루트를 확보하고 저녁에 조금씩 후퇴하며 휴식한다는 것은 꽤 잘 들어맞았다. 멀리서 언데드들이 움직이는 기척은 느껴졌으나 직접적으로 공격을 받기 전에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반은 영 껄끄러웠다. 이것이 전략이 좋아서인지 적들이 자신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런 불안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흘이 되기 전에 유적이 있다는 호수 근처까지 도달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점점 언데드들이 촘촘하게 숨어있어서 조용히 지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확실하군요. 유적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사기(邪氣)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언데드들이 창궐한 것은 유적이 원인인 게 틀림없습니다. 맙소사, 정말로 미발견된 유적이 숨어있었다고?”
에민이 감탄하고만 있자 율리아가 빠르게 물었다.
“진입 방법은? 저 많은 언데드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다.”
“최단거리로 뚫어야죠. 일단 유적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의 언데드들이 들어오지는 못할 겁니다.”
“대신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무언가를 상대해야만 하겠지.”
“흐흐, 그 정도 위험은 알고 있었잖아? 재수 없으면 뒤지는 거고, 운이 좋으면 살아남겠지. 막대한 보물을 가지고.”
“안에 보물이 있을지 없을지 아직 알 수 없다만.”
“있을 거야. 황금은 귀신같이 찾아내는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크흐흐, 그러면 마법사 양반? 언제 진입할 거요?”
“내일 아침. 언데드들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 들어갑시다. 마지막으로 유적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죠.”
수백 년 전, 이곳에는 수도자들이 모여서 살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숲속에 신전을 세우고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한 상태로 신앙심을 가다듬던 수행자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이곳을 찾는 수행자는 점점 줄어들었다고 했다.
신앙심만을 등불로 삼아 극도로 폐쇄된 수도원의 생활을 견디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빛의 신, 아룬을 모시던 그들은 결국 다른 곳으로 떠나고 버려진 수도원만 이렇게 유적으로 남아 .”
역사를 줄줄 읊어대던 에민의 말을 끊은 것은 랄프였다.
“그런 것까지는 우리가 알 필요가 없고, 그래서 저기는 원래 빛의 신, 아룬을 모시는 수도원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지금은 언데드를 뿜어내는 마굴이 된 거요? 중요한 것은 그거지. 우리가 저기 안으로 들어갔을 때 상대해야만 하는 놈들이 무엇이냐, 하는 것.”
한창 즐겁게 역사를 늘어놓던 에민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다가 대답했다. 이전과는 달리 간결하게.
“아룬의 신전 중에서는 오래된 악마나 마물을 봉인해둔 곳이 있습니다. 아무도 몰랐지만 사실 이곳이 그런 곳이었나 보죠.”
“오래된 악마? 마물? 그거 우리가 상대할 수는 있는 거요? 아룬의 신전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봉인만 해뒀던 놈들인데 .”
“그런 놈들은 이미 소멸되었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수도원이 버려졌을 이유가 없죠. 봉인은 대신전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중간에 실수로 전승이 끊겼다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아룬교단은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닙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에민을 보면서 아이반은 헛웃음을 삼켰다. ‘허술한 곳이 아니라고? 세상에 백퍼센트는 없는 법이지.’ 그 전까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긴가민가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직접 눈으로 보니 확신할 수가 있었다. 버려진 수도원. 한때 그가 미친 듯이 돌고 돌았던 인스턴스 던전.
흔한 이야기였다. 수도원에서 신앙심을 가다듬던 수도자들이 타락하여 악마를 소환하려 했다는 것 정도는. 결국 본단에 걸려서 이단심문관과 성전기사단이 출동해 싹 쓸고 지나갔는데 지하에 숨겨져 있던 불완전한 데몬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했고,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된 플레이어가 마무리한다는 것이 버려진 수도원의 스토리였다. ‘지금 파티로 클리어가 될까?’ 아이반은 팔짱을 낀 채 다른 이들을 살펴보았다. 하나하나 실력이 나쁘지 않은 이들이지만 영 확신이 없었다. 지금은 게임을 하는 게 아니었다.
현실이 된 던전은 상상이상으로 위험한 공간이었다. 설마 친절하게 모든 것이 공략대로 돌아갈 리가 없으니까.
당장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않으면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는 게임과 달리 지금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원래 클리어가 될 시점보다 지금은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아이반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저렙 인던이고, 게임 속에서는 솔플도 가능한 곳이야. 적정 레벨보다 내가 높으니 괜찮을 것도 같은데 .’ 왠지 감이 좋지 않았다. 그것은 이른 시기에 방문하게 된 던전의 불확실성 때문일까, 아니면 .
“오늘은 확실하게 쉬고, 배도 든든하게 채워야겠군. 내일 아침부터 힘 꽤나 써야겠어.”
“흐읍, 차!”
슈우욱! 쾅! 퍼져나가는 충격파. 아침이라 행동이 굼뜬 언데드들을 깨부수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랄프의 실드차지에 이은 율리아의 뇌격권. 앞을 막고 있던 언데드들이 일순간 밀려나고, 그 위로 날카로운 얼음 화살들이 꽂힌다. 냉기가 뿜어지고 안 그래도 굼뜬 언데드들이 얼어붙어 완전히 멈춰 섰다.
이전의 어설픈 매직미사일과는 확연히 다른 마법.
제대로 준비한 마법사의 공격은 대포와 다를 게 없었다.
“나이스, 마법사 양반!”
피슈웅! 파각! 얼어붙은 언데드들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가는 스벤의 화살.
사령핵이 부서진 언데드들은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예전 밤에 그들을 덮쳤던 녀석들 보다 숫자는 훨씬 많았지만 상대하기는 훨씬 편했다. 높게 떠오른 태양이 부정한 마력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막힘없이 뚫고 들어간 일행들은 어렵지 않게 버려진 수도원에 진입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던 유적지.
한쪽 구석이 폭삭 무너져서 숨겨져 있던 입구가 드러나 있었다. 음산한 마력이 그곳에서부터 흘러나와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입구를 발견했다! 안쪽으로 들어간다!”
느릿하게 몰려오는 언데드를 피해서 얼른 그곳으로 향했다. 그 급박한 와중에도 아이반은 무심코 펄쩍 뛰어 들어갔다.
입던은 점프가 개념.
현실이 되었음에도 그 병신 같은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던 모양이다.
화아악! 쿵! 무언가 일렁이는 공간을 지난다 싶더니 어느새 바닥에 착지해 있었다. 분명히 계단을 통해 내려왔건만 뒤를 돌아보니 출입구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던전화가 된 공간입니다. 핵을 부수고 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에민은 그렇게 설명하면서도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평생 마탑에서 마법만 연구하던 그가 언제 던전에 들어와 봤을 리가 없었다. 배운 대로 설명은 하지만 본인도 신기하겠지.
“그만 두리번거리고 집중하시오. 던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이전에 아이반은 두어 번쯤 던전을 해결한 적이 있었다. 게임 속에서와는 달리 아주 끔찍하고 더러웠으며, 조금만 방심해도 목숨을 앗아가는 위험한 곳이었다.
물론 그때보다 아이반은 훨씬 강해졌지만, 지금 들어온 던전의 수준 역시 그때보다 훨씬 높았다. 저레벨용 던전이라고 얕볼 수는 없었다. 혼자서 악마를 때려잡고 용종을 사냥하는 전설적인 업적을 세워도 게임 속에서는 저렙이라며 개무시를 하니까.
“던전은 이계요. 오래전에 죽은 영웅이 적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진지 오래된 마물이 멀쩡히 돌아다니기도 하지.”
낮게 중얼거리는 아이반의 말을 듣고 모두 무기를 들었다. 신기함은 접어두고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오감을 날카롭게 세우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탁!
“윽!”
방패로 몸을 가리고 움직이던 랄프의 몸을 잡아끌었다. 갑자기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는 랄프의 시선을 무시하고 스벤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한참이나 무언가를 살피던 스벤이 욕설을 내뱉었다.
“씨부럴, 여기 수도원이라고 하지 않았소? 아무리 던전으로 변했다지만 이딴 게 왜 있는 거지?”
철컹 슈칵!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던지니 바닥에서 날카로운 철창이 솟아올랐다. 한 발짝만 더 갔으면 랄프의 가랑이를 찔렀을 거다.
“안타깝군. 내 안에 숨겨진 성적 취향에 대해 알아볼 기회였는데.”
어깨를 으쓱이며 농담을 하는 랄프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꽤나 놀란 모양이다.
“멀쩡한 수도원이었으면 아무리 망했다고 한들 언데드가 튀어나올 리가 없지. 당연한 일이니 피해서 넘어가시오.”
“젠장, 이런 함정에 대해서는 약한데 .”
스벤이 투덜거리며 길을 찾는 사이 아이반은 가만히 튀어나온 철창을 바라보았다. 핏자국은 없고, 파편도 없다.
하지만 무언가에 부딪혀서 희미하게 깎여나간 흔적.
아이반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 선객이 있군.’ 사실 미발견된 유적은 무척이나 위험했고, 그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